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표정과 가사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른다. 포크 아티스트인가 했더니, 의외로 다채로운 분위기와 사운드의 팝을 소화한다. 다재다능한 팝 싱어송라이터인가 했더니, 무대 위에서 춤까지 춘다. 무엇보다 김제형이 부르는 팝은 요즘의 인디 팝 같기도 하고, 20년 전 TV에서 보던 과거의 가요 같기도 하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를 두고 인디신은 ‘무경계 뮤지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2020년 발표한 정규 1집 <사치>로 지난해 한국대중음악상 포크 부문에 음반과 노래를 모두 후보에 올렸던 그. 각종 스트리밍 플랫폼과 방송 출연을 이어오는 도중 얼마 전, 근래 발표한 싱글들을 모아 신곡까지 추가한 프로젝트 앨범을 발매했다. 친숙하지만 반가운, 동시에 어딘지 색다르고 흥미로운 김제형의 생각과 음악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인터뷰를 청했다. ‘무경계’라는 별명을 실천하듯 그는 모든 답에 열려 있는 듯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1. 앨범에 관해

“운동화 끈이 다시 매어져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매어져 있다.”

Q 자기 소개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제형 싱어송라이터 김제형입니다. 올해에 두 달에 한 번씩 싱글을 발매했고, 11월에 이를 묶은 프로젝트 앨범 <띄 움>을 발매했습니다.

 

Q '싱글을 모아 발표하는 형태'를 기획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제형 아무래도 현재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는 앨범 단위로 음원을 발매하며 디스코그라피를 쌓았는데, 사실 이 방식이 듣는 분들과 쉽게 만나는 방식은 아니잖아요. 앨범 단위로 묶이는 형태를 염두에 두고 활동을 했던 건데, 회사와 함께 일하면서 싱글 단위로 음원을 자주 발매함으로써 대중과 자주 호흡하고자 했어요. 그 사이 사이에 공연도 굉장히 많이 한 편이었고요. 아무래도 곡 수가 인스트루멘탈 버전 포함해서 12~13곡 되니까 일부 음원 사이트에 정규앨범으로 표기가 되어 있는데, 사실 프로젝트 앨범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에요.

 

Q 인스트루멘탈 버전을 함께 수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형 저도 그렇고, 주변에서 의견이 있기도 했고요. 노래가 가사가 많은 음악이다 보니, 가사를 덜어냈을 때의 음악적인 부분에 관한 고민도 잘 드러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팬 중에도 조금씩 언급했던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가사를 덜어낸 것을 들었을 때 또 다른 느낌이다.’ 그런데 이건 각자의 느낌이니까요.

프로젝트 앨범 <띄 움> 아트워크

Q 트랙 순서의 경우 최근에 발표했던 순서대로 하신 것 같아요.

제형 네. 타이틀곡 '않는 슬픔'의 경우 가장 늦게 나온 곡인데, 이 노래를 제일 먼저 배치한 건 전략적인 것도 있어요. 그리고 이 노래가 어쩌면 프로젝트 마감하는 데에 있어서 얼굴이 될 수 있을 만한 노래이기도 해서 그렇게 배치했던 것 같아요. 역순으로 자연스럽게 됐어요.

 

Q ‘김제형’이라는 아티스트는 인디신에서 ‘무경계 뮤지션'이라는 이미지와 타이틀이 있습니다. 이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제형 사실 저는 의도치 않았어요. 마치 반에서 친구들이 별명 부를 때 제가 의도하는 건 아닌 것처럼요. 우연히 닉네임이 생긴 건데, 올해 싱글 발매할 때에도 이를 딱히 생각한 건 아니지만, 저와 함께 하고 있는 연주자분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곡의 스펙트럼을 확장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주세요. 그런데 여지라는 건, 연주적으로도 많이 주지만 마음적으로도 많이 주시는 거죠. 그러다 보니 저도 계속 시도해 볼 수 있는 다른 다양한 기회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런 가능성 덕분에 제가 할 수 있는 걸 더 해보려고 자기 주장도 많이 해요. 반려되는 것도 꽤 있고요. (웃음)

Q 앨범 발매 후 소감은 어떤가요?

