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틱 몽키즈, 캣 파워, 존 홉킨스, 애니멀 콜렉티브. 사뭇 다른 음악 스타일을 지닌 이 위대한 아티스트들의 공통점이 있다. 현재 같은 레코드 회사를 통해 음악을 발표하고 있다는 것. 영국 런던 기반의 레이블 ‘Domino Recording Company’(이하 ‘도미노’)다. 로렌스 벨에 의해 1993년 설립된 도미노는 2000년대에 들어서 프란츠 퍼디난드, 악틱 몽키즈 등과 계약하며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고, 음악 산업의 판도를 뒤흔들어 놓았다, 뮤지션들의 리듬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아티스트들이 원치 않는 언론 홍보나 마케팅에 시간을 뺏기는 대신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왔고, ‘팬들을 믿었다’. (참고 - <The Guardian>) 30년이 지났음에도 도미노의 스타일은 변치 않았다. “많이 팔리지 않더라도” 소속 베테랑 뮤지션들이 원하는 작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색다르고 실험적인 소리들을 꾸준히 영입한다. 작년에는 전설의 그룹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까지 이곳에 합류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최근 몇 년 사이 도미노와 손을 잡고 정규 데뷔 앨범을 낸 ‘신인’ 뮤지션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지금 어떤 소리를 만들고 있을까? 올해 새 음반을 발매한 세 아티스트를 소개한다.

 

1. SASAMI <Squeeze> (2022.02.25 발매)

체리 글레이저에서 신시사이저를 연주하던 사사미 애쉬워스는 솔로 활동을 위해 밴드를 탈퇴했고, 데뷔 싱글을 낸 이후 도미노와 계약했다. 이어 발매한 정규 1집 <SASAMI>는 대체로 일관된 슈게이징 그룹사운드와 칠(chill)한 보컬이 들리는 인디 얼터너티브 록 앨범이었다. 올해 초 그는 전혀 다른 느낌의 차기작을 토해냈다. <Squeeze>는 메탈, 인더스트리얼, 인디록, 컨트리, 클래식까지 포괄하는 ‘괴물’ 같은 레코드다. 메탈로 시작해 록발라드로 이어지더니 일렉트로닉스러운 비트가 등장하는 등 상당한 진폭으로 오르내리는데, 어수선하다거나 갈피를 못 잡는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소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하며, 의도적으로 뒤섞인 채 하나의 흐름을 만든다.

장르의 폭은 아티스트가 커버 가능한 송라이팅과 보컬의 넓이이기도 하다. 클래식으로 음악을 시작했다는 사사미는 올드스쿨한 바이브레이션부터 헤비한 샤우팅까지 소화한다. 사운드 역량에 감탄하며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기에 <Squeeze>는 자기주장이 강한, 또 그것을 꽤나 효과적이며 완벽히 예술적인 모양으로 빚어낸 레코드다.

“거짓말하고, 벗기고, 핥고, 떨어뜨리고, 쥐어짜, 네가 그녀를 다치게 할 때까지” -‘Squeeze’ 중에서

가사 속 ‘그녀’는 누군가에겐 목소리가 없는 허구의 희생양(scape goat)이나, 다른 누군가에겐 거부해도 결국 이입할 수밖에 없는 피해자(victim)다. 픽셔널한 폭력을 즐기는 행위 자체를 문제 삼자는 것은 아니나, 질문을 던져볼 필요는 있다. 그것은 왜 물리적 힘이나 사회적 기반이 약한 이들을 습관적으로 향하는가, 그런 문화는 누구를 배제하며 무엇을 고착화하고 있는가? 분노를 터트리기 위해 들은 음악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동시에 또다른 종류의 분노와 디아스포라(diaspora of metal head”)를 겪었다는 사사미는, 그것을 모조리 집어삼켜 응축해 그만의 메탈로 토해냈다.

“나는 그 폭력적인 언어의 일부를 되찾고 싶었다. 일상 속에서 매일 또 항상 기어오르는 폭력에 관한 곡이다.”

