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든 달릴 수 있는 곳만 있다면 운동화에 가벼운 옷차림만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와 할 수 있는 것이 달리기다. 자기관리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대두되면서 현대인들은 돈을 내서라도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러닝 크루에서 무리를 지어 달리며 건강한 취미를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특정한 도구와 장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독보적인 장점이 때론 달리기를 하지 않는 이들이 결정적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지점이 되기도 한다. 어째서 반복되는 뜀박질이 즐거울 수 있는지, 기술도 규칙도 없는 단순한 운동을 왜 하는가에 대한 궁극적인 물음은, 역시나 달려보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여기에 각자의 시선에서 달리기를 이야기하는 책들을 모았다. 소설가, 회사원, 심리학 전문가가 말하는 달리기는 다각도에서 감상한 조각상처럼 다양하면서도 흥미롭다.

 

1.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긴 제목은 직관적이면서도 과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호기심을 자극한다. 달리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씩은 눈길이 닿았을 책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이 경애하는 작가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ver)의 <사랑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을 참조해 만든 제목으로, 일본에서 2007년에 발행한 이후 26개국에서 번역되었고 15년이 넘도록 꾸준히 재판되며 달리기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매체에서 그리는 소설가로서의 삶은, 창의력을 요구하는 예술의 영역이라는 관점에서 간헐적인 영감과 자유로운 환경이 뒤엉켜 흘러가는 이미지와 맞닿아 있다. 실제로 창조의 과정이 피상적인 직업적 환상에 어느 정도 호응하는 부분도 있지만, 많은 수의 창작자들이 삶보단 창작에 끌려가며 균형을 찾지 못하고 잦은 괴로움에 시달리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하루키는 반대로 ‘성실’한 하루를 소화해야 무언가를 만들 힘과 기반을 가지는 것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작가 본인이 ‘달리기라는 행위를 축으로 한 일종의 회고록’으로 보아도 좋다고 표현한 만큼, 소설가가 된 계기부터 하루키가 러너로서 살아오며 느낀 통찰과 흥미로운 경험담을 생생히 기록했으며, 글을 쓰는 삶과 달리기의 연결 고리를 특유의 재치 있는 문장으로 담아냈다.

하루키는 오랜 시간 경영하던 재즈 카페이자 바(Bar)를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전업 소설가의 길을 걷기로 한다. 전의 생활보다 더욱 모호해진 일상의 경계를 보며 하루의 틀을 잡아줄 무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때 결심한 것이 달리기였다. 장거리 달리기처럼 오랫동안 글을 쓰며 먹고살기 위해선 페이스 조절이 필수였기 때문에, 매일 정해진 시간에 나와 달리는 것은 직업적 소설가로서의 삶 전체를 영위하기 위해 뿌리를 내리는 행위와도 같았다. 그렇게 시작된 하루의 작은 틈들은 나날이 쌓여 100킬로 울트라 마라톤과 아이언맨 트라이애슬론을 분기별로 참가할 만큼의 성취와 즐거움을 안겨주기도 했다.

새 소설을 쓰는 동안 틈틈이 번역 일을 하고, 교수직으로 해외 장기 체류를 하고, 여행을 위해 여러 번 거처를 옮기는 동안에도 달리기는 계속 이어진다. 하나만 해도 벅찬 일들을 병행하면서 꾸준히 달리기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연하게도 달리러 나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설가도, 번역가도, 교수도, 러너도 갑자기 얻어진 경품 같은 타이틀이 아닌, 촘촘하게 얽힌 매일을 이어가며 일궈낸 흔적 덕분이라는 것을, 기본적으로 타고난 기질이라는 것이 존재해도 성실은 하루하루 만들어가는 것에 더 가깝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준다. 밖으로 나와 달린 시간이 소설로, 행복으로, 활력으로 치환되어 하루키에게 돌아오는 과정을 지켜보는 즐거움과 스스로를 연소하며 얻는 기쁨을 함께 달리며 느껴보길 바란다.

“매일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생명선과 같은 것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인해 건너뛰거나 그만둘 수는 없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에서 발췌

 

2. 김상민 <아무튼, 달리기>

여행기 <교토의 밤>(2018)과 에세이 <마마 돈워리>(2019) 이후 아무튼 시리즈에 합류하여 <아무튼, 달리기>(2020)를 쓴 김상민 작가의 달리기 이야기. 2017년 파리를 시작으로 포틀랜드, 베를린, 시카고, 오사카, 서울에서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하며 작가에게 또 다른 인생의 기폭제가 되어준 달리기의 매력을 한 권에 담았다.

