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제’라는 별명을 가진 여행작가 유지혜. 그는 스물네 살에 98일간의 유럽 여행·생활기를 담은 첫 에세이 <조용한 흥분>(2015)을 냈다. 올해 1월엔 스물넷부터 스물다섯까지 국내외를 여행하며 쓴 글을 묶어 두 번째 에세이 <나와의 연락>(2017)을 발간했다. 그동안 몇 편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해 얼굴을 알리기도 했고, 틈틈이 모델 일을 하며 카메라 앞에 서기도 했다.

마음이 분주한 수많은 이유 가운데 가장 큰 고민은 결국 ‘나’ 에 대한 것이다. 나에게 온전히 몰입하겠다는 다짐이 자꾸 무너진다. 그럴 때면 하루하루를 모면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어떤 날은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거대한 결혼식 같다. 번잡하고 알맹이는 쏙 빠져 있는 상황, 머물기 싫은, 그렇다고 먼저 떠날 용기도 없는 나날. 수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에 정작 내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누군가로부터 구할 수 없는 스스로의 소식은 화려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 나에게 닿는 일을 좀더 쉽게 만드는 것은 결국 ‘여행’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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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크게 일깨우는 생각은 의외로 일상의 것들이다. 만원 지하철, 옷가게 아르바이트생의 한숨, 너무도 익숙해서 잊었던 당연함 사이에 여행의 기분이 숨어 있다. 골똘히 빠져드는 순간은 모두 여행이다. 매일 보던 것이 달리 보일 때면 유럽보다 멀리 떠나온 기분이 들었다.


- 유지혜, <나와의 연락>(2017, 북노마드) 가운데

 

그가 직접 찍고, 그림으로 남긴 여행의 풍경과 그 기록물


유지혜는 끊임없이 기록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언제 어디서나 노트와 펜을 들고 다니며,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하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사소한 감상은 물론 문득 떠오르는 생각도 메모로 남긴다. 두 권의 책도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책에 담긴 솔직 담백한 기록은 잊고 있던, 혹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감정과 순간에 취하게 한다. 할 수만 있다면 순간 이동이라도 해서 당장 떠나고 싶을 만큼 깊고 섬세하다. 이렇듯 글과 사진, 그림으로 본인의 삶을 부지런히 기록하는 스물여섯, 누구보다 빛나는 일상을 살아가는 유지혜가 어디든 훌쩍 떠나고 싶은 계절인 '봄'을 맞아 여행을 꿈꾸는 마음으로 몇 편의 영상을 보내왔다.

 

Yoo Jihye Says,

“곧 봄이 온다. 마음이 살랑거린다고 해서 매번 떠날 수만은 없기에 마음은 더욱 답답해진다. 특히 나는 봄만 되면 파리 여행이 더욱 간절해진다. 수많은 여행지 중에서도 봄에 가장 어울리는 도시는 파리가 아닐까. 그건 굳이 비싼 레스토랑이나 호텔을 가지 않아도 산책만으로 얻어지는 행복 때문이다. ’여행’ 특유의 낯선 느낌이 일상과 가장 맞닿아 있는, 세계적인 대도시인 동시에 지극히 일상적인 면들이 빛나는 곳. 그래서인지 파리를 가고 싶을 때면 더욱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영상들을 괜히 틀어 두게 된다.”

 

1. Nouvelle Vague ‘Dance With Me’

남자 둘과 여자 하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들이 많은 카페 중앙에서 춤을 춘다. 나는 마치 관객이 된 기분이다. 흑백 필름이라서 그런지 카페를 좋아했던 파리의 예술가들이 떠오른다. 헤밍웨이나 보들레르, 랭보 같은 위대한 작가들은 파리의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시켜두고 사색에 잠기길 즐겼다. 파리에서 ‘카페(Café)’는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장소로 여겨진다고 한다. 무언가가 탄생하는 곳. 그래서인지 카페에 앉아있는 손님 중 하나가 되어 함께 엉덩이를 들썩이고 있다 보면 뭐라도 끄적이고 싶은 심정이 된다. (영상은 장 뤽 고다르 감독의 <국외자들>(1964)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2. Jacquemus 2013 FILM / LE SPORT 90

이 영상은 파리를 배경으로 자끄뮈스(Jacquemus)의 옷을 입은 풋풋한 소녀의 하루를 담았다. ‘천재’라는 말을 흔하게 쓰는 시대가 되었지만, 이 남자만큼은 확실히 천재라고 부르고 싶다. 1990년생인 디자이너 시몽 자크뮈스(Simon Porte Jacquemus)는 열아홉에 자끄뮈스라는 브랜드를 냈고, 몇 년이 지난 오늘날 자끄뮈스는 유행을 선도하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했다. 깨끗한 원색에 도형이 멋대로 들어간 옷은 그가 도시의 열렬한 팬이어서인지 지극히 파리스럽다. 짧은 영상이지만 배경음악, 전화부스, 초록색 벤츠, 부시시한 머리, 헤진 헤드폰, 너무 다소곳하지도, 거칠지도 않은 여자의 생김새 모두가 파리 같다. 다 보고 나면 운동화에 벙벙한 원피스를 입고 신촌이라도 배회하고 싶어진다.

 

3.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The warmest color is blue)>(2013)

가장 좋아하는 영화에서도 손에 꼽는 장면이다. 아델과 엠마의 첫 키스 장면이 설레기도 하지만, 배경이 되는 풍경이 도시 전체가 편안한 거실인 것처럼 아늑해 보인다. 마치 내가 이들 곁을 스치는 행인이 된 기분이다. 하몽이나 치즈, 빵과 같이 간단한 먹을거리를 챙겨 공원으로 가는 것, 그리고 돗자리 없이 아무 잔디에나 털썩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것은 프랑스의 전형적인 휴식 풍경이다. 영화에서 그대로 전해지는 파리의 풍경이 싱그럽다. 화장기 없는 아델의 얼굴은 봄을 맞는 내게 꼭 필요한 표정이다.

 

4. EBS <창의력을 키우는 프랑스 미술교육, 낙서> 1화

‘프랑스다운 것’이라고 한다면 자율적인 교육방식을 빼놓을 수 없다. 프랑스의 미술교육을 다룬 영상에서는 아이들의 다양한 낙서를 볼 수 있다. 자연스럽고 순수한데 예술성까지 묻어 있다. 요즘 우리나라 교육과정은 미술과 체육이 점점 줄어들고 오로지 입시만을 위해 짜여진다고 하여 더욱 부러운 마음으로 본다. 프랑스의 미술교육은 단순히 ‘미래의 예술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감수성과 표현력을 키우기 위함이라고 한다. 백번 옳은 말이다. 말캉말캉한 젤리가 연상되는 자유로움은 ‘잘’하지 않아도 될 때 나온다. 틀에 박히지 않고 뭐든 그냥 해 봐야 한다는 다짐에 딱 맞는 그림들이다. 내게 여러모로 힐링이 되는 다큐멘터리다.

 

여행작가 유지혜는?

1992년생. 스물넷, 그리고 스물여섯에 여행기를 담은 책 <조용한 흥분>(2015)과 <나와의 연락>(2017)을 냈다. 때때로 여행을 다니고 그림을 그리거나 카메라 앞에 서기도 하는 등 재밌다고 여기는 일들을 이어가며 살고 있다.

유지혜가 출연한 선우정아의 ‘봄처녀’ 뮤직비디오 [바로가기]

유지혜가 출연한 Risso의 ‘OMG’ 뮤직비디오 [바로가기]

유지혜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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