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에서 <밀양>(2007)의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은 해에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은 <4개월, 3주... 그리고 2일>(2007)이다. <4개월, 3주... 그리고 2일>는 루마니아에서 만들어진 영화로, 2000년대 들어서 많은 루마니아 영화들이 칸 영화제를 찾았다. <라자레스쿠씨의 죽음>(2005)과 <캘리포니아 드리밍>(2007)은 그 해에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고,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2006)는 데뷔작에게 주어지는 황금카메라상을 받았다. 베를린영화제에서도 좋은 소식이 이어져서, 2010년대와 2020년대에 각각 <아들의 자리>(2013)와 <배드 럭 뱅잉>(2021)이 황금곰상을 받았다. <배드 럭 뱅잉>은 지난 7월에 국내에도 개봉해 관객과 만난 작품이다.

루마니아를 떠올렸을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릴 만한 건 뱀파이어일 거다. 애석하게도 루마니아에 간다고 해도 뱀파이어를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인 점은 영화를 통해 뱀파이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이제는 뱀파이어의 고향인 루마니아의 풍경도 극장에서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여러 형태로 발전해 온 뱀파이어 이야기처럼, 루마니아 영화의 스타일도 하나로 정의하기 힘들 만큼 다양하다. 리얼리즘과 사회비판적 성격이 도드라지는 작품부터 독특한 스타일의 애니메이션, 전위적인 현대미술 작품 같은 영화까지, 루마니아 영화의 스펙트럼은 기대 이상이다. 이젠 뱀파이어 대신 영화로 루마니아를 기억할 시간이다. 뱀파이어보다 더 놀라운, 루마니아 영화들을 만나보자.

 

<아들의 자리>

‘코넬리아’(루미니타 게오주)는 아들 ‘바르부’(보그단 두미트라체)가 집에서 독립해 나간 뒤에 자신을 피하는 걸 보며 섭섭함을 느낀다. 아들의 집에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하고 며칠 뒤, 코넬리아는 바르부가 교통사고로 사람을 죽였다는 소식을 듣는다. 코넬리아는 단숨에 경찰서로 달려가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통해, 바르부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바르부는 가해자가 된 상황에서도 코넬리아에게 날을 세운다.

<아들의 자리>(2013)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은 작품이다. 연출을 맡은 칼린 피터 네처는 데뷔작 <마리아>(2002)로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고, <아나, 내사랑>(2017)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는 등 루마니아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뒤에 소개할 <엘리자의 내일>(2016)이 딸의 졸업시험을 대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라면, <아들의 자리>는 아들의 사고를 대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다.

<아들의 자리>는 중의적인 의미의 제목이다. 교통사고가 발생하고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누군가의 아들이다. 그러나 아들로서 두 사람이 위치해 있는 자리는 다르다. 가해자는 살아있으며, 피해자는 세상을 떠났다. 가해자의 부유한 부모는 온갖 방법으로 아들을 변호하고, 피해자의 가난한 가족들은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코넬리아는 자신이 아들의 사건을 해결해주는 게, 어머니로서 아들을 다시 품에 두고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바르부는 독립 후에도 자신의 집 열쇠를 가지고 갑자기 찾아오는 어머니의 행동이 이미 감옥처럼 느껴지기에, 자신이 징역형을 받든 말든 신경 쓰지 말라며 화를 낸다. 코넬리아, 바르부, 피해자의 부모가 꿈꾸는 ‘아들의 자리’는 모두 제각각이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대우를 받고 부유해도 아들 앞에서 쩔쩔매는 코넬리아, 안락한 환경 안에서도 답답함을 느끼는 바르부, 기다리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피해자의 부모까지,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나름의 최선을 생각한다. 공정하지 못한 사회에서 같은 사건을 당해도 더 많은 상처를 입는 건 언제나 경제적으로 궁핍한 쪽이다. 굳이 루마니아가 아니어도 어디에서나 적용 가능한 이야기일 거다. 극이 끝난 후, 영화의 제목이 ‘아들의 자리’가 아니라 ‘계급의 자리’로 읽힌다.

