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우징퉁의 앨범 발매 기념 팬 싸인회에 참석한 왕페이 (Via www.china.org.cn)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1995)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왕페이(王菲)라는 매력적인 배우를 기억할 것이다. 울퉁불퉁 제멋대로 자른 숏컷, 종잡을 수 없는 ‘사차원’ 행동들, 사랑하는 사람을 애틋하게 바라보던 눈동자를 기어코 떠올릴 거라는 뜻이다. 왕페이는 그렇게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우리 곁에 왔다. 본업인 가수가 아닌, 배우 왕페이로 말이다. 직접 부른 <중경삼림> OST ‘몽중인(梦中人)’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홍콩의 축축한 여름 공기를 다시금 안아보자.

<중경삼림> OST ‘몽중인(梦中人)’ MV

왕페이는 1989년 홍콩에서 데뷔한 이래, 맑고 청아한 목소리와 몽환적인 창법으로 30년 가까이 대중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가수 덩리쥔(邓丽君)을 모창하고 다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중화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흩뿌리는 아티스트가 된 그는, 다수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임에도 자신은 그저 가수일 뿐이라고 말한다. 특유의 자유분방함과 넘치는 매력으로 두 번의 결혼식을 올리고 두 자녀를 두었다. 그중 록가수 더우웨이(窦唯)와 결혼해 낳은 딸 더우징퉁(Leah Dou)은 왕페이의 음악적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짧게 자른 숏컷부터 매력적인 음색까지 꼭 빼닮은 모녀, 왕페이와 더우징퉁의 음악 세계를 들여다봤다.

 

어머니, 왕페이

(이미지 출처- Sougou baike)

다수의 광둥어 앨범을 발표하고 홍콩영화에 출연한 왕페이를 홍콩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그는 중국 베이징 태생이다. 대학교 입학을 포기한 채, 1987년 나고 자란 베이징을 떠나 홍콩으로 이주하면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앨범 <Coming Home> 수록곡 ‘容易受伤的女人’

초기 왕페이의 음악은 상업적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Coming Home>(1992)과 <执迷不悔(집미불회)>(1993) 같은 앨범은 이를 잘 보여주는 예시다. 일본 유명가수 나카시마 미유키의 ‘ルージュ’를 번안해 부른 곡 ‘容易受伤的女人(쉽게 상처받는 여인)’과 왕페이가 직접 작사한 곡 ‘执迷不悔’는 오늘날 그의 대표곡으로 손꼽힐 만큼 사랑받은 곡들이지만, 한 겹 벗겨보면 당시 홍콩에서 유행하던 대중음악의 색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1993년 발표한 앨범 <十万个为什么(십만 개의 이유)>는 매우 실험적인 의미를 가지는 음반이다. 곡을 받고, 녹음실 부스에서 녹음만 하던 왕페이는, 이때부터 직접 앨범 컨셉과 제작의 전반 과정에 참여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음악에 부여하기 시작한다. 

앨범 <十万个为什么> 수록곡 ‘流非飞’ MV

페이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하지
말을 많이 하면 실수도 잦아질까
페이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하지
이런 행동을 하면 남들이 싫어할까
여러분 제발 저를 함부로 평가하지 말아줘요
난 자유로워 질 거야
난 자유로워 질 거야

‘流非飞(유비비)’에는 자신을 속박하는 외부의 시선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이 담겼다. 왕페이 특유의 톡 쏘는 음색과 멜로디를 자유자재로 꺾어 부르는 창법이 본격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한 곡이기도 하다.