사사미는 <Rollingstone>과의 인터뷰에서 설명한다. 그는 동일한 폭력을 상징적으로 되돌려주는 방식을 택하진 않았다. 대신 ‘피해자’로서 목소리를 내거나, 그 피해자의 눈을 마주볼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사사미가 “되찾은 폭력적인 언어”에 있는 자학성은, 꼭 ‘너희 몫의 죄책감을 돌려주겠다’는 선언 같다. 특정 약자를 고민 없이 겨냥, 대상화한 묘사를 감내하고 즐기거나(‘길티 플레져’) 결국 멀리하게 됐던 이들이 매번 느꼈던 ‘내 몫이 아닌 죄책감’, 사사미의 음악은 그것을 마땅한 이들의 손에 쥐어준다.

‘Skin a Rat’, ‘Say It’, ‘Need It to Work’과 같은 곡들이 이와 유사한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위 해석에 바탕을 두고 들으면, ‘Say It’의 “괴로워하고 싶지 않아, 네 사과를 원치 않아, 니가 플레이하고 싶은 대로 말해 봐”의 속뜻은 ‘피해자로 다뤄지고 싶지 않아, 대충 말로만 미안하다고 하지 마, 어디 감히 한 번 말해 봐’로 들리고, ‘Need It to Work’의 화자는 (내 예술 작업을 위해) ‘너희들의 폭력성/뻔뻔함’이 필요하다고 노래하는 것 같다. “이 수퍼 시스-메일지배적인 씬의 위협에 있는 신화를 제거하고 싶었다. ‘스퀴즈’를 위한 프로타고니스트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희생자가 아닌 여성적 존재를.” 사사미가 영감을 받은 건 바로 여자의 머리와 뱀의 몸을 한 일본의 요괴 ‘누레온나’. “물가에서 머리를 감고 있는 순종적인, 아름다운 여자인데, 공격적이고 뻔뻔한 선원들이 다가오면 그들을 파괴할 것이라는 게 좋다”라고 그는 말한다. ‘단지 픽션의 가사인데 왜 상처를 받느냐. 너무 ‘소프트’한 것 아니냐.’고 묻는 이들을 향해 사사미는 물뱀전갈여자로 분해 답한다. 이 존재의 공격성은 한 번도 ‘내 소울이 너무 소프트한 것이 문제인지’ 고민해 보지 않았을 이들을 타겟으로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Squeeze>의 반 정도는 ‘메탈과는 먼’ 소리들로 구성돼 있다. 어찌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레코드의 장르를 통일하지 않았는가? 그건 사사미가 사려깊고 영리한 아티스트라서다. 다른 한편으로 이 레코드에 담긴 것은 배려, 위로, 사랑이다. 증오와 비웃음을 과시하는 ‘너’의 상처와 눈물을 들여다보기도 하고(‘Tried to Understand’) “깨지고 버려진 마음의 바닥”에 남아 있는 “가장 위대한 사랑”을 노래하기도 한다(‘The Greatest’). 이 이야기들이 강한 그룹사운드와 샤우팅보다는 포크적 멜로디와 서정적인 보컬을 통해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릴 운명이라는 것을, 사사미는 알고 있었다. “소프트한 소울”들, 곧 쌓인 것을 표출할 창구가 될 줄 알았던 음악/씬에서조차 필연적으로 상처받아야 했던 이들, 혹은 특권적 위치에 있더라도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낄 감수성을 지닌 이들-을 위로하며, “나를 당신들의 고향이라 부르라”(‘Call Me Home’)고 노래한다.

