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EW 로고, 이미지 출처 – ‘AEW’

당신이 프로레슬링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아마 WWE를 통해 프로레슬링을 접했을 것이다. WWE는 세계 최대 규모의 프로레슬링 단체로 오랜 기간 동안 업계의 정점으로 군림해온, 가장 널리 대중에게 알려진 프로레슬링 단체다. 그간 이렇다 할 경쟁자 없이 WWE가 독식해오던 이 고이고 고인 프로레슬링 판에 최근 강력한 도전자가 나타났다. AEW(All Elite Wrestling)는 설립과 함께 파란을 일으키며 TV 시청률, 라이브 쇼 티켓 판매 등에서 WWE를 위협하고 있다. AEW의 등장과 함께 WWE의 독점 체제에서 벗어난 프로레슬링 산업은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과연 AEW는 거대 제국인 WWE를 넘어 새로운 에라(Era)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AEW 최고 경영자 토니 칸, 이미지 출처 – 토니 칸 트위터

 

토니 칸

AEW는 코디 로즈, 영 벅스 등 레슬러들이 제작한 ‘ALL IN’이라는 이름의 이벤트에서 시작되었다. 여러 인디 단체들을 거치며 인지도를 높여온 이들은 1만 명 규모의 이벤트를 본인들의 손으로 만들며 새로운 단체 설립의 기초를 닦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WWE에 맞설 수 있게 된 것은 사장인 토니 칸의 역할이 크다. 토니 칸은 파키스탄계 미국인 재벌 2세로 어려서부터 프로레슬링에 깊이 빠져있던 인물이다. 이미 여러 스포츠 팀들을 경영한 이력을 가진 그는 프로레슬링 산업의 가능성을 보았고 ALL IN 이벤트의 주역인 레슬러들과 함께 AEW를 설립한다. 설립과 동시에 파격적인 투자를 보여주며 유명 선수 영입 등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순식간에 올려놓는다. 지금까지 WWE의 시장 독점이 가능했던 것은 WWE가 가진 거대한 자본력 덕분이었다. 경쟁 단체가 생기면 WWE는 그 단체를 자본력으로 눌러버려 흡수해 왔고 프로레슬링 관계자들은 금전적인 이유로 좋든 싫든 WWE와 함께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토니 칸의 거대 자본은 관계자들에게 같은 금액의 연봉과 함께 WWE와 AEW라는 두 단체를 저울질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었다. 또한 토니 칸은 프로레슬링 산업 내 몇 안되는 전문적인 경영 교육을 받은 인물이다. 많은 부분에서 기존 레슬링 산업과는 다른 전문적이고 영리한 경영을 보여준다.

럼버잭 매치, 이미지 출처 – ‘AEW’

 

Home of Pro Wrestling

작년 AEW는 자신들을 소개하며 항상 ‘Home of pro wrestling’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언급했다. 프로레슬링 본연의 재미, 높은 퀄리티의 경기를 보여준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했고 이는 마니아 층에 완벽히 먹혀 들어갔다. 경기의 질은 떨어지고 경기 외적인 각본을 통한 연출에만 집중한다는 불만을 정확히 파악한 것이다. 실제로 AEW의 경기들은 WWE와 비교했을 때 평론가들에게 더 높은 평점을 받고 있다. AEW는 높은 퀄리티의 경기를 만드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이 딱딱하고 진지하기만 한 경기를 만든다는 것은 아니다. 조금은 생소한, 하지만 참신한 ‘기믹’들을 활용해 경기의 재미를 채우는 데 굉장히 능하다. 여기 가오가 정신을 지배한 남자 Orange Cassidy의 경기 하나를 소개한다.

Orange Cassidy vs PAC 경기 영상
Lucha Brothers, 이미지 출처 – ‘AEW’

 

깊어진 매니아 층, 넓어진 시장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메이저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레슬러가 다른 단체에서 경기를 가지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소속 레슬러들을 IP 화 시켜 독점하는 것은 메이저 단체들의 관례였고 해외의 단체 혹은 인디 단체의 출연은 회사 간의 예외적인 동의가 있어야 했다. AEW는 이러한 기존의 관행과는 정 반대로 소속 선수들의 다른 단체의 출연을 막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다른 레슬링 단체와의 교류를 권장한다. AEW는 북미를 넘어 다양한 곳으로 자신들의 시장을 확대하려 하고 이를 위한 발판을 만들고 있다. 일본의 신일본 레슬링, 멕시코의 AAA 등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동맹을 늘려왔다. 다른 단체들과의 협업은 팬들과 선수들 모두에게 굉장한 환영을 받고 있는데 레슬러들은 다양한 곳에서 경기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팬들에게는 상상만 했던 드림 매치를 선사한다. 일본의 누구와 미국의 누구가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 같은 유치하고 재미있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것이다.

Danielson vs Suzuki 경기 영상
Britt Baker vs Riho 경기, 이미지 출처 – ‘AEW’

 

가벼워진 레슬러들

레슬링 산업 전체가 과거의 마초적이고 백인 중심적이었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왔다. WWE 역시 그러한 노력을 해왔지만 아직 그 이미지를 완전히 지우지는 못한 모양새다. 이 틈을 잘 치고 올라온 것이 AEW다. 거구의 빅맨들을 메인 이벤터로 내세우는 대신 재빠르고 다양한 기술을 사용하는 중, 경량급 선수들을 기용한다. 다채로운 개성을 지닌 선수들로 로스터를 채웠고 스테레오타입에 얽매이지 않은 다양한 정체성을 담은 프로모를 하고 있다. 이러한 마케팅은 AEW에게 20~30대의 레슬링 팬들의 큰 지지를 안겨주었다. 또 AEW는 팬들의 피드백에 빠르고 유연하게 반응한다. 이는 티셔츠 디자인 등 머천의 기획에서 빛을 내는데 팬들 사이에 유행되는 밈을 재빠르게 캐치해 상품화한다.

AEW, 이미지 출처 – ‘Forbes

 

새로운 시대, 뉴 에라(Era)

AEW가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고 있지만 그들이 싸워야 되는 경쟁자는 시장을 독점한 거대 기업이다. 각 회사가 가지고 있는 IP의 규모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다르다. 더불어 AEW는 지금의 WWE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진 40년이 넘는 역사와도 싸워야 된다. 자신의 자식, 손주들과 경기장을 찾는 올드팬들을 WWE에서는 종종 찾을 수 있지만 신생 단체인 AEW에서는 찾기 힘들다. 코어 팬의 수와 역사가 너무나도 차이가 나는게 사실. 하지만 프로레슬링이 예전에 비해 더욱 대중에게 알려지고 있고 많은 젊은 팬들이 유입되고 있다는 것은 AEW에게 힘을 실어준다. 훗날 지금을 경계로 프로레슬링의 새로운 에라(Era)가 탄생했다고 평가받을지 아닐지는 이제 AEW와 레슬링 팬들에게 달려있다.

 

Writer

낯선 음악들과 한정판 굿즈 모으는 걸 좋아합니다. 물론 글 쓰는 것도 정말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