 

<엘리자의 내일>

의사 ‘로메오’(애드리언 티티에니)는 딸 ‘엘리자’(마리아 빅토리아 드라구스)가 루마니아를 떠나 영국으로 유학을 가길 바란다. 유학을 위해서는 졸업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데, 시험 전날 엘리자가 모르는 이로부터 폭행을 당한다. 로메오는 엘리자에게 벌어진 일에 놀란 와중에도 졸업시험 점수를 신경 쓰며, 자신의 모든 인맥을 활용해서 엘리자가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2000년대 들어서 루마니아 영화가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가운데, 그중에서도 크리스티안 문주는 단연 루마니아를 대표하는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칸 영화제의 총애를 받는 감독 중 한 명으로, <4개월, 3주... 그리고 2일>(2007)은 황금종려상, <신의 소녀들>(2012)은 각본상과 여우주연상, <엘리자의 내일>(2016)은 감독상을 받았다. 음악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롱테이크나 핸드헬드 촬영을 주로 사용하는 등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킬 만큼 리얼리즘에 가까운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다.

<엘리자의 내일> 속 어른들은 자신들이 사는 세상에 희망이 없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자식은 루마니아를 떠나 다른 곳에서 살기를 바란다. 로메오는 엘리자의 유학을 위해서라면 부정 청탁 같은 행동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합리화한다. 자신이 저지르는 짓이 사회를 더 병들게 만든다는 걸 모른다는 듯, 죄책감은 쓸모없다는 듯이 행동한다. 딸을 희망의 땅으로 보내기 위해, 지금껏 자신이 살아온 땅의 공정함을 무너뜨리는 일에 기꺼이 기여한다.

로메오의 집 창문으로 돌이 날아오고, 차 앞 유리가 깨지고, 전화벨이 계속해서 울린다. 어딘가에서 호출이 계속 이뤄지지만 응답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다. 영화의 제목은 <엘리자의 내일>이지만 엘리자의 미래는 로메오의 손에 걸려있는 듯 보인다. 로메오는 엘리자와 사람 대 사람으로 소통하기보다, 일방적으로 자신이 답이라고 생각하는 길로 무작정 엘리자를 끌고 간다. 엘리자는 대화를 원하고, 로메오는 자신의 답에 엘리자가 맞추기를 원한다. 기성세대가 자신들에게 오는 젊은 세대의 신호를 어떤 공격이나 반항이 아니라, 소통하고 싶어서 던지는 최후의 보루라고 받아들이고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엘리자의 내일, 로메오의 내일, 루마니아의 내일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환상의 마로나>

강아지 ‘마로나’(리지 브로체르)는 도로에서 차에 치여 쓰러져 있다. 마로나는 삶의 마지막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아홉 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던 때부터, 첫 번째 주인이었던 곡예사 마놀에게 ‘아나’라고 불리고, 이후 건설업자 이스트반에게 ‘사라’라고 불리고, 엄마와 할아버지와 사는 소녀 솔랑주에게 ‘마로나’라고 불리기까지의 삶을.

<환상의 마로나>(2019)는 제목 그대로 ‘환상’이라는 단어를 가장 잘 표현한 애니메이션이다. 연출을 맡은 안카 다미안은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모두 작업하는 다재다능한 루마니아 감독이다. 강아지 마로나의 시선으로 본 세상을 애니메이션으로 체험하게 되는데, 강아지에 대한 애정이 있는 이들이라면 울고 웃게 될 장면들이 많은 작품이다.

아홉 남매의 막내로 태어나서 ‘아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마로나는 그때그때 주인에 따라 이름이 바뀐다. 마로나는 자신에게 이름을 부여해준 이를 열렬히 사랑하지만, 마로나를 키우는 주인들은 어떤 사정이 생길 때면 마로나와 동행을 이어 나갈 수 있을지 고민한다. 가족은 버릴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는 걸 사람들은 분명 다들 알 텐데, 마로나는 자신의 유일한 가족인 주인이 자신을 떠나려고 할 때면 쉽게 그 마음을 느끼고 알아차린다. 자신보다도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기분을 살피는 게 더 익숙한 마로나니까.

