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 전후의 ‘다호메이 아마존’ 사진

‘아마존’(Amazon)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전설 속 여성 부족 이름이다. 원래 ‘가슴이 없다’(without breast)라는 의미로, 활과 창을 사용하는데 방해가 되어 가슴을 절제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고대에 여성만으로 구성된 부족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17세기 아프리카에 유일하게 아마존이라 불리던 여성만의 군대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곳을 방문한 유럽인들에 의해 목격되어 역사적으로 상세히 전해졌다. 올해 9월 개봉 예정인 영화 <우먼 킹>(The Woman King)은 서양인들이 ‘다호메이 아마존’이라 불렀던 다호메이 왕국의 여성 군대에 관해 기록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제작되었지만, 세부적인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으며 상당히 과장되어 있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영화 <우먼 킹>(2022) 예고편

16세기부터 서아프리카에서 일어났던 ‘다호메이’(Dahomey) 왕국은 근세로 들어오면서 노예 무역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강력한 전제국가로 성장했다. 18세기 들어 항베 여왕(Queen Hangbe) 시대에 여성 전사를 양성하기 시작했고, 게조 왕(King Ghezo) 시대에 잦은 전쟁과 주변국에 대한 노예 조공으로 남자가 부족하자 600명의 적은 규모였던 여성 군대를 대폭 늘렸다. 이들은 남자와 똑같이 육체를 단련하는 훈련을 받고 전투에 투입되었으며, 이들의 숫자는 6,000여 명으로 늘어나 전체 군대의 3분의 1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1894년 프랑스와 두 차례의 전쟁을 치른 끝에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고, 1904년 프랑스령으로 편입되어 모든 군대가 해산하게 되자 다호메이 아마존의 역사도 끝나게 되었다. 이 지역은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여 오늘에는 토고와 나이지리아 사이에 위치한 베냉(Benin)이라는 국가로 존재하고 있다.

인터넷 영상 <다호메이 왕국의 흥망성쇠>

영화 <우먼 킹>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나니스카’(Nanisca)와 ‘나위’(Nawi)는 다호메이 아마존의 역사와 함께 실존했던 인물들이다. 1889년 12월 다호메이 왕국의 수도 아보메이(Abomey)를 방문했던 프랑스 해군이자 탐험가였던 장 바욜(Jean Bayol)이 그에 관해 상세하게 기록을 남겼다. 바욜은 아보메이에 특사로 갔다가 다호메이 여성 전사들의 전투 의식을 관람하게 되었는데, 10대 나이의 어린 신병 나니스카가 적으로 잡혀온 포로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몇 달 후 다호메이의 군대가 프랑스령이었던 프로토노보(Proto-Novo)를 습격하여 프랑스 군대와의 전투가 벌어졌는데, 앞장서서 용맹하게 싸우던 나니스카는 결국 전사하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여성 전사들은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위해 계속 싸웠고, 마지막 여성 전사라 알려진 나위는 1979년 11월 백 살이 넘은 나이에 자연사하였다.

‘나니스카’와 ‘장 바욜’의 일화를 보여주는 스미소니언 채널 영상

영화 공개 후 역사적 사실 여부에 관한 논란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다호메이 왕국은 주변에 있던 부족을 급습하여 부족민들을 노예로 잡아들여 신대륙으로 조달하면서 막대한 부를 쌓았고, 1850년대부터 노예무역을 금지한 영국과 프랑스가 항만을 봉쇄하자 긴장이 고조되어 전쟁으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아프리카의 통일과 외세로부터 독립을 위해 다호메이 왕국이 프랑스와 전쟁을 벌인 것으로 왜곡되거나 미화되어 있다. 또한 다호메이 아마존 군대를 확대한 게조왕은 통치기간이 1818년부터 1858년까지라, 프랑스와의 전쟁(1890~1894)과는 밀접한 관련이 없지만 이 사실 역시 간과되었다. 프랑스와 전쟁을 벌인 다호메이 왕국의 마지막 왕은 베한진(King Behanzin)이었지만, 영화의 극적인 효과를 위해 다호메이 역사를 뒤틀었던 것이다.

다호메이 아마존의 열병식 삽화에서 담장 위 적군의 참수된 머리를 볼 수 있다.

인류학자이자 작가인 조라 닐 허스턴(Zora Neale Hurston)이 1927년에 노예 생존자 Cudjoe Lewis를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서적 <Barracoon: The Story of the Last ‘Black Cargo’>에는 다호메이 아마존이 이웃 부족을 급습하던 참상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영화 <우먼 킹>의 내용이 세간에 알려지자, 다호메이의 노예무역 역사가 왜곡되거나 미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약 1,000만 명 이상의 아프리카 주민들이 노예선에 실려 신대륙으로 끌려간 노예무역의 흑역사는, 재물에 눈먼 유럽인들의 책임도 있지만 이웃 부족을 사냥하여 노예상들에게 팔아넘겨 막대한 부를 쌓은 아프리카인의 왕국들 책임도 작지 않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보존된 아보메이의 왕궁에서는 왕족의 후손들이 노예의 후손들에게 사과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보존된 다호메이 수도 아보메이의 왕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