존경하고 사랑하는 예술가가 살았던 곳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어떤 곳은 관광지가 된다.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동기는 방문의 이유로 충분하니까. 스웨덴의 포뢰섬이 그렇다. 2022년 8월 개봉한 미아 한센 러브 감독의 영화 <베르히만 아일랜드>(2021)는 스웨덴 포뢰섬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포뢰섬은 잉마르 베리만이 살던 곳이다. 그러므로 스웨덴 포뢰섬에 가기 전 준비할 건 잉마르 베리만의 작품을 보는 일이다. <베르히만 아일랜드>의 주인공들처럼 각본을 쓰는 이들이라면, 잉마르 베리만 같은 거장의 기운을 받아 글이 잘 써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방문하게 될 거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마지막 영화 <희생>은 스웨덴에서 촬영했으며 잉마르 베리만의 작품에 주로 참여한 스텝과 배우가 함께 했을 만큼, 잉마르 베리만에 대한 헌사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뿐만 아니라 거장이라고 불리는 많은 감독이 그에 대한 존경심을 숨기지 않았다. 잉마르 베리만은 연극, 영화, 드라마 등 이야기를 통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능했던 예술가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세 차례 받는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은 그의 영화가 가진 깊이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그의 영화는 삶의 심연을 다루고, 영화가 끝날 때쯤 관객은 마음의 가장 깊은 지점까지 들여다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잉마르 베리만은 자서전 <마법의 등>과 인터뷰 등을 통해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말하곤 했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영화에 투영하기도 하기에, 그의 영화는 상처 입고 떨어져 나온 조각들로 만들어진 작품처럼 느껴지곤 한다. 질투, 아픔, 체념 같은 것들을 재료 삼아 만들었음에도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는 아름답다. 영화가 닿을 수 있는 가장 깊은 곳을 향해가는, 잉마르 베리만의 작품을 살펴보자.

잉마르 베리만 감독, 이미지 출처 – ‘independent

 

 

<제7의 봉인>

14세기 유럽, 페스트로 인해 많은 이들이 죽고 스웨덴 또한 마찬가지다. ‘안토니우스’(막스 폰 시도우)는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던 기사로, 10년 만에 고향 스웨덴에 찾아온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는 건 죽음의 사자(벤그트 에케로트)다. 안토니우스는 죽음의 사자와 체스를 둔다. 체스를 두는 동안 안토니우스는 자신의 고향에서 여러 풍경을 둘러보며 신과 세상에 대해 생각한다.

잉마르 베리만의 많은 작품 중에서도 가장 알려진 영화라면 <제7의 봉인>(1957)일 거다.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영화로, 후대의 많은 영화인들에게 영감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죽음의 사자 캐릭터, 기사와 사자의 체스 게임, 신에 대한 질문 등 <제7의 봉인>의 영향력은 수많은 영화에 녹아 들어있다.

영화를 접하게 되는 다양한 경로가 있을 텐데, 주변 이들에게 <제7의 봉인>을 어떻게 보게 되었냐고 물었을 때 가장 많은 대답은 ‘대학교 수업 시간’이다. 잉마르 베리만을 알게 된 계기를 멋진 우연으로 포장하고 싶으나, 나조차도 잉마르 베리만을 알게 된 계기는 <제7의 봉인>을 철학 관련 교양 수업 때 보았기 때문이다. <제7의 봉인>이 던지는 질문의 묵직함을 생각하면, 이만큼 토론하기 좋은 영화도 없을 거다.

<제7의 봉인>이라는 제목은 성경의 요한계시록에서 따왔다. 안토니우스는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오지만 죽음의 기사가 기다리고, 시대는 페스트와 전쟁으로 혼란하다. 체스를 두는 동안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만 신은 침묵하고, 세상은 점점 더 안 좋아진다. 죽음이라는 명백한 수 앞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무엇일까? 체스에서 어떤 선택은 신의 한 수처럼 보이겠지만, 돌아보면 그 선택이 오히려 악수가 될 때도 있다. 세상이 내게 ‘체크 메이트’라고 외치고 죽음을 앞두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이 있을까. <제7의 봉인>은 볼 때마다 다른 매력을 발견하게 되는 영화이자, 볼수록 더 무겁게 다가오는 질문을 안겨주는 작품이다.