<환상의 마로나>는 애니메이션 표현에 있어서도, 픽사와 드림웍스 같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결의 독특한 작품이다. 마로나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주인과 함께할 때는 아름답고, 주인과 함께하지 못할 때는 혼란하다. 주인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든, 마로나에게 주인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세계다. <환상의 마로나>에서 마로나가 보여준 사랑은 사람이라면 도달하지 못할 영역이라고 생각될 만큼, 일방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처럼 보인다. 마로나가 하늘 위에서도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 그게 가장 걱정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랑을, 마로나로부터 보았다.

 

<배드 럭 뱅잉>

‘에미’(카디아 파스칼리우)는 고등학교 교사다. 남편과 합의 하에 찍은 섹스 영상이 인터넷에 유출되고, 해당 사태를 두고 학교에서 회의가 소집된다. 당장 학교를 그만두라는 부모들과 에미를 방어하는 이들까지 의견이 갈리는 가운데, 에미는 자신의 의견을 확실하게 말한다. <배드 럭 뱅잉>(2021)은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은 작품으로, 연출을 맡은 라두 주데 감독은 <아페림!>(2015)으로 같은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이후 결국 최고상을 거머쥐게 되었다. 루마니아 감독들 대부분이 리얼리즘 기반의 영화를 찍는 반면 라두 주데는 전위적인 시도를 많이 하기에, 그의 작품은 극장이 아니라 현대미술관에서 보아도 어색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물론 영화와 미술의 경계를 나눈다면 라두 주데는 코웃음을 칠 거다.

<배드 럭 뱅잉>은 시작과 동시에 에미의 유출된 섹스 영상을 보여주고, ‘일방통행’, ‘일화, 기호, 경이에 관한 소사전’, ‘실천과 빈정거림(시트콤)’까지 3개의 장으로 진행된다. ‘일방통행’은 에미가 지나가는 길에 보이는 도시의 풍경을 보여준다. 도시의 각종 광고판부터 마트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이들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에미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어떤 곳인지를 보여준다. ‘일화, 기호, 경이에 관한 소사전’은 극영화의 형식을 벗어나서, 여러 단어가 순차적으로 제시하고 해당 단어를 설명하는 장면과 은유적인 해석이 이어진다.

마지막 장 ‘실천과 빈정거림(시트콤)’에서는 에미를 앞에 두고 회의가 이뤄지는데, 이들의 회의 장면은 루마니아 사회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회의가 시작도 되기 전에 한 학부모는 어떠한 상황인지 모인 이들이 정확히 알아야 한다면서 태블릿PC로 에미의 유출된 영상을 모두에게 보여준다. 이후 이들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는 토론보다는 서로에 대한 폭력에 가까워 보인다. 마치 단두대에 서 있는 것 같은 에미 앞에서, 사람들은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면서 자신이 어떤 계급을 대표한다는 듯 편협함을 정당화시키려고 한다.

<배드 럭 뱅잉>은 독특한 연출 방식만큼이나 호불호가 갈릴 작품이다. 다만 확실한 건 예술이라는 이름 안에서 우리는 어떤 작품이 자신의 취향이 아니더라도 이에 대해 이야기할 자세는 갖춰야 한다는 거다. ‘예술은 XX이다’라는 식으로 정답이 있다는 듯 구는 것만큼 편협한 자세도 없다. 천편일률적이라는 것만큼 예술계에 치명적인 건 없을 테니까. 획일화되어가는 사회에서 호불호가 갈리고,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표현 방식을 접하는 건 예술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자신의 취향에 안 맞을지라도 기꺼이 새로운 것을 보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관객이 있다면, 영화는 계속될 것이다. 라두 주데의 영화도, 루마니아 영화도 그렇게 계속 확장되어 갈 거다.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