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종말을 맞는다면 그것은 먼 미래일까? 기후 위기는 현실로 다가왔지만 각자의 반복되는 일상 앞에서 이 세상이 멸망하는 일은 꽤나 아득해 보인다. 만약 그 끝이 이미 다가왔다면 어떠할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있다. 대만 드라마 <무신지지불하우>는 종말의 끝자락에 선 세계를 다룬다. ‘신이 없는 땅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 제목 ‘無神之地不下雨’의 뜻이다. 신들이 떠나버린 세계에서 비의 신과 인간의 운명에 맞서는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미지 출처 – 링크

 

환경 문제를 다룬 로맨스 판타지 드라마

<무신지지불하우>는 아시아 전역에서 큰 인기를 얻은 드라마 <상견니> 제작진의 차기작으로, 로맨스 장르에 신이라는 판타지 요소를 더하며 복합적이고 거시적인 타임라인을 그려내었다. Jian Qifeng 작가는 대만 원주민 아미족의 자연과 공존하는 신앙에 감명받아, 이를 현대의 파괴적인 환경 문제와 대조하였다. 작가진은 아미족의 신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관을 구성했다. 조물주의 대행자인 비의 신 Orad, 인간세계의 인과(因果)를 관장하는 바람의 신 Fali, 마음을 읽는 구름의 신 Toem처럼 만물의 신들이 개성 있는 캐릭터로 형상화되어 세계의 운명을 둘러싼 갈등을 벌인다. 신화를 기반으로 창작된 짧은 애니메이션은 매 에피소드의 도입부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함축하는데, Jofan Liao의 일러스트레이션이 신비로운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이미지 출처 – 링크

종말이라는 무거운 주제는 산호 백화, 하천 오염, 홍수와 가뭄 등 대만은 물론 세계가 당면한 환경 문제를 대입하며 현실감 있게 그려진다. 신과 악령의 사이에 있던 영(靈)은 오염된 환경 속에서 전염병을 일으키는 존재로 변해 인간을 해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격리를 하며, 병원은 넘치는 환자들로 아수라장이 된다. 작가는 이야기를 2018년부터 구상하였는데, 극중 종말의 모습은 드라마가 방영된 코로나 시대의 상황과 맞닿게 되었다.

이미지 출처 – 링크
이미지 출처 – 링크

익숙해진 기후 위기는 어느덧 피로감과 체념을 부르는 소식이 되고 말았다. 이 문제를 개개인이 스스로의 것으로 느끼고, 자신의 태도를 선택하는 이야기가 더욱 필요한 이유이다. 극의 초반부에서 주인공 셰톈디는 세계의 종말은 먼 미래이고 자신은 이를 바꿀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스스로의 일상을 보다 나아지게 만들기를 바랄 뿐인 그녀에게 비의 신은 질문을 던진다. “비가 내리지 않을 거고 바닷물도 더 이상 흐르지 않을 거야. 시간도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지. 이러한 미래가 네가 바라고 남아있고 싶어 하는 미래야?” 세계는 예언대로 망가져가지만 셰텐디는 전염병으로 쓰러져가는 사람들과 환경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청소년들을 보며 생각이 많아지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나선다.

이미지 출처 – 링크
이미지 출처 – 링크

포기하지 않고 작은 노력이라도 계속해 나갈 것. 거대한 환경 문제 앞에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러나 희망 어린 믿음은 자주 비관과 절망 앞에 무너진다. 이럴 때 점점 중요해지는 것은 상황을 직시할 용기, 그리고 같이 고민하고 행동하는 이들이 있음을 떠올리는 것일 테다. 아티스트마다 자연 앞에서의 여러 감정을 그려낸 <무신지지불하우>의 노래들은 이를 상기시켜준다. 또한 이 노래들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풍전등화의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Jiuze CP ‘最後一秒鐘’(The Last Second)

드라마의 오프닝 장면에서 망가져가는 자연의 모습을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The Last Second>는 듀오 보이그룹 Jiuze CP와 작곡가 Waii Hoong의 협업으로 작곡되었다. 비의 신 Orad의 심정으로 써 내린 가사에는 절망과 슬픔으로 가득 찬 회한이 담겨있다.

