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작품은 <스파이의 아내>(2020)로, 연출을 맡은 구로사와 기요시는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필모그래피는 제법 독특한데, 시작은 저예산 에로 영화인 로망 포르노 작품이었다. 스릴러부터 SF까지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구로사와 기요시지만, 관객들이 그의 이름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르라면 단연 ‘공포’다. 올해 7월에 <큐어>(1997)가 국내에 재개봉되기도 했는데, 그의 공포 영화에 팬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다른 공포 영화와는 조금 다른 결을 가졌기 때문이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갑작스럽게 귀신을 등장시켜 관객을 놀라게 만들기보다, 롱테이크나 심리 묘사 등을 통해 여운이 긴 공포를 안겨준다.

그의 공포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건 ‘불안’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불안은 어떤 미지의 존재보다 두렵다. 무더운 여름, 금방 휘발하는 공포가 아니라 마음에 오래 남는 공포를 느끼고 싶다면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가 제격이다. 불안극이라고 불러도 될, 구로사와 기요시의 공포 영화를 살펴보자.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왼쪽)과 그의 페르소나인 배우 야쿠쇼 코지(오른쪽), 이미지 출처 – imdb

 

<큐어>

형사 ‘타카베’(야쿠쇼 코지)는 피해자의 목에 ‘X’ 모양의 표식을 남기고 살해하는 사건이 연달아 이어지자 이를 조사 중이다. 사건들마다 용의자가 모두 다르고, 이들은 모두 특별한 살인 동기도 없는 사람들이다. 타카베는 사건의 공통점을 찾아 수사를 이어 가는 중에 유력한 용의자로 보이는 이를 심문하게 된다.

구로사와 기요시가 국제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린 작품이 바로 <큐어>(1997)다. 연쇄 살인을 다룬 스릴러이지만, 관객들은 어느새 범인보다 자신의 마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영화는 계속해서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원하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살인 동기가 없던 이들이 살인을 저지르고, 주변인들은 그들에 대해 ‘평범한 사람’이라고 묘사한다. ‘평범함’에 속하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개성은 사라진다. 멀리서 본 세상은 제법 평화로워 보이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모두 턱 밑까지 분노가 차올라 있다. 아슬아슬하게 자신 안에 사는 악을 감추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본격적인 악의 속삭임이 시작된다면 사회는 금방 무간지옥에 가까워질 거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가 마음 속 악과 마주치는 순간, 세상은 구로사와 기요시가 그려낸 모습과 비슷해질 거다.

 

<강령>

‘사토’(야쿠쇼 코지)는 방송국에서 음향 담당자로 일하고 있다. 그는 영혼을 불러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아내 ‘준코’(후부키 준)가 평범한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묵묵히 응원한다. 그러나 준코는 식당에서 일하면서도 영혼을 목격하고 일을 계속하기 힘들다고 느낀다. 어느 날 한 아이가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준코에게 아이가 살아있는지 확인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온다. 준코는 이 사건을 통해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고, 사토는 일에 필요한 음향을 녹음하러 후지산에 간다.

<강령>(2000)에는 분명 귀신이 등장한다. 그러나 <강령>에서 진짜 무서운 장면은 귀신이 등장하는 장면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공포영화는 노골적으로 무서운 장면을 보여주기보다, 인간의 불안을 서서히 드러내는 식으로 전개된다. <강령>을 본 뒤에 남는 건 귀신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다.

삶에 어떤 기회가 주어졌을 때, 누군가는 그것을 통해 도약하지만, 파멸을 향해 가는 이들 또한 존재한다. 소리를 수집하는 사토와 영혼을 보는 준코 부부에게 주어진 기회가 독일지 약일지는 그들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거다. 준코에게 진짜 두려운 건 자신이 영혼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능력을 활용 못해서 정체된 듯 느껴지는 현실이다. 우리가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공포는 그리 멀지 않다. 마음 안에 든 욕망은 늘 무시무시하므로.

 

<회로>

대학생 ‘료스케’(카토 하루히코)는 인터넷에 접속했다가 ‘유령을 만나고 싶습니까’라는 메시지를 보고 접속을 종료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접속이 되는 걸 발견한다. 료스케는 컴퓨터에 대해 잘 모르기에, 학교에서 컴퓨터 전공자인 ‘하루에’(코유키)에게 이유를 묻는다. 한편, 꽃집에서 일하는 ‘미치’(아소 쿠미코)는 며칠째 연락이 안 되는 동료의 집을 찾아갔다가 그의 자살을 목격한다. 이후 미치의 주변인들이 사라지는 등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자, 원인을 찾아 나선다.

<회로>(2001)에는 인터넷에 접속하기 위한 모뎀 소리와 플로피 디스크 등 지금의 관객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는 소재들이 등장한다. 다만 ‘회로’는 우리의 곁에 여전히 존재한다. 오히려 핸드폰을 통한 인터넷 접속이 활발해지면서, 모든 이들이 회로를 통해 늘 연결되어 있다. <회로>가 지금의 시대를 배경으로 했다면 더 큰 악몽처럼 느껴졌겠다 싶을 만큼, 구로사와 기요시는 공포의 전염에 집중한다.

타인과 소통하고 싶은 욕망이 인터넷을 발전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닿는 과정에서 공포 또한 늘어난다. 평화와 공포를 동시에 퍼뜨려도, 사람들의 입에 더 빠르고 오래 오르내리는 건 공포다. 시대는 점점 발전하고 그에 따라 공포도 다양한 방식으로 퍼지고 있다. 기술의 발전이 어떻게 흐를지는 모르지만, 아마 사람들은 공포의 차단이 아니라 전염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그것을 활용할 확률이 높아 보인다.

 

<절규>

형사 ‘요시오카’(야쿠쇼 코지)는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죽은 현장을 맡아 조사하고, 그 이후로 붉은 드레스를 입은 귀신을 목격한다. 제출한 증거 중 요시오카의 지문이 묻어나오고, 요시오카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 더 수사에 집중한다. 요시오카는 계속해서 자신의 앞에 등장하는 귀신에게 나타나는 이유를 묻는다.

<절규>(2006)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작품 중 <큐어>만큼이나 많은 팬을 거느린 영화다. 주연을 맡은 야쿠쇼 코지는 <쉘 위 댄스>(1996), <우나기>(1997), <유레카>(2000), <갈증>(2014), <세 번째 살인>(2017)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한, 현재 일본 영화계에서 가장 중요한 배우 중 한 명이다. 야쿠쇼 코지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작품에 가장 자주 출연하는 배우로, 페르소나인 만큼 구로사와 기요시의 공포영화는 결국 야쿠쇼 코지의 얼굴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요시오카는 도쿄의 화려한 면이 아닌 어두운 면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도쿄의 한쪽은 계속해서 높은 빌딩과 화려함이 부각되는 가운데, 파괴의 잔해와 붕괴의 흔적이 쌓인 어두운 곳이 존재한다. 많은 이들의 욕망이 어딘가로 발산되는 동안, 그로 인해 발생하는 폭력의 피해자들 또한 많아진다. 영혼을 믿는지에 대해서는 저마다의 차이가 있겠지만, 억울하게 죽은 이는 어떤 형태로든 절규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세상으로부터 구원받지 못한 이들의 절규를, 살아남은 이들이 목격하고 공포라고 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결국 죽는다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죽은 이들의 절규를 모른 척할 수 없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인간이 외면하고 싶은 마음과 목소리에 가장 집중하고, 그곳에서 들리는 소리는 하나같이 우리에게 공포로 다가온다.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