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브리 비어즐리, <살로메>(1893) 삽화

오브리 비어즐리(Aubrey Vincent Beardsley, 1872~1898)는 19세기 말 영국에서 활동한 일러스트레이터다. 가느다랗고 장식적인 선 표현, 검은색과 흰색의 극적인 대비, 과감한 패턴 표현, 노골적인 성적 묘사로 활동 당시에도 수많은 반향과 잡음을 함께 일으켰던 비어즐리는 안타깝게도 25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지만, 여전히 수많은 팬을 거느린 작가다. 단명한 그가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펼친 시기는 채 10년이 되지 않았지만, 그가 그려낸 삽화들은 아직도 어둡고 불가사의한 정서 속으로 보는 이들을 이끈다. 이제는 낡은 인쇄물로 남은 이 그림들은 세월이 더해갈수록 오히려 생생하게 빛난다. 특히 그의 그림 속 여성들은 아름답지만 괴기스럽거나 사악한 면모를 드러내기도 하는 독특한 매력을 가졌다.

오브리 비어즐리, <머리칼의 강탈(The Rape of Lock)>(1896) 삽화. 로코코 시대에 만들어진 서사시(작가는 알렉산더 포프 Alexander Pope, 1688~1744)의 삽화로, 옷과 커튼 같은 직물과 의자 따위의 사물들을 정교하게 표현하여, 온갖 상품으로 둘러싸인 근대 런던의 상황과 로코코 시대가 중첩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비어즐리의 활동 시기는 빅토리아 시대 말기로, 화려하게 타오른 산업 혁명의 빛이 아직은 꺼지지 않았으나 세기말의 혼란이 가득한 영국이었다. 여왕의 건재로 엄격하고 보수적인 분위기가 여전히 지배적이었지만, 사회는 한번 넘쳐 흐르기 시작한 제방처럼 빠르고 격렬한 변화의 흐름을 멈추지 않았다. 상품들은 계속해서 시장으로 쏟아졌으며, 계급 간 격차는 극에 달하고 제국주의의 영광에는 조용히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신문 만평란에는 여왕과 귀족 계급의 위선을 조롱하는 풍자가 넘쳐났다. 이들 풍자 화가들이 위선을 조롱하고 폭로하기 위해서 즐겨 그리는 테마는 단연 성적 방종이었다. 엄격한 도덕주의자인 척하고 있지만, 뒤에서는 금지된 즐거움을 누리는 귀족들, 허영이 가득한 부르주아지들의 타락한 모습들 곁에는 창부로 묘사되는 여성들의 육체가 동원되었다. 사진 기술 발전의 부산물인 세속적 포르노그래피가 광범위하게 퍼졌고, 대영제국의 여왕 또한 그의 여성성으로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빈곤한 여성들은 거리로 내몰렸고 유흥가의 환락은 런던 밤거리의 가스등보다 훨씬 밝게 불타올랐다. 이 시기는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가 그 유명한 동성애 재판에 회부되어 유죄 판결을 받고 프랑스로 쫓겨난 때이기도 했다. 극단적인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과도기였다.

오브리 비어즐리, <살로메>(1893) 삽화 중 요한(좌)과 살로메(우). 가녀린 요한과 살로메의 화려한 이미지의 대비가 긴장을 만든다

비어즐리는 이러한 당시의 혼란을 반영하기라도 한 듯 흑과 백, 허공과 극단적인 디테일 사이를 오가는 그림들을 그렸다. 오스카 와일드가 1893년 영국에서 출간한 책 <살로메(Salome)>의 삽화는 비어즐리의 대표 작품이다. <살로메>의 원전은 <신약성서> 마태복음 14장의 짧은 내용에서 비롯되었지만, 세례 요한의 극적인 죽음(소반에 담긴 잘린 목의 이미지)과 연회, 젊은 여성, 유혹적인 춤 같은 강렬한 이미지는 많은 미술가가 그림으로 그려낸 것이기도 했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 살로메의 이야기에 살을 붙여 한 편의 비극으로 만들어냈다. 여기서 세례 요한은 젊고 아름다운 남성으로 살로메의 구애를 거절하여 살해당하고, 살로메 또한 죽음을 맞는다.

<살로메>는 두 작가의 협업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텍스트와 그림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같은 흐름을 가지고, 그림은 텍스트만큼이나 나름의 완결성을 갖도록 제작되었다. 특히 여성 못지않게 아름다운 남성인 요한을 완전히 압도할 정도로 강렬한 모습을 가진 살로메는, 차라리 현실적인 성별이 뒤바뀌었다 싶을 정도로 성별 간의 권력 구도가 역전된 텍스트 속에서 적극적인 구애자이자 사랑의 광기에 휩싸인 악인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려진다. 흑백의 대비는 때로 선악의 대비로, 공간적 분할로, 빛과 그림자의 역할로 활용되며 화면을 장악하고, 장식적인 형태들이 과감하게 사용되었다. 당시 유럽의 자포니즘(Japonism) 유행에 따라 일본 목판화의 영향을 받았고, 또 작가가 대영 박물관에서 탐구한 그리스 도기화의 영향을 받아 길쭉하게 늘어진 평면적인 형태들과, 악마나 요정 같은 국적 불명의 이국적인 도상을 곳곳에 활용했다. 살로메의 옷과 화려한 궁정을 장식하는 공작새의 깃털 또한 극도로 패턴화되어 무늬처럼 퍼져 있다. 이 가운데 우리의 눈을 또한 사로잡는 것은 물론 살로메의 얼굴이다. 강인한 턱과 풍성하고 검은 머리, 선 굵은 외모와 사나운 표정을 가진 여성의 강렬한 모습은, 분명 유구하게 이상화되어 왔던 매혹적 유혹자로서의 재현과는 사뭇 다르게 보인다.