 

<산딸기>

‘이삭’(빅터 쇠스트롬)은 50년 동안 의사 생활을 한 것에 대한 공으로 명예학위를 받는다. 학위수여식을 앞두고 이삭은 불길한 꿈을 꾸고, 비행기를 타는 대신 직접 자동차를 몰고 수여식에 가기로 한다. 며느리 ‘마리안’(잉그리드 툴린)이 동행한 가운데, 이삭은 과거의 추억이 있는 장소 앞에서 산딸기를 보며 과거를 회상한다. 과거에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와 이름도 같고 얼굴도 닮은 ‘사라’(비비 안데르손)와 두 청년도 여행해 합류하고, 이삭은 불길한 꿈을 꾸고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

<산딸기>(1957)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은 작품으로, 스웨덴 영화사에서도 의미가 깊은 작품이다. 스웨덴 영화에 입문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산딸기>의 주연배우와 감독이 연출한 작품을 보는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스웨덴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두 인물이 <산딸기>의 주연과 감독을 각각 맡았기 때문이다. 주연을 맡은 빅터 쇠스트롬은 <유령마차>(1921), <바람>(1928) 등을 연출한 감독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해 활동하기도 했던 무성영화시대 스웨덴을 대표하는 감독이자 배우다. 잉마르 베리만은 빅터 쇠스트롬의 영향을 받은 감독 중 하나로, 그를 직접 주인공으로 캐스팅해서 <산딸기>를 연출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인물로 스웨덴 영화사의 가장 윗대에 있는 거장을 캐스팅한 건 의미심장하다.

마치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들렌을 맛보고 옛 기억을 떠올리듯, 이삭은 산딸기를 보며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다. 다만 그가 기억하는 과거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이와 사랑에 빠지는 걸 목격하고, 회상 외에도 그가 꾸는 꿈은 자신의 죽음을 목격하는 등 어두운 내용이 대부분이다.

삶은 시작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가고, 아픔이 만연하다. 이삭은 명예로운 일로 길을 나서지만 후회와 아픔으로 채워진 과거를 돌아본다. 가는 길에 그에게 찾아온 건 자신이 얼마나 미련하게 살았는지에 대한 깨달음이다. 이미 많은 걸 잃은 삶에서 자포자기하듯이 살지, 남은 나날 동안 최선을 다할지는 선택하기 나름이다. 삶에서는 슬픔이 팔 할이므로, 인생은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용기가 필요하다. 텁텁할지도 혹은 달콤할지도 모를 산딸기를 입에 넣는 것처럼, 아픔이 대부분이겠지만 찰나의 기쁨이 섞여 있는 삶을 돌아본다.

 

<페르소나>

연극배우 ‘엘리자벳’(리브 울만)은 연극 ‘엘렉트라’ 공연 도중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이후 병원에 입원한 엘리자벳은 의사의 권유로 별장에서 지내게 된다. 엘리자벳은 간호사 ‘알마’(비비 안데르손)와 동행하게 되고, 알마는 엘리자벳과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한다. 알마는 자신의 속 깊은 이야기까지 털어놓는 가운데, 여전히 말이 없는 엘리자벳에게 서운한 마음을 느낀다. 두 사람은 함께 시간을 보내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음을 서서히 알게 된다.

<페르소나>(1966)는 보는 내내 후대의 많은 작품이 이 작품의 영향을 받았음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인상적인 장면으로 가득한 영화다. 예를 들어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팬텀 스레드>(2017)에서 뮤즈이자 연인, 간병인 역할을 하는 캐릭터의 이름은 <페르소나>와 마찬가지로 ‘알마’다. 잉마르 베리만이 ‘영화’에 대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드러낸 작품으로, 실험영화 혹은 시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들로 전개되는 영화다.