제형 끝과 시작이 맞물려 있는 느낌이 되게 많이 드는 것 같아요. 끝났다는 느낌이 전혀 안 들어요. 운동화 끈이 다시 매어져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매어져 있다. 이전에 <곡예>(2017)와 <사치>(2020)를 할 때는 마감이 정해져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물리적이든, 정서적이든 제 역량 안에서 할 수 있는 걸 추진하고, 그 과정에서 시간이 미뤄져도 그냥 그렇게 흘러갔는데, 이번 프로젝트나 싱글은 마감이 정해져 있다 보니까 제게 루틴이 굉장히 중요했던 것 같아요. 마감 기한 엄수와 더불어 여러모로 스트레스와 부담을 받잖아요. 그런 부분을 자연스럽게 풀어가면서 조금 더 뭔가 (직장인에 비할 바는 아닐 수 있지만) 제 나름의 노하우를 일상에서 계속 만들려고 노력한 것 같아요.

 

Q 이번 작업 과정에서 음악적인 면에서 마음에 들었던 점은 무얼까요?

제형 뮤지션의 역량이나 능력은 결과물로 판단되거나 혹은 결과물의 인지도로 판단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에 연주와 라이브 경험도 많아지고, 스튜디오 경험도 많아지다 보니까 경험에서 축적되는 것들이 생기고, 그게 눈에 보여서 좋았어요.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 이건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구체적인 생각들이 스스로 생긴 것 같아요. 이런 생각들이 나중에 봤을 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생겼다.’라는 것 자체가 제게 좋은 신호였고, ‘계속해서 좀 더 배우고 싶다.’ 혹은 ‘좀 더 늘고 싶다.' 하는 것들이 한 곡, 한 곡 낼 때마다 나타나서 이를 잘 기록해두는 게 중요했어요.

 

Q 작업 과정에서 느낀 점을 바탕으로 다음 스텝에서 생각하는 목표나 그림이 있을까요?

제형 저만의 스타일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제 노래들은 굉장히 다양해서 듣기 좋다는 얘기도 있지만 어떤 분들에게는 특별히 다가온 핵심적인 노래들이 있잖아요. 꼭 그걸 의식하는 건 아니지만, 저 스스로 좀 더 저만의 음악적인 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매번 특정 장르에 기웃거리는 느낌이나 방식 말고요.

 

 

2. 수록곡에 관해

“가요는 정말 좀 ‘직선’ 같아요. 그런데 팝은 약간 ‘은하수’ 같다고 할까요?”

Q 타이틀곡 '않는 슬픔'이라는 제목이 주는 인상이 강렬합니다. 앨범 타이틀 ‘띄 움’은 단어 사이에 실제로 띄어쓰기를 하기도 했고요. 아무래도 국문학과라는 출신이 미친 영향이 있을까요?

제형 저는 꼭 학문이 아니라, 별거 아니더라도 공부의 끈을 계속 놓지 않으려고 해요. 제가 몰두하거나 집중하고 있는 것 혹은 새롭게 알고 싶은 것들에 관해 알아가거나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굉장히 강한 것 같아요. 이게 또 허영일 수도 있고요. (웃음) 한편으로 저는 재미도 중요한 사람이어서, 재미있게 풀어내고, 흥미롭게 풀어내는 지점도 계속 고민이 돼요. 공부와 재미와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 모두 저한테 중요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온 방식인 것 같아요.

‘않는 슬픔’ 뮤직비디오

Q ‘않는 슬픔’의 의미에 관해 간략히 설명해주세요.

