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LP(Long Play) 음반이 실용화되자 더욱 넓어진 음반 커버에 디자인이 경쟁 요소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이를 간파한 음반사는 블루노트 레코드였다. 블루노트는 에스콰이어 매거진에서 일하던 레이드 마일스(Reid Miles)을 고용하여 사진과 그래픽을 결합한 독특한 앨범 디자인을 선보였고, 당시 무명이던 앤디 워홀의 독창적인 그림과 디자인을 채택하기도 하였다. 이에 비해, 1887년에 창립한 메이저 음반사로서 가장 먼저 LP 음반의 시대를 연 컬럼비아 레코드는 1954년에 과감하고 현대적인 ‘Walking Eye’ 로고를 도입하면서 디자인 혁신의 시동을 걸었다. 이 로고를 디자인한 인물이 그 해 고용된 그래픽 디자이너 닐 후지타(S. Neil Fujita)였다.

찰스 밍거스 <Mingus Ah Um>(1959)에 수록한 명곡 ‘Goodbye Pork Pie Hat’

당시 컬럼비아 레코드의 모회사 CBS의 아트 디렉터 윌리엄 골든(William Golden)은 재즈 음반으로 확장하던 컬럼비아 레코드의 디자인 경쟁력을 위해 광고회사에서 일하던 젊은 닐 후지타의 잠재력을 알아보았다. 그는 기존 디자인과는 차별화한 아방가르드 스타일의 디자인으로 아트 디렉터스 클럽의 금메달을 수여하며 디자인계에서 보폭을 넓히고 있었다. 그는 10여 년간 컬럼비아의 아트 디렉터로 재직하며 약 50여 장의 앨범 디자인을 남겼는데, 화가였던 그는 자신이 그린 추상화를 앨범 전면에 남기기도 했다. 1959년에 발매한 재즈 명반 두 장이 대표적인데, 바로 찰스 밍거스의 <Mingus Ah Um>과 데이브 브루벡 쿼텟의 <Time Out>이다. 재즈 팬이라면 그의 독보적이며 난해한 그림에 익숙할 것이나, ‘닐 후지타’란 이름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데이브 브루벡 쿼텟 <Time Out>(1959)의 ‘Kathy’s Waltz’

닐 후지타는 미국으로 이민하여 하와이에 정착한 일본계 이민 2세대다. 대부분 일본계 미국인들이 경험했듯이, 그 역시 제2차 세계대전 중 별도의 캠프에 억류되었다가 후일 유럽의 실전에 참전할 수 있었고 종전 무렵에는 오키나와에서 통역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로스앤젤레스의 미술학교 졸업 후 광고회사를 다녔고, 컬럼비아 레코드 디자인 부서의 책임자로 10여 년을 다닌 후 자신의 디자인 회사 후지타 디자인(Fujita Design)을 설립하였다. 그의 회사는 각종 서적의 표지 디자인으로 유명세를 떨쳤는데, 마리오 푸조의 <The Godfather>(대부)가 대표적이다. 노후에는 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가르쳤으며, 2010년 89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영상 <Neil Fujita: The Man Behind the Look and Feel of Jazz>

최근 바이닐 음반이 다시 인기 상승하면서 앨범의 디자인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재즈 팬이라면 블루노트 레코드의 음반에 남은 앤디 워홀의 자취와 함께, 컬럼비아 레코드의 음반에 남은 닐 후지타의 추상화에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특히 1959년의 재즈 명반 두 장은 그 속에 담긴 음악적 가치 뿐만 아니라, 표지 그림의 독창성 때문에 바이닐 음반으로 소장할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그가 앨범 표지로 남긴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앨범 표지에 남은 닐 후지타의 추상화 작품들

 

메인 이미지 데이브 브루벡 쿼텟 <Time Out> 커버 아트 © 닐 후지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