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나 댄스가 주요한 요소인 뮤지컬 영화가 아닐지라도, 엉뚱한 댄스 신이 전체 영화의 흥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다. 감독이나 배우가 뮤지컬 전문이 아니거나 전문적인 댄서들의 연기가 아닌 경우 더욱 그렇다. 댄스에 익숙하지 않은 배우가 촬영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춤 동작을 익혀서 찍은 엉성한 댄스 신은 더욱 대단한 화제를 낳게 되며, 수많은 패러디를 통해 확대 재생산된다. 아래에 뽑은 영화 네 편은 뮤지컬 영화도 아니면서 영화 자체보다 더 유명한 댄스 신으로 영화사에 길이 남았다.

 

<비틀쥬스>(1988)의 데이-오(Day-O) 댄스

판타지 영화의 거장 팀 버튼 감독은 이 영화의 사전 시나리오를 읽고 더욱 코믹한 블랙 코미디로 만들기 위해 해리 벨라폰테(Harry Belafonte)의 히트곡 ‘Day-O’(1956)와 ‘Shake, Senora’(1961)을 채택한 댄스 뮤지컬 두 장면을 넣었다. 해리 벨라폰테는 카리브해의 민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포크 가수로 유명했다. 그 중 ‘Day-O’(The Banana Boat song)는 자메이카 흑인 노동자들의 애환을 담은 민요로, 주간에 근무하는 노동자를 뜻하는 말이다. 이 노래는 유령이 사는 집으로 새로 이사 온 ‘델리아’(캐더린 오하라)의 저녁 만찬에 초대된 손님들을 내쫓기 위해, 고약한 악마 ‘비틀쥬스’가 사람들을 조종하여 이 노래에 맞춰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게 하는 등 유령 소동을 일으키는 장면에서 나온다. 영화 흥행 후 뮤지컬로 제작된 <비틀쥬스>에서 이 장면은 더욱 우스꽝스럽게 진화되었고, 유튜브에서는 4,000만 조회수를 넘길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영화 <비틀쥬스>의 데이-오 댄스 장면

 

<아비정전>(1990)의 맘보 댄스

사랑을 믿지 않고 구속되기 싫어하는 바람둥이 ‘아비’(장국영)는 자신에게 매달리는 여자들을 돌려보낸 후 집에서 혼자 거울을 보며 러닝셔츠 바람으로 신나게 맘보 춤을 춘다. 별다른 목표 없이 외롭고 우울한 삶을 사는 홍콩의 이면을 그린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은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장국영의 매력을 가장 잘 살린 영화로 남았고 홍콩 금상장 영화제에서 5관왕이 되었다. 맘보 춤의 배경 음악으로 쓰인 ‘Maria Elena’는 1930년대 멕시코 대통령 부인에게 헌정하기 위해 만든 곡으로, 그 후 할리우드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영화음악을 하던 하비에르 쿠가(Xavier Cugat)가 새롭게 편곡하였다. 왕가위 감독은 쿠가의 음악을 좋아하여 자주 영화 음악으로 사용했는데, 고향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리츠-칼튼 호텔에서 여생을 보내던 쿠가는 <아비정전>이 개봉하던 1990년에 90년의 생을 마감하였다.

영화 <아비정전>의 맘보 댄스 장면

 

<펄프 픽션>(1994)의 ‘트위스트 경연’

1994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느와르 블랙코미디 걸작 <펄프 픽션>의 압권은 단연 존 트라볼타와 우마 서먼이 연기한 트위스트 콘테스트 장면이다. 갱단의 조직원 ‘빈센트’는 보스의 명령에 따라 보스의 아내 ‘미아’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다가 트위스트 콘테스트에 마지못해 나서게 되는데, 어색한 상황에서 어색한 관계의 남녀는 우스꽝스러운 트위스트를 추게 된다.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는 느와르 영화와 강한 대비를 이루는 댄스 장면이 나와 관객들의 실소를 자아낸다. 대부분 댄스에 일가견이 있는 존 트라볼타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트위스트 동작은 후일 수많은 패러디를 낳았고, 척 베리(Chuck Berry)의 ‘You Never Can Tell’(1964)은 처음 나온 지 30여 년 후에 더 유명해졌다. 이 장면의 영상은 유튜브에서 수천만 조회수를 자랑한다.

영화 <펄프 픽션>의 ‘트위스트 경연’ 장면

 

<13 Going on 30>(2004)의 ‘스릴러’ 댄스

우리나라에서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가지 없는 것>이라는 엉뚱한 제목으로 개봉했던 이 영화는, 1987년에 13세였던 ‘제나’(제니퍼 가너)가 갑자기 2004년에 30세의 나이가 된다는 설정의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다. 1980년대에 유행했던 음악들이 배경 음악으로 흘러나오면서 향수를 자극하다가, 마이클 잭슨의 유명한 뮤직비디오 ‘스릴러’을 패러디한 댄스 신이 등장한다. 홀로 무대에 나선 ‘제나’가 어색하게 ‘스릴러’ 춤을 추다가 어렸을 적의 친구 ‘매트’(마크 러팔로)를 무대로 부르고, 주위 사람들이 하나 둘 무대로 나오면서 많은 사람들의 플래시몹 댄스(군무)로 연결된다. 촬영 당시 제니퍼 가너는 쉽게 6분 만에 ‘스릴러’ 댄스를 익혔지만, 마크 러팔로에게는 이를 소화하는데 6시간이 걸리면서 출연을 포기할 뻔했다고 최근에 밝힌 바 있다. 당시 제니퍼 가너가 입었던 베르사체(Versace) 드레스 역시 유명세를 탔다. 이후 ‘스릴러’ 플래시몹 댄스가 다시 유행했고, 유튜브에서 수천만 조회수를 올리고 있다.

영화 <13 Going On 30>의 스릴러 댄스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