제형 저는 사람들의 슬픔이나 상처는 특정한 카테고리로 분류되거나 기호화가 되지 않는 것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슬픔의 자극적인 전시나 손쉬운 위로 같은 접근이 너무 많은데, 막상 그런 걸로 해결되지 않는 슬픔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슬픔을 덮거나 섣불리 위로하는 것보다 먼저 그 슬픔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 태도라고 느껴요. 그래서 그러한 응시나 사라지지 않는 슬픔도 ‘있다’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쓴 표현이에요. ‘않는 슬픔’이라고 하면 슬픔을 부정하는 표현처럼 느껴지지만, 노래를 다 듣고 나면 그 슬픔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바로 이 ‘있다’라는 존재의 맥락을 담아 만든 노래입니다. 음악적인 면의 경우 단순한 슬픈 분위기로 치우쳐지지 않고자 해서, 전진하는 것과 같은 뉘앙스를 담고자 했어요.

 

Q ‘않는 슬픔’의 뉘앙스를 만드는 데 있어 기타 솔로 파트가 핵심적인 표현이 된 것 같아요.

제형 저는 사실 기본적으로 ‘어긋나는 것’을 좋아해요. 약간 뒤틀리거나 어긋나는 거. 이 노래의 가사나 주제의식이나 이야기가 너무 컬러가 짙다고 생각하다 보니까, 이 컬러를 고스란히 담게 되면 음악이 재미없어진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약간 뒤틀리는 포인트들을 주고자 했어요. 예를 들어 말씀하신 기타 솔로 파트가 마치 잠깐 어디 갔다 온 것처럼 느껴지는 환기일 수 있고요.

‘기분파’

Q ‘기분파’의 가사는 말 그대로 순간의 감정대로 쓰여진 것처럼 느껴져요.

제형 대중음악이나 대중문화에서 ‘나 자신’을 찾는 이야기가 굉장히 많잖아요. 그런데 제가 관심있는 건 ‘내 안의 나’ 말고 주변 관계에서 타인이나 타자를 통해서, ‘그들을 바라보면서 성립하는 나’에 가까워요. ‘기분파’도 그러한 맥락에서의 노래이기도 해요. 하루를 살다 보면 내 기분을 확인하는 시간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것을 나도 바라는 것 같기도 하고 세상도 바라는 것 같기도 하면서 굉장히 기분을 시시각각 점검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죠. 반대로 그러면서 놓치게 되는 다른 사람들의 기분도 있고요. 그게 좀 서글픈 거예요. 그러니까 내 것만 찾다가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격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 그런 걸 공감을 못하는 요소가 단지 공감 능력이 부재해서가 아니라, 나를 찾는 것에 혈안이 되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나 물리적 여건을 마련하지 못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들을 경쾌하게 풀어본 곡이에요.

 

Q 상대와 주변에도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제형 저는 그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그저 다른 사람의 기분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느낌도요. 내 음악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도 그렇고, 내 일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진짜 중요한 것 아닌가 싶어요.

 

Q 팬이나 대중의 반응에도 민감하신 편인가요?

제형 아직까지 저는 팬분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게 아주 익숙한 타입의 가수는 아닌 것 같아요. (웃음) 다만 제가 볼 때 내향적인 분들이 많으신 것 같아요. 내향적이지만 표현은 폭발적인. 그러니까 뭔가... 조용하고 내향적인 성향을 갖고 계신 것 같은데, 채팅창에서 수다를 많이 해주시고요. 표현도 굉장히 구체적이고 저돌적으로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제 노래가 그런 성질과 좀 닮아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감성적으로 소극적인 내용을 경쾌하고 적극적으로 풀어내는 방식이 비슷한 성질이 아닐까 해요. 저 자신도 그렇기도 하고요.

Q 자신의 음악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가요’라는 표현을 자주 썼어요. 요즘에 쓰는 표현은 아니잖아요. 어쩌면 ‘김제형’이라는 뮤지션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가요 시절의 감성이나 사운드가 중요하게 작용했으리라 추측이 돼요.

