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은 2013년 현실정치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돌아왔다. 유시민은 한 인터뷰에서 정치를 떨쳐내는 소감을 전했다. “힘들어도 전망이 보이면 계속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졌어요. 인정하는 거예요.” 이와 같은 패배 소감 뒤에 유시민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겠다고 선언했다. 유시민은 여전히 방송의 시사 비평이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지만, 본업은 작가다. 서점 베스트셀러 상단에는 유시민 작가의 책들이 즐비하다. 본인 표현대로 지식소매상처럼 다채로운 분야를 바삐 오가며 독자를 위한 지식 상품을 만들어낸다. 유시민은 경제학을 전공했으나 그간 써온 책을 보면 역사와 문학에도 조예가 깊다는 걸 알 수 있다. 오늘은 작가 유시민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대표작 세 권을 소개한다.

 

<유럽 도시 기행>

유시민은 스무 살 무렵부터 유럽을 동경했다. 풍요로운 자원과 화창한 날씨 그리고 문명의 빛깔과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한 문화는 그에게 매혹 자체였다. 한국을 어떻게 더 자유롭고 풍요로운 사회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던 유시민은 <유럽 도시 기행> 시리즈를 통해 오래전부터 품어왔던 애정을 과시한다.

여행서로서 <유럽 도시 기행>이 여타 여행책과 다른 점은 교양의 기초라고 부를 수 있는 역사와 문화에 관한 유시민 작가의 폭넓은 지식이다. 여행이란 때론 아무것도 모를 때 더 잘 보이기도 하지만, 역사의 지층이 두꺼운 유럽 땅은 알아야 더 잘 보이게 마련이다. 유시민은 도시에 새겨진 '텍스트(text)'에서 이야기를 뽑아낸다. 텍스트는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될 순 없다. 적극적인 해석 의지를 발휘해야만 ‘콘텍스트(context)’를 짚어낼 수 있다. 도시의 건축물과 공간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생각과 감정, 그들이 처해 있었던 환경을 담고 있기에 해석자의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 검색창을 두드리면 2초 만에 모든 정보를 뽑아볼 수 있는 요즘 시대에서 콘텍스트는 교양의 핵심이다. 유시민은 여행지에서 역사의 씨실과 날실을 엮어내며 건축물이 하나의 이야기로 탄생하는 과정을 좇는다.

<유럽 도시 기행> 1권은 각기 다른 시대에 유럽 문화 수도 역할을 했던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를 담았다. 그들이 이룩한 정치·사회·문화의 성취는 유럽뿐 아니라 인류 문명 전체를 떠받쳤다. 그래서 1권을 다 읽고 나면 근현대사 전반을 아우를 수 있다. 2권은 역사에서 각기 다른 영광과 상처를 지닌 빈, 프라하, 부다페스트, 드레스덴을 탐험했다. 인문학 기행을 떠나기에 부족함이 없는 역사와 건축의 도시들이다. 아테네 플라카지구, 로마의 포로 로마노, 이스탄불 골든 혼, 파리 라탱지구, 빈의 제체시온, 부다페스트 언드라시 거리 등 대다수가 즐겨 찾는 여행지지만, 그간 우리가 보지 못했던 역사적 사실을 발굴하기도 한다. 투어리스트 패스에 적힌 뻔한 글귀와는 거리가 먼 흥미로운 이야기다. 이는 전적으로 유시민의 독서 이력에서 우러나오는 활력이다. 도시에 담긴 삶의 환희와 슬픔, 인간의 숭고함과 비천함, 열정의 아름다움과 욕망의 맹목성은 다 유시민이라는 사람이 읽어온 책과 관련을 맺는다. 지식의 지층이 한 도시와 포개지면서 실제 여행을 압도하는 감흥을 자아낸다.

 

<나의 한국현대사>

유시민은 역사가의 역할에 관해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린다. "역사는 과거를 ‘실제 그러했던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방송뉴스와 신문보도가 현재를 ‘실제 그러한 그대로’ 전해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중략) 역사적 사실 그 자체가 객관적인 진리를 이야기한다고 믿는 것은 순진한 착각일 뿐이다. 사실은 스스로 말하지 못한다. 역사가가 허락할 때만 말을 한다." 유시민 작가는 역사가로서 자신의 역할을 개인적인 관점으로 축소한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정론을 뽑아내는 전달자가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를 오직 자신만의 관점으로 서술한다. 그래서 <나의 한국현대사>는 유시민 작가가 태어난 순간부터 현재까지 살아온 시기만을 다룬다. 굵직굵직한 역사의 사실관계를 다루지만 바라보는 안목은 국가보다는 개인에 가 있다.

