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Invasion of Body Snatchers>(1978)의 도널드 서덜랜드

조던 필 감독의 새 영화 <Nope>(2022)의 흥행으로 코스믹 호러(Cosmic Horror) 장르가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 SF 영화가 제작된 이래 러브크래프트(Lovecraft)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하나의 계보를 이루게 되었는데, 이 가운데 특히 미지의 외계 생명체가 인간의 몸을 숙주삼아 기생하거나, 몸 속에 숨어들어 인간을 통제하여 조종하기도 하고, 인간을 모방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설정이 주류를 형성했다. 작품들은 사람의 신체 훼손을 중요한 모티프로 삼는다는 점에서 잔혹한 고어(Gore) 영화의 특성을 갖기도 하며, 개봉 당시 흥행 결과에 상관없이 컬트 추종자를 만들어 냈다. 이 계보에 속한 대표작 여섯을 꼽아 보았다.

 

<신체 강탈자의 침입>(1956/1978)

잭 피니(Jack Finney)의 SF 소설 <The Body Snatchers>(1954)를 바탕으로, 인간의 몸 속에 외계 생명체가 침투하여 숙주의 몸을 복제한다는 설정의 장르 영화 클래식이다. 로튼토마토 98%의 호평에 제작비의 일곱 배가 넘는 300만 달러의 박스오피스 성적을 거두었다. 그 후 이 소설을 바탕으로 네 편의 리메이크 영화가 더 제작되었는데, 필립 코프먼(Phillip Kaufman)이 감독을 맡고 배우 도널드 서덜랜드가 주연을 맡은 동명의 1978년 영화가 가장 유명하다. 이 작품은 오리지널 영화의 로튼토마토 평가 98%에 못지 않은 92%의 평가를 받았고, 2천 5백만 달러의 박스오피스 수입을 거두었다. 그에 비해 큰 제작비가 투입된 <Body Snatchers>(1993)과 니콜 키드먼이 출연한 <Invasion>(2007)는 흥행에 실패하여 대조를 이루었으며, 최근에는 제작된 <Assimilate>(2019)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잊혔다.

 

<더 씽>(The Thing, 1982)

SF 소설가 존 캠벨(John Campbell)의 단편소설 <Who Goes There?>(1938)을 바탕으로, 남극의 기지에서 사람이나 동물의 몸에 침투하여 그들의 신체를 모방하고 변형하는 공포의 외계 생명체를 그렸다. 원래 제목 <The Thing from Another World>(1951)의 흑백 영화로 먼저 제작된 바 있으며, 1970년대 중반부터 리메이크 제작에 착수하여 수많은 감독의 손을 거친 끝에 공포영화의 거장 존 카펜터(John Carpenter) 감독이 완성하였다. 당초 괴물 특수효과에 20만 달러가 소요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결과적으로 150만 달러로 늘어나 영화사를 곤혹스럽게 했다. 평론가들에게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고 흥행도 부진을 면치 못했으나, 홈비디오 시장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뒤늦게 걸작으로 평가받아 컬트 영화가 되었다. 2011년에 동명의 리메이크 영화가 나왔으나, 흥행에 참패한 바 있다.

영화 <The Thing>(1982)의 유명한 괴생명체 출현 장면

 

<이벤트 호라이즌>(Event Horizon, 1997)

영화가 제작된 해로부터 50년 후인 2047년의 미래를 배경으로 실종 우주선 ‘이벤트 호라이즌’호를 구조하러 간 대원들이 우주의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사악한 공간과 존재를 맞닥뜨린다는 이야기다. ‘이벤트 호라이즌’이라는 용어는 원래 블랙홀의 경계면을 이르는데, 영화에서는 차원을 건너 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탐사 우주선의 이름으로 붙여졌다. 원래 130분에 이르는 긴 영화였고 잔인한 고어(Gore) 장면을 많이 포함하였으나, 영화사 측이 지나치게 잔인한 장면을 포함하여 30분이 넘는 분량을 가위질했다. 개봉 결과 박스오피스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였으나 홈비디오 시장에서 입소문이 퍼지면서 뒤늦게 컬트 영화로 인기를 누렸다. 영화사는 뒤늦게 확장판을 출시하려고 했으나, 원본이 분실된 사실을 알고 아쉬워했다. 현재 아마존 스튜디오가 시리즈 형식의 리메이크를 개발 중이다.

 

<패컬티>(Faculty, 1998)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B급 슬래셔 영화 <스크림>(1996)의 흥행에 고무된 미라맥스 영화사가 급하게 틴에이저물과 호러 장르가 뒤섞인 시나리오를 수배하여 제작한 영화로, 인간의 뇌에 침투하여 그들을 조종하는 기생 외계인이 고등학교 교직원들(Faculty)의 몸을 훔쳐 학교를 통제한다는 설정이다. 학교와 교사들을 부패한 악인으로 묘사하여 비교육적이라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마침 영화 <황혼에서 새벽까지>(1998)를 마무리하고 스케줄이 비어 있던 멕시코 출신 영화감독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감독을 맡고, 일라이저 우드, 조쉬 하트넷, 래퍼 어셔 등 당시에는 신인급에 불과했던 스타들이 대거 출연했다. 박스오피스에서 6,3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선전했으며, 1990년대를 대표하는 틴에이저 호러 필름으로 컬트 영화의 하나로 추앙되었다.

영화 <패컬티>의 한 장면

 

<바이러스>(Virus, 1999)

영화 <어비스>(1989)에서 오스카를 수상한 비주얼 전문가 존 브루노(John Bruno)가 동명의 코믹 만화를 바탕으로 감독을 맡은 작품으로, 외계로부터 들어온 의문의 전파신호가 러시아 선박으로 침투하여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배를 장악한다는 설정에 기반하였다. 인간의 신체와 기계장치를 합성한 로봇 생명체를 만들어 인간을 공격하는 등 고어 비주얼을 제공했지만, 제작비 7천 5백만 달러의 절반도 건지지 못하면서 흥행에서 참패하였다. <할로윈>(1978), <더 포그>(1980) 등 호러 영화의 히로인 이미지를 굳힌 제이미 리 커티스(Jamie Lee Curtis)가 주연을 맡았지만 소용없었다. 하지만 동일한 제목의 프랜차이즈 비디오 게임이 인기를 얻었고 원작 만화가 다시 출판되면서 뒤늦게 비디오 시장에서 인기를 회복하였고, SF 호러의 컬트작으로 추앙되기도 했다.

 

<슬리더>(Slither, 2006)

우주에서 날아온 운석을 통하여 지구로 떨어진 외계 기생충이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 신체와 정신을 변형시킨다는 설정으로, B급 감성의 블랙 코미디 영화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수이사이드 스쿼드> 등 다크 코미디 슈퍼히어로 영화로 유명해진 제임스 건(James Gunn) 감독의 초기 작품에 속한다. 로튼토마토 87%의 괜찮은 평가를 받았으나 박스오피스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였고, B급 감성의 좀비 영화 <Night of the Creeps>(1986)나 더욱 거슬러 올라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Shivers>(1975)와 설정과 내용이 비슷하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하지만 컬트 팬들도 상당히 존재하여 최근 2017년에는 수집가 대상으로 정교한 아트웍 케이스의 블루레이 디스크가 출시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