제형 저는 사실 음악 자체를 엄청 좋아해서 음악을 시작한 게 아니라 만드는 걸 좋아해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제 음악의 정서적 토양은 멀리 있기보다 주로 TV에서 보고 자란 댄스 가요들, 그 노래의 멜로디들, 특히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약간 마이너 코드풍의 가요를 좋아했더라고요. 백지영, 차태현 선배님의 노래들이요. 그런 정서가 매우 꽂혀 왔는데 그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멜랑콜리하면서도 왠지 굉장한 폭발력이 있는… 그러다가 실제로 음악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옛날 가요들을 더 많이 듣기 시작했죠.

아직 이 키워드에 관해 파악이 덜 되기는 했어요. 진정성이라고 할까요? 가요가 갖고 있는 마음의 직선적인 표현? 그런 게 요즘에는 멋없는, 칠(chill)하지 못한, 쿨하지 못한 지양해야 할 태도로 인지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게 멋있다고도, 개인적으로 강하게 남아 있는 정서라고도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그런 표현이 있으면 좋다고 느꼈어요.

제가 생각할 때는 가요는 정말 좀 ‘직선 같아요. 그런데 팝은 약간 ‘은하수’ 같다고 할까요? (웃음) 점으로 펼쳐져 있는 인상이에요. 가요는 왜 그렇게 다르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어요. 앞으로도 탐구할 대상 같고, 그에 더해 ‘진정성’과 같은 키워드에 대해서도 계속 파고들고 싶어요. 제가 이 키워드를 고민한 지 굉장히 오래됐거든요. 10년 전쯤 대학교 국문과 수업 때 ‘서정’과 ‘진정성’에 관해 선생님께 질문한 적 있었어요. 선생님도 “그건 나도 잘 몰라서 앞으로 더 생각해 봐야겠다.”라고 말씀하셨어요.

‘후라보노’ 뮤직비디오

Q ‘후라보노’를 들으며 든 생각이에요. 이전까지 김제형의 음악은 가사에 있어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중요하게 다룬 일종의 르포나 칼럼, 날카로운 에세이의 느낌이 있었는데요. 이번 프로젝트의 트랙들은 보다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에둘러 말하는 시나 소설 같은 인상이 느껴져요.

제형 (웃음) 맞아요. 시기적으로 그래요. 살아오면서 사람의 생각이 계속 변하잖아요. 그 와중에 제게 변화된 생각은 ‘통찰’ ‘혜안’ 이런 걸 얘기하는 작업이 갈수록 조금 아쉽더라고요. 그러니까 뭐랄까요. 결과적으로 프로파간다나 선전 같은… 내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써 음악을 활용한 느낌이 든 거죠. 물론 당시에도 음악적인 측면을 많이 신경 쓰기는 했지만요.

 

Q 그렇기 때문에 신선하기도 했어요.

제형 그렇죠. 그런데 하나의 음악가이자 개인으로서는 ‘이게 맞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내가 더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얘기해 보고 싶기도 했고요. 이건 메시지에 관한 얘기이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부분들에 관한 얘기이기도 해요. 더 솔직하고 집요하게 얘기하고 싶다. 그리고 음악이라는 것을 도구적으로 활용하는 게 아니라, 음악이 담고 있는 이야기와 음악과 그것이 어떻게 화학 작용을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해 프로젝트로 소화하고 싶다. 그거였어요. 그걸 가장 잘 느꼈던 결정적인 순간은, 함께하는 연주자들이 연주를 너무 잘하니까 ‘저 연주자들은 왜 저렇게 연주를 잘할까?’에 대해서 계속 생각해 보게 된 거예요. ‘왜 저렇게까지 잘할까?’ 그런데 그들은 메시지가 중요한 사람 같지 않아 보였어요. 다만 연주 자체에 메시지를 넣는 거죠. 삶의 태도를 배운 것 같았어요. ‘아, 어쩌면 나는 혜안과 통찰에 기대어 있었구나.’ 이번 작업을 할 때는 혜안이나 통찰을 빼고, 서정이라든가, 좀 더 우리가 같이 해볼 만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흥미롭게 다룰지 올해의 중요한 태도였어요. 이게 또 바뀔 수도 있겠죠.

