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상쾌해서 틈만 나면 산책을 한다. 한참을 걸어도 힘들기보다 보드랍고 연한 기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동네 곳곳에서 바스락거리며 자라나는 봄의 태동이 느껴진다. 봄날에는 몸과 마음이 동해서 사랑에 관한 책으로 자꾸만 손이 간다. 난 서가에서 몸을 비비 꼬다가 세 권의 책을 뽑아 들었다. 각기 다른 방식의 사랑에 관해 얘기하는 책을 소개한다.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2014)

<정확한 사랑의 실험>은 영화 매거진 <씨네21>에 발표했던 ‘신형철의 스토리-텔링’ 연재 글을 비롯한 신형철 작가가 각종 매체에 기고한 글을 모아서 만든 영화산문집이다. 제목에 영화라는 말이 붙지 않았지만 그건 그것대로 어울린다. 영화에 관해 말하고 있지만 실은 영화를 기틀 삼아 온갖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깊게 파기 위해 넓기 파기 시작했다는 스피노자의 전언처럼 그는 영화를 정확하게 말하기 위해서 온갖 레퍼런스를 가져온다. 그는 결과적으로 영화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측정 가능한 형태로 증명해냈다. 4부로 엮인 챕터의 제목은 각각 ‘사랑의 논리’ ‘욕망의 병리’ ‘윤리와 사회’ ‘성장과 의미’인데 신형철 작가는 이 네 가지 주제 속에 자신이 평소 이야기를 사랑하는 방식을 포개 넣었다.

신형철 작가는 책 서문과 출간을 앞두고 한 인터뷰를 읽어보면 영화에 관한 글을 쓴다는 부담이 상당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메모지를 들고 영화를 대여섯 번씩 돌려보면서 글을 썼다고 한다. “영화라는 매체의 문법을 잘 모르는 내가 감히 영화평론을 쓸 수는 없다. 영화를 일종의 활동 서사로 간주하고, 문학평론가로서 물을 수 있는 것만 겨우 물어보려 한다.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하고.” 다소 겸손해 보이는 이 말속에는 그 누구보다 정확하게 이야기를 통과했다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그는 자신의 글쓰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다른 문장으로 대체될 수 없는 문장”을 지향한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마치 겨울 스웨터처럼 씨실과 날실이 서로를 위해 복무하는 촘촘한 밀도의 글을 써냈다.

신형철의 글을 재밌게 읽는 팁이 있다면, 영화든 소설이든 독자가 먼저 글을 써보고 접하는 것이다. 신형철은 서사를 앞에 두고 고유한 해석을 꺼내놓는 사람이기에, 내가 가진 해석과 비교해서 볼 때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이야기가 각자의 눈을 통해 얼마나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는지 지켜보고 있노라면 예술에서 있어서 창작과 비평이 얼마나 긴요한 관계를 지니는지 알 수 있다. 그만큼 신형철의 영화 관람은 영화와 상호 소통하는 방식으로서 어느 한쪽에만 일방적이지 않다. 마치 영화 속 캐릭터와 인터뷰라도 하는 것처럼 날카로운 질문과 잠시 호흡을 고르고 뱉은 신중한 답변이 쉴 새 없이 오가는 형상이다. 어쩌면 영화를 사랑한다는 것은 창작자가 만든 이야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통과하는 것이 아닐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2009)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다. 늦은 밤 아무도 없는 버스정류장에서 연인은 꼭 붙어 있다. 여자는 지독하게 못 생겼고 남자는 지나칠만큼 평범한 외모다. 남자는 누구도 읽지 않는 소설을 쓰는 작가고, 여자는 변변찮은 곳에서 일하면서 더 나은 장래를 꿈꾼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지만, 문제가 있다. 바깥 타자들. 모멸감을 자아내는 날카로운 눈초리가 고개를 숙인 두 사람을 잡아 끈다. 세상은 첨예한 괄시를 대놓고 드러낸다. 다정한 연인은 서로만 좋으면 다인 줄 알았건만 바깥에 선 이들로 인해 모진 시간을 겪는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화자는 연인의 친구 ‘요한’이다.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는 두 사람을 잇는 메신저이자, 독자와 유사 선상에서 목소리를 내는 서술자다. 그는 요즘 연애 풍속도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누구나 사랑을 원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까닭은 서로 불 꺼진 모습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은 어떤가? 그의 말에 따르면 현실 세계의 사랑은 상상력에 기인하고, 연애의 시작은 이해가 아닌 오해에 불과하다. 나를 알아본 사람을 나조차 믿지 못한 채 만나고, 오직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상대를 착각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상대의 실체를 마주하면 때늦은 실망을 느낀다. 내가 당신의 모든 걸 이해한다는 오해, 그가 더없이 아름답다는 오해, 그는 변하지 않을 거란 오해, 그에게 내가 필요할 거란 오해, 그가 지금 외로울 거란 오해, 그런 그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오해. 냉소적이기 이를 데 없는 말이지만 연인마저 계산적으로 굴러가는 조악한 관계는 내가 사는 세계와 먼 얘기로 느껴지지 않는다. 요한의 오해를 비웃듯이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는 연인은 과연 계속 그들의 사랑을 이어갈 수 있을까?

