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는 최근 기사에서 12부작 미니시리즈 <I May Destroy You>(2020)을 ‘TV의 미래’라 극찬하며, 21세기를 정의하는 25편의 드라마 중 하나로 포함했다. 이 25편의 리스트에는 <로스트>, <그레이 아나토미>, <핸드 메이즈 테일>, <왕좌의 게임>, <블랙 미러> 등 역대 반열에 오를 만한 작품들이 올라와 있었는데, <I May Destroy You>는 그 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제작된 작품으로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2020년 6월부터 BBC One와 HBO에서 방영된 이 작품은 로튼토마토 98%의 극찬을 받은 후, 프라임타임 에미 미니시리즈 각본상, 영국 아카데미 2관왕,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 2관왕, 고담 어워즈, 피바디 어워즈 등 미니시리즈에 수여하는 대부분 상을 휩쓸었다. 뉴욕 타임즈는 “불안한 세상에 가장 완벽한 드라마”라 묘사한 이 드라마의 어떤 점이 화제였는지 알아보았다.

 

배우, 작가, 감독의 1인3역

대학 졸업작품이었던 소재를 TV 시트콤으로 확장하여 연재한 <Chewing Gum>(2015~2017)로 BAFTA상을 받으며 일약 스타급으로 급부상한 미케일라 코얼(Michaela Coel)의 자전적 작품이다. 그는 2018년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의 강연에 참가하여 자신이 <Chewing Gum>을 집필하던 시기에 성폭행 당했던 경험담을 밝히며 이 사건을 모티브로 새로운 드라마를 집필할 것이라 했다. 그는 12편으로 구성된 미니시리즈를 직접 쓰고 감독을 맡았으며, 주인공 ‘아라벨라’을 연기하였다. 가수로도 활동하며 두 장의 앨범을 낸 바 있는 만능 연예인 미케일라 코얼이 궁금하다면, 넷플릭스에 서비스 중인 영화 <그토록 오랫동안>(Been So Long, 2018)과 드라마 <블랙 어스 라이징>(2018)에서 그의 연기를 볼 수 있다.

미니시리즈 <I May Destroy You>(2020) 예고편

 

블랙 브리티시로 살아가는 방식

드라마의 주인공인 신참 작가 ‘아라벨라’는 마감에 쫓기며 두 번째 책을 집필하던 중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클럽에 갔다가 필름이 끊길 정도로 술에 취했다. 다음 날 술이 깨어 기억이 조금씩 돌아오면서 자신이 소위 약물을 이용한 DFSA(Drug-facilitated Sexual Assaults)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를 중심으로 친구, 동료, 경찰, 관련 단체와 함께 사건을 처리하고 치유해 나가는 과정이 드라마의 뼈대를 이루지만, 미투(Me Too) 보다는 전반적으로 작가가 영국에서 마이너리티(Minority)로 살아오면서 실제로 경험했던 차별적 환경을 고발하는 드라마라 하는 편이 정확하다. 돈이 없어 쪼들리는 중산층에, 블랙 그리고 여성으로 살아가는 불평등과 불공정을 세밀하게 묘사하였다.

73회 에미상 미니시리즈 극본상을 받은 미케일라 코얼

 

인종, 젠더, 섹스에 관한 담론

미케일라 코얼은 처음에 이 드라마에 100만 달러를 선투자하겠다는 넷플릭스의 제안을 받았으나, 자신이 창의적 전권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그는 인종, 아트, 젠더 그리고 성적인 관계를 포함하여 시대상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대담하게 펼쳤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서로 동의한 관계라고 볼 것인지, 어느 선을 넘어서면 경계를 넘어 비난받을 행동인지, 불공정한 관계에서 형성된 트라우마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지, 이런 세밀한 부분까지 우리 시대의 담론을 펼쳐 나간다. 마지막에는 자신을 공격했던 성폭행 범인과 마주쳤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세 가지 경우를 보여준다. 그는 이 중 한 가지를 선택하여 집필 중인 <January 22nd>에 담을 것이라 전해졌다.

미니시리즈 <I May Destroy You>의 하이라이트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