이쯤에서 앨범 커버를 살펴본다. ‘누레온나’와 비슷한 몸에 사사미 본인의 얼굴이 달려 있는데, 긴 혀를 빼물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옆에 쓰인 글씨는 ‘스퀴즈’. 그렇다, 한글이다. 사사미가 한글을 사용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직전 앨범 수록곡 ‘Morning Comes’ 뮤직비디오는 내내 한글이 보이고 한국어가 들리는 ‘할머니의 김치 비법’. 이는 ‘사사미의 모친이 자이니치 정체성을 지녔다’는 문장으로 대강 설명하고 넘길 부분은 아니나, 그리 복잡한 해석이 필요한 부분 역시 아닐지도 모른다. 사사미는 가족을 “랜덤한 집단, 이상한 눈송이”라고 표현하며 “가족의 역사를 깊게 들여다보는 일이 판타지 세계의 점화를 돕는다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서술한다. 어떤 사명감에 입각해 헤리티지의 계승을 ‘결심’하기보단, 본인의 문화적 소수성을 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 사용해 버리기. ‘오히려 좋다’는 말을 이럴 때 쓰던가.

사사미가 ‘화이트한 아메리칸’이었더라면 일본 요괴를 탐구하게 됐을 가능성은 훨씬 낮았으리라. 시스-헤테로 남성이었더라면 아마 메탈을 듣다 <스퀴즈>를 탄생시키는 일은 없었으리라. 스스로 결정하지 않은 요소들이 결국 자신의 의지로 다다르는 장소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흥미롭고 또 이상하다. 사사미 역시 변수들의 조합이 이끄는 삶의 미지성에 매료됐고, 그것을 가장 자유롭고 폭발적이며 아름다운 모양으로 자기화했다. “모든 경험이 예술을 창조할 감정적 어휘를 준다.”고, 사사미는 말한다.(<Rollingstone>)

 

2. Wet Leg <Wet Leg> (2022.04.08 발매)

“네가 날 원하지 않았으면 해, 네가 날 잊기를 원해, 맞아 널 사랑했었지, 미친 짓이었어.” 여기까지만 읽으면 평범한 이별노래인 듯 들리는 이 트랙의 제목은 ‘Ur Mum’(너네 엄마), 첫 소절은 다음과 같다: “니가 커서 뭐가 될지 생각해보면, 너네 엄마가 참 안됐어.”

이 곡의 주인들 또한 ‘특정 음악 씬의 여성적 존재’로서 하는 사사미의 말에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밴드에서 음악을 해 왔다는 십년 지기 리안 티즈데일과 헤스터 챔버스가 2019년 결성한 Wet Leg(윁 레그). 동명의 데뷔 앨범 <Wet Leg>의 커버는 교복 스타일 옷을 입은 두 사람의 뒷모습으로 꽉 차 있다. 뭔가를 속닥거리거나 서로를 토닥이는 듯한 실루엣이다. 과연, 현재 이십대 후반인 이들이 만든 음악을 듣다 보면 십대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하이틴적 정서가 넘쳐흐르는 포스트펑크 인디록이라고 할까? 경쾌하고 단순한 리듬, 높은 톤의 리드미컬한 싱잉을 주로 사용하지만 말하듯 툭툭 뱉거나 몽롱하고 서정적인 보컬을 얹기도 한다. 마음의 소리를 그대로 늘어놓은 듯한 가사들도 있는데, 꽤나 중독적이다. 때론 ‘도발적’이다. 그러나 상당히 제멋대로. “네가 네 여자친구한테 숨이 막혔으면 좋겠어”, “내가 널 겁먹게 하니? Well, what’s a girl to do?”(‘Loving You’).

사랑에 빠진 느낌은 “누군가 내 배를 주먹으로 친 기분이야”(‘Being in Love’)라고 표현하고, 고백할 때는 “널 수퍼마켓에 데려가서 원하는 걸 다 사주고 싶어”(‘Supermarket’)라고 말한다. 그 외에는, 자신을 소중하게 대하지 않는 이들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혹은 그들에게 꺼지라고 말하는 것에 관한 곡들, 또는 의미 없는 파티나(‘Angelica’), 카드값과 다이어트 콜라(‘Oh No’)에 관한 곡들로 채워져 있다.