플라톤에 따르면 사랑에 빠진 사람은 상대의 ‘이데아’를 본다. 한참은 부족한 그의 얼굴에서도 모나리자를 그려낼 수 있다. 하지만 이데아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벗겨져 간다. 누추한 삶이 반복되면서 환영은 사라지고, 오직 상상력만 유효한 시간이 다가온다. 그때부턴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달리 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불멸한 사랑을 꿈꾸는 것은 사랑의 착각만큼 즐거움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을 냉소하는 요한은 역설적으로 자신이 쓴 소설에서는 현실에서는 이뤄지지 못한 두 사람을 맺어준다. 그에게도 사랑은 소설 속에서나 이뤄지는 꿈같은 일인 것이다.

여러 해 전 <미녀는 괴로워>란 영화가 크게 히트했다. 영화는 버젓이 뚱뚱한 여성을 수술대에 올려서 번지르르한 미녀로 탈바꿈한다. 잘 빠진 몸매에 조각 같은 얼굴을 탑재한 미녀는 단숨에 모든 이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영화가 구사하는 유머의 대부분은 외모 비하에 있다. 삼겹살에서 비계를 떼고 먹으라는 통박이 예고편으로 쓰였다. 늘 그렇듯 영화를 보면 미녀 노릇이야말로 짜릿해 보였다. 살찐 이를 구박하면 구박할수록 더 그렇다. 객석에 앉은 관객들 역시 우위에 선 마음으로 웃는다. 위선보다는 위악이 먹히는 시대 아닌가. 숨죽이고 눈을 흘기던 이들이 이젠 대놓고 누군가의 외모를 희화화 한다. 이 도시에서 박민규 작가가 만들어낸 ‘파반느’의 사랑은 자취를 감췄다. 부끄러워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이 가득해서 다소 답답해 보이는 이 소설은 시대가 더 센 말을 선호할수록 빛이 나는 이야기다. 문학에서마저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이 한물갔다는 소리가 나오는 요즘 찾아보기 좋은 느리고 여린 연애담이다.

세상의 멸시를 견디다 못해 헤어진 두 사람은 한국을 떠나서야 비로소 행복을 찾아간다. 허탈하지만 더는 견딜 수 없다는 낙담을 어쩌지 못한다. 소설의 결말 부에는 독일에서 재회한 두 사람이 더는 고통받지 않고 행복을 찾아 나서는 모습이 꿈결처럼 그려진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세상에 나온 지 십 년이 훌쩍 넘었고 이제 세상은 좀 더 나아지고 있다. 얼굴이 예쁘면 모든 게 형통하다는 호언이 기정사실이 된 지 오래지만, 그런 모진 말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함께 들려온다. 못생긴 여자와 못생긴 여자를 사랑했던 한 남자는 다시 이 도시에서 발붙이고 살 수 있을까?

제목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알다시피 프랑스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피아노곡이다. 라벨은 이 무곡에 대해 '옛 스페인의 궁전에서 작은 왕녀가 춤을 췄을것 같은 파반느에 대한 기억'이라고 말하였다. 소설 속 여자가 아주 좋아해서 남자가 선물한 음반이기도 하다. 또한,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만난 날 내내 들었던 음악이기도 하다.

 

콜린 클라크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1995)

1956년 런던 히스로 공항에 마릴린 먼로가 도착한다. 일순 번갯불 같은 섬광이 지나가고 흰 드레스를 입은 세기의 섹스 심벌은 손을 흔들며 유유히 공항을 빠져나간다. 먼로가 영국에 이른 이유는 당대의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가 연출하는 <왕자와 무희>에 출연하기 위해서다. 벅찬 기대를 품고 촬영장에 도착한 먼로는 밤잠을 설쳐가며 촬영에 임한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막상 촬영이 시작되자 먼로는 콧대 높은 올리비에와 사사건건 부딪친다. 기술적인 영국식 연기론을 가진 올리비에는 메소드 연기를 한다며 까탈스럽게 구는 먼로를 고까워한다. 원체 섬세하고 여린 성격을 가진 먼로는 촬영장의 숨 막히는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빈번히 스케줄을 어긴다. 그때마다 올리비에는 갈등을 수습하기 위해서 조감독이자 비서인 ‘콜린’을 투입하지만, 콜린은 오히려 먼로와 사랑에 빠져서 조감독을 때려치우고 그녀와 여행을 떠난다. 콜린은 먼로와 눈부신 영국 해변을 거닐며 평생 잊어버리기 어려운 일주일간의 추억을 만든다.

