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에서 ‘악당’역을 주로 맡아왔지만, 과거사를 철저히 반성하는 사람들의 나라. 한국과 마찬가지로 분단의 아픔을 겪었지만, 스스로 장벽을 무너뜨리는 기적을 이룬 나라. 무뚝뚝하고 차가워 보이는 민족성 탓에 예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영화사에서 그 어떤 국가보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나라. 얼핏 복잡다단하게 뒤엉킨 듯 보이는 독일과 독일 사람들의 ‘진심’을 알고 싶다면, 지금부터 소개하는 영화들을 보자.

 

<토니 에드만>

Tony Erdmann ㅣ 2016 ㅣ 감독 마렌 아데 ㅣ 출연 산드라 휠러, 페테르 시모니슈에크

2017년 3월에 개봉한 <토니 에드만>은 ‘누가 보지만 않으면 갖다 버리고 싶은’ 괴짜 아버지가 일에만 열중하며 살아가는 워커홀릭 딸을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코미디 드라마이다. 직전 칸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 수상이 가장 유력하게 점쳐졌던 영화로, 수상은 불발되었지만 <카이에 뒤 시네마>, <사이트 앤드 사운드> 같은 해외 주요 영화 매체들이 ‘2016년 최고의 영화 1위’로 선정하며 그 아쉬움을 달랬다. 영화는 노년의 아버지가 아주 별난 인생 코치 ‘토니’(페테르 시모니슈에크)를 자처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커리어우먼 딸 ‘이네스’(산드라 휠러)의 일상을 뒤집어 놓는 코미디다. 출세와 성공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딸에겐 여지없는 민폐 캐릭터지만, 토니의 황당한 행동은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다소 긴 러닝타임에도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당시 객석에서 내내 웃음이 터져 나왔다고 하니, 지레 겁먹지 말자. 8년 만에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독일영화로 인구에 회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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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

The Lives Of Others ㅣ 2006 ㅣ 감독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ㅣ 출연 울리히 뮤흐, 마르티나 게덱, 세바스티안 코치

냉전 시대,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었던 독일. 이 영화는 독일 통일 5년 전, 9만 명이 넘는 비밀경찰과 약 17만 명의 정보원이 활동했던 1984년 동독을 배경으로 도청 전문가 ‘비즐러’(울리히 뮈헤)의 삶을 따라간다. 그는 잔인하리만치 빈틈없는 실력을 갖춘 비밀경찰로, 반체제인사를 추적하여 잡아들이며 국가와 자신의 신념에 봉사한다. 어느 날 극장을 찾은 비즐러는 서방에도 잘 알려진 작가 ‘게오르그 드라이만’(세바스티안 코치)과 그의 연인이자 유명 배우인 ‘크리스타-마리아 질란트’(마르티나 게덱)을 자신의 다음 표적으로 삼는다. 그러나 도청을 할수록 그들은 ‘깨끗’하기만 하고, 이 임무가 권력의 음모에 의해 지시되었음을 눈치채게 된다. 설상가상, 고독한 일상에 익숙했던 그는 생의 활기가 넘치는 두 연인의 삶에 매혹당한다. 혼자만 느끼는 유대감이고, 밝힐 수도 없는 연대감이지만 비즐라는 그들의 친구가 되기로 결심하고 또 다른 싸움을 시작한다. 동독 시절의 암울한 분위기와 신념을 품은 두 사람의 우정이 오랜 여운을 주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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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레닌>

Good Bye, Lenin! ㅣ 2003 ㅣ 감독 볼프강 벡커 ㅣ 출연 다니엘 브륄, 카트린 사스

열혈 공산당원인 엄마 ‘크리스티아네’(카트린 사스)는 아들 ‘알렉스’(다니엘 브륄)가 베를린 장벽 철거를 주장하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끌려가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8개월이 지난 후 통일을 맞은 독일에서 의식을 되찾게 된다. 급격한 시대적 변화에 또다시 엄마가 쓰러질까 봐 걱정된 알렉스는 아직 동독이 유지되는 양 연극을 시작한다. 이때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이는 친구 ‘데니스’다. 그는 뉴스를 편집해 콜라는 동독이 발명한 것처럼, 바뀌는 거리 풍경은 서독을 탈출한 자본주의 난민에 의한 것인 양 꾸민다. 씁쓸함과 따스함이 공존하는 이 코미디 드라마에서 엄마 역할을 맡은 카트린 사스는 실제로 동독의 인기 배우였다. 아들 역의 다니엘 브륄은 현재 독일을 대표하는 남자 배우로 성장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에서 나치의 영웅으로 추대된 명사수 프레데릭 졸리 이병을 맡아 국내 관객들에게도 친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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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킹 온 헤븐스 도어>

Knockin’ On Heaven’s Door ㅣ 1997 ㅣ 감독 토머스 얀 ㅣ 출연 틸 슈바이거, 잔 조세프 리퍼스

데킬라는 인생에 해로울까? 이 영화를 본 당신이라면, 그리 나쁘다고만 말할 순 없을 것이다. 말 그대로 ‘동병상련’, 똑같이 시한부 인생인 두 남자 ‘마틴’(틸 슈바이거)과 ‘루디’(잔 조세프 리퍼스)는 병원 주방에서 데킬라 한 병을 훔쳐 마신다. 술이 오를 무렵, 루디는 평생 단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하고, 마틴은 죽기 전에 바다를 꼭 봐야만 한다고 말한다. 천국에선 별다른 얘깃거리가 없어서 바다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데, 이대로 죽으면 할 말이 없다는 게 그의 논리. 그렇게 생애 마지막 여행을 시작한 두 남자는 바다에 가기 위해 차를 훔치는데, 마침 그 차는 검은돈 100만 마르크가 들어있는 갱단의 것이다. 잃을 게 없는 둘은 그 돈을 마음껏 쓰며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실행에 옮기지만, 곧 갱단과 경찰의 추격을 받게 된다. 범죄와 도주, 생의 의미, 버킷리스트와 음악이 황량하지만 아름다운 영상에 버무려진, 잊을 수 없는 엔딩의 버디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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