앨범 <天空> 수록곡 ‘誓言’

1994년 발표한 <迷(미)>, <天空(천공)>, <胡思乱想(잡생각)>, <讨好自己(날 즐겁게 하기)> 같은 앨범들을 거치면서 왕페이의 음악적 색깔은 더욱 또렷하고 날카로워졌다. 한해에 저렇게나 많은 앨범을 쏟아내는 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의 방대한 양에도, 매번 완성도 있는 작업물을 선보였다. 앨범 <天空>에 수록한 ‘誓言(서언)’은 첫 번째 남편이었던 더우웨이(窦唯)와 함께 작업한 곡이다. 독특한 헤어스타일에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펑키한 룩을 하고 자유분방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뮤직비디오 속 왕페이의 모습을 보라. 엉뚱하고 새침하지만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운, 단연 왕페이만이 풍길 수 있는 매력들로 가득 차 있다.

앨범 <浮躁> 수록곡 ‘浮躁’ MV 

1996년 발표한 <浮躁(부조)>는 이전 앨범들과는 달리, 퇴폐적이면서도 음침한 정서가 다분히 배어있는 음반이다. 수록곡 중 8곡을 왕페이가 직접 작사, 작곡했을 정도로 가장 애착을 가졌지만, 당시 유행하던 대중음악의 스타일로부터 크게 벗어난 탓에 판매량이 가장 부진했던 앨범이기도 하다. 10개의 수록곡 중 어디서도 상업적인 멜로디를 찾아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대부분 곡은 정식 가사가 없고 잠꼬대 같은 흥얼거림만 있다. 동명의 타이틀곡 ‘浮躁’도 다르지 않다. “la jum bo”라는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랫말을 잠에 취한 듯 주술처럼 흥얼거리는데, 왕페이가 임의로 만든 일종의 언어일 뿐 실제로 어떠한 의미도 없다.

더우웨이(왼쪽)와 왕페이(오른쪽) (이미지 출처- Sougou baike)

홍콩과 대만, 대륙을 넘나들며 당대 최고의 여가수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왕페이는 1996년 갑작스런 결혼 소식을 발표한다. 앞서 발표한 곡 '执迷不悔'와 '誓言'을 통해 음악적 호흡을 맞췄던 중국 유명 록가수 더우웨이의 아이를 임신한 것. 사실 왕페이가 상업적인 음악에서 탈피해, 자신만의 곡 스타일을 구축할 수 있었던 데는 더우웨이 공이 크다. 왕페이는 전설적인 록 밴드 흑표(黑豹)의 중요한 축을 맡았던 더우웨이에게서 무수한 영감을 받았으며, 그의 도움 덕에 새로운 음악적 시도들을 과감히 할 수 있었다. 1999년 파경을 맞기 전까지 더우웨이는 왕페이의 콘서트에서 줄곧 드럼 세션으로 참여하며 묵묵히 서포트했다.

1997년 첫째 딸 더우징퉁을 출산한 후 왕페이는 홍콩 생활을 접고 중국으로 돌아와 영국에 뿌리를 둔 음반사 EMI와 계약을 맺는다. 이는 왕페이만의 음악적 색깔을 최대한 배제하고 상업적인 음악의 길로 다시 접어든 시작점이 됐다. 비록 음반 판매량은 부진했지만, 평단으로부터 작품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은 <Di-Dar>, <浮躁> 같은 앨범들과는 확연히 상반되는 결과들이었다.

 

딸, 더우징퉁

(이미지 출처- Sougou baike)

더우웨이가 딸 더우징퉁을 위해 만들고 왕페이가 부른 곡 ‘(아이)’에서 “hey, mama”를, ‘只愛陌生人(낯선 사람만 사랑해)’에서 “come on, baby”를 외치던 아기 더우징퉁은 어느새 훌쩍 자라 ‘거물급 신인’이라는 찬사가 끊이지 않는 싱어송라이터가 된다. 중국 음악계의 천후 왕페이와 전설적인 록 밴드의 리드보컬 더우웨이를 부모로 뒀으니 어지간히 음악적 피가 끓어 넘쳤던 모양이다. 14살에 처음 기타를 잡기 시작했으며 16살이 되던 해 자신의 밴드를 결성해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다. 이듬해인 2012년 발표한 자작곡 싱글 <With you>는 깔끔하고 세련된 멜로디라인과 더우징퉁의 맑은 음색이 돋보이는 앨범이다. 이후 꾸준히 <Blue flamingo>, <On the beach>, <My days> 같은 자작곡이 담긴 싱글 앨범을 발매하고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콘서트 활동을 이어오다, 2016년 첫 정규앨범 <Stone café>를 발표했다.