‘어떻게든’ 뮤직비디오

Q 전부터 함께 작업해오는 분들이 많아요. ‘어떻게든’의 경우 새롭게 (올해 솔로 앨범을 내기도 했던) 해파가 코러스로 참여했어요.

제형 제가 직접 연락했어요. 이 부분은 마지막에 나오는 일종의 떼창 같은 파트가 살포시 안아주는 느낌이 중요한 테마였는데, 제 소리를 쓰면 스스로 자아를 안아주는 것 같은 그런 인상이 들더라고요. ‘어떻게든’이라는 제목의 느낌조차 대개 자기 자신이 ‘이를 악무는 형태’로 쓰곤 하는데, 이 ‘어떻게든’이라는 말도 타인을 바라보는 힘으로서 작동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노래에 저만 등장하지 않도록 평소에 좋아했던 해파님께 제가 연락드렸죠.

 

Q 처음에 발표한 곡은 ‘극장에서’예요. 만들어진 시기는 어떤가요?

제형 다른 노래들은 다 싱글 발매를 맞춰서 차근차근 준비했던 노래인데, 이 노래만 예전에 썼던 노래예요. 제가 우연히 예술 연극 집단에 들어가 작업했을 때가 있었는데, (당시 사운드 디자인이나 영상 작업을 담당했고, 극을 위한 음악을 만들었던 건 아니에요.) 그때 만들었던 노래이고, 그 곡을 재편하는 과정을 거쳐 발표하게 됐습니다.

‘극장에서’ 뮤직비디오

 

 

3. 그 밖에 활동에 관해

“기타는 정말 더 나아졌거든요. 춤은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아요.”

Q 첫 EP 때부터 함께한 조성태 프로듀서가 이번에도 3곡의 프로듀스를 맡았어요.

제형 네. 그분은… 그분이라고 하니까 되게 멀게 느껴지네요. (웃음) 최근에 연락을 많이 못 했거든요. (웃음) 군대에서 제가 후임이었어요. 피아노 전공자였는데 저희가 컨테이너를 연주실로 썼던 상황이거든요. 일과 후나 주말에 놀러 가서 연주하는 걸 듣고, 본인이 갖고 있는 반입 가능한 앨범도 같이 듣고 하면서 ‘이런 음악도 있구나’ 알게 된 게 많았어요. 그렇게 관심사를 서로 공유하던 사이였고, 음악적 동료는 아니었죠. 그런데 제가 이후에 곡을 만들게 되고, 스튜디오 녹음을 하면서 정식으로 물어봤어요. 당시에는 ‘어느 정도 잘 하겠지.’ 정도로 생각했고, 신뢰 관계가 있으니까 작업을 함께할 수 있겠다 정도로 생각했는데 굉장히 잘 하는 거예요. 스튜디오 녹음이나 여러 가지 진행을 함께하면서 너무 많이 배웠어요.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었고요. 항상 제가 부족한 부분을 느끼게 해요. (웃음) 작업에 있어서는 좀 칼 같고, 계획에 맞추거나 각자의 영역과 분야에서 오류를 최대한 발생하게 하지 않으려고 하는 성향이 비슷하기도 해요.

 

Q 역시 오래 함께하는 양영호 베이시스트는요?

제형 양영호님과는 이번에 ‘않는 슬픔’을 같이 했는데요. 포크적인 냄새를 원할 때 양영호님과 더 협의를 하는 편이에요.

 

Q 말씀하신 군대에서 음악 만드는 걸 처음 배우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 전에는 음악의 경험이나 특별한 관심이 없었을까요?

