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더 원더>(2022)는 부커상을 받은 아일랜드 작가 엠마 도너휴(Emma Donoghue)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하였다. 영화는 크림전쟁(1853~1856)에 참전했던 영국 간호사 엘리자베스 라이트(플로렌스 퓨)가 아일랜드의 단식 소녀 ‘애나’을 간호하는 일을 맡게 되면서 시작한다. ‘애나’가 수 개월 동안 음식을 일체 먹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종교적 기적인지, 아니면 종교를 사칭한 사기인지 밝히는 것이 그에게 맡겨진 일이다. 칠레 영화 <판타스틱 우먼>(2017)으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바 있는 세바스찬 렐리오(Sebastian Lelio) 감독의 연출과, 시대극에 부쩍 어울리는 배우 플로렌스 퓨(Florence Pugh)의 차기작으로 주목을 받았고, 로튼토마토 85%의 평점을 받고 넷플릭스 영화 차트에서 고공 행진 중이다. 영국 독립영화제 12개 부문 후보에 오른 점도 이 영화의 가치를 짐작케 한다.

영화 <더 원더> 예고편

 

빅토리아 시대의 단식 소녀들

이 영화의 소재는 빅토리아 시대(1837~1901)에 유행처럼 번졌던 단식 소녀(Fasting Girls)들이다. 그들은 ‘시에나의 카타리나’(Catherine of Siena)나 ‘스히담의 리드비나’(Lidwina of Schiedam)와 같은 중세 성녀들처럼 음식을 먹지 않고도 수 개월, 길게는 수 년을 견뎌낸다고 주장했다. 주위에서는 이들을 성스럽고 신비스러운 존재로 받들기도 했으나, 가족들이 몰래 음식을 제공했다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도 했다. 의학에서는 이를 신경성 식욕부진증(Anorexia)의 초기 증세로 진단하기도 했고, 1840년대 아일랜드의 대기근(Great Famine)이나 유럽의 혁명 봉기에 따른 정치적 불안정에서 사회적 배경을 찾기도 했다. 단식 소녀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영국의 사라 제이콥(Sara Jacob)을 드는데, 그는 영화 <더 원더>의 내용과 상당히 유사하여 작가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빅토리아 시대 단식 소녀들에 관한 서적들

 

‘웨일스의 단식 소녀’ 사라 제이콥

영국 웨일스의 사라 제이콥(Sarah Jacob, 1857~1869)은 엠마 도너휴 원작의 모델이라 부를 만큼 소설의 내용과 흡사하다. 하지만 영화 마지막 장면 ‘애나’의 운명과는 달리 그는 12세의 어린 나이에 단식의 결과로 사망했다. 그는 10세부터 무려 113주(약 2년) 동안 음식을 먹지 않아 ‘웨일즈의 단식 소녀’로 유명해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선물과 기부금을 갖고 그를 방문하였다. 하지만 사실 여부를 판별하기 위해 네 명의 간호사들이 고용되어 엄격하게 관찰을 시작하자 2주일 만에 건강에 적신호가 왔고, 주위에서는 관찰을 그만할 것을 종용하였으나 부모는 거짓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만에 사라는 영양실조를 보이며 굶어 죽고 말았다. 부검 결과 관찰이 시작되기 전 소량의 음식을 먹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그의 부모는 살인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형에 처해졌다.

<더 원더>의 배경이 된 실화 소개 영상

 

빅토리아 시대의 구경거리

사라 제이콥 외에도 몰리 판처(Mollie Fancher), 레노라 이튼(Lenora Eaton), 앤 무어(Ann Moore) 등 종교적인 기적이라 주장하는 단식 소녀가 계속 등장했지만, 누구도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례는 없었다. 부모는 아이를 돈을 벌기 위해 아이를 이용하여 주위를 속였고, 아이는 고되고 힘든 농사일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계속하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사기꾼으로 밝혀지거나 때로는 세간의 구경거리로 전락하였다. 미국의 조세핀 마리 베더드(Josephine Marie Bedard, 1870~1918)는 당시 유행하던 프릭 쇼(Freak Show)이나 인간 동물원(Human Zoo)에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하는 전시품으로 전락하기도 하였다. 단식 소녀는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으나 금식 소년은 없었다는 점에서, 성녀나 무녀의 사례처럼 당시의 사회적 관심을 반영한 일시적인 현상이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경이로운 기적으로 과장하여 세상을 속이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