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생태 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 많은 이들이 비인간 존재자들의 세계를 탐구해가며 인간사의 모든 부분에서 이들의 역할을 고려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고양이나 바위 혹은 나무가 경험하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며, 항상 대변자의 위치에서 그들에 관해 말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말하는 방식에 관해 고민해야 한다. <슬로 모션: 남해 보호수> 역시 그 고민에 동참하고 있는 듯했다. 전시는 남해 돌창고에서 오는 12월 31일까지 진행된다.

<슬로 모션: 남해 보호수> 전시 포스터, 이미지 출처 © 돌창고

 

보호수 프로젝트

이번 전시는 2020년에 시작된 보호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개최됐다. 10년 단위로 기획되었으니 앞으로 일곱 번의 프로젝트가 더 남아 있다. 보호수는 오래전부터 남해 마을 공동체의 중심으로 기능하며 사람들에게 제의와 모임 그리고 휴식의 공간을 제공해주었다. 남해에서 성장한 최승용 기획자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매년 보호수에 관한 생각이 바뀐다"라고 얘기한다. 보호수 프로젝트는 결국 기획자가 보호수에게 다가가는 과정이기도 한 셈이다.

제일 먼저 진행됐던 2020년 전시 <마을의 수호자: 남해 보호수>에서 보호수는 아직 향유의 대상으로 상정된다. 기획자는 자신이 어린 시절 보호수 아래에서 체험했던 “평온하고 안락하지만 조금 이상한 감정”을 관람자와 함께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장영철 건축가의 ‘가지나무’는 이러한 기획자의 바람과 공명한다. 이 작업은 남해 지역 가로수의 나뭇가지를 주워 모아 구축한 공간 조형물로, 관람자는 그 안에 들어가 보호수처럼 일상의 기억을 담고 있는 가로수를 마치 보호수처럼 다시 경험하게 된다. 그렇지만 무게추는 여전히 보호수, 가로수 그 자체가 아니라, 관람자의 개인적인 체험으로 기울어져 있다. 기획자는 “이때까지만 해도 보호수를 일종의 활용 대상으로 보았다”라고 털어놓았다.

<마을의 수호자: 남해 보호수> 전시 전경, 이미지 출처 © 돌창고

이듬해 열린 전시 <보호수, 와: 남해 보호수 프로젝트>에서는 향유 대상이었던 보호수가 만남의 상대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최정화, 노경 등 총 3인의 작가와 지역 창작팀 세 팀이 참여했다. 이번에는 보호수의 장소성을 회복해보려는 의도로 관객들이 남해 곳곳에 위치한 보호수를 직접 찾아가 보도록 했다. 예를 들어 설치 작업 ‘해피 해피’는 한때 보호수가 있었던 앵강다숲의 나무들을 (오색천을 상기시키는) 다채로운 색깔의 천으로 연결해 제의 장소처럼 연출했다. 나무와 인간이 모두 함께 이어져 있던 시절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한편 올해의 화두는 '어떻게 하면 보호수와 오랫동안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것이었다. 이제 보호수는 완연한 삶의 동반자가 된다. 기획자는 "자기만의 삶의 속도를 지키며 살아가는 보호수의 삶의 태도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으로 '슬로 모션'이라는 제목을 붙였다"라고 언급했다. 이번 전시에는 특이하게도 조경 작품이 포함되었는데, 그 이유는 기획자가 "보호수와 오랫동안 함께 하기 위해서는 나무를 잘 아는 식물 전문가를 모실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남해 청년 센터(김성주, 김한솔), KITOVU(김서진, 한송희), 최정화, ‘해피해피 Happy Happy’(2021), 가변크기, 패브릭, 이미지 출처 © 돌창고

 

여러 갈래의 시간

조경가 이대영의 작품 ‘여러 갈래의 시간’은 인간의 관점에서 식물의 다층적 시간을 번역한 결과물이다. 돌창고 정중앙에는 이끼가 자라는 야트막한 둔덕이 솟아올라와 있는데, 그 둔덕을 기점으로 고사리가 자라고 있는 여러 갈래의 길이 거미줄처럼 뻗어 나간다. 전시장 벽면까지 이어지는 길을 끝까지 따라가면 한쪽에서는 진달래 나무를, 다른 한쪽에서는 벽을 타고 올라가는 이름 모를 넝쿨 식물 한 줄기를 발견할 수 있다. 기획자의 설명에 따르면 생물들은 각기 다른 시기에 지구에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끼와 균사류가 처음 나타났고, 고사리 같은 양치식물이 그 뒤를 이었으며, 나무 등의 종자식물이 세 번째로 등장했다. 인간은 제일 마지막에 탄생했는데, 전시에서도 인간 관람자는 제일 마지막에 등장해 조경의 일부가 된다. 각기 다른 시간을 통과한 동식물들이 이곳에 일시적으로 군집하여 공존하게 되는 셈이다.