앞서 ‘십대의 일기장을 들여다 보는’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들의 음악은 다른 한편으로, 옷가지가 널려 있고 땀으로 축축하지만 이상하게 안정을 주는 (딱히 십대의 것은 아닌) 침대에 누워 있는 기분을 건네준다. 귀에 쉽게 익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은 정서가 담긴. <Wet Leg> 속엔 하이틴적 화자를 설정해 그 유머러스함으로 청자를 사로잡는 곡도 있지만, 톤을 늦추고 아티스트 자신에 가까운 목소리를 내는 듯한 곡들도 있다. “라디오도, MTV도, BBC도 필요 없어, 그냥 날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려 줄 거품 목욕이 필요해”(‘Too Late Now’), “난 거의 스물 여덟인데 아직도 내 멍청한 얼굴에서 벗어나는 중이야, 망할 악몽이야, 신경 써야 된다는 걸 알지만, 지금 당장은 신경 안 써.”(‘I Don’t Wanna Go Out’)

글쎄, 우리는 열여덟에 비해 얼마나 커다란 어른이 됐나? 열 여덟이건 스물 여덟이건, 나름대로 인생이 피곤한 건 마찬가지일지도. “혼자 집에 와서 핸드폰을 들여다봤어. 인생은 힘들어, 카드값! 오 노!”(‘Oh No’) “지금보다 어렸을 땐 굉장히 복잡한 것들에 대해 노래하려고 애썼다. 조금 더 나이가 들고 나서는 매우 간단한 것들, 조금의 노력이나 에너지도 요구하지 않는 무언가를 통해 전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음을 깨달았다.”고 리안 티즈데일은 털어놓는다. (Exclaim!) 사실 이들이 ‘별 거 아닌’ 듯 던지는 가사들은 꽤나 정곡을 찌른다. ‘Oh No’는 이렇게 이어진다. “눈으로 인생을 빨아들여. 기분 좋네. 스크롤을 내려. 또 내려.” “폰을 들여다봤는데, 이제 그 안에 들어가 있네.”

그 날카로움은 - 특정하지만 사실 그리 특정적인 것만은 아닌 - 어떤 이들을 향하기도 한다. ‘Wet Dream’의 가사를 살펴본다. 화자는 ‘너’의 “젖은 꿈”에 있었다. 운전을 하던 중 길가에서 ‘너’를 보았는데, ‘너’는 ‘나’를 보곤 저 자신을 더듬더니, “베이비, 우리 집에 올래? 나 <버팔로 66> DVD 있는데.”라고 하는 게 아니겠는가(괜히 <버팔로 66>가 언급된 게 아닐 테다. 영화 자체가 어떻다는 뜻은 아니다.). 윁 레그는 ‘Wet Dream’이 “사실은 이노센트한 곡”이라고 말한다. 아무런 ‘의도’도 없는 소녀가‘어떤 남자’의 꿈에 들어가는 순간 ‘축축해져’ 버리는 현상. 단순하고 동화틱하면서도 직설적인, 게다가 유머러스하기까지 한 뮤직비디오에 역시 알아듣기 쉬운 메시지가 담겨 있다.

‘Chaise Longue’의 “butter your muffin” 레퍼런스를 듣고 남몰래 ‘윁 드림’을 품은 이들이 있다면, 조금 찔렸을지도 모르겠다. “모두들 우리가 평등을 향해 되게 많이 온 척하는데, 거기에 부동의해야만 하겠다.”고 티즈데일은 말한다. “여자라면, 정말 많은 외부 소음을 겪게 된다. 내 유일한 가치는 얼마나 예쁜가 혹은 귀여운가가 되고. 이 사회가 약간 그런 식이다, 그래서 아직도, ‘사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그게 아니야’라고 하려면 매일매일이 분투가 된다.”고.(<Exclaim!>)