Leah Dou ‘My days’(2014) MV

‘My days’는 더우징퉁의 네 번째 자작곡이자, 처음으로 공식 뮤직비디오를 만든 곡이기도 하다. 더우징퉁의 정리되지 않은 덥수룩한 머리와 중성적인 옷차림이 흑백필름 안에 감각적으로 담겼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한 몽롱한 노랫말을 담은 이 곡은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것은 물론, 음악 평론가들과 연예인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도 성공했다.

난 오늘도 큰 걸음으로 거리를 걷지
어느 한구석 나만 아는 비밀의 곳을 찾으려고
모든 일을 뒤로 미루고 훌쩍 떠나고 싶어
나의 시대로 나를 데려다줘
나의 꿈은 어쩌면 조금 이상한지도 몰라

Leah Dou ‘May rain’(2015) MV

더우징퉁의 평소 목소리는 허스키하지만, 노래할 때의 음색은 꽤 맑고 청아하다. 그럼에도 그의 음악이 풍기는 분위기는 밝음보단 오히려 진중하고 무거운 쪽에 가깝다. ‘May rain’의 후렴구에서 음을 꺾어 부르는 창법은 왕페이의 곡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요소다.

Leah Dou ‘Bitter sweet’(2016) MV 

2016년 발표한 첫 정규앨범 <Stone café>에 수록한 곡 ‘Bitter sweet’는 “Be yourself(너 자신이 되어라)”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뿜어내는 곡이다. 뮤직비디오는 더우징퉁의 혼란스러운 심경을 대변하기라도 한 듯 카메라 앵글을 정신없이 흔들며 시작한다. 평소 대중들에게 친숙한, 수더분한 모습의 더우징퉁과 파란색 가발을 쓰고 진하게 메이크업을 한 낯선 모습이 교차적으로 화면을 훑고 지나간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과 잣대에 맞춰서 사는 삶과, 나답게 사는 삶의 경계에서 혼란을 겪는 이 시대의 모든 이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다. “이게 진짜 네가 원하는 거야?”, “그냥 너답게 살아.” 하는 영상 속 메시지는 혼동의 길목에서 아파하는 우리 모두에게 해답을 제시해준다.

사실 더우징퉁의 반항기 어린 음악 스타일은 아버지 더우웨이와 더 닮았다. 당대 중화권에서 가장 명성 높은 하드 록 밴드로 손꼽히던 흑표(黑豹)의 리드보컬이었던 더우웨이는, 앨범 수록곡의 9할을 도맡아 작사, 작곡할 만큼 재능 있는 뮤지션이다. 덥수룩한 헤어스타일에 히피 룩을 하고, 만리장성을 배경 삼아 자유롭게 노래를 부르던 젊은 시절 더우웨이의 모습에서 더우징퉁의 얼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밴드 흑표 ‘Don’t break my heart’ MV 

“‘왕페이와 더우웨이의 딸’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닐 것 같은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한 매체의 질문에 더우징퉁은 다음과 같이 답한 바 있다.

“남들과 다른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원망을 가져본 적은 없다.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장점이기도 하잖나. 나만 주위의 시선에 개의치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아티스트는 결국 ‘작품’으로 평가받게 될 테니까. 지난 작업물을 회고할 때도 굳이 부족한 면을 들춰내 스스로를 비판하지 않는다. 앞으로 새로운 음악을 만들면서 늘 조금씩 더 나아질 테니까.”

 

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