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팬들이 기다려온 기예르모 델 토로 총감독의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이 앤솔러지 형식으로 공개되었다. 각 에피소드의 오프닝신마다 그는 키보다 더 높은 서랍장에서 기묘한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 거기에 담긴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모두 여덟 편 중 두 편이 델 토로 감독이 썼으며, 그 외에 H. P. 러브크래프트, 헨리 커트너(Henry Kuttner), 마이클 시어(Michael Shea), 에밀리 캐럴(Emily Carrol)와 같은 저명한 판타지 작가들의 단편을 기반으로 하였다. 또한 <큐브>(Cube, 1997)의 빈센조 나탈리(Vincenzo Natali), <트와일라잇>(2008)의 캐서린 하드윅(Catherine Hardwicke) 등 베테랑 감독과 신예 감독들이 나누어 감독을 맡았다. 올해 10월 25일부터 매일 두 편씩 넷플릭스에 공개되어 로튼토마토 90%의 호평을 받으며 순항 중이다.

호러 앤솔러지 시리즈 <호기심의 방>(2022) 예고편

 

16세기 모험가들의 취미 ‘Cabinet of Curiosities’

페란트 임페라토의 ‘호기심의 방’을 묘사한 판화

15세기부터 항해술이 발달하여 대항해시대가 열리며 세계 각지의 특이하고 진귀한 물건들과 그에 관련된 민담들이 유럽으로 밀물처럼 들어왔다. 지적인 호기심이 가득한 귀족들이 취미삼아 이들을 수집했고, 이것들을 보관한 방을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 또는 Curiosity Chamber), 독일어로 ‘분더카머’(Wunderkammer)라 불렀다. 원래 캐비닛(Cabinet)이란 용어는 가구나 내각이 아니라 작은 방을 의미했다고 한다. 수집 대상은 역사, 문화, 예술을 넘어 지질학, 고고학, 생물학, 종교학까지 다양했다. 사교적인 수집가들은 지인들을 초청하여 수집품이나 자신의 모험심을 자랑하였고, 일반인에게도 이를 개방하여 박물관의 효시가 되기도 했다. 16세기 나폴리의 약제사 겸 탐험가 페란트 임페라토(Ferrante Imperato)가 자신의 호기심의 방을 판화에 새겨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비슷한 시기 영국의 존 트레이즈켄트(John Tradescant)와 로버트 코튼(Robert Cotton)도 수집가로 명성을 떨쳤다.

 

박물관의 원조, 존 트레이즈켄트 부자

존 트레이즈켄트 아버지(왼쪽)와 아들(오른쪽)

영국 궁정의 원예사였던 존 트레이즈켄트(John Tradescant)는 진귀한 식물을 찾아 러시아나 아프리카 등지로 여행하였고, 식물의 씨앗만이 아니라 각지의 진귀한 물건을 수집하였다. 심지어 알고 지내던 탐험가들을 통하여 신대륙의 물건까지 수집하였다. 그는 자신의 집에다가 수집품들을 전시하여 ‘The Ark’라 불렀고, 이를 일반인에게 개방하기도 하여 박물관의 효시가 되었다. 같은 이름으로 불린 그의 아들도 아버지를 따라 궁정 원예사가 되었으며 아버지가 하던 수집 활동을 계속하였다. 아들은 신대륙에도 직접 여행하여 아버지의 컬렉션을 더욱 확장하였으며, 많은 수집품 중 일부는 옥스포드 대학에 기부하였다. 옥스포드 대학은 자체적으로 보관하고 있던 수집품들과 합하여 1683년 공공 박물관을 열었는데, 오늘 날까지 옥스포드 인근에 있는 애슈몰린 박물관(Ashmolean Museum of Art and Archaeology)으로 남았다.

인터넷 영상 <Museum History: The Curiosity Cabinet>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호기심의 방>

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저서 <Cabinet of Curiosities>(2013)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2013년에 <Cabinet of Curiosities>란 제목의 서적을 출판한 바 있다. 여기에는 판타지 영화의 창작 과정에서 떠오르거나 수집한 아이디어를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내용들이 담겨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기예르모 델 토로의 창작 노트>(2015)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그는 같은 제목을 그대로 사용하여 각각 1시간 길이의 단편영화 여덟 편으로 구성된 앤솔러지 호러 시리즈를 제작하였는데, 여기에는 장르를 대표하는 작가, 감독, 그리고 배우들을 망라하였다. 좀비 TV 시리즈 <워킹데드>의 앤드류 링컨(Andrew Lincoln), <해리포터> 영화 시리즈에서 ‘위즐리’ 역을 맡았던 루퍼트 그린트(Rupert Grint), 나이키 걸로 유명한 알제리 댄서 소피아 부텔라(Sophia Boutella), 원조 <로보캅> 피터 웰러(Peter Weller), 악역 전문의 성격파 배우 F. 머레이 아브라함(F. Murray Abraham) 등 각 에피소드의 대표 배우로 등장해 재미를 더했다.

앤솔러지 시리즈 <Cabinet of Curiosities> 오프닝 크레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