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별 환경과 문화는 다양하고 그에 영향을 받는 디자인 특징도 천차만별이다. 그래서인지 디자이너는 국가대표 선발전이 없지만, 어느 나라를 생각할 때 디자이너 한 명쯤은 함께 떠오른다. 핀란드의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알바 알토, 일본의 ‘젠’(Zen, 禪)하고 미니멀한 감성을 담은 하라 켄야, 이탈리아의 경쾌함을 구현한 브루노 무나리를 통해 세 나라의 다른 디자인 세계를 여행한다면 어떨까?

 

‘모던 건축과 디자인의 선구자’

알바 알토(Alvar Aalto, 1898~1976)

핀란드는 ‘가장 부유한 국가’, ‘가장 행복한 나라’ 선정에서 항상 상위권을 차지하며 북유럽 로망을 자극하지만, 20세기 이전에는 스웨덴과 러시아에 번갈아 지배받으며 독립적인 기반을 두텁게 쌓지 못했다. 또한, 핀란드 사람들은 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척박한 환경에서 매년 혹독하고 긴 겨울을 맞이한다. 그래서 기능성에 더욱 집중하고 주어진 자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그들만의 라이프스타일을 구축하기에 이르렀고, 이는 핀란드 디자인과 떨어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오늘날 독보적인 브랜드가 된 핀란드 디자인의 시작은 알바 알토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헬싱키 공대를 졸업한 알바 알토는 자연스럽게 건축으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그 안을 채우는 가구와 조명까지 직접 디자인하면서 분야를 넓혀갔다. 이용하는 사용자의 생활에 맞춘 통합적인 공간을 제안한 셈이다. 그 과정에서 형태와 기능을 실현하는 기술적 발전까지 이루어 냈다.

알바 알토의 대표 건축물 ‘파이미오 요양원’ (1929~1933)

1935년에는 가구 회사 ‘아르텍’(Artek)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풍성한 핀란드 자원 중 하나인 목재로 유기적인 형태를 선보였다. 그중 ‘스툴60’은 합리적인 사용성과 대량 생산을 모두 고려한 모더니즘의 정수로 손꼽힌다. 더불어 이딸라에서 1936년부터 계속 생산하고 있는 ‘사보이 화병’은 깔루아-이딸라 공모전에서 우승했던 작품으로 1937년 파리 세계 박람회에 핀란드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출품되기도 했다. 핀란드 모더니즘의 선구자로서 알바 알토가 전국민적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핀란드 화폐 50마르카(Markkaa)에 등장하는 그의 초상과 그의 이름을 딴 알토 대학교의 출범(2010)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알바 알토 홈페이지

 

‘디자이너의 디자이너’

하라 켄야 (Hara Kenya, 1958~)

일본 디자인의 한 줄기는 와비사비 개념에 뿌리를 둔 듯 보인다. 그 뜻은 불완전하고 불충분한 대상에서 도리어 재미를 느끼는 것,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인 아름다움이다. 이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일본 특유의 미니멀리즘은 제품, 그래픽, 건축을 가리지 않고 적용된다. 또한 정돈된 일본식 정원같이 정교한 시스템을 장착한 브랜드 디자인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다.

그 대표주자인 무인양품을 재정돈한 디자이너는 바로 하라 켄야다. 20년 넘게 무인양품의 아트디렉터로서 활동하며 ‘비움’에 질서를 부여하여 하나의 세계관으로 브랜드를 전개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왜 디자인해야 하는지’ 일의 이유를 찾고 그에 맞는 명쾌한 해답을 낸다. 또한, <디자인의 디자인>, <백>, <내일의 디자인> 등 여러 저서를 통해 디자인 작업을 하는 그의 방법과 생각을 끊임없이 공유해왔다. 하라 켄야는 더 이상 더 많이 팔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교양이자 감각으로 디자인을 재정의하여 이를 대중에게 선보일 전시를 꾸준히 기획하기도 했다.

미래 주거 프로젝트 ‘하우스 비전 도쿄’ (2013)

최근 프로젝트에서는 일본의 색깔을 디자인에 담아내는 것과 더불어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인사이트를 적극적으로 제시한다. 일상과 밀접한 주거, 로컬, 라이프스타일과 관련한 작업물은 감각으로 즐기는 매개체가 되어 직관적으로 생활을 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가히 생활을 바꾸는 디자인이다. 무사시노 대학 교수이자 일본 디자인 센터 대표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는 그가 제시하는 비전을 실시간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동시대에 사는 사람의 특권 같다.

하라 켄야 홈페이지

 

‘현대판 레오나르도 다빈치’

브루노 무나리 (Buruno Munari, 1907~1998)

햇볕이 따사롭고 비옥한 땅, 이탈리아를 떠올리면 로마 시절부터 이어진 문화 자본과 융성한 역사가 빠질 수 없다. 기술과 자본을 바탕으로 한땀 한땀 빚어낸 수공예품,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섬세하게 양산하는 명품 브랜드는 이탈리아 디자인의 상징이 되었다. 고전과 새 시대의 결합을 이루어내고 특유의 생동감과 위트를 담은 ‘메이드 인 이태리’는 전 세계인들이 기꺼이 비싼 값을 치르고 갖고 싶은 보증서인 셈이다.

브루노 무나리는 예술과 디자인이 혼재된 시기에 두 분야 모두를 직접 경험하고 각각의 역할을 정의했다. 디자이너를 예술과 대중 사이 다리 역할을 하는 자로 정의하고 보기에만 아름답고 생활과 유리된 예술의 쓸모없음을 극단적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약간 편파적인 듯하지만, 그의 이론과 가설은 시각적 사례들과 함께 이해하기 쉽게 전달되었고 그 과정은 시종일관 흥미진진하다. 이를 단편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배척하기보다는, 그만큼 생활 조건 개선과 미적 감각 함양을 동시에 꾀했던 맥락으로 이해한다면 오늘날에도 충분히 유용하다.

미래파 아티스트에서 디자이너로 전향했지만, 특유의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방식은 작업 형태에 상관없이 이어진다. 무나리의 대표작 <포크>는 이탈리아인의 소통방식을 연작으로 담아냈는데, 이전의 관념적 표현이 일상 속 소재로 대치되어 안에 담긴 메세지를 한층 더 쉽고 강력하게 만든다. 어린이를 위한 창의적인 놀이도구 및 그림책 작업에도 매진하며 이탈리아 디자인과 예술 분야의 교육에도 큰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에 ‘제2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았을까 싶다.

브루노 무나리 홈페이지

 

‘디자이너’ 하면 단순히 그래픽을 구현하는 역할, 제품에 미감을 더하는 역할로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이미 반 세기 전부터 각국의 디자이너들은 사람들의 삶과 밀접한 솔루션을 제시하고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하고자 고군분투해왔다. 더 나은 삶을 고민하고 구현해나간 그들의 발자취에서 내일의 일상을 위한 영감을 얻어갈 수 있지 않을까?

 

Writer

넓고 깊게 이야기를 담고 싶은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