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에 국내 개봉한 영화 <프랑스>(2021)는 레아 세이두의 출연으로 많은 관객의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프랑스>의 감독 브루노 뒤몽은 주연 배우 레아 세이두 만큼이나 주목해야 할 인물이다. 칸 영화제에서 <휴머니티>(1999)와 <플랑드르>(2006)로 심사위원대상을 두 번 받았고, 그의 작품 중 절반 이상은 프랑스의 영화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매해 선정하는 베스트 영화 목록에 뽑힐 만큼 평단의 지지를 받는 감독이다. 다만 관객들에게 그의 영화는 평이 극단적으로 갈리는데, 세상이 쉬쉬하는 불편한 진실을 집요하게 응시하기 때문일 거다 . 도발적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브루노 뒤몽의 영화를 살펴보자.

브루노 뒤몽 감독, 이미지 출처 – imdb

 

<휴머니티>

프랑스의 한 마을에서 어린 소녀가 성폭행당한 뒤 살해당한다. 형사 ‘파라옹’(엠마뉴엘 쇼떼)은 사건을 맡아서 수사를 시작한다. 파라옹은 옆집에 사는 ‘도미노’(세브린 카닐)에게 호감이 있지만, 도미노에게는 버스 기사로 일하는 남자친구 ‘조셉’(필립 투리에)이 있다. 셋은 근처 바닷가로 놀러 가는 등 함께 어울려 다닐 때가 많다. 도미노는 자신이 일하는 공장에서 사람들과 파업을 시도하고, 파라옹은 수사를 위해 정신병원과 버스 회사 등을 방문한다.

<휴머니티>(1999)는 브루노 뒤몽의 두 번째 연출작으로,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후에 <플랑드르>(2006)로 칸 영화제에서 다시 심사위원대상을 받고, 최근작 <프랑스>(2021)도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는 등, 브루노 뒤몽은 칸 영화제와 인연이 깊은 감독 중 한 명이다. <휴머니티>는 브루노 뒤몽이 데뷔 후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보여주는 ‘휴머니티’를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이다. 브루노 뒤몽이 바라본 인간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브루노 뒤몽은 줄리엣 비노쉬가 출연한 <까미유 끌로델>(2013), <슬랙 베이: 바닷가 마을의 비밀>(2016), 레아 세이두가 출연한 <프랑스>(2021)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연기 경험이 없는 이들을 캐스팅해왔다. <휴머니티>의 주연 배우 엠마뉴엘 쇼떼와 세브린 카닐은 연기 경험 없이 데뷔작으로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브루노 뒤몽은 화려한 배우의 아우라를 가진 이들이 아닌, 풍경과 조화를 이룰 만한 인물을 극에 출연시킨다. 그 덕분에 브루노 뒤몽의 영화는 피부로 느껴질 만큼 생생하고, 인간의 나약함과 추악함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브루노 뒤몽은 인간에 대해 끝없이 회의적으로 생각하면서도, 그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인간은 인간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게, 인간의 가장 절망적인 동시에 희망적인 부분 아닐까?

 

<까미유 끌로델>

‘까미유 끌로델’(줄리엣 비노쉬)은 가족들과 떨어진 채,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해 지내고 있다. 환자들의 괴성이 난무하는 이곳에서 계속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까미유 끌로델은 매일 눈물을 흘리고 좌절한다.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기도를 하고, 편지를 쓰는 것 이외에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이곳에서, 까미유 끌로델은 동생 ‘폴 끌로델’(장 뤽 뱅상)의 면회 소식을 듣고 기대를 품는다.

<까미유 끌로델>(2013)은 프랑스의 조각가이자 오귀스트 로댕의 모델 겸 연인으로 알려진 까미유 끌로델이 정신병원에서 보낸 4일의 시간을 다룬 작품이다. 까미유 끌로델의 예술 세계나 로댕과 관련된 이야기는 일절 묘사하지 않고, 오로지 정신병원에서 보낸 시간에만 집중한다. 연기 경험이 없는 이들을 캐스팅해서 작업하는 브루노 뒤몽답게,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배우가 아닌 실제 환자들이다. 브루노 뒤몽이 이름이 알려진 배우와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작품으로, 줄리엣 비노쉬가 까미유 끌로델을 연기했다.

까미유 끌로델의 삶을 영화화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던 시기에 집중할 감독은 아마 브루노 뒤몽 뿐일 거다. <까미유 끌로델>에는 예술가 전기 영화에 등장할 법한 극적인 묘사도 없고, 까미유 끌로델의 작품이나 예술관도 보여주지 않는다. 브루노 뒤몽은 까미유 끌로델이 세상에 크게 알려진 시절 대신 가장 힘들어하던 시기를 조명한다. 재능이 축복이자 저주가 된 까미유 끌로델의 삶에서, 브루노 뒤몽이 보여준 까미유 끌로델의 일상은 건조한 연출만큼이나 더 비극적으로 느껴진다. 브루노 뒤몽이 왜 줄리엣 비노쉬와 작업을 하게 되었는지 단숨에 느껴질 만큼, 줄리엣 비노쉬의 표정을 통해 까미유 끌로델의 쓸쓸한 마음과 마주한다.