번-존스, <모리스의 <존 볼의 꿈>(1892)을 위한 삽화(좌), 오브리 비어즐리, <아서 왕의 죽음>(1893) 삽화(우)

비어즐리가 라파엘전파(Pre-Raphaelites,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일어난,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화가인 라파엘로 이전 양식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복고주의와 과학적 눈으로 현실을 재현하려는 사실주의를 동시에 지향한 그룹이자 사조)에 깊숙이 관여했던 영국 화가 번-존스(Edward Coley Burne-Jones, 1833~1898)에게 영향을 받았음은 알려진 사실이다. 라파엘전파의 화가들은 당시 신고전주의 화풍의 로열아카데미에 반기를 들었는데, 대신 이들은 문학과 음악 등 여타 문예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고 특히 고딕 스타일과 중세의 모티프에 심취했다. 역시 라파엘전파에 관여했던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는 다방면에서 활약하며 직접 출판사를 차리고 자신이 쓴 문학 작품과 사회 운동적 성격의 산문 등을 출판하기도 했다. 라파엘전파 화가들은 모리스의 책에 종종 삽화로 협업했고 번-존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1893년 출판한 책 <아서 왕의 죽음 Le Morte D’Arthur>(Thomas Malory)에 실린 비어즐리 삽화는 번-존스의 삽화처럼 중세 필사본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을 그대로 가져왔다. 비어즐리의 그림 속에 뒤섞인 많은 요소 중에서도, 실제 사물에서 차용한 듯한 평면적인 패턴의 활용과 풍부한 세부 묘사, 인물의 소묘에서 라파엘전파의 영향이 잘 드러난다.

왼쪽은 오브리 비어즐리의 <살로메>(1893) 삽화. 검은 머리의 살로메가 춤을 추는 가운데, 아래쪽에는 이국적 도상의 악마 혹은 괴물을 연주자로 배치하여 음험하고도 성적인 분위기를 강조하였다. 오른쪽은 윌리엄 모리스의 <아름다운 이졸데> 또는 <귀네비어>(1858). 부정을 저지른 여성의 방종이라는 테마에 주변 사물들을 극도로 치밀하게 묘사한 것은 라파엘전파의 복고와 사실주의적 지향을 드러낸다

라파엘전파 화가인 번-존스, 모리스와 로세티(Gabriel Charles Dante Rossetti, 1828~1882)의 그림에서 특히 자주 등장하는 여성 모델들은 풍만하고 골격이 두드러지거나 이국적인 정조를 풍긴다. 그것은 제인 모리스(Jane Morris, 1839~1924, 화가이자 뛰어난 수예가로 라파엘전파의 일원이자 모리스와 로세티의 실제 연인이기도 했다)나 마리아 잠바코(Maria Zambaco, 1843~1914) 등 실제 모델이 되었던 여성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결과였다. 이들은 중세 시대의 복장이나 이국적인 차림새를 하고 그림에 등장하는데, 그 모습은 빅토리아 시대의 이상적인 미인형이었던 장미 꽃잎 같은 분홍빛 뺨, 수줍어하는 태도, 금실 같은 머리카락, 가녀린 체구 등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들 화가는 그들의 기치였던 사실주의에 따라, 중세 이야기와 신화, 성경 등의 복고적 모티프 속에 여성의 현실적 묘사를 불어넣었다. 그러나 이들이 어디까지나 이런 강렬한 여성의 이미지마저 도구적으로 사용했다는 혐의를 벗을 수는 없다. 미술사의 유구한 역사에서처럼 강력한 이미지의 현실 여성들 또한, 성녀 혹은 창녀의 이분법 속에서 조금 다른 화풍으로 소비되었던 것이다.

왼쪽은 오브리 비어즐리 <더 옐로 북(The Yellow Book)> 1권 표지(1894). 이 아트 잡지에서 비어즐리는 아트 에디터, 커버 디자인 프로듀싱, 일러스트레이션을 맡았으나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후에 해고된다. 오른쪽은 앙리 툴루즈 로트렉, <디방 자포네(Divan Japonais>(c.1893) 

비어즐리가 그린 여성들의 골상이나 이국적인 이미지가 고딕적 삽화의 수동적 여성상과 라파엘전파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본다면, 그의 그림 속 씩씩하고 호전적인 도전적 여성상을 마냥 찬미하기는 어려워진다. 그래서 <살로메>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이미지를 중성적이라거나 젠더 이분법에 갇히지 않은 모습이라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여성혐오가 팽배했던 당대의 분위기 속에서 사납고 악마적으로 그려진 여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적절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비어즐리의 그림을, 거친 눈초리의 이 세기말적 팜므파탈을 볼 때는 분명 어떤 종류의 쾌감을 느낀다. 그것은 단지 좋은, 잘 만들어진, 개성적인 이미지를 보며 얻는 느낌과도 조금 다르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비어즐리와 동시대 화가이자 그가 영향을 받은 또 다른 작가, 앙리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의 물랭루즈 포스터를 볼 때 느끼는 감상과 비슷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로트렉 또한 대상화된 여성들을 그렸지만, 동시대 인상주의자들이 묘사한 무희들과 그의 무희 중 누가 더 생동감 넘치며 근대 도시 문화의 들끓는 분위기를 담아냈는지에 대한 답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 비어즐리가 사생에 집중하지도, 사실주의에 경도되지도 않았음에도 로트렉만큼이나 당대 런던의 혼란을 생생하게 잡아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것도 당시로써는 가장 진보적인 매체인 인쇄물에 담았다. 도회적 세련미가 넘치는 결과물들은 여전히 사진보다도 생생하다.

오브리 비어즐리, <살로메>(1893)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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