잉마르 베리만을 이야기하면서 반드시 이야기해야 할 인물이 바로 촬영감독 스벤 닉비스트로, 그는 잉마르 베리만의 연출작 대부분에서 촬영을 맡으며 <외침과 속삭임>(1974)과 <화니와 알렉산더>(1984)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두 번의 촬영상을 받기도 했다. 실내극을 주로 찍는 잉마르 베리만에게 있어서 빛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늘 화두였고, 그런 면에서 스벤 닉비스트는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 낸 촬영감독이다. 클로즈업을 자주 활용하는 잉마르 베리만의 특징은 <페르소나>에서 특히나 잘 드러난다.

<페르소나>는 시작과 동시에 못이 박힌 손, 움직이는 거미, 남자의 성기 등 다양한 이미지가 등장한다. 이후 한 소년이 등장해서 여자의 얼굴이 담긴 스크린을 손으로 쓰다듬는다. 잉마르 베리만은 무엇 하나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페르소나>가 영화에 대한 영화일지, 잉마르 베리만이 생각하는 자신의 자아에 대한 설명일지, 해석은 관객에게 달려있다. 우리는 우리의 수많은 페르소나 중 어떤 페르소나로 이 영화를 지켜볼 것인가?

 

<화니와 알렉산더>

‘화니’(페닐라 올윈)와 ‘알렉산더’(베르틸 구베) 남매는 아버지 ‘오스카’(앨란 에드발), 어머니 ‘에밀리’(에바 프뢸링), 할머니 ‘헬레나’(군 볼그렌)와 함께 대저택에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낸다. 대가족이 크리스마스를 함께 맞이하는 등 화목한 시간을 보내지만, 극단을 운영하는 오스카가 연극 연습 도중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며 이들의 상황은 급변한다. 에밀리는 목사 ‘에드바르드’(얀 말름셰)와 재혼하고, 화니와 알렉산더는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새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계속해서 갈등한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의 영화가 4관왕을 한 경우는 세 번뿐인데, 그 작품들은 바로 <기생충>(2019), <와호장룡>(2000), 그리고 <화니와 알렉산더>(1982)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영화 잡지 기획 기사를 통해 죽기 직전에 보고 싶은 영화 중 하나로 <화니와 알렉산더>(1982)를 뽑기도 했다. <화니와 알렉산더>는 잉마르 베리만이 <처녀의 샘>(1960),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1961)에 이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3번째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작품으로, 오스카에서 외국어영화상을 포함해 미술상, 의상상, 촬영상까지 4관왕을 차지했다. 드라마 버전으로도 존재하는 작품으로, 잉마르 베리만의 자전적인 영화다.

<화니와 알렉산더>에서 알렉산더의 아버지 오스카는 연극 ‘햄릿’을 준비하다가 세상을 떠나고, 알렉산더는 마치 햄릿처럼 죽은 아버지의 환영을 본다. 어머니는 불만 가득한 알렉산더에게 직접적으로 햄릿 흉내를 내지 말라고 말하지만, 새아버지와 맞서 싸울 수 있는 햄릿과 달리, 알렉산더는 아직 어리고 아버지의 폭력 앞에 굴복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알렉산더는 분명 살아있으나, 알렉산더 곁에는 죽음의 기운이 감돈다. 마음 같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는 건 마치 죽은 것 같다고 느껴지므로.

영화는 극단을 운영한다는 배경 외에도 연극에 삶을 빗댄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삶에서 우리가 맡게 되는 다양한 역할에 대해 말하지만, 같은 역할에 대해서도 각자가 해석하는 건 다르다. 아버지라는 역할에 대해서도 서로 달리 해석한, 화니와 알렉산더의 온화했던 친아버지와 권위적인 새아버지처럼. 연극이라면 개연성이 없을 때 극본을 고치면 되겠지만, 삶은 개연성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말도 안 되는 일이 자연스레 일어나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이 등장하는 영화이지만 왜 화니와 알렉산더가 주인공일지 생각해보면, 아직 경험할 세상이 많기 때문일 거다. 아직 어린이들에게 세상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과 포장해서 보여주는 것, 그 중 잉마르 베리만의 선택은 늘 전자였다. 삶은 결코 아름답지 않고,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는 아름답지 않은 삶을 보여주면서 아름다워진다.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