영국 작가 ‘콜린 클락’은 자신의 책 <My Week With Marilyn>에 스무 살 중반 영화 스태프로 일하던 시절을 술회하며 먼로와 보낸 일주일을 꺼내 놓는다. 콜린은 고된 촬영에 스트레스를 받던 먼로가 손가락을 한 번 까딱했을 뿐인데 직업도 연인도 다 버리고 그녀에게 뛰어든다. 심지어 먼로를 따라 미국까지 가겠다며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당시 사귀던 약혼녀를 배신하고 영화 조감독까지 그만두면서까지 먼로의 품으로 파고드는 콜린의 모습은 마치 주술에 걸린 숙주처럼 보일 정도다. 당시 마릴린 먼로는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유명한 극작가 '아서 밀러'와의 세 번째 결혼이 파탄 난 상태였다. 아서 밀러는 대놓고 먼로가 무식하다며 무시했고 먼로는 큰 상처를 받고 두문불출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배우로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건강마저 쇠약해진 상태였다. 당시 촬영장에 연기 코치와 동행했는데 이런 모습도 고고한 영국 스태프들의 비웃음을 자아냈다. 무엇보다 마릴린 먼로는 밤마다 찾아오는 외로움을 견디기 어려워한 것 같다. 먼로는 낯선 타국에서 일주일 정도만 자신과 어울려줄 다정한 청년이 필요했을 것이다. 작가 콜린 클락은 모든 걸 잃을 각오를 하고 기꺼이 어깻죽지를 내줬다. 먼로는 다정한 위로를 건네 줄 단기 애인으로 콜린을 낙점했다. 책에서 콜린은 자신이 버려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덧붙인다. 그야말로 무차별적 유혹에 저항할 수 없었다. 어쩌면 사랑은 그런 불가항력적인 측면에서 신비로운 걸지도 모른다. 콜린은 자서전에 당당한 어조로 적었다. 먼로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라면 뭐든 다 했을 거라고. 환갑이 다 된 지금도 먼로와 보낸 일주일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추억이라고. 이 흥미로운 일화는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져 잠든 망자를 다시 스크린에 소환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금발의 마릴린 먼로를 매혹적인 배우 미셸 윌리엄스가 연기했다.

마릴린 먼로는 보육원에서 자랐다. 학교에서도 늘 외톨이였다. 불우한 가정과 양부모의 폭력은 그녀를 옥좼다. 그녀의 인생이 바뀐 건 열세 살 무렵 꼭 끼는 스웨터를 입고 난 후였다. 하루아침에 남자들의 관심이 쏠리자 인생은 굴곡진 비탈로 휩쓸려갔다. 먼로가 동네를 지나가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시선을 모았다. 난폭하고 불우한 집을 떠나 성공하고 싶었던 먼로는 할리우드에서 배우가 되기로 한다. 자신이 가진 성적인 매력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시험하고 싶었다. 그리고 육감적인 매력을 십분 이용해서 성공 가도에 진입한다. 하지만 그런 성공에도 먼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긴 어려웠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카멜롯>(Camelot)엔 이런 대목이 있다. "잊지 마세요. 한때 그곳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한순간의 청명한 빛이 비칠 때. ‘카멜롯’이란 곳이 있었답니다." 먼로는 어느 곳엔가는 존재할지 모르는 청명한 빛을 찾았지만, 결코 카멜롯에 이르지는 못했다.

책의 콜린 클락은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내놓으라 하는 교육기관에서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었다. 그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관한 확신이 있었고, 마릴린을 만나기 전까지 모든 걸 확신에 가깝게 대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먼로가 역치를 넘어서는 매력을 발산하자 더는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 강력한 매력이 육박해 올 때 이성은 무력해진다. 더군다나 콜란 클락은 특별한 취향을 갖고 살아온 사람이 아니었다. 누구나 옳다고 가리키는 길을 열심히 따라간 착한 청년이었다. 마릴린 먼로와 만나 사랑의 도피를 떠난 콜린은 생의 더 없는 청명의 빛을 발견했음이 틀림없다. 사랑의 유혹이란 마치 다시는 존재하지 않을 캐멀롯처럼 한 사람에게 다시는 없을 순간을 선사했다.

 

메인 이미지 영화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 스틸

 

Writer

영화와 책, 그리고 예술 전반에 대한 글을 쓴다. 지은 책으로는 <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 <보내지 않을 편지>가 있다. 염세주의자가 되고 싶으나 하루 세끼 먹을 때마다 행복하다.
박민진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