제형 거의 없었어요. 만약에 있다면 대학 방송부 때 음악부장을 했던 거? (웃음) 선곡 방송을 했고, LP를 정리하는 업무를 맡았는데 제가 도망 다녔어요. 그렇지만 선배와는 유대 관계가 아주 좋았습니다. (웃음) 군대에서 음악 만드는 걸 처음 배웠을 때는 그저 ‘만드는 게 재밌다.’ 정도였던 것 같아요. 마치 레고 쌓는 취미에 흠뻑 빠진 사람들처럼 저도 그냥 음악 만드는 게 블록 쌓기와 비슷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재미를 들여 만들다 보니 ‘홍대에 공연장이 있다.’ ‘자작곡을 들고 가면 노래를 부를 수 있다’라고 해서 공연을 하기 시작했어요. 상황을 만들기보다 상황이 주어졌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현재 나는 15분밖에 공연을 못 하지만, 30분 셋을 부탁하면, 15분을 또 만들어서 나가야 하잖아요. 그러면 제가 그 사이에 새 곡을 만드는 거죠. 그렇게 만들어 가서 깨지고. (웃음) 깨지고 난 후 ‘다음번에 더 잘 해야지.’ 이런 마음이 생기는 거죠. (웃음)

Q 이번 앨범과 관련해 단기적인 계획이나 다음 일정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제형 공연들이 있고, 라디오 출연하는 곳이 있어요. 계속해서 일정을 만들어가는 중이에요.

 

Q 주요 공연 셋(set)은 어떻게 될까요?

제형 고민이 좀 돼요. 어쨌든 어쿠스틱 셋의 버전은 분명히 만들어 놔야 할 것 같아요. ‘후라보노’나 ‘오늘 같은 농담’은 아까 얘기처럼 가요 같은 분위기도 느껴지고, 브라스 파트가 있기 때문에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큰 공연을 한다면 가능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어쿠스틱 셋을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Q 앞서 얘기했던, 목표로 삼는 김제형만의 ‘스타일’에 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볼 수 있을까요?

제형 흔히 말하는 ‘스타일이 뚜렷하다.’ ‘대체 불가능하다.’ 이런 표현이 참 말은 쉽지만 굉장히 얻기 어려운 호칭이잖아요. 예를 들어 개인적으로 Andrew Bird(앤드류 버드)나 Fujii Kaze(후지이 카제) 같은 가수의 노래들을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이런 취향은 음악을 오랜 시간 만들어 오면서 생긴 현재의 취향이잖아요. 시간이 흐르면 또 변할 수 있는. 제가 하는 음악 역시, 과거의 장르적인 문법이나 관습적으로 해왔던 것을 그대로 하는 건 새로운 의미가 없는 것 같거든요. 제 음악의 스타일을 찾아간다는 것 역시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인 거죠. 분명 어떠한 분위기, 무드를 느낄 수 있되, 결코 옛날 것 같지 않은, 새로운 지금의 것을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Q 정규 앨범 계획은요?

제형 아직 없어요. ‘나중에 정규가 나오게 된다면 어떤 정규가 나올까?’ 하고 자기 전에 한 번 생각을 해본 정도예요. 아직 제대로 생각해 본 적 없어요.

 

Q 앨범 발매 이후 최근 근황은 어떤가요?

제형 레코트 페어에서 이 앨범이 나왔고, 아직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전적인 오프라인 행사는 없었지만, 일부 행사에 참여했고요. 주로 앨범과 관련된 활동을 하면서,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고 그렇네요.

 

Q 운동이요?

제형 저는 올해에 본격적으로 시작을 했어요. 루틴을 만들고 싶은 생각도 들었고, 이제는 안 하면 안 되는 시점인 것 같아요. 많은 도움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어요. 수영하고 요가를 하는데, 수영은 물에서 하니까 느낌이 완전히 달라서 재밌고, 요가는 좀 더 마음 수련에 가깝고요. 올해는 진짜 좀 빚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운동을 하면 오히려 힘이 없어지고 지치는 스타일이 있을 수도 있지만) 하루를 시작하거나 끝나는 시간대에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하루를 잡아주는 느낌을 주더라고요.

