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고유한 특질이라면 뭐가 있을까? 훤칠한 키, 중후한 목소리, 그의 향수 냄새. 어쩌면 조금은 세속적인 것이 될 수도 있겠다. 직업과 사는 동네, 옷 브랜드와 성적인 기호. 우리는 무수한 식별자를 통해 누군가를 구별한다. 그만의 무언가를 발견해서 사랑에 빠지기도 하며 시간이 지난 후에도 어슴푸레 그 특질을 기억해낸다. 한 사람의 고유한 인장은 그렇게 살아남아 존재의 정체를 밝힌다. 난 개인적으로 누군가를 예술 취향을 감시할 때 그가 남달라 보인다. 좋아하는 화가, 책장에 꽂힌 서적, 좋아하는 글귀와 그가 쓴 문장이 도드라져 보인다. 예술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고 애를 쓴다는 점에서 미처 느끼기 어려운 사상과 감정까지 다룬다. 별 쓸모가 없다는 점에서 실존을 넘어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떠올릴 수 있다. 한 인간의 특질로 보기에 더없이 적절한 식별자다. 그래서 난 종종 누군가가 효용이 없는 예술에 탐닉할 때 어떤 인상이나 느낌을 받는다. 예술에 관한 책을 고를 때도 작가의 취향을 민감하게 의식하는 편이다. 오늘은 남다른 예술 취향을 전파하는 데 힘을 쏟는 작가들을 소개한다.

이동진 <밤은 책이다>

이동진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영화평론가지만, 유명한 장서가이면서 다방면에 두루 천착하는 지식인이다. 그는 유튜브와 책을 통해 널리 교양을 전파하는데 놀라운 솜씨를 보여주는데, 자신을 지식소매상으로 칭하는 유시민처럼, 이동진 역시 문화예술 분야에 있어서 '교양소매상'으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 <밤은 책이다>는 이동진 작가가 라디오에 소개한 내용을 편집하여 출간한 책으로,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 신경숙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정재승의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김승옥의 <무진기행> 등 77권의 책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손꼽은 책들에 대한 애정이 상당하며, 책에서 발췌한 부분에 덧붙이는 에세이 형식의 글 역시 시종 흥미로워서 또 다른 책으로의 탐험을 부추긴다.

​책의 제목처럼 이동진 작가는 대부분의 독서를 늦은 밤에 하고, 아침에 잠자리에 드는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한다. “말하자면 밤은 치열한 다큐멘터리가 끝나고 부드러운 동화가 시작되는 시간일 거예요. 괘종시계가 열두 번을 치고 나면 저마다의 가슴속에 숨어 있던 소년과 소녀가 말을 걸어오기 시작하지요.” 이런 이유 때문인지 책을 읽다 보면 인문, 과학 교양서, 예술서까지 그 종류도 다양한 책들이 밤의 정서에 녹아들어 예기치 못한 낭만을 자아내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밤은 책이다>는 독서 후의 감상이 얼마나 다채로울 수 있는지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교훈을 뽑아내고 주제를 요약하는 방식에 익숙한 요즘 독자들은 기어코 독서가 내게 남긴 것을 찾아내려고 애쓰지만, 이동진은 독서라는 건 과정에 미덕이 있고, 전혀 중요해 보이지 않는 문장도 누군가에게는 각별해 보일 수 있다는 걸 강조한다. “세상의 가치 있는 것들은 대부분 결과나 목표가 아니라 그 과정에 그 중요성이 놓여 있습니다.” 스쳐 지나칠 만한 구절에 밑줄을 치고, 개인적인 경험을 엮어내서 사유를 확장하는 방식을 택한다. 독서가 지극히 사적인 행위라면, 그건 한 가지 책을 읽고도 누구나 전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동진은 책을 소개하는 책을 통해 독서가 지닌 본연의 재미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책을 사랑한다면 책에 관련된 모든 것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라고 믿는 이동진은 서점에서 책을 주문하고 서가에 서서 책을 고르고 책장을 넘기는 촉감과 냄새 그리고 책을 다 읽은 후에 살아가는 일상까지 독서의 과정으로 여긴다. 책 읽기가 습관을 넘어 삶과 아주 밀접해진 저자는 결국 좋은 삶이라는 것은 습관이 행복한 삶이라고 말하고, 관계 역시 좋은 습관을 공유할 때 오래갈 수 있다고 여긴다. “자신이 오래전부터 걸어오던 길이 잘못된 행로라는 걸 깨닫고도, 사람들은 쉽사리 그 길에서 벗어나거나 뒤돌아서지 못합니다. 그건 바로 삶의 관성, 즉 습관 때문입니다.” 그에게 있어 독서는 여가이자 지적 허영의 활로이자 가장 반기는 삶의 습성이다. 사람이 일정 나이를 넘어서면 삶의 방식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말처럼, 독서는 굳은살처럼 내 몸에 박혀도 기꺼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취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올리비아 랭 <외로운 도시>

<외로운 도시>는 뉴욕에 살았던 예술가의 고독을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네 명의 현대 미국 예술가가 눈에 띈다. 고독한 현대인을 가장 잘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 팝아트의 선구자로서 큰 명성을 누렸지만 실은 기계 뒤에서 외로움에 저항했던 미술가 앤디 워홀, 죽을 때까지 혼자 사는 삶을 택했던 화가 헨리 다거, 에이즈 운동가로도 유명했던 행위예술가 데이비드 워나로위츠가 있다. 작가 올리비아 랭은 이들이 남긴 작품과 기록 그리고 사회적인 맥락 안에서 그들이 처했던 입장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결국 책을 다 읽고 나면 도심에 도사린 고독이라는 것이 관계의 가능성을 내포하기에 어쩌면 삶을 추동하는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는 역설을 밝혀낸다.

