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아트는 변화하는 빛과 소리로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고 빠져들게 만들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한 번에 잘 알아채기 어렵다. 요즘같이 재밌는 영상 매체가 넘쳐나는 세상에 가장 난해하고 아름다운 미디어 아트를 왜 감상해야 하는지 묻는다면,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책을 인용해 답하고 싶다. “철학과 철학을 논하는 것의 차이는 와인을 마시는 것과 와인을 논하는 것의 차이와 같다.” 미디어 아트는 한 줄의 텍스트, 한 장면의 이미지로 명확하게 전달하는 피상적인 즐거움보다는 머릿속에 오래 여운이 남는 질문을 남기고 함께 사유해 보자는 초대와 같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집중 조명했던 히토 슈타이얼과 캐나다 출신 비주얼 아티스트 제레미 쇼의 작품세계를 통해 감각을 초월하는 철학을 경험해 보자.

 

히토 슈타이얼 (Hito Steyerl)

지난 9월에 막을 내린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 전시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열린 히토 슈타이얼의 개인전이었다. 작가가 직접 관람객과 만나는 이벤트, 구역 별 강렬한 디스플레이와 공간 연출을 통해 총 89만명의 관람객 찾은 성공적인 전시로 평가받는다. 히토 슈타이얼의 작품은 오늘날 생활과 밀접한 가상현실, 인공지능, NFT, 소셜미디어 등 다양한 주제를 미디어 아트의 영역에서 분해하고 분석하고 상상한다.

<Hito Steyerl, This is the Future>(2019)

1966년 독일 뮌헨에서 태어난 작가는 뮌헨 영화학교, 일본 영화대학에서 촬영을 배우고 다큐멘터리 영화를 전공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빈 미술학교에서 철학으로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며 표현 기법뿐 아니라 비판적인 시각으로 질문하고 주제를 극단까지 이끄는 사고체계까지 완성했다. 히토 슈타이얼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사회를 읽고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을 두루 섭렵하여 이야기에 임팩트를 더하고 미디어 아트 작업, 저술 활동, 예술대학 강의 등 경계 없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Giorgi Gago Gagoshidze, Hito Steyerl and Miloš Trakilović, Mission, 이미지 출처 © <Accomplished: Belanciege>(2019) 스틸

이번 전시에서 인상적이었던 작품 <미션 완료 : 벨란시지>(2019)에서는 강연 형식을 취하며 브랜드 ‘발렌시아가’가 단순한 패션이 아니라 데이터로써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30여 년의 시간을 추적하고 통찰한다. ‘발렌시아가 방식’을 ‘벨란시지’로 명명하고 브랜드가 사회에 일으킨 파장과 가벼운 밈이 되어버린 정치를 엮어 세 화자의 입을 통해 이야기한다. 또한, <소셜심>(2020)에서는 팬데믹으로 인한 제한에 반발하는 대중 시위와 경찰의 충돌 관련 데이터를 모션 그래픽 영상에 접목했다. 그 이면에는 NFT처럼 가상의 작품이 진열된 미술관이 등장하고 이 역시 결국 실체가 있는 예술과 같이 폐쇄적이고 제한적인 성질을 답습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다.

Hito Steyerl <SocialSim>(2020) 중 일부 발췌

히토 슈타이얼의 미디어 아트는 진실의 절대성이 많이 희석된 시대에서 표면적인 현상 그 이면을 파고들며 논점을 던진다. 흥미로운 시각적 효과와 다층적인 시나리오를 통해 일차원적 감상을 넘어 생각의 물꼬를 트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셈이다. 무엇보다 현실의 유동성을 실시간으로 반영한 작품이기 때문에 세대를 초월하는 감각적이고 세련된 맛이 있다.

 

제레미 쇼(Jeremy Shaw)

Jeremy Shaw and Julia Stoschek at the Julia Stoschek Collection, 이미지 출처 © Franziska Taffelt

제레미 쇼는 1960-70년대의 서브컬처, 신경과학, 신체적 움직임과 안무 등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유사 다큐나 사이키델릭 영상을 제작한다. 히토 슈타이얼처럼 화려한 학위를 수집하진 않았지만, 파리의 퐁피두 센터, 뉴욕의 모마(MOMA) 미술관 등 유명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진행하고 각종 비엔날레에 출품하며 주목받았다.

Jeremy Shaw <Phase Shifting Index>(2020) 중 일부 발췌

제레미 쇼의 작품은 문학적 콘텐츠, 과학적 현상을 초현실적으로 경험하도록 보는 이의 혼을 쏙 빼놓는다. <Phase Shifting Index>(2020)에서는 한 방향으로 흐르는 시간 개념의 대체되는 관념을 녹여냈다. 격렬한 동작에 몰입한 댄서, 무아지경의 몸부림을 반복하는 행위 예술가, 빠르게 움직이는 신경 물질 입자들은 일상과 주류에서 벗어난 도피주의적 판타지를 보여주며 분리된 시공간을 누리게 해준다. 간격과 각도를 조정하여 설치된 여러 대형 스크린을 큰 전시장에서 마주하는 동안 어지러울 정도로 감각을 최대로 활용하게 된다.

Jeremy Shaw <Liminals>(2017) 중 일부 발췌

제레미 쇼는 종교든, 기술이든, 신체적 경험이든 그 과정이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고 몰입을 경험하게 한다면 소재로써 마땅히 활용한다. 결과물도 영상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Cathartic Illustration>(2022) 사진 연작은 잔상과 중첩된 이미지로 마치 대상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미지에 특별한 연출을 더해 계급, 특권이 제거된 역동적인 자유의 상태를 표현했다. 기존 작품의 연장선에서 유사한 주제를 담아냈다. 저화질이 자본의 격차를 상징한다고 해석한 히토 슈타이얼과 달리 제레미 쇼는 초현실적 표현을 위해 페이크 다큐에 의도적으로 저화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같은 요소를 다르게 바라보기도 하였다.

명쾌한 커뮤니케이션은 오늘날 손꼽히는 덕목 중 하나다. 감당할 수 없이 많은 양의 콘텐츠가 매 순간 생성되고 그 안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첩된 이미지와 어지러운 영상을 통해 정성스럽게 그리는 예술은 그만큼 깊은 몰입과 진한 여운을 선사한다. 질문을 곱씹는 철학적 사유에 목마르다면, 그 시작으로 시야를 확장시켜주는 히토 슈타이얼과 제레미 쇼의 작품은 어떨까?

 

Writer

넓고 깊게 이야기를 담고 싶은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