 

<슬랙 베이: 바닷가 마을의 비밀>

1910년의 프랑스, ‘앙드레 반 페테겜’(파브리스 루치니)과 ‘이사벨 반 페테겜’(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 부부가 두 딸과 조카를 데리고 해안가 별장에 방문하고, 앙드레의 누나 ‘오드’(줄리엣 비노쉬), 이사벨의 동생 ‘크리스찬’(장 뤽 뱅상)까지 온 가족이 다 모인다. 이들 가운데 오드의 자녀 ‘빌리’(라프)는 마을에서 일하는 ‘마루트’(브랜든 라비에빌)와 사랑에 빠진다. 한편, 언젠가부터 마을에 방문하는 외지인들이 실종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경찰 ‘마생’(디디에 데프레)과 ‘말포이’(시릴 리고)는 사건을 수사한다.

브루노 뒤몽에게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은 프랑스에서 4부작 미니시리즈로 공개된 <릴 퀸퀸>(2014)이다. 건조하고 절제된 전작들과 달리, 많은 인물이 등장해서 과장된 움직임을 보여주는 블랙코미디다. <슬랙 베이: 바닷가 마을의 비밀>(2016)은 <릴 퀸퀸>의 스타일을 이어 나가는 작품이다. <까미유 끌로델>에 출연했던 줄리엣 비노쉬가 다시 한번 브루노 뒤몽과 호흡을 맞추고, 에릭 로메르의 작품 다수와 <인 더 하우스>(2012), <사랑의 법정>(2014) 등에 출연한 파브리스 루치니, <5x2>(2004), <휴먼 캐피탈>(2013) 등의 작품에 배우로 참여하고 <여배우들>(2007), <어 캐슬 인 이탈리아>(2013) 등에서 연출과 연기를 겸한 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도 출연했다.

<슬랙 베이: 바닷가 마을의 비밀>이 그려낸 세계는 요지경이다. 갑자기 사람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인육을 먹는 이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기묘한 풍경 속에서도 가장 우스운 이들은 앙드레와 오드를 비롯한 상류층 인물들이다. 자신들이 믿고 싶은 대로 세상을 보고 마을 사람들을 멋대로 평가하는 걸 당연히 여기는 이들은 <슬랙 베이: 바닷가 마을의 비밀>이 풍자하고자 하는 대상처럼 보인다.

한 감독의 필모그래피 안에 전혀 다른 스타일의 영화가 공존한다는 건, 관객 입장에서 큰 선물처럼 느껴진다. 브루노 뒤몽은 앞으로 연출에 있어서 <휴머니티>의 절제와 <슬랙 베이: 바닷가 마을의 비밀>의 과장 중 어떤 방식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될까? 어떤 방식이 되었듯, 그 중심에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비판이 있을 거다.

 

<프랑스>

‘프랑스’(레아 세이두)는 방송 기자로, 단독으로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전국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취재 시에는 좋은 그림을 만들어내고자 자신이 직접 현장을 연출하고, 프랑스의 인기는 점점 높아진다. 어느 날 프랑스는 운전 중에 오토바이를 탄 남성을 치게 되고,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하는 선택들로 인해 혼란을 느낀다.

관객들에게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를 묻는다면, 어렵지 않게 ‘레아 세이두’라는 답을 들을 수 있을 거다. ‘미션 임파서블’과 ‘007’ 시리즈에 모두 출연하는 걸 비롯해, 요르고스 란티모스, 웨스 앤더슨, 자비에 돌란, 토마스 빈터베르그 등 국적에 상관없이 다양한 감독들과 호흡을 맞추며 스펙트럼을 확장 중이다. 레아 세이두와 브루노 뒤몽의 만남이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낼지 예상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둘이 만들어낸 <프랑스>(2021)는 미디어를 중심으로 프랑스 사회를 비판한다.

<프랑스>에서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은 프랑스가 눈으로 방백을 하듯, 관객의 눈 역할을 하는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는 순간이다. 그 순간 관객들은 프랑스를 촬영하는 이들 중 한 명이 된 기분을 느끼며, 영화와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세상의 이슈를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자이자 취재원으로 전하던 프랑스는, 교통사고를 계기로 자신이 이슈가 된다. 관객의 눈과 마찬가지로, 많은 미디어가 프랑스를 지켜본다. 프랑스의 그 어떤 행동도 자신의 의도대로 세상에 전달되지 않는다. 프랑스는 미디어를 통해 부와 명성을 얻었지만, 미디어는 프랑스를 상승시킨 것만큼이나 단숨에 추락시킬 수 있다. 프랑스는 카메라 앞에서나 뒤에서나 자주 운다. 어디에서나 자신을 보는 세상에서, 프랑스의 눈물은 진심이었을까? 선한 마음조차도 의심부터 들게 만드는 미디어 안에서, ‘프랑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개인에게, 국가에게 하게 되는 질문.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