데뷔 싱글 ‘Chaise Longue’이 펜데믹을 뚫고 바이럴해진 후 윁 레그는 인기와 함께 시답잖은 비난 역시 겪었고, 거기엔 자주 외모평가가 섞여 있었다. 이 넘치는 개성과 재능을 어째서 그냥 즐기지 못하는 건지, 정말로 뭔가 찔리기라도 했던 건지. 아직도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2022년에, 윁 레그가 여자로서 음악을 하는 태도는… ‘그래 뭐, 우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면 그러든지. 저기 근데, 유머도 모르는 성차별주의자들아, 좀 꺼져줄래?’라고 선언하기. “20대 후반이면서 어린 여자애들처럼 행동한다”는 코멘트에 대해 이들은, “나도 알아, 근데 망할 유머 감각 좀 가져보지 그래!”라고 쿨하게 대응한다. (<Soho House>)

그리하여 “실없는 가사와 약간 우습거나 약간 징그러운 것들”(리안 티즈데일)로 가득한, “스스로를 압박하지 않고”(헤스터 체임버스) 만들어진 데뷔 레코드 <Wet Leg>와 트랙 ‘Chaise Longue’은 비요크와 악틱 몽키즈, 예예예즈, 빅 띠프와 같은 아티스트의 작업물과 나란히 그래미 어워드의 얼터너티브 부문 후보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베스트 뉴 아티스트’ 후보에 이름을 올린 것은 물론이다.

 

3. Superorganism <World Wide Pop> (2022.07.15 발매)

십대를 닮은 정서를 곡에 담는 윁 레그. 여기에 더해 “나는 자라서 십 대가 될 거야!”(‘Teenager’)라고 외치는 이들이 있다. Superorganism(수퍼올가니즘)은 한국 인디 록 팬들에겐 혁오의 강강술래 리믹스를 한 그룹으로, 미국 드라마 팬들에겐 <리전> 시즌3에 등장했던 그룹으로, 또 제이팝 팬들에겐 최근 호시노 겐과의 작업으로 알려졌을 수도 있겠다. 이 그룹이 각국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에게 러브콜을 받는 것은 사실 (좋은 의미로) 별로 놀랍지 않다. 수퍼올가니즘이 생산하는 사운드에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양쪽으로의 신선한 실험이 들리고, 가사와 뮤직 비디오에는 개성이 톡톡한 픽션의 향기가 가득하다. 음악 안팎으로 창작의 범위를 다채롭게 넓히며, 수퍼올가니즘은 세상에 대한 자신들만의 관점을 노래하고 있다.

비디오 속이나 라이브 무대 위 각 맴버의 자유로운 존재감. 메인 보컬 오로노의 또렷하고 꾸밈없는, 나이와 성별의 경계를 넘나드는 목소리. <Superorganism>은 이와 어울리는 느긋한 여백의 미가 트랙 전체에 드리워져 있었던 데뷔 레코드였다. 올 여름, 왁자한 코러스와 빠르고 경쾌한 댄스 리듬, 피 자 마와 스티븐 말크머스를 비롯한 화려한 피쳐링 라인업으로 꽉 차 있는 두 번째 정규 앨범 <World Wide Pop>이 나왔다. 오로노의 보컬엔 자주 오토튠이 입혀지고, 랩 피쳐링도 들린다. 이전에 오토튠이나 빠른 템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이번에는 음절과 구절 사이가 보다 꽉 차 있고, 전달되는 정서도 살짝 다르다. 물론 귀에 익숙한 특징들도 들린다. 여전히 일상의 소리를 추임새로 쓰거나 리듬에 포함시키고, 맴버 소울이 읊는 한국어를 흥미로운 형태로 믹싱해 넣는다.