이대영, ‘여러 갈래의 시간’(2022), moss and fern, 500x15,000x7,500cm, 이미지 출처 © 돌창고

조경은 인간과 식물의 공동 공간을 조성하는 행위로, 인간의 '자연관'을 명확히 드러내기도 한다. 이대영의 조경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순수한' 자연을 동경하지 않으며, 인간을 수많은 지구 거주민 중 하나로 위치시킨다. 이 작업은 다양한 생물종의 다층적인 시간을 공간적으로 구축해내는데, 그 시간은 마구잡이로 소용돌이치는 시간이라기보다는, 인간의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조경가가 조직한 질서에 따라 정렬된 시간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작가의 의도대로 통제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환경이 갖춰진 덕택에 개구리 등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들어와 모임의 일원이 되기도 하며, 거기에 돌창고라는 특수한 공간의 시간도 함께 더해진다. 남해 돌창고는 과거 얼음을 보관하던 창고로, 그 나름의 기억과 역사를 가진 행위자다. 이질적인 존재자들이 인간이 조성한 공간에서 인간의 통제에 꼭 따르지는 않는 방식으로 함께 모여 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조경 작품은 인간의 적극적인 탐구를 통해 비인간을 알아가고 공존하는 태도를 제안한다고 볼 수 있다.

 

보호수는 알았을까?

무운과 스기하라 유타가 공동 제작한 영상 <보호수는 알았을까?>(2022)는 앞선 작품과는 대조적인 방식으로 보호수와 마주한다. 기획자의 말에 따르면 이 작업은 "인간이 어린 시절에 자신의 현재를 상상할 수 없었듯이, 묘목 시절의 보호수도 자신이 커서 보호수가 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보호수가 별다른 비책 없이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며 이토록 오랜 세월을 버텼듯이, 인간도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자신의 리듬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작된 영상이라고 한다.

작품에서는 남해에 거주하고 있는 80대 노인과 귀농한 청년이 등장해 자신의 인생사를 나지막이 풀어놓는다. 작가의 의도와는 별 상관없이 흥미로웠던 지점은 보호수가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보호수가 전면에 나서지는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영상 속 두 인물은 보호수와 관련된 자그마한 추억조차 얘기하지 않는다. 보호수는 그저 영상 중간중간에 틈틈이 출몰하여 그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이 작품은 보호수의 역사를 서술하거나, 보호수를 거칠게 의인화해 대신 발화하려 들지도 않는다. 보호수의 기억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어있는 항으로 남아있다. 관객은 인간의 시간을 매개로 하여 보호수의 시간을 상상하는 과정에서 보호수의 삶의 리듬을 배우고 우리가 함께하는 지금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숙고하게 된다.

(벽면) 무운, 스기하라 유타, <보호수는 알았을까?>(2022), 2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0분.244×663 cm, 이미지 출처 © 돌창고

조형 작업과 달리 이 작품은 적극적인 번역보다는 은유적인 접근 방식을 취한다. 따라서 인간과 보호수 사이의 간극을 가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연과 문화를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한 지구 거주민이 다른 지구 거주민을 알아가기 위해 사용한 조심스러운 의인화 전략에 더 가까워 보인다. 여기에는 인간은 결코 보호수가 될 수 없으며, 보호수의 세계에 오직 간접적으로만 접근할 수 있다는 겸허함이 함께 전제되어 있다. 그에 반해 조경 작품은 생태 네트워크의 일원으로서 비인간 존재자들과 성실히 마주하고, 이를 통해 얻은 지식을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중 하나인 역사적 서사로 번역해낸다. 두 작품의 대조적인 태도는 인간이 비인간에게 접근하는 두 가지 모델을 제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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