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 <황혼의 사무라이>는 막부 시대의 사무라이가 주인공이지만 검술 영화 보다는 역사 드라마로 규정하는 것이 맞다. 이 영화에는 비현실적이고 과장된 검투 장면은 나오지 않고, 사무라이 계급이 점차 퇴조하는 막부시대 말기에 힘들게 살아가는 하급 무사(사무라이)의 일생을 잔잔하게 그렸다. 이 영화는 99%의 로튼토마토 호평과 함께, 2003년 일본 아카데미 영화제 12개 부문에서 수상했고 오스카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영화 제목 <황혼의 사무라이>(たそがれ清兵衛)만 보고 상투적인 사무라이 영화로 지레짐작할 수 있으나, 칼 대신 영주의 창고를 관리하고 다른 부업까지 하면서 가족을 힘겹게 부양하는 당시 사무라이 계급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역사 드라마다. 이 영화를 감상하는 또 다른 포인트 세 가지를 알아보았다.

영화 <황혼의 사무라이>(2002) 예고편

 

요지 야마다 감독의 사무라이 3부작

이 영화는 작가 슈헤이 후지사와(藤沢周平)의 역사 단편집 <Bamboo Sword and Other Samurai Tales>를 바탕으로 했는데, 이 책에는 작가가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사이에 쓴 여덟 편의 사무라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에는 17세기 에도시대 하급 사무라이들의 일과 사랑, 그리고 삶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담았는데, 지금까지 모두 다섯 편이나 영화로 제작되었다. 영화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로 유명한 요지 야마다(山田洋次) 감독이 그 중 <황혼의 사무라이>(2002), <숨겨진 검>(The Hidden Blade, 2004), <무사의 체통>(Love and Honor, 2006) 세 편을 제작하였는데, 이를 사무라이 시대극 3부작(Samurai Trilogy)이라 불렀다. 톱스타 기무라 타쿠야가 출연한 세 번째 <무사의 체통> 역시 3,300만 달러가 넘는 흥행작이 되었고, 일본 아카데미 13개 부문 후보에 올라 3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요지 야마다 감독의 <무사의 체통> 예고편

 

무용수 민 다나카의 영화 데뷔작

이 영화에서 주인공 이구치의 대결 상대로 등장하는 칼잡이 고수 ‘요고 젠에몬’을 연기한 다나카 민(田中泯)은 일본무용수비평가 협회상을 다섯 차례나 수상한 댄서로 유명하다. 원래 정통 발레와 현대 무용을 배웠던 그는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전위예술로 전향한 바 있다. 주인공과의 마지막 결투에서 예리한 카리스마와 독특한 무술 동작을 보여주어, 일본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신인상과 남우조연상을 동시에 받았다. 이후 무용수와 배우 경력을 동시에 추구하여 <메종 드 히미코>(2005)에서 죽음을 앞둔 게이 남성을 연기하여 강한 인상을 남겼고, 수십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였다. 우리 나라 영화에도 출연하여 영화 <사바하>(2019)에서 티베트 고승 ‘네충텐파’로 출연하여 영어 연기를 펼쳤다.

<황혼의 사무라이>에서 ‘요고 젠에몬’과 ‘이구치 세이베이’의 대결 장면

 

연기파 배우로 재기한 미야자와 리에

이 영화에서 주인공 ‘이구치’와 애틋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극적으로 그의 아내가 되는 ‘토모에’을 연기한 배우는 누드화보집 <산타페>로 유명한 미야자와 리에(宮沢りえ)다. 그는 11살부터 아역 배우와 모델로 활동하던 아이돌 스타였으며, 화보집이 국내에서도 출간되면서 한때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하지만 유명 스모선수와의 파혼 등 스캔들에 휘말리고, 연예활동 중지를 선언한 채 미국으로 건너가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반짝 스타로 끝날 수도 있던 그는 영화 <황혼의 사무라이>에 출연하면서 연예계에 복귀하게 되었고, 일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등 당시 영화제를 휩쓸면서 본격적으로 연기 경력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제는 <종이달>(2015), <행복목욕탕>(2017) 등의 영화에서 뛰어난 연기를 선보이며 일본 아카데미상을 6회 수상한 연기파 배우로 성장하였다.

영화 <황혼의 사무라이>의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터뜨리는 토모에(미야자와 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