이렇듯 수퍼올가니즘은 늘 ‘믹싱’의 역할을 최대한&독특하게 활용하는 그룹이었다. 최근에는 <World Wide Pop - Reeeemix!> 앨범을 추가로 내기도 했다. 일렉트로닉/테크노틱하게 빠른 버전부터 록 버전까지- 기존 레코드를 충분히 즐겼다면 다른 아티스트들의 손을 거쳐 색다른 즐거움이 가미된 사운드를 맛보는 것도 괜찮겠다. 그중 ‘Teenager’ 리믹스 둘은 ‘십 대 DJ, 사브리나’의 작품이라는 것도 눈여겨볼 만한 점.

다시 오리지널로 돌아와 보자. 다채로운 애니메이션과 콜라주 아트로 구성된 뮤직비디오. 맴버들과 피쳐링 아티스트들의 얼굴이 자주 콜라주의 재료로 쓰인다. 수퍼올가니즘의 기존 팬들이라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얼굴들이 있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1집은 여덟 명이 함께 작업해 완성했으나, 현재 구성원은 오로노, 해리, 투칸, 비, 소울로 다섯이 남았다. <Loud and Quiet>과의 인터뷰에서 해리는 “(<Superorganism>이) ‘서로 어떤 케미스트리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함께 모인 우리들’이었다면 <World Wide Pop>은 ‘음악을 함께 만드는 친구들의 소리’라고 할 수 있다”라며, 두 앨범을 ‘맴버 다이나믹’의 관점에서 서술하기도 한다.

가장 앞 순서로 설명한 사사미가 스타일을 확 바꾼 2집을 냈다면, 수퍼올가니즘의 경우 기존의 특징을 유지하면서도 방향을 틀어 확장한 느낌이다. <Superorganism>이 아늑한 카페에서 소울메이트와 함께 각자의 헤드셋을 통해 들으며 천천히 리듬을 타고 싶은 앨범이었다면, <World Wide Pop>은 아웃사이더들을 위한 지하 클럽, 괴상한 미러볼이 반짝이는 가운데 빵빵한 스피커로 연결해 놓고, 기성의 세계에서 튕겨 나왔거나 속하기를 거부한 친구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점핑을 하고 싶은 앨범이다. 펜데믹 시기 오로노가 작업했다는 커버 아트에 묘사된, 딱 그런 풍경이 떠오른다.

수퍼올가니즘의 곡에는 ‘무리 밖으로 떨어진 이들이 하나가 되어 기성의 세계를 색다른 시선으로 관찰하는 듯한’ 뉘앙스가 있다. 화자가 꼭 인간일 필요는 없다. 1집에서 새우가 되어 관조하듯 “너희들은 다 똑같아”(‘Prawn Song’)라고 노래했던 이들은 이제, “쟤네들이 날 쫓아내려고 해, 도와줘 태양계!”(‘Solar System Help Me Out’)라고 호소하는 명왕성이나, “블랙홀에 돌아온 걸 환영해”(‘Black Hole Baby’)라고 말하는 어떤 존재가 된다. 물론 초파리가 되어 “세상은 돌고 돌고 돌아”라고 말하기도 한다.(‘Into the Sun’) <Superorganism>의 세상이 인간만이 사는 세계가 아닌 지구 구석구석까지- 였다면 <World Wide Pop>의 ‘월드 와이드’는 우주라고 할 수 있겠다.

‘Into the Sun’의 비디오는 누군가 사과를 먹고, 버리고, 그것이 썩어 나무로 자라고, 열린 사과를 다른 이가 따먹는 순환을 그린다. 우리를 둘러싼 채 돌고 도는 거대한 시스템에 대해 상상하는 행위는, 때로 개인적 영혼의 위로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내 조그만 슬픔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호시노 겐의 “그냥 쿠키나 굽자, 끈적거리고 슬픈 쿠키를.”이라는 구절과 닮은 정서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우주 구석구석을 누비는 가사 사이엔 찌그러진 마음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는 표현들 역시 포함돼 있다. “난 잘 수 있을 때 자려고 해”(‘Black Hole Baby’), “약간의 셀프 사보타쥬는 별로 유해하지 않을 거야”(‘crushed.zip’). “이렇게 외로웠던 적은 처음이야, 이리 와 날 안아줘”(‘Solar System’). “그만 자랄 때도 됐어. 계속 실수해. 잘못된 행동도 좀 하고. 그건 그렇고 우리 다 똑같아. 부끄러워할 거 없어”(‘Teenager’). 그리고 이렇게 노래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런 것들에 대해 그대들과 이야기하고 싶으니 “제발 날 믿고 잠깐만 핸드폰 좀 내려놔 봐”(‘Put Down Your Phone’).