유시민 작가는 경제 발전과 민주화의 측면에서 한국 현대사를 돌아봤을 때 가장 뚜렷한 각인을 남긴 지도자로 박정희와 김대중을 꼽는다. 그만큼 한국은 이 두 가지 가치의 충돌과 융합을 통해 지금에 다다랐다고 보는 것이다. 민주화 과정에서 국민연금, 건강보험, 근로기준법 등의 복지를 이뤄냈고, 경제 대국으로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 수준을 이룩했다. 하지만 분단국가로서 북한과 적대적 공존 관계를 종식하지 못했고, 여전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크고 작은 위기를 반복한다. 유시민 작가는 남과 북은 이미 문화와 제도가 너무나 다르기에 독일식 통일방식을 제안하지만, 한편으로는 봉합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갈등을 관리하면서 공존하기를 권한다.

유시민은 6년 만에 <나의 한국현대사> 개정증보판을 냈는데, 이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항상 변화하고 언제든 재판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역사는 흐르는 물과 같고 주류와 비주류가 각축을 벌이며 새 길로 내뻗는 과정에서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케케묵은 역사관이 판을 치는 사회에서 지식인이란 자고로 고쳐 생각할 수 있는 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자세다. 앞으로 5년 10년 후의 한국은 어떤 사건을 떨쳐내고 어떤 사건을 새로 주목할까? 역사가는 혼돈 그 자체인 시간 속에서 어떤 질서를 발견해낼 수 있을까? 유시민의 앞날이 자못 궁금해진다.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작가가 현실정치에서 물러난 후 처음 쓴 에세이다. 자연인으로 살아가고자 다짐한 제 모습을 독자에게 드러내는 의견문이자, 생의 보편적인 고민에 관해 깊이 숙고한 결과를 정리한 자기계발서로도 보인다. 미래를 미래를 맞이하는 데 있어 나만의 삶을 산다는 건 뭘까. 유시민은 먼저 민주화 운동의 기록을 통해 삶에 존엄을 부여하기 위해 분투했던 젊은 날 떠올린다. 우연히 정계에 입문해서 국회의원을 거쳐 참여정부에서 장관을 지내고, 몇 번의 낙선을 거치면서 겪은 성공과 실패를 덤덤히 털어놓는다. 자신을 지배했던 어떤 열망이 점차 사그라듦과 동시에 더 늦기 전에 자유인으로 살고자 하는 희망이 뒤섞여 있다.

이 책은 유시민이 생각하는 삶을 향한 관점이 흥미롭다. 우선 힐링 열풍에 반감을 드러내는 대목에서는 쉬운 위로라는 건 거짓에 불과하며,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정확한 질문 없이 쉬운 답만 얻어내려는 게으름과 고작 나이를 좀 더 먹었다는 이유로 어려운 처지인 사람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는 오만함을 지적한다. 삶의 지름길을 찾고자 할 때 질문은 사라지고 오직 허울뿐인 답만 남는 것이다. 유시민은 그래서 스스로 질문할 줄 아는 태도를 강조한다. 나는 어떤 일을 하며 살고, 뭘 하며 놀 것인가? 어떤 기준으로 삶을 헤쳐 나갈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그래서 <어떻게 살 것인가>는 제목처럼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을 맺는 책이다.

유시민은 마지막으로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는 삶의 가치를 논한다. “인생의 성공은 멀지 있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그것을 남들만큼 잘하고, 그 일을 해서 밥을 먹고살면 최소한 절반은 성공한 인생이다.” 즐거운 일을 직업으로 택해도 오직 생계를 간신히 유지하는 수준의 성공만 가져온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사회적 평판과 월급봉투를 최우선으로 택한 직업을 가진 삶은 불행할까? 이처럼 매일 반복하는 일은 고민의 한복판에 있다. 재능과 열정이 불일치할 때가 더 많고, 재능이 있는 경우에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해 지치기도 한다. "사람은 저마다 옳다고 믿는 삶의 원칙(신념)이 있다. 신념은 때로 삶 자체가 된다”는 유시민의 글과 같이 일할 때도 자시만의 원칙을 정하고 고민 끝에 다다른 결론을 관철하는 경험이 직업의 가치를 좌우한다.

 

Writer

부지런히 보고 영화 리뷰와 서평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