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과 차별은 서로 다른 입장을 이해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겪어보지 않아서, 일상에서 인지하지 못해 무심코 저지른 말과 행동이 의도와 달리 타인에게 상처가 되는 것이다. 이 거리를 좁혀가는 데에 타인의 경험담은 종종 큰 도움이 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직접 겪은 일을 글이라는 매개체로 세상에 내놓고, 이들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고 있다. 다각화되는 사회에서 극사실주의 경험담들이 혼란을 줄여줄 스펀지 역할을 맡아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들의 속사정을 담은 세 권의 책을 소개한다.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 - 열 받아서 매일매일 써 내려간 임신 일기>

- 알고 선택하는 것, 알고 배려하는 것

매년 뉴스에 출산율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그래프와 숫자로 암울하게 미래를 예측한다. 떨어지기만 하는 이 수치를 탁상공론으로 찾은 대책이 아니라 ‘임산부’ 경력을 담은 책을 통해서 이해하고 논의할 수 있다면 어떨까?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를 쓴 저자 송해나 작가는 철저하게 계획을 통해서 임신을 결정했다. 그런데도 모든 과정에서 생소한 어려움과 고통을 마주하게 되면서 분노에 차게 된다. 인류의 시작 이래로 계속 이어져 온 임신이지만, 여전히 아기 위주의 연구와 의학이 발달했을 뿐, 그저 참는 것과 기다리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 본인 이후에 임신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자기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미리 알고 선택하기를 바라며 그 어느 글보다 자세히 전반의 과정을 묘사했다. 또한 임산부의 주변인들이 이들을 단순히 아기를 운반하는 ‘예비 엄마’가 아니라, 이전과 같이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중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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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임신한 시기와 책이 출간된 해에서 3년가량이 흘렀다. 그동안 코로나와 경기 침체를 겪으며 출산율을 역대 최저를 갱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석이 가득 찬 지하철에서 종종 비어있는 분홍색 임산부 좌석을 발견하기도 하고, 건너 건너 아빠들의 육아휴직 사례를 전해 듣게 된다. 사회가 임신과 임산부에 대하여 같은 눈높이에서 이해하고자 천천히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이길 바래본다. 병원에서는 같은 병명에도 개인별 증상의 발현이나 정도가 다 다르다고 설명하는데, 왜 유독 임신에 대해서는 단편적으로 대응해왔는지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는 책이다.

 

<경찰관속으로 - 언니에게 부치는 편지>

- 직업인으로서의 경찰관

경찰이라는 직업은 엄청난 사명감이 요구된다. 각종 사건 사고의 중심으로 뛰어 들어가야 하는 업무 특성상 사람들은 정형화된 매뉴얼에 걸맞은 이상적인 인물을 기대한다. 경찰관도 사실 공포감, 무력감, 슬픔을 느끼는 인간임에도 현장으로 달려가는 직업인이라는 것을 쉽게 잊게 되는 것이다. <경찰관속으로>는 경찰이라는 직업에 대한 엄격한 잣대 뒤에 서 있는 사람을 다룬다. 필명을 쓰는 작가 ‘원도’가 직장에서 마주한 상황과 감정과 문제의식을 솔직하게 풀어낸 에세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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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곳에는 사회적 약자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작가는 그들의 고통을 포함하여 문제의 원인과 개선할 수 있는 방향까지 포괄하는 시선을 경찰로서 서술했다. 힘든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은 묘사와 진솔한 감정을 글에 담아 읽는 이의 마음에 파동을 일으킨다. 같은 공공기관이지만 검찰청과 경찰서에서 정반대의 태도를 취하는 시민들, 과도한 제약과 책임 전가로 소극적 대응이라는 선택지만 남은 현장, 이미 손쓸 수 없는 현장에 도착한 상황 등 직장생활에서 마주하는 것을 언니에게 털어놓는 글은 얼굴도 본명도 모르는 저자에 이입하게 만든다. 직업군마다 다양한 문제와 고민이 있겠지만, 우리가 누리는 일상을 지켜주고 어려운 사람에게 귀 기울이는 경찰들의 이야기는 아무도 들어주고 있지 않았구나 깨닫는 순간이었다.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 다이어트의 탈을 쓴 고군분투 작가 일상기

<대도시의 사랑법>, <1차원이 되고 싶어> 등 글을 부지런히 발표하는 젊은 작가 박상영은 문학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좋은 사례 같다. 브런치, 독립출판 등 데뷔의 문턱이 낮아진 요즘이지만, 본업으로 성실하게 종이책을 출간하는 소설가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동경하는 특유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래서 소설가의 에세이가 끊임없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와중에 ‘소설가의 다이어트’라니, 호기심에 손이 안 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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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는 다이어트로 시작해서 ‘작가’라는 직업의 불안정성이 동반하는 생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매일 아침 한 시간 일찍 출근해 카페에서 글을 쓰고 부랴부랴 출근하는 직장인 ‘부캐’의 모습,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면 배달 음식으로 저절로 가는 손길, 맞지 않는 수트를 포기하고 반바지 차림으로 다니는 북토크 등 짠 내 나는 고군분투에 유머가 묻어 있다. 그가 어딘가 습작하다가 혜성같이 데뷔한 것이 아니라, 현실의 생활을 위한 돈벌이와 꿈의 실현 사이에서 애를 쓰느라 생활 패턴이 망가진 진실을 고백할 땐 친근함마저 느껴진다. 더불어 그는 여러 대표작으로 업계의 인정받아 본업작가가 된 지금도 먹고 살기 위해 ‘써야만 하는’ 원고들과 마주하고 있음을 밝힌다. 꿈을 이루었으니 성공한 인생이지 않냐는 주변의 동경과 질투에 쉽사리 터놓지 못했던 작가의 솔직한 고백까지 알차게 담아 놓았다.

막연히 어떤 사람이 힘든 업무나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당사자들의 사정을 듣는 것은 그들을 대하는 태도부터 바꾸어 놓는다. 함부로 임산부의 배에 손을 올리지 않는 것, 경찰에게 무례하게 굴지 않는 것, 꿈을 이룬 뒤에 이어지는 삶을 계속 응원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계속해서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 갈 힘이 독서에서 생겨나는 경험을 할 수 있길 희망해본다.

 

Writer

넓고 깊게 이야기를 담고 싶은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