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자 제한이 있는 트위터, 1분이 채 되지 않는 틱톡. 점점 더 짧게 주고받는 SNS 흐름처럼 최근 가벼운 책들이 눈에 띈다. 그저 책이 얇아진 것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기는 내용의 호흡까지 짧다. 아예 숏폼 방식을 책 시리즈로 기획하면서 팬 층을 유입하는 사례가 하나둘 생겨난다. 릴스와 쇼츠를 소비하고 굿즈를 수집하는 MZ세대는 이런 출판계의 전략이 정조준하는 타깃이다.

짧아지는 콘텐츠 트렌드와 함께 다시 주목받고 있는 소설 유형은 엽편소설이다. 단편소설보다 더 짧은 분량의 이야기를 담는다. 집필에 드는 시간이 비교적 짧은 단편소설이 현시대의 단면을 빠르게 반영할 수 있다면, 엽편소설은 최소 나뭇잎 한 장, 최대 원고지 30매 분량으로 이야기를 완결하기에 과감하게 생략하는 방식이 주는 속도감까지 더해진다.

 

 

‘짧은 소설’ 시리즈

시대가 원하는 작가와 시대가 원하는 형식이 만났을 때

이미지 출처 © maumsanchaek 인스타그램

출판사 마음산책에서는 ‘짧은 소설’ 시리즈를 발간 중이다. 이기호, 손보미, 김금희, 백수린 등 한국 소설계를 든든히 받치고 있는 작가들이 참여했다. 각 작가의 짧은 소설 여러 편을 일러스트와 구성하여 소장 욕구를 자극한다. 그중 올해 발매된 최은영의 <애쓰지 않아도>는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묘사와 무해한 서사를 통해 짧은 위로를 전하며 주목받았다. 단편집 두 권에 이어 장편소설 <밝은 밤>을 발간했던 작가가 이번에는 단편보다 더 짧은 이야기를 모아 출간한 것인데, 작가의 말에서는 ‘글쓰기 호흡이 긴 나에게 짧은 글쓰기는 매번 큰 도전’이라며 겸손과 도전 의식을 은은하게 풍긴다. 출간했다 하면 바로 화제가 되는 김초엽 작가도 <행성어 서점>으로 동참했다. 문이과 대통합을 SF 장르 소설을 통해 이뤄낸 그는 이번 책에서 단숨에 읽히는 세계를 창조하고 그 안에서 더 다양해진 비정형의 관계를 담아냈다. 오묘한 분위기의 초현실주의 삽화는 예스24와 함께 구성한 온라인 전시회로 재탄생하며 새로운 마케팅을 선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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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아도 괜찮아’ 시리즈

초단편, 하나의 주제로 연대하는 목소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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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걷는 사람은 같은 엽편소설이란 형식을 다르게 엮어냈다.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작품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하는 식이다. 2017년에 시작된 ‘짧아도 괜찮아’ 시리즈는 구체적인 제시어를 통해 점점 세분되는 취향, 관심사를 공략하고 있다. 한 작가의 16편의 작품을 실은 <치킨으로 귀신 잡는 법>부터 20명의 작가의 작품이 담긴 <우리는 날마다>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구성을 보인다. 절망과 희망의 사이에서 탄생한 <이해 없이 당분간>처럼 전달하는 메시지가 일맥상통하는 작품집이나 장르를 추리로 지정한 엽편 소설집 <시린 발> 라인업은 눈에 띈다. 제목부터 흥미로운 <무민은 채식주의자>는 동물권에 대한 목소리를 모아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콘텐츠로 ‘짧아도 괜찮아’ 시리즈를 알리는 대표작이 되었다. 다양한 기준으로 분류된 이야기들은 그 안에서 얼마나 다채로운 시선과 표현이 가능한지 몰아치듯 보여준다. 독서에 대한 부담은 덜고 이어지는 짧은 이야기 릴레이에 긴장감은 더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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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만 짧아진 것이 아니다. 한 페이지 이내로 하나의 주제를 전달하는 에세이도 등장했다. 에세이는 분량의 제한이나 주제 전환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지만, 아이코닉한 형식을 차용한 짧은 산문집은 마치 인스타그램을 게시글처럼 지금 사람들이 선호하는 틀에 맞춘 간결한 글쓰기를 제안한다.

 

 

‘문장’ 시리즈

글쓰기의 시작점이 되는 하나의 문장과 한 페이지 분량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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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 출판사에서 낸 ‘문장 시리즈’는 말 그대로 하나의 문장이 글감으로 재탄생된 에세이 모음이다. 책을 펼치면 왼편에는 위인의 명언, 드라마 대사, 책의 구절 등 하나의 문장이 자리 잡고 있고 오른편은 문장에서 파생된 생각이나 생활 속 경험이 채운다. 하나의 맥락이 이어지는 것은 단 두 페이지뿐이라서 언제 어디서 끊어 읽어도 어색하지 않다. 시리즈 제목 ‘00의 말들’에서 공란은 작가가 하나의 책으로 묶을 수 있는 소재로 채워진다. 태도, 배려같이 개념적인 단어가 들어간 책은 문장에서 발견한 인생의 실마리를 성실히 기록했고 책, 걷기, 여행 등 구체적인 소재를 선택한 콘텐츠에는 좋아하는 것을 향한 애정이 두루 녹아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글쓰기 선생님, 출판 에디터, 책 리뷰 유튜버처럼 글과 관련된 직업인이자 성실한 글쓰기로 작가 부캐까지 얻어낸 사람들이다. 이들이 전하는 짧은 에세이는 장벽이 낮아 쉽게 공감을 얻고 마음속 작은 변화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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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시작 3초 만에 첫 가사가 등장하는 아이브의 <After Like>를 비롯, 3분을 넘지 않는 케이팝 곡의 연이은 흥행은 짧고 강렬한 펀치 라인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분량과 인트로가 짧아 인내심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그 안에서 인상을 남길만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창작자의 역량에 크게 좌우된다. 이런 흐름을 새로운 트렌드로 출판계에 정착시키는 역할은 역시 셀링 파워가 있는 크리에이터가 맡는다. 출간 직후 바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안온북스에서 펴낸 정세랑의 <아라의 소설>이 그중 하나임에 분명해 보인다. 10여 년에 걸쳐 발표한 엽편소설과 단편소설은 ‘미니 픽션’이란 재정의를 통해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단번에 보여주는 진정성을 요구하는 오늘날 열렬히 환영받고 있으니 말이다.

 

Writer

넓고 깊게 이야기를 담고 싶은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