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행을 줍고 있을게요. 사랑이 자라나고 있으니까요.” – ‘서울 사이보그’ 중에서

‘도대체 무슨 뜻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이내 그의 상상에 직접 접어들며 가사 한 단어, 한 단어의 정밀한 의미가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빠르고 각박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분명 동화는 너무 순진하고, 에세이는 왠지 뻔하다. 소설 속 현실은 잔인하고, 시는 난해한 말투성이다. 다행히 유라(youra)의 노래는 일상과 판타지의 미묘한 경계 위에 서 있다.

 

유라의 상상

사운드클라우드와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음악을 차근차근 알리다 불현듯 015B의 피처링 제안을 받아 세상에 나온 유라. 맨 처음 015B와 함께한 노래 ‘나의 머리는 녹색’(2018)를 통해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는 잡념을 머리가 녹색 꽃이 되는 상상과 연결 지을 때부터 일찌감치 남달랐던 그의 목소리와 가사를 엿볼 수 있었다.

“난 정신이 이리저리 왔다갔다 해. 나의 머리는 녹색 꽃이 되는 상상하네. 자주 바뀌는 날씨에 위험하는 우회 파일럿. 밤새 TV를 틀어 같은 어둠을 달고 잠을 피해 보려다 나의 떠돌이 잡념.” – ‘나의 머리는 녹색’ 중에서

이후에도 유라의 노래에 등장한 단어와 이야기는 대부분 거창한 상상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서 건져 올린 것들이었다. 세탁소에 맡긴 외투 속에서(‘세탁소’), 깜빡거리는 가로등 아래서(‘깜빡 (Feat. 카더가든)’) 발견하거나, 수영을 하다가(‘수영해’(2019)), 잠에 빠져 할머니를 추억하다가(‘More (Feat. 기리보이)’(2020)) 떠올린 것들이다. 그래서 왠지 곱씹게 된다. 나도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상상에 귀를 기울이다가 알 듯 모를 듯한 곳으로 튀어나가는 가사가 이내 머리를 맴돈다.

 

유라의 노래

“서울 사이보그 아마도 내 음악은 물 없이 넘기는 쓴 약 Narrative” – ‘서울 사이보그’ 중에서

유라가 지난해 발표한 ‘서울 사이보그(Seoul Cyborg)’는 유라를 쏙 닮은 일러스트의 분홍빛 주인공이 하늘인지 바다인지 모를 배경을 달리는 앨범 아트워크부터 시선을 끈다. 그는 이 노래를 수록한 싱글 <Pacemaker>가 ‘정착’이라는 단어를 확실하게 닫기 위한 실랑이 중 미완성의 기로 안에서 떼어낸 조각이라 설명한다. 여전히 알쏭달쏭한 조각이 담아낸 달리기 중에는 (네 잎 클로버 소녀의 보물인) “아주 작은 털 뭉치의 네발이 달려온다.”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와 유라의 목소리가 원곡보다 훨씬 가깝게 그리고 처량하게 들리는 ‘서울 사이보그’의 배민라이브 무대는 다산 정약용의 생가가 내려다 보이는 남양주 능내리의 한 한옥에서 펼쳐졌다. 고즈넉한 한옥 양식 처마 위로 비치는 햇살과 리듬에 맞춰 절도 있게 흔들리는 김영인의 무용이 이 노래의 독특한 분위기를 심화한다.

평소처럼 흘러가는 보통의 하루 속에서 그 모든 날을 관통하는 보편의 진리를 건져 올리는 게 철학이고, 평범한 말들 사이에서 그럴듯한 의미를 가려내는 게 수사라면, 확고한 현실 속에서 색다른 상상력과 감성을 피워내는 유라의 음악은 마치 마술과 같다. 서울의 과거와 ‘서울 사이보그’가 바라는 희망이 교차하는 기묘한 꿈 같은 무대 사이로 선명하면서도 몽환적인 유라의 보컬이 안착한다.

‘서울 사이보그’ 배민라이브

 

상상이 노래가 되는 순간

“미미하게 사라져. 미미는 왜 날 떠났어.” – ‘미미’ 중에서

일상과 상상을 감각적으로 이어 붙이는 유라의 별난 접착제는 그의 EP <GAUSSIAN>(2021)에서도 강렬한 개성을 발휘한 바 있다. EP의 타이틀곡 ‘미미(MIMI)’ 가사에 등장하는 ‘미미’란 문득 떠올라 왠지 그 존재감을 계속 강렬하게 드리우는 그리움의 대상이다. 평소 단지 예쁜 어감 때문에 다른 노래와 매체 속에서 ‘보잘것없이 아주 작다’는 본래 뜻 ‘미미하다(微微-)’ 대신 고유명사로 더 자주 등장했던 ‘미미’의 중의성을 유라의 상상력이 포착한 순간이다.

앞서 공개한 다른 인터뷰를 통해 어릴 적부터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상상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려 했고” “SF 판타지에 나올 법한 것을 많이 공상했다.”고 밝힌 유라. 그는 지금도 점차 자라는 생각과 상상을 통해 현실의 꿈을 조금 더 단단하게 다지는 중이다. 이번 배민라이브 촬영 후 남긴 아래 소감에서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의 노래와 일상을 대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미미’ 배민라이브

 

Q1. 배민 라이브 촬영하게 된 소감은요?

실제로 배민라이브 많이 봤거든요! 솔직하고 순수한 느낌이라서 좋았습니다. 저도 최대한 날것의 무드로 노래해야겠다 싶었어요. 어쿠스틱 기타 반주에 나무도 있고, 야외에 마당도 있고 한국적인 분위기가 딱 좋을 것 같았어요. 또 일부러 별다른 연습도 안 했어요. 상황에 맞춰서 어떻게 음악이 변할지 궁금해서요. 그런데 너무 안 일했던 거죠. 야외 촬영 여건상 바람이 불고 많이 추워서 큰일났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도리어 좀 시간이 흐르고는 생각이 바뀌었어요. 정취도 좋고, 마음만큼은 편안해서 노래하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어요. 바람 따라 나무들이 흔들리고 새들이 울고 하니까 나도 같이 앉아서 노래하는 게 참 보람되고 행복했습니다. 그날 고생하신 많은 분들 감사합니다.

 

Q2. 작업/음악 준비하시면서 자주 시켜드시는 가게/메뉴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요즘 죽을 먹으면 속이 편안해지는 것 같아서 자주 먹었어요. 평소에는 쌈을 자주 먹고요. 다시마나 두부포 안에 야채나 고기들 뭉쳐서 돌돌 말려 있는 거요. 식감이 좋고 깔끔해서 정말 좋아해요.

 

Q3. 배민라이브 구독자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제 곧 봄이 오려나봐요.
건강 꼭 조심하시고 제 음악이 작은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배민라이브는 숨은 음악 맛집을 찾아 배달하는 배달의민족의 음악 콘텐츠입니다. 유튜브 채널에서 매달 새로운 아티스트의 라이브 영상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