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춤은 위로 받지 못한 그림자” – ‘대니’ 중에서

‘얼터너티브’로 불리는 다양한 대안적 움직임, 로파이 사운드, 인디펜던트 정신, 록과 팝 스타일의 조화로운 교차까지. 이 같은 움직임이 본격화된 격동의 1990년대 이후 근래까지 인디 록은 갖가지 형태와 음악으로 우리 주변의 분노와 슬픔, 우울과 상실감을 대변해 왔다. 그리고 여기 2022년. 누구나 서울 홍대로 몰려들 때, 혹은 모두가 로큰롤이 죽었다고 푸념할 때 부산을 대표하는 록밴드로 우뚝 선 이들이 있다. 무채색의 흐리멍덩한 그늘에서 따스한 빛깔의 잔광(afterglow)을 발하는 밴드 보수동쿨러다.

 

보수동쿨러의 빛

2017년 활동을 시작해, 이듬해 싱글 ‘죽여줘’, ‘목화’를 발표하며 데뷔한 보수동쿨러. EP <yeah, I don’t want it>(2019)에서 감지되는 서프록의 영향으로부터 지역 인디신의 자랑스러운 선배인 세이수미를 연상하게 하고, 프론트를 앞세운 비교적 맑고 명쾌한 사운드와 선언적 내레이션을 활용하는 파격적인 시도 등을 통해서는 현대적 면모를 엿보게 했다. 그러나 새로운 프론트 김민지(보컬, 기타)가 가세한 후 지난해 발표한 정규앨범 <모래>(2020)에서 이들의 색은 변화했다.

“살아가며 만나는 분노와 상실 그리고 무기력함. 하지만 그 속에서 드문드문 보이는 희망들과 작은 기쁨들에 대하여. 포크와 로큰롤 그리고 아름다운 멜로디와 4명이 서로에게 집중하는 에너지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대니’와 ‘숨’이 간직한 묵직한 사이키델릭 사운드와 실험적 요소, ‘모래’와 ‘고무’ 같은 곡의 예스럽게 진중하면서도 서늘한 포크록 스타일이 보다 팝적인 선율과 록킹한 구성, 깊고 어두운 그늘을 뒤에 감춘 쿨하고 담백한 태도와 만나며 시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본연의 록 감성에 확연히 다가섰다. 앞서 네이버 온스테이지 출연에 이어 <모래> 발매 후 한국대중음악상 모던록 부문 노미네이트와 EBS 스페이스 공감 출연 등의 경력이 이어지며 새로운 변화 역시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보수동쿨러의 노래

“까만 우리의 모든 건 여름의 재로 남았네” – ‘대니’ 중에서

보수동쿨러의 노래 가사엔 많은 로큰롤 선배들의 노래가 그러하듯 심각한 분노와 우울이 한껏 깃들어 있다. 전작 EP의 수록곡 ‘목화’처럼 개별 인트로 곡에 뒤이어 노래가 등장하는 이 곡 ‘대니’ 또한 마찬가지. 다만 ‘목화 (Intro)’와 ‘목화’가 차분한 서정에서 격정으로 나아가는 정석적인 발라드 구성을 취한다면, ‘대니 INTRO’에서 일찌감치 사운드와 감정을 폭발하고 뒤이어 정적인 분위기로 눈물을 지으며 다시 정서를 집중시키는 ‘대니’의 방식은 듣는 이로 하여금 더욱더 날것의 감정을 마주하게 한다.

프로보크 서울 인스타그램

보수동쿨러의 치열한 감성과 사색적 온도가 이중적으로 잘 녹아 든 ‘대니’의 배민라이브 무대는 영등포 문래동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프로보크 서울(provoke Seoul)에서 펼쳐졌다. 1936년에 탄생해 오랜 시간 밀가루 제분공장이었으나 이제는 인더스트리얼의 감성을 간직한 근현대 문화 유산으로 재탄생한 이곳은 최근 여러 장르를 막론한 뮤직비디오와 방송의 촬영 장소로, 최근 ‘2022 S/S 서울 패션위크’의 런웨이 무대로 선택되며 그만의 양면적 분위기를 다양한 형태로 발산하고 있다.

이 무대 <대니>에서는 폐공장의 삭막한 분위기와 남겨진 기계들의 쓸쓸함이 창으로 비치는 따스하고 은은한 빛, 보다 부드럽게 뭉뚱그려진 라이브 사운드와 어우러져, 노래가 의도하는 듯한 슬프고도 아름다운 춤을 완성한다.

‘대니’ 배민라이브

 

빛을 건져 올리는 순간

“몸을 말리면 내가 흩어져 없어질까” – ‘고무’ 중에서

‘고무’가 그리는 이미지와 감정은 훨씬 구체적이고, 일상에 바투 다가서 있다. “미지근한 욕조 속에 잠겨 발을 바라보며” 이대로 거품처럼 녹아내릴 것만 같은 ‘나’와 ‘오늘’을 상상한다. 나른하게 잠기는 가사와 달리 우직하게 갈 길을 걷는 드럼 비트와 기타 스트로크로부터 살며시 ‘내일’이 떠오른다.

멤버들의 시선은 라이브 영상 속에서 저마다 고개를 조금씩 떨군 채 무표정한 얼굴로 각기 다른 곳을 향해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누구 하나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마치 저마다의 분노를 한 마음으로 다 이해한다는 듯이. 이 슬픔이 곧 떠올라 작은 빛으로 변화할 것을 예감한다는 듯이. 이번 배민라이브 촬영 후 남긴 아래 소감에서는 일상의 피안을 빙 둘러 걷는 듯한 이들의 노래와 달리 조금 더 현실적이고 솔직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고무’ 배민라이브

 

Q1. 배민라이브 촬영하게 된 소감은요?

문래동에 위치한 ‘프로보크 서울’이라는 곳에서 촬영을 하게 되었어요. 프로보크 서울은 1936년에 문을 연 대선제분의 밀가루공장(현재는 다른 곳으로 이전)이었습니다.

이전부터 ‘폐공장 같은 곳에서 연주를 하면 아주 멋짐이 가득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자주 나누었는데 이번 기회에 여러분들과 그 멋짐을 나눌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저희가 거주 중인 부산에서도 근현대를 간직한 건물들을 종종 만나볼 수 있어요. 이러한 역사를 간직한 건물과 장소들이 오랫동안 꾸준히 남아있었으면 좋겠습니다.

 

Q2. 작업 /음악 준비하시면서 자주 시켜 드시는 가게 / 메뉴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도야족발 대연점,,, 사장님이 너무 친절하시고 정성이 가득하셔요. 족발을 시키면 그 위에 따뜻한 물봉다리를 얹어서 주시는데 갓 삶은 족발 맛을 그대로 즐길 수 있답니다.

 

Q3. 배민라이브 구독자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이러한 멋진 라이브 클립들도 좋지만 생생한 현장감이 밴드와 음악이 가진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보수동쿨러의 정규 1집 <모래> 많이 들어주시고 밴드의 많은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공연장에서도 만나요!

 

* 배민라이브는 숨은 음악 맛집을 찾아 배달하는 배달의민족의 음악 콘텐츠입니다. 유튜브 채널에서 매달 새로운 아티스트의 라이브 영상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