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70년이 넘는 최고 재위 기록을 남기고 9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아버지 조지 6세가 전쟁 직후 1952년에 서거하자 불과 25세의 나이에 영국과 30여 영연방 국가들의 왕위에 올랐으며, 이로부터 즉위 70년을 맞은 올해 눈을 감은 것이다. 엘리자베스 2세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주연이나 조연으로 등장하기도 했는데, 그 중에서도 그의 생애와 그와 관련된 사건들을 반추할 수 있는 네 편의 영화를 골라 보았다.

 

<킹스 스피치>(2010)

이 영화는 그의 아버지 조지 6세의 이야기다. 정치에 무관심한 바람둥이 형을 대신해 왕위에 오른 조지 6세가 말더듬이 증세를 치료하기 위해 고용한 치료사 라이오넬 로그(Lionel Logue)와 평범하지 않은 우정을 모티프로 한 영화로, 박스오피스 4억 7,000만 달러를 벌어들인 흥행작이다. 독립영화 급의 제작비 1,500만 달러를 들여 반드시 봐야 할 역대 최고 독립영화의 하나로 손꼽히며, 아카데미 4관왕, 영국 아카데미상 7관왕의 금자탑을 세웠다. 당시 어린 공주였던 엘리자베스 2세로는 아역 배우 프레야 윌슨(Freya Wilson)의 연기로 잠시 등장하였다.

 

<어 로얄 나이트 아웃>(2015)

1945년 5월 8일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일(VE Day). 자신의 대중적 인기도와 종전 연설에 대한 국민적 반응이 궁금했던 조지 6세가 엘리자베스 공주와 마가렛 공주를 젊은 장교들과 함께 버킹엄 궁 밖으로 내보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한 영화다. 당시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공주 두 명과 승전의 기쁨에 들떠 있던 런던의 유흥가를 배경으로 재미있게 그렸다. 로튼토마토 평점은 74%로 괜찮았으나 흥행 성적은 좋지 않았다. 캐나다 배우 사라 가돈(Sarah Gadon)이 19세이던 엘리자베스 2세의 공주 시절을 연기했고, 영국 배우 벨 파울리(Bel Powley)가 네 살 아래인 마가렛 공주를 연기하였다. 마가렛 공주는 2002년 71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더 퀸>(2006)

엘리자베스 2세는 재위 기간 중 실권 없는 군주로서 영국 연방을 대표하는 여왕의 의무에 최선을 다했으나, 자식들의 불행한 가정사로 인해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맏아들 찰스 3세 부인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결혼 생활 파경 후 파파라치에게 쫓기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1997년 당시를 배경으로 왕세자비와 사이가 좋지 않던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해 다룬 영화 <더 퀸>은 비평가들의 평가와 흥행 실적에서 모두 성공했다. 특히 여왕을 연기한 배우 헬렌 미렌(Helen Mirren)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며 아카데미상, 영국 아카데미상(BAFTA), 골든글러브, 전미 비평가협회상 등 그해 주요 여우주연상을 모두 거머쥐었다.

 

<프린스 코기>(The Queen’s Corgi, 2019)

엘리자베스 여왕은 어린 시절부터 각별한 애견으로 소문났는데, 특히 웰시코기를 좋아하여 평생에 걸쳐 30여 마리를 키우면서 공식석상에 자주 동반했다. 언론에서는 이들을 두고 ‘로열 코기’(Royal Corgi)라 부르기도 했는데, 이들을 주연으로 내세운 벨기에 장편 애니메이션 <The Queen’s Corgi>가 제작되었다. 하지만 영국의 주요 언론들은 이 영화가 영국 왕실에 대한 편견을 주거나 아동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며 신랄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로튼토마토는 이례적으로 이 영화에 대해 0%의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