글을 더 잇기에 앞서, 이들의 예술 안에 있는 ‘인간을 넘어서는 무언가’에 대한 아이디어가, 인간에 대해 말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존재하지는 않음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수퍼올가니즘은 이것들과 삶의 상호연결성에 주목해 ‘동료 인간들’에게 닿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려 시도한다. 아래 인용한 해리의 설명이 이 태도에 대한 이해를 도울 것이다.

“우리 주위에 있는 우주, 그리고 삶과 지구의 상호연결성 앞에서 겸허해지는 감각, 그건 자기 자신이 굉장히 커다란 무언가의 일부라는 느낌을 갖기 시작하게 해. 그 노래들은 의식하기엔 너무나 큰 무언가를 움켜쥐려 노력하는, 그리고 그걸 보다 개인적인 덩어리들로 잘게 부수는 우리 자신이야.” (<Loud And Quiet>)

그리하여 수퍼올가니즘이 태양계와 지구와 행성폭발과 블랙홀 같은 우주적 개념들에 대한 상상을 이들만의 도구로 조각내 전하는 바는, 오히려 <수퍼올가니즘> 때보다 개인적인 것들이다. 마음껏 부딪히고 녹아내리는 것, 그러한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함께 ‘블랙홀’에 다다르는 행위들. 오로노의 담백한 보컬을 마무리해주듯 밝고 차분한 톤으로 속삭이는 소울의 “모두 다 괜찮을 거야”(‘Oh Come On’)를 들으면, 정말 ‘다 괜찮을 것 같’다. 우주의 소리로 나와 너의 ‘순간’을 위로하는 ‘월드 와이드 팝’. “가능한 한 내 자신이 됨으로써 정신을 똑바로 차리(keep our own shit together)려고 애쓰는”(오로노) 우리들의 마음을 담은 목소리다. 이 자칭 “다양한 색을 지닌 부적응자들(varying shades of misfits)”(<Interview Magazine>)은 듣도 보도 못한 트렌드를 들고 날아오더니 전 세계를 향해 말을 건넨다, “지구의 어린이들아 안녕, 이건 월드 와이드 팝이야”(‘World Wide Pop’)

마지막 트랙 ‘Everything Falls Apart’는 누군가의 재채기 소리에 이어지는 폭발음과 함께 시작된다. 붕괴된 별의 파편이 우주에 흩날리는 이미지가 떠오르는 곡이다. 다 끝날 무렵, 꼭 적응할 시간을 주기라도 하듯 천천히 멜로디가 사그라든다. 찾아온 고요와 함께 청자는 별의 먼지 중 하나가 되어 허공을 부유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잠깐이나마 마음의 휴식/평온을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도미노 레코딩 컴퍼니 홈페이지

 

참고 기사* 본문 순서

2008.09.12. 기사 © Jude Rodgers via 링크
2022.01.14. 인터뷰 © Jon Blistein via 링크
2022.04.06. 인터뷰 © Megan LaPierre via 링크
2022.07.04. 인터뷰 © Sylvia Patterson via 링크
2022.07.13. 인터뷰 © Alexander Smail via 링크
2018.01.09. 인터뷰 © Douglas Greenwood via 링크
 
Writer

제 주제도 모르고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해 쓴다. ‘안 쓰지 못해 쓴다’고 버릇처럼 말한다. 픽션에 과몰입하고 듣던 음악을 또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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