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때문에> 앨범 커버

악보 위에 자신만의 순수한 열정을 꽃피우기 시작하던 스물다섯 청년 유재하. 그는 1987년 11월 1일, 서울의 한 길가에서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막 완성한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만을 덩그러니 남긴 채. 그렇게 남다른 재능과 이상을 지닌 신예 음악가의 데뷔작은 안타까운 유작이 되었다. 동시에 유재하의 음악은 한국 음악사에 위대한 유산이 되었다.

유재하(출처-위키백과), <사랑하기 때문에> 리마스터링 앨범 커버(우)

사후 몇 십년이 지나도록 열렬히 회자되는 음악가는 많지 않다. 그래서 ‘유재하’는 중요하다. 예컨대 한국 발라드의 등장은 유재하 전과 후로 나뉜다거나, 이후에 나온 국내 발라드는 모두 유재하의 앨범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때로 유재하라는 이름은 어떤 독자적인 장르처럼 여겨질 정도다. 그는 당시 대중가요의 전형적인 틀을 벗고 클래식과 가요를 접목한 고유의 음악 스타일을 선보였다고 평가받는다. 그의 음악은 그래서 더욱 유일무이하다.

유재하 사후 30주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한다. 시간이 지나도 영원히 변치 않을 유재하의 노래를 따라 그의 삶과 음악을 이야기해본다.

 

Track 1. 우리들의 사랑

유재하의 음악이 불후의 명곡으로 남은 배경에는 그의 천부적인 재능을 빼놓을 수 없다. 어렸을 적부터 음악적 재능을 나타내던 유재하는 당시 작곡, 작사에 능하고 편곡과 연주까지 해내는 거의 유일한 음악가였다. 그는 기타, 피아노, 키보드, 바이올린 등 여러 악기에 능통했고,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에서는 혼자 기타와 피아노 연주를 담당했다.  

 

Track 2. 그대 내품에

만일 그대 내 곁을 떠난다면
끝까지 따르리 저 끝까지

저 끝까지 따르리 내 사랑
그대 내 품에 안겨 눈을 감아요
그대 내 품에 안겨 사랑의 꿈 나눠요

여느 감미로운 발라드처럼, 유재하의 노래에도 빠질 수 없는 주제가 바로 ‘사랑’이다.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에 실린 전곡은 유재하가 사랑했던 한 여자를 주제로 만들었다고도 알려져 있다. 실제로 2014년 10월 MBC <라디오스타-황금어장> '유재하이기 때문에' 특집편에 출연했던 피아니스트 김광민은 절친이었던 유재하를 두고 “한 여자만을 바라봤다”고 얘기했다. 그 당시 유재하의 연인은 1집 앨범에도 참여한 플루트 연주가였다고. 많은 이들이 제목만 들어도 아는 그 노래, ‘그대 내품에’의 가사에는 연인을 생각하는 지고지순한 순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Track 3. 텅 빈 오늘 밤

싸늘한 눈 빛으로 한마디 말도 없이
그대는 떠나가고
영문도 모르는 채 그 곳에
한동안 서있었네 우두커니

때때로 훌륭한 예술가들이 사후에서야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 받는 것처럼,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유재하도 비슷한 사정을 겪었다. 앨범 발매 초반, 뭇 평론가들은 유재하의 가창력이 낮다는 이유로 방송 출연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또 클래식과 가요가 합쳐진 이상한 장르의 음악이라 폄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주변 동료들에게 유재하의 음악적 재능은 정평이 나 있었고, 점차 그의 노래는 대학가의 음반매장과 라디오에서 다분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Track 4.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조금씩 자신의 음악을 인정받기 시작하던 유재하는 마침내 방송에 출연하게 된다. 그러나 고대하던 첫 방송 출연은 안타깝게도 유일한 영상으로 남았다. 1987년 KBS <젊음의 행진>에서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부르는 유재하를 만나보자. 1980년대 영상 속에서 편안하게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련한 시절에 그대로 남은 그를 찬찬히 되뇌어 보게 된다.