랭은 고독을 배고픔에 빗대어 말한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잔칫상에 앉아 있는데 자기만 굶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런 소외감은 시시때때로 출몰해서 사람을 사각지대에 몰아넣는다. 왁자지껄한 자리에서 벗어나 홀로 집에 가서 컴컴한 방을 들어갈 때 자문해본다. 나는 외로움에 의해 고통받고 있는 걸까? 올리비아 랭은 “보통 외롭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 관계 속에서 이를 치유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외로움에는 특정한 원인이랄 것이 없는 자연스러운 상태임을 강조한다. 예술가들 역시 외로움을 창작의 원천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어두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올리비아 랭은 책의 말미에 “고독은 사적인 것이면서도 정치적인 것이다. 고독은 집단적이다.”이라고 적었다. 고독이라는 섬에 사는 개인이 다 함께 이 도시에 산다는 것을 지각할 때 고독은 단순히 고통이 아닌, 연대의 가능성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책의 후반부에 자리한 사이버 공간에서의 고독이다. 안전하게 뒤로 물러서서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줍고 용기를 내지 못해서 외로운 이들에게 대체 수단으로 주목받는다.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온라인 게임을 통한 소통은 쉽게 무시하기 마련이지만, 방에서 홀로 버텨나가는 단독자에게 손쉽게 손을 뻗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영화 <그녀>가 보여주는 육체성이 결여한 사랑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고독한 이들이 스스로 구원할 수 있는 동아줄과 같다. 도시에서 홀로 극장과 서점을 찾고, 미술관과 체육관에서 자신을 추켜세우는 이들을 쉽게 마주할 수 있다. 고독을 불행의 원천으로 여기기보단 멋스럽게 문화를 즐길 기회로 여기는 것이다. 예술이 가진 상상력을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친밀함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면, 외로움을 어쩔 수 없이 함유할 수밖에 없는 도시의 삶이 조금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 황현산 선생님이 타계한 지 4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가 펴낸 책은 여전히 서점 스테디셀러 서가를 장식하고 있다. 신영복, 이어령 작가처럼 한 시대를 빛낸 지식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황현산 선생님에게 가장 애정을 품고 있다. 이유는 그의 책 중에서 <밤이 선생이다>를 각별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이 책은 평생 시를 사랑했던 문학평론가인 황현산 선생의 사적인 취향이 가득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독자들에게 난해한 불문학을 소개하는 학자이자 번역가로 알려진 황현산은 자신의 첫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를 다소 늦은 나이에 펴냈다. 글에 따라서는 1980년에 쓴 글까지 있으니 그의 인생을 미세하게나마 차근차근 엿볼 기회를 준다. 그는 사회적인 사건, 문단의 일화, 동료 학자와의 대화, 과거의 사건이 남긴 의미에 대해 곱씹는 글을 쓰는데, 이것은 문학과는 먼 얘기지만 그렇다고 문학과 다르다고 할 수도 없는 내용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 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나에 따라 가늠될 것만 같다.” 사안마다 어떤 감수성의 질을 발휘하느냐가 핵심이다. 나와 먼 얘기인 것처럼 보이는 사건도 내 눈앞의 일로 가져와 돌보고 살필 여력이 문학적인 것의 요체다.

황현산은 평론가로 활동하는 내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시인을 발굴해내고 작품을 조명하는 작업을 소명으로 여겨왔는데, 이 산문들에서도 그는 대중의 인식과 다른 결을 보여준다. '김기덕 감독의 한'이라는 글에서 황현산은 "한국 사회에서 변변치 못한 학력으로 일급의 영화감독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를 되새길만한 가치가 있는 이로 여기며, "저 자신의 야만성을 다 끄집어내어 우리가 눈 감은 채 떠받들고 있는 이 삶의 밑바닥을 휘저어 고발"하려는 태도를 높이 평가한다. 우리 사회 안에 웅크리고 앉은 괴물을 보여줄 수 있는 상상력의 튼튼함을 잔인하고 보기 싫다는 이유로 비껴가서는 안 된다고 얘기한다. 현재 김기덕 감독은 수많은 논란거리를 일으키고 국외에서 작고한 상태지만, 그의 작품이 한국 영화계에 끼친 영향력은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생전에 남긴 영향력을 한국 영화계와 대중은 아직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황현산은 어쩌면 우리가 불편하고 버거워서 손사래 치는 그런 어두운 단면도 무릅쓰고 얘기해 보려는 자세가 그가 평생을 다뤄온 문학의 가치라고 여기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메인 이미지 © Tim Eitel ‘Observer’,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표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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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보고 영화 리뷰와 서평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