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사람들은 따스한 햇볕과 초록의 싱그러움이 자취를 감춘 긴 겨울을 나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날씨가 풀리면 바다로, 들로, 하다못해 집 앞 잔디밭으로 나가 겉옷을 훌렁 벗고 온몸으로 자연을 만끽한다. 그들의 자연을 향한 사랑은 예술을 즐기는 공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자연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흥미로운 조화를 이루어 내기도 하고, 아예 자연 속에 미술관 설계하기도 한다. 경계를 긋지 않는 이들의 햇빛 사랑, 초록 사랑을 따라서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의 예술이 조화를 이루는 세 곳의 미술관을 소개하려 한다.

 

 

유기적인 자연과의 연결, 루이지애나 미술관

훔레백(Humlebæk)은 수도 코펜하겐에서 40분가량 떨어진 마을이다. 인구가 만 명이 채 안 되는 이곳을 매년 수십만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단연 루이지애나 미술관(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이다. 1955년, 기존 빌라 건물을 미술관으로 개조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현대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큰 전시관에 가벽을 세워 공간을 나눈 보편적 미술관 구조와 달리,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빌라의 성격을 유지하는 독립된 공간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덕분에 조각, 설치미술, 텍스타일, 회화, 미디어 아트 등 장르에 구애하지 않는 다양한 컬렉션이 선사하는 몰입감을 각 공간에서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전시장을 잇는 유리 복도를 통과할 때면 양옆에 펼쳐진 초록 잔디 위에 묵직한 무게감을 자랑하는 조각들이 보이고, 이어지는 전시에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 때 고개만 돌리면 지평선을 그리는 청명한 파도가 넘실거린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곳은 바로 루이지애나 카페다. 바다, 들판, 그리고 야외 조각들이 한 눈에 보이는 자리에서 덴마크인들 행복의 원천인 케이크를 먹거나 맥주를 한 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10월까지는 그 풍경 중심에 알렉산더 칼더의 오리지널 모빌 작품 대신 알렉스 다 코르테의 오마주 작품 ‘As long as the sun lasts’가 그 자리를 지킬 예정이다.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여름에는 미술관 앞 바다에 수영복을 입고 입수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 점을 미술관에서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는데, 미술관과 수영이라는 말도 안 될 것 같은 조합이 이루어지는 거의 유일한 곳이 아닐까 싶다. 문화생활과 소풍을 모두 만끽할 수 있는 호화로운 하루를 보내고 싶다면 놓쳐선 안 될 장소다.

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

미술관 주소 Gl. Strandvej 13, 3050 Humlebæk, Denmark
미술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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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안의 초록 쉼터, 글립토테크 미술관

글립토테크 미술관에는 고대 로마, 이집트 조각을 시작으로 르누아르, 반고흐같이 유명한 작가들의 근대 프랑스 회화작품, 덴마크 작가 컬렉션 등이 풍성하게 준비되어있다. 하지만, 작품 감상에 집중하다가도 시선을 돌리면 2층 높이를 훌쩍 뛰어넘는 야자수와 눈이 마주치니 자꾸 정원 벤치에서 쉬어 가라고 손짓하는 듯하다. 이 중앙 정원의 이름은 ‘윈터 가든’(Dahlerup’s the winter garden)으로 야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열대 식물들이 빼곡히 자라고 있다. 미술관이 내부 카페를 프로모션하는 키워드 역시 ‘피크닉’으로, 이 초록 정원을 바라보며 즐기는 음식을 이야기한다. 마치 세기를 뛰어넘어 온실에서 열리는 대박람회를 관람하는 듯, 특별한 감상을 남길 수 있는 장소임에 틀림없다.

The Glyptotek

미술관 주소 Dantes Plads 7, 1556 Copenha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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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완성하는 레인보우, 아로스 미술관

미쉐린 가이드에 투어 별점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무려 별 두 개에 빛나는 미술관이 덴마크의 제2 도시 오르후스(Århus)에 있다. 높은 건물이 적어 도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무지갯빛의 파노라마 미술관, 아로스(ARoS)가 그 주인공이다. 그 원통 안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그림자가 비친다. 이 모습이 지나가던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미술관으로 발길을 돌리게 한다. 입장하자마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향하면 레인보우 파노라마(Rainbow Panorama)로 향하는 계단이 등장한다. 이는 거대한 체험 전시로 자연광이 투과된 공간에서 일곱 빛깔 도시 풍경을 감상하도록 설계되었다. 물론 온갖 빛깔로 물드는 얼굴을 셀프 카메라로 기록하기도 좋은 포토 존이기도 하다. 옥상 정원도 개방되어 있으니, 도시 본연의 모습도 둘러볼 수 있다.

지하를 포함 열 개의 층으로 구성된 아로스 미술관은 2004년에 새로 지은 현 건축물에 이전했다. 그래서 미술관 공간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지만, 높은 층고와 층별 특성을 살린 다양한 전시가 매력적이다. 나선형으로 원만히 오르는 중앙 계단에서는 햇살로 인해 지는 층계 그림자와 함께 하얀 미술관 내부를 하나의 작품처럼 감상하기 좋다. 시즌 별로 로비 공중에 거대한 작품을 매달아 놓기도 하는데 현재는 Joana Vasconcelos의 ‘Valkyrie Rán’라는 대왕 문어를 닮은 텍스타일이 떠 있다. 오르막을 따라서 전시장에 들어서면 4.5 미터에 달하는 아로스 시그니처 ‘소년(Boy)’ 역시 만날 수 있다. 아로스 미술관은 미디어 전시, 설치 작품전시 기획에 강점을 보이는데 어렵게 설명을 늘어놓기보다 관람객이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하여 예술에 대한 장벽을 부순다.

ARoS Museum

미술관 주소 Aros Allé 2, 8000 Aarhus C, Denm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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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여행길은 사실 험난한 편이다. 직항 비행기도 없고, 대중교통은 놀랄 만큼 비싸며, 흐린 날씨가 기본값이다. 하지만, 빛나는 햇살을 일상에 끌어들이기 위한 덴마크 사람들의 노력은 눈물겹고, 그 결과는 아름다워 지나칠 수 없다. 이를 단순히 이국적인 정취라고 정의하기는 아쉽다. 잊고 지내던 동화 같은 순간을 선사하는 궁극의 자연과 예술의 조화에 가까우니까.

 

모든 이미지 각 미술관 공식 홈페이지, 인스타그램 계정

 

Writer

넓고 깊게 이야기를 담고 싶은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