當城市變成沙漠
當冰河不再冰凍
大雨落在沉默
揪著的心 來不及傷痛

도시가 사막으로 변할 때
빙하가 더 이상 얼지 않을 때
침묵 속에 비가 퍼붓지만
마음 아파할 시간조차 없어

작곡가 Feng Ze는 사람들이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 이 곡을 듣기를 바란다. 고통스러운 후회가 남은 최후의 시간, 하지만 그 순간은 어쩌면 진정 중요한 것과 자신이 해내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깨닫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세계가 곧 물에 잠길 거야. 그저 당신의 손을 잡고 싶어.”라고 이어지는 가사처럼.

 

Shi Shi ‘雨不停。流’(Never Ending Rain)

가수 Shi Shi가 <Never Ending Rain>을 부르는 장면은 드라마 속에서 주요한 사건으로 펼쳐진다. 극 중에서 Shi Shi는 악령에 희생된 인물로 등장하는데, 그녀의 버스킹 공연을 듣던 수많은 사람들이 혼절한다. 아비규환의 세계 속에서 처연하게 울려 퍼지는 이 곡에 담긴 감정들은 우리가 이미 지난 몇 해 동안 겪어 익숙한 것이기도 하다. 두려움과 외로움 그리고 아쉬움과 분노.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 제멋대로인 마음을 Shi Shi는 세상을 향한 비명처럼 외친다.

我不管整個世界都崩壞
誰說明天陽光會燦爛
雨永遠下不完 我也不想撐傘
至少我能感覺有你在

난 이 세계가 모두 무너져도 상관없어요
누가 내일의 태양이 찬란하다고 했나요
비가 영원히 그치지 않아요 나는 우산을 쓰지 않을래요
적어도 당신이 곁에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으니까요

동시에 작사가 David Ke는 역설적인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는 비가 멈추지 않는다는 말은 오히려 비가 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가뭄이 바꿀 수 없는 숙명처럼 보이더라도, 각자가 의연히 선택을 하는 가운데서, 결국 비의 가능성을 어디에서나 발견해 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사에 담겨있다.

 

Astro Bunny ‘成為你的所有’(Be Yours)

일렉트로닉 음악 그룹 Astro Bunny는 ‘Be Yours’, ‘Too Much to Say’라는 두 곡을 통해 치유와 용기라는 주제를 노래하였다. 이 중 ‘Be Yours’는 맑고 순수한 리듬과 가사를 선보이는 Astro Bunny 특유의 스타일에 신비롭고 광대한 사운드 디자인을 더하여 신들의 세계를 그려낸 곡이다. 시적이면서 주문을 외우는 듯한 아미족어 가사는 극의 주제인 세상 모든 존재에 대한 사랑을 읊는다.

Haopen a miemin kona maemin ako, hay masadafong no miso kako.
나의 모든 것을 가져가고, 내가 당신의 모든 것이 되게 해주세요

 

Men Envy Children ‘讓我聽見你’(Katayni)

아이와 같은 호기심과 상상력 그리고 에너지를 담아 노래하는 밴드 Men Envy Children은 두 곡 ‘I Can Make It’과 ‘Katayni’로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아미족인 보컬 Mify Chen은 아미족어가 노래에 들어간다는 사실에 흥분하고, 익숙하지 않았던 언어를 연습하며 음악을 완성했다. 특히 ‘Katayni’는 극 중에서 신을 부르고 희망을 기원하는 장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와주세요'라는 뜻의 가사인 Katayni가 반복되며 염원과 기대를 표현하는 노래이다.

我看不见你 但我知道
雨后的天空放晴 提醒我要好好

당신을 볼 수 없지만, 알고 있어요
비가 온 후에 하늘이 맑다는 것을, 내게 잘 일깨워주세요

 

Writer

글과 이미지가 만드는 아름다움을 좋아합니다. 
마음이 닿는 세상의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줄라이 브런치
줄라이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