낮에는 브랜드 마케터로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쓴다는 저자 소개처럼, 반복되는 하루가 익숙한 회사원의 하루에 어느 날 느닷없이 시작된 달리기는 꽤 변칙적인 이벤트처럼 보인다. 첫 출발은 허술한 차림과 엉성한 폼으로 시작했지만, 평범한 하루의 시작과 끝이 달리기로 차곡히 확장되는 러너로서의 기록은 작가가 자신 혹은 달리기와 진지하게 대화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말하는 ‘러너스 블루’와 김상민의 ‘런태기’는 공통으로 그들을 멈추게 만든 무언가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거대한 목표를 마주하다 찾아온 울적함 이상의 공허함은 당분간 뛰고 싶지 않은 묘한 좌절을 주지만, 두 사람 모두 윤곽 없는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파고들기보다 기다려보는 것을 권한다. 그것이 정답이어서도 아니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어서도 아니다. 그저 달리면서 배운 대로, 시간이 쌓아주는 것을 기다리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일상에 찾아오는 여러 가지 변수는 언제나 돌발적이다. 갑자기 비가 내려서, 감기 기운이 생겨서, 일의 연장으로 달리기를 미루게 되는 이유들이 하나씩 나타날 때, 진정으로 다음을 위한 작은 쉼표와 미루고 싶은 핑계는 한 끗 차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욕심부리지 않고, 무리하지 않는 것이 오래 달리기를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것 또한 두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거창한 다짐은 필요 없다. 달리면 누구라도 오늘부터 러너라는 이름으로 달릴 수 있으며, 이 공평한 정체성은 결국 달리는 모두에게 무장된 나날을 선물해준다. <아무튼, 달리기>에는 보통의 일상을 보내던 한 사람이 달리기를 하게 되면서, 달리기에 대한 마음이 어떤 모양의 진심으로 변모해가는지 함께 공감할 문장들이 가득하다.

“처음부터 잘 달리는 사람은 없다. 출발선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작이 미숙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동시에 잘 달리지 못한다고 해서 그 순간들이 불행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진정한 행복은 무언가를 잘해서가 아닌, 더 나은 내 모습을 꿈꿀 수 있을 때 피어난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매일 밤 미숙함에 발목 잡혔지만 바닥을 뒹굴면서도 시선은 더 나아질 내일을 향했다. 그 자체만으로도 달리는 명분은 충분했다. 허술하지만 행복했다.” - <아무튼, 달리기> 중에서 발췌

 

3.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외 <달리기, 몰입의 즐거움>

긍정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완성한 몰입에 관한 책이다. 달리기에 대한 에세이를 즐겁게 읽었다면, 혹은 슬럼프가 왔거나 실제로 달리기를 하는 동안 신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싶다면 참고가 될 수 있다. 달리기를 주제로 몰입 현상에 대한 다양한 사례와 연구 결과를 모아 심리적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제시하는데, 육상 선수들의 인터뷰를 통해 실제 달리기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노하우는 물론, 스스로 몰입에 취약한 편인지, 유리한 성향인지를 테스트해 볼 수 있다.

일정 시간 이상 달리게 되면 계속 달리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러닝 하이(running high)’가 발생하는데, 마약에 버금가는 엔도르핀 수치가 폭발한다. 러닝 하이를 경험해 본 사람들은 더이상 외부의 자극 없이도 스스로 달리고 싶은 동기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적절한 엔도르핀 수치는 활력 있는 일상을 유지하는 데에 필수 요소이기에 달리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더 쉽게 하루를 소화할 수 있다.

© jack atkinson

매일 몇 시간씩 하루의 일부분을 떼어 낸 조각이 쌓고 쌓여서 무너뜨리지 못할 정도의 단단함이 되었을 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올림픽 리스트의 메달처럼 자연스레 따라온다. 달리는 동안에는 달리기 이외의 다른 일을 할 수 없고,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든 생각할 수 있다. 멈추면 당장 주저앉아 숨을 고를 만큼 심장이 뛰지만 이러한 육체의 소란스러움과 아무에게도 구애받지 않는 고요한 순간은 달리는 동안 계속해서 공존한다. 가장 분주한 시간 속에서 느끼는 집중력과 해방감, 자유로움은 오로지 혼자서 만끽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다. 달리기 몰입을 통해 러닝 하이를 넘어 본인만의 고유한 행복도 함께 찾아내길 바란다.

 

Writer

그림으로 숨 쉬고 맛있는 음악을 찾아 먹는 디자이너입니다. 작품보다 액자, 메인보다 B컷, 본편보다는 메이킹 필름에 열광합니다. 환호 섞인 풍경을 좋아해 항상 공연장 마지막 열에 서며, 동경하는 것들에게서 받는 주체 못 할 무언가를 환기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