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Copenhagen)은 인구 50만 명을 조금 넘고, 인근 광역도시까지 합해도 200만 명에 못 미치는 작은 도시다. 덴마크라는 나라를 생각해보면 낙농, 인어, 안데르센 같은 수식어는 금방 떠오르지만, 그 수도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재즈의 본고장이라는 점은 떠올리기 어렵다. 사실 코펜하겐의 재즈에 대한 열정과 다양한 서브 장르를 받아들이는 수용성은 파리, 런던 같은 유럽 중심 도시 못지않다. 1930년대부터 뉴올리언스 스타일의 재즈 밴드가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나치 점령기에는 저항 운동의 일환으로 재즈를 이어갔으며, 1960년대부터는 파리에 이어 유럽 제2의 재즈 도시라는 명성을 얻었다. 지금도 여전히 덴마크 정부는 사시사철 열리는 국제 수준의 재즈 페스티벌을 지원하고 있고, 도심의 클럽에서는 세계적인 재즈 뮤지션들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코펜하겐을 세계적인 재즈 도시로 만든 네 가지 키워드를 살펴보자.

 

미국에서 건너와 코펜하겐에 정착한 재즈 뮤지션들

재즈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덱스터 고든의 유명한 사진. 그는 코펜하겐의 재즈를 꽃피운 인물 중 하나다

비밥이 한창 인기를 끌던 시기의 미국에서는, 재즈를 흑인 음악이자 젊은이들을 망치는 방종의 문화라고 여겼다. 편견에 지친 많은 재즈 뮤지션들은 재즈를 예술로 인정하는 곳을 찾아 유럽으로 건너왔다. 1950년대의 스탄 게츠(Stan Getz)와 오스카 페티포드(Oscar Pettiford)에 이어, 1960년대에는 덱스터 고든(Dexter Gordon), 벤 웹스터(Ben Webster), 케니 드루(Kenny Drew)가 장기간 코펜하겐에 정착한다. 이들은 현지의 연주자들과 함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활동을 계속했다. 덱스터 고든은 14년간 파리와 코펜하겐을 오가며, 벤 웹스터는 1965년에 건너와 1973년 사망하기까지, 케니 드루는 1961년 파리로 건너왔다가 1964년부터 1993년 사망할 때까지 코펜하겐에서 살았다. 코펜하겐에 이 세 명의 이름을 딴 거리명이 있을 정도로 이들은 현지에서 존경과 인정을 받았다.

덱스터 고든은 1976년 미국으로 영구 귀국했으나, 코펜하겐시는 그를 기려 덱스터 고든 거리라는 거리명을 붙였고(좌), 코펜하겐 남쪽에는 벤 웹스터 거리가 있다. 가족이 없던 그는 홀로 코펜하겐에서 생을 마감했다(우)

1970년대 들어서도 코펜하겐으로의 행렬은 이어졌다. 듀크 조던(Duke Jordan), 호레이스 팔란(Horace Parlan), 에드 씩펜(Ed Thigpen), 태드 존스(Thad Jones) 같은 미국 유명 재즈맨들이 코펜하겐으로 거주지를 옮겼고, 닐스 헤닝 오스테드 페데르센(Niels-Henning Ørsted Pedersen, 줄여서 NHØP)으로 대표되는 현지 연주자와의 콜라보도 계속됐다.

미국에서 건너간 케니 드루(피아노)와 현지 NHØP(베이스), 알렉스 리엘(드럼)로 구성된 트리오는 1970년대 코펜하겐의 재즈 신을 대표하는 밴드였다

 

카페 몽마르트와 재즈 하우스

코펜하겐의 역사적 명소 카페 몽마르트

1959년 뉴욕과 파리의 재즈 클럽을 본떠 코펜하겐 중심부에 문을 연 카페 몽마르트(Cafe Montmartre)는 1960~70년대 재즈 붐의 산실이 되었다. 미국에서 건너온 연주자들과 현지의 연주자들이 모여 수준 높은 재즈 연주가 이어졌고, 코펜하겐을 방문하는 재즈 팬에겐 반드시 들러야 하는 명소가 됐다. 그러나 1995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가, 15년 만인 2010년 미디어 거물 룬 베흐(Rune Bech)와 재즈 피아니스트 닐스 란 도키(Niels Lan Doky)가 공동으로 원래의 장소에 재즈하우스 몽마르뜨(Jazzhus Montmartre)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현재는 다수의 투자자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비영리 재단으로 운영되고 있다.

1971년 카페 몽마르트의 덱스터 고든 연주 실황

한편 카페 몽마르트가 쇠퇴할 무렵인 1991년 문을 연 코펜하겐 재즈하우스(Copenhagen Jazzhous)는 현재 코펜하겐 최고의 재즈 클럽으로 자리 잡았고, 2개의 스테이지에서 연간 200회 이상의 라이브 무대를 소화하고 있다.

코펜하겐 재즈하우스 실내

 

재즈 전문 레이블 스티플체이스

코펜하겐 대학에 재학 중이던 닐스 빈더(Nils Winther)가 1972년 설립한 스티플체이스(SteepleChase) 레코드사는, 카페 몽마르트와 독점 계약을 따내 연주 실황을 녹음하면서 재즈 전문 레이블로 자리를 잡았다. 창립 이래 지금까지 약 800여 장의 앨범을 발매하였으며, 북유럽 스타일 재즈를 대표하는 명가가 되었다.

스티플체이스의 명반 중 듀크 조던 트리오의 1973년 작 <Flight to Denmark>은 눈 내리는 겨울밤에 어울리는 피아노 앨범이다

 

코펜하겐 재즈 페스티벌

매년 7월 코펜하겐에서는 열흘간 100여 군데의 장소에서 1천여 회 이상 연주하는 대규모 재즈 페스티벌이 열린다. 코펜하겐 재즈 페스티벌은 전 세계에서 25만 명 이상 참여하는 유럽 3대 재즈 페스티벌 중 하나다. 공식적으로 1979년 처음 열렸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1964년부터 작은 규모의 연주 페스티벌이 티볼리 가든에서 매년 벌어졌다고 한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시기에 코펜하겐을 방문하면 야외, 실내, 클럽 가릴 것 없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호사가 펼쳐진다.

코펜하겐 거리 곳곳의 간이무대에서 무료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작년에는 레이디 가가도 페스티벌에 참여하여 라비앙 로즈를 열창하였다

코펜하겐 재즈 페스티벌 홈페이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