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 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신참 변호사를 연기한 배우 박은빈에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그는 드라마 제작 발표회에서 연기에 관한 질문을 받자, 기존의 영화 및 드라마에 구현된 캐릭터나 실존 인물을 은연 중에 기억하고 그대로 모방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밝힌 바 있다. 드라마의 인기와 동시에 장애에 대한 시선이나 그것을 다루는 태도에 관해 여러 우려 섞인 목소리도 함께 높아지고 있는 만큼, 앞선 영화에서도 연기자가 장애를 가진 인물을 제대로 연기하는 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을 터. 배우들의 남다른 노력을 바탕으로 좋은 연기를 선보여 영화의 감동을 배가시킨 대표적인 영화 다섯을 알아보았다.

 

<레인 맨>(1988)의 더스틴 호프먼

자폐성 장애인을 모티프로 한 교과서적인 영화로 평가되며, 오스카 4관왕과 함께 박스오피스 수입 3억 5,000만 달러를 벌어들인 기념비적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 레인 맨 ‘레이먼드’(더스틴 호프먼)는 자폐성 장애에도 불구하고 천재적인 능력을 보여주는데, 자폐성 관련 작품에 관심을 가진 작가 배리 모로우(Barry Morrow)가 킴 픽(Kim Peek)과 빌 색터(Bill Sackter) 같은 실제 서번트 증후군 환자를 만나보고 이를 기반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서번트’(Savant)란 사회성이나 소통 능력은 정상인보다 떨어지나, 기억이나 암산 등 특정 분야에서 특출한 능력을 보이는 사람을 말한다. 더스틴 호프먼은 현실적인 서번트 연기를 위해 2년 동안 그들과 친구로 지냈고, 실제 같은 장애인 연기를 펼쳐 두 번째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안았다. 영화 개봉 후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관심도가 증가되어 연구 지원금이 이전보다 10배나 늘어났지만, 특출한 서번트 능력을 보이는 경우는 실제로 그리 흔치 않으며 냉엄한 현실과는 다른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았다.

영화 <레인 맨>(1988) 예고편

 

<길버트 그레이프>(1993)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동명의 소설 <Who’s Eating Gilbert Grape>에 바탕을 둔 성장 영화로, 25세의 가장 ‘길버트 그레이프’ 역의 조니 뎁과 그의 지체아 동생 ‘어니 그레이프’ 역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두 청춘스타의 연기로 유명한 영화다. 라세 할스트롬 감독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캐스팅하는 데 대해 우려가 컸지만, 오디션에서 그의 진지한 자세를 보고 마음을 굳혀 영화사 간부를 설득했다. 자연히 두 젊은 배우의 연기력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한 사람으로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디카프리오가 타이틀 캐릭터였던 뎁을 밀어냈다.”라는 말이 나돌았다. 당시 19세이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어린 나이에 쉽지 않은 연기를 훌륭하게 해내며 아카데미상, 골든글러브상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고, 그로부터 4년 후 <타이타닉>(1997)의 주연을 맡아 스타덤에 올랐다.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 모음

 

<아이 엠 샘>(2001)의 숀 펜

지적 수준이 일곱 살의 나이에 멈춘 지적 장애인(숀 펜)과 그의 일곱 살의 딸(다코타 패닝)의 부녀 관계를 다룬 감동적인 이야기다. 평단의 호평을 받지는 못했으나, 저예산으로 1억 달러에 육박하는 박스오피스 수입을 거두었다. 스타벅스에서 일을 하고 비틀스 음악을 좋아하는 지체아 아버지 연기를 한 숀 펜은 그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숀 펜은 불 같은 성격으로 기자나 파파라치들과 자주 다투며 여성 편력도 심하여 구설수에 자주 휘말렸으나, 연기력이 뛰어나 지적 장애인, 성소수자, 인권 운동가 등의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를 자주 맡은 바 있다. 제시 넬슨 감독의 친구인 극작가 크리스틴 존슨은 장애인들과 함께 지내면서 시나리오를 썼고, 장애인 배우를 적극 추천했지만 영화사는 위험을 택하지 않고 A급 배우인 숀 펜을 캐스팅하였다. 대신에 주인공의 친구로 나오는 조연급 배우들은 모두 실제 장애인을 캐스팅하여 현실감을 높였다.

영화 <아이 엠 샘> 예고편

 

<말아톤>(2005)의 조승우

자폐증을 안고 있지만 마라톤대회에서 3시간 이내의 시간에 완주했던 실존 인물 ‘배형진’(조승우)과 그의 어머니(김미숙)를 모티프로 한 영화다. 제작 당시 삼성의료원의 자폐증 고증 자문을 받기도 하는 등 철저한 고증을 거친 대표적인 영화로, 조승우의 자폐 연기나 김미숙의 헌신적인 가족 연기는 두고두고 화제가 되었다. 특히 조승우는 영화 취재를 하던 기자가 자폐증 환자에 대한 무례한 질문을 하자 불같이 화를 냈을 만큼 캐릭터에 깊이 빠진 메소드 연기로 찬사를 받았다. 이 영화는 당시 510만명의 관객수를 기록해 전체 관람가 영화로는 역대 4위에 오를 만큼 흥행을 기록했다.

영화 <말아톤>의 메이킹 영상

 

 

<템플 그랜딘>(2010)의 클레어 데인즈

템플 그랜딘 교수(왼쪽)와 그를 연기한 배우 클레어 데인즈

우리에게는 최장수 스파이 드라마 <홈랜드>(2011~2020)의 주인공 ‘캐리’로 유명한 클레어 데인즈(Claire Danes)는 자폐증을 가진 실존 인물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 교수의 자전적 영화에 출연하였다. 그랜딘 교수는 가축의 복지적인 관점에서 목장과 도축장을 운영하는 획기적인 방식을 고안한 동물학자로 유명하다. 그의 자전적 저서인 <Thinking in Pictures>(1995)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아역배우 출신인 클레어 데인즈가 자폐성 장애인의 연기에 도전하여 에미상, 골든글러브상 및 스크린 액터스 길드(SAG)상을 휩쓰는 빛나는 연기를 보였다. 그는 인터넷에서 그랜딘 교수의 실제 강연이나 음성 파일을 아이팟에 다운로드하여 틈날 때마다 듣고 그의 퉁명스러운 발음과 발성 스타일을 몸에 익혔다. HBO의 TV 영화로 제작된 이 영화는 로튼토마토 100%의 호평과 함께 에미상 5관왕을 안았고, 클레어 데인즈는 아이돌 배우라는 딱지를 완전히 뗄 수 있었다. 그는 이듬해부터 스파이 드라마 <홈랜드>에서 양극성 장애를 지닌 주인공 ‘캐리’을 연기하여 배우 인생의 전성기를 맞았다.

영화 <템플 그랜딘>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