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50달러를 지닌 채 고향 피츠버그에서 뉴욕으로 건너가 팝 아트 영역을 개척한 앤디 워홀(Andy Warhol)은, 그의 상업적인 성공신화 뿐만 아니라 사치스러운 생활 방식으로 유명했다. 얼마 전 그의 대표작 ‘마릴린 먼로 초상화’가 경매에 나와 시작가가 2억 달러(약 2,400억 원)로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을 만큼 대단한 예술가이기도 했지만, 사생활 측면에서도 언더그라운드 예술가나 연예계와 패션계의 명사들과 어울리며 뉴욕의 문화와 사교계를 대표하던 인물이었다. 최근 넷플릭스에 소개된 다큐 시리즈 6부작 <앤디 워홀 일기>(Andy Warhol Diaries)을 보면 그의 내밀한 인생과 내면의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다. 앤디 워홀 자신이 약 10여 년에 걸쳐 직접 구술한 내용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진실에 가깝고 그만큼 가치가 있다.

넷플릭스 다큐 시리즈 <앤디 워홀 일기> 예고편

앤디 워홀은 1976년 가을 무렵부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친분이 있던 에디터 팻 해킷(Pat Hackett)과 매일 아침 9시경 전화로 자신이 구술한 일기를 남기기 시작했다. 당시 IRS(미국 국세청)의 감사를 받던 그가 세금 신고를 위해 자신의 일과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지만, 이런 대화가 10여 년 동안 계속되면서 자신의 소소한 일상이나 진솔한 감정이 방대한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워홀이 죽은 지 2년이 지난 1989년, 이를 정리한 책 <Andy Warhol Diaries>가 출간되었는데, 그가 직접 구술한 일기 형식으로 정리되어 마치 그가 이야기하듯 생생한 내용을 담게 되었다. 여기에다 각종 사진과 영상,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를 엮어 6시간 반 길이의 다큐멘터리 시리즈가 나오게 된 것이다.

CNN의 <Andy Warhol Diaries> 저자 팻 해킷 인터뷰

여기에는 AI 기술로 가공된 앤디 워홀의 가상 목소리가 자신의 일기를 직접 읽는다. 이 방식에 관한 윤리적 논란이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았지만, 그의 감정이 그대로 실려져 그의 사생활을 실감나게 들여다볼 수 있다. 그가 생전에 어울리고 교류하던 수많은 인사들의 인터뷰와 수많은 사진과 동영상이 어우러져 마치 그가 직접 집필한 자서전을 보는 것 같다. 여기에는 그의 동성 연인이었던 제드 존슨(Jed Johnson), 존 굴드(Jon Gould)와의 관계가 자세하게 묘사되고, 그와 가까운 동료였던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Jean Michael Basquiat), 키스 헤링(Keith Haring), 글렌 라이곤(Glenn Ligon) 같은 거장과의 사적인 관계를 엿볼 수도 있다. 로튼토마토는 이 다큐 시리즈에 100%의 호평을 내렸다.

오프닝 시퀀스에 나오는 냇 킹 콜의 ‘Nature Boy’(1947)

하지만 이 시리즈는 그의 인생의 고독함과 예술의 공허함을 진하게 담고 있다. 동영상에 비친 그의 모습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 화려한 일상 뒤의 외로움, 누군가에게 주목받고 싶어 하는 욕구와 스트레스가 잘 드러난다. 오프닝 시퀀스의 타이틀송으로 채택된 ‘Nature Boy’의 한 대목이 앤디 워홀의 생애를 함축적으로 표현해 주는 것 같다.

“The Greatest thing you’ll ever learn is just to love and be loved in return” (인생에서 배울 가장 위대한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