 

Track 5. Minuet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에서 클래식을 전공한 유재하는 일반적인 경로와 달리 가요를 만들어 불렀다. 당시 고급음악으로 여겨지던 클래식에 비해 대중가요는 상대적으로 저급한 음악으로 치부하는 분위기였지만, 그는 가요에 남다른 관심을 두었다. 앨범에 다섯 번째로 실린 연주곡 ‘Minuet’는 클래식 작곡가로서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곡이다. 앨범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전에 없던 발라드 음악의 선구자다운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Track 6. 가리워진 길

많은 이들이 김현식의 ‘가리워진 길’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곡은 유재하가 작곡, 작사한 것으로, 1986년 발매한 김현식 3집에 먼저 수록된 바 있다. 당시 그룹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에서 활동하던 유재하가 김현식에게 먼저 곡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87년 발표한 자신의 앨범에는 직접 부른 곡을 다시 실었다. 조용필의 ‘사랑하기 때문에’의 경우도 마찬가지. 1984년 대학 재학 시절, 그룹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서 키보드를 연주하던 유재하는 당대 최고의 선배 가수 조용필에게도 곡을 주었다. 이후에도 수많은 가수들이 유재하의 노래를 불렀지만, 무엇보다 원곡자의 감성이 담긴 곡을 먼저 들어 보길 권한다. 

 

Track 7. 지난날

앞서 말한 것 이외에도, 수많은 가수들이 유재하의 노래를 리메이크했다. 그중 대표적으로 1997년 발매한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는 유재하 10주기를 추모하는 앨범이다. 작곡가 김현철이 전체 프로듀싱을 맡고, 편곡에 유희열을 비롯해 유영석, 신해철, 나원주, 이적, 정재형 등 당대 내로라 하는 가수들이 앨범을 채웠다. 리메이크는 아니지만, 에픽하이의 ‘11월 1일’은 11월 1일로 기일이 같은 유재하와 김현식을 추모하는 의미를 담은 곡으로 더욱 유명하다.

 

Track 8. 우울한 편지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다루며 뜨거운 화제를 모았던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2003)에 실려 더욱 유명해진 노래. 극 중 살인이 일어나던 밤이면 라디오에서 꼭 흘러나오던 노래가 ‘우울한 편지’였다. 끔찍한 사건으로 음산한 분위기가 감도는 영화와 유재하의 노래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지만, 이 곡은 묘하게 영화 <살인의 추억>을 환기시키며 또 다른 추억으로 남았다.

 

Track 9. 사랑하기 때문에

앨범 이름이자 가장 마지막 곡의 제목인 ‘사랑하기 때문에’는 유재하를 가장 대표하는 말이기도 하다. 유재하 인터넷 팬클럽 이름은 ‘유재하를 사랑하기 때문에’이며,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사랑하기 때문에>(2016)는 유재하와 그의 음악을 모티프로 삼았다. 극 중 “유재하는 죽은 게 아니라 아직도 살아서 사람들의 사랑을 이어주고 있다”는 대사는 유재하를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겼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 뮤지션 릴레이 영상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유재하를 사랑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면, 역시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를 빼놓을 수 없다. 유족들은 앨범 수익금으로 유재하 음악 장학회를 만들어 1989년부터 음악경연대회를 개최해오고 있다. 특히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음악계에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1회 대상 수상자인 조규찬을 시작으로, 고찬용, 강현민(러브홀릭), 유희열, 조윤석(루시드폴), 방시혁, 김연우, 정지찬(원모어찬스), 임헌일, 정준일, 스윗소로우, 오지은, 박세진(옥상달빛)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특히 올해는 유재하 추모 30주기를 기념해 복합문화공간 커먼키친에서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들이 한 달에 한 번 릴레이 공연을 갖는다. 지난 2월에는 22회 대상 수상자 김거지(김정균)와 23회 대상 수상자 조영현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앞으로 계속 이어질 유재하 동문들의 무대를 기대해봐도 좋다. 유재하를 사랑하는 이들이 모이는 공간은 오늘날 유재하를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자리일 것이다.

 

Bonus Track. 그대와 영원히, 비애

마지막으로, 유재하의 앨범에 실리지 않은 두 곡을 소개한다. 1985년 발매된 이문세 3집 <난 아직 모르잖아요>에 실린 ‘그대와 영원히’는 유재하가 작사, 작곡한 노래다. 유재하와 친분이 두터웠던 이문세는 ‘지난 날’에 코러스로 참여하기도 했다. 1988년, 유재하가 세상을 떠난 뒤 발매된 한영애 2집 <바라본다>에는 유재하가 만든 곡 ‘비애’가 실렸다. 유일하게 유재하의 목소리로 녹음하지 않은 두 곡 또한 팬들 사이에서는 유재하를 떠올리는 곡이 됐다. 만약 유재하가 비애를 불렀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솔직 담백한 목소리로 노랫말을 읊조리는 청년 유재하의 모습을 가만히 떠올려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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