그리고 운동을 하면서 만나는 분들이 생기거든요. 저희 수영장의 경우 저보다 윗세대의 분들이 많은데, 제가 수영 중급반 에이스거든요. (웃음) 저를 굉장히 좋아해 주세요. (웃음) 요가는 선생님과 교류가 많고요. 새로운 관계망이 제게 조성된다는 점이 신선하고 좋기도 해요.

김제형 ‘노래의 의미’ 라이브 영상

Q 운동 외에 음악적으로 규칙적으로 해가는 루틴이 있을까요?

제형 기타 연습을 매일 하려고 해요. 혼자 하는 연습량이 있거든요. 그걸 최대한 지키려고 해요. <곡예>와 <사치>의 경우 제가 연주나 소리에 대한 감이 많이 없었던 상태에서 완성한, 그야말로 스튜디오로 돌진했던 돌진형 앨범이었다면, 이제는 좀 더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하면서 제가 좋아하는 소리는 무엇이고, 결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게 저한테 매우 중요한 것 같더라고요. 저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기타 연습이나 소리적인 부분에서 시도 가능한 부분들을 일상생활 내에서도 계속해보려고 해요.

 

Q 가사는 평소에 별도로 써 두는 편인가요?

제형 잘 써놓지 않았는데, 이제 메모를 좀 해보려고 해요. 이전에는 곡과 가사를 항상 같이 썼거든요. 기록을 좀 더 해보려는 생각에서 평소에 책을 많이 보려고도 해요. 뮤지션은 창작자로서 공연 혹은 음원 발매로 평가받는 직종이잖아요. 그런데 요즘 트렌드상 (이 직업도 그렇지만) 모든 이들이 결과가 아닌 퍼포먼스 그 자체 안에서 구축되는 콘텐츠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측면에서 저는 기록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단순한 기록은 좀 아닌 것 같고, 어떤 방식으로 흥미롭게 기록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돼요. 지금보다 영화를 더 많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요.

김제형 ‘중독’ 라이브 영상

Q 2021년 <네이버 온스테이지>나 <유희열의 스케치북> 나왔을 때 무대와 방송에서 췄던 ‘춤’이 화제였어요.

제형 (웃음)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그날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신발이 처음에 안 맞아서 바닥이 엄청 미끄러운 거예요. 그래서 이 신발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다른 신발 교체했는데, 신발이 딱 맞은 거죠. 그 신발을 신는 순간 ‘엇, 하나도 안 미끄럽다.’ 싶었어요.

 

Q 평소에 내향적인 사람들이 폭풍처럼 쏟아내는 순간이었네요?

제형 그날이 그날이었던 거죠. (웃음) 저도 완급 조절이 좀 필요한 것 같아요. 저도 모니터링을 많이 해보니까, 어떤 곡은 필요한 순간이 있고 어떤 곡은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 있는데, 그런 순간에도 제가 할 때가 있더라고요. 대표님이 “이제 댄스는 금지야!” 이러기도 했어요. 노래를 충분히 보여줘야 할 가수가 다른 게 주목을 받는다고. 그런데 금기는 깨라고 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진짜 옛날 가수들 대단한 것 같아요. 격렬하게 춤추면서 가창을 정말 잘하시는 분들이 계시잖아요. 직접 해보니까 이게 경이로운 능력이구나 싶었어요.

 

Q 이제 기타 연습 대신에 춤 연습을 하시는 건 아닌가요? (웃음)

제형 기타는 정말 더 나아졌거든요. 춤은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이번 프로젝트 앨범을 듣는 분들이 이 음악을 어떻게 들었으면 하는지 말씀 부탁해요.

제형 그냥 흘려들으셔도 좋고, 집중해서 들으셔도 좋아요. 각자의 방식으로 알맞은 분위기에서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음악에게 시간을 내어주셔서 감사해요.

 

김제형 인스타그램

 

인터뷰 정병욱
사진 아카이브아침
장소 아카이브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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