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자식을 먼저 보내는 걸 흔히 ‘참척’(慘慽)이라고 한다.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임을 이르는 말이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아들을 사고로 잃은 직후에 쓴 책 <한 말씀만 하소서>에 이런 문장을 적었다. “내가 이 나이까지 겪어본 울음에는, 그 울음이 설사 일생의 반려를 잃은 울음이라 할지라도, 지내 놓고 보면 약간이나마 감미로움이 섞여 있게 마련이었다. (중략) 오직 참척의 고통에만 전혀 감미로움이 섞여 있지 않았다. 구원의 가망이 없는 극형이었다. 끔찍한 일이었다.” 이 책에서 박완서 작가는 깊은 슬픔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실마리를 일에서 찾아냈다고 적었다. 다시 말해 작가로서 문학을 적어 나가는 행위, 자신이 평생 해오던 글쓰기가 삶을 이겨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참척의 고통에도 어떻든 살아가야 하기에 무엇이든 하게 마련이다. 비틀거리면서도 덩그러니 놓인 시간과 사투를 벌인다. 오늘은 자식을 잃은 부재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비춘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웰컴 투 마이 하트>(2010)

‘멜로리’는 15세의 어린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부모를 여의고 낯선 뉴올리언스에서 홀로 살아간다. 스트리퍼라는 위험한 직업을 가진 탓에 욕설을 입에 달고 살며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다. 상처가 많아서 늘 경계의 눈초리로 사람을 주시한다.

​교통사고로 딸 ‘에밀리’를 잃은 ‘라일리’ 부부는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아간다. 아내 ‘로이스’는 사고에 대한 죄책감으로 8년간 한 번도 집 밖을 나서지 못했다. 남편 ‘더그’는 아내의 상처를 어쩌지 못하고 지켜만 본다. 부부는 아이가 없어진 일상을 애써 모른척하며 일상을 버텨 나갈 뿐이다. 어느 날 뉴올리언스에 출장을 간 더그는 죽은 딸과 동갑인 멜로리와 만난다. 딱 봐도 애처롭고 위태로워 보이는 아이를 지나치지 못한 더그는 멜로리를 붙들고 대화를 시작한다. 아이의 삶에 개입해서 녹슨 집을 보수하고 끼니를 챙긴다. 더그는 살아갈 수 있는 기틀이 필요한 사람이었고, 멜로리는 어른의 도움이 절실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남편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느낀 아내 로이스가 8년 만에 집을 나서 뉴올리언스에 다다르면서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다.

영화를 보는 이라면 누구나 멜로리가 라일리 부부와 가족을 꾸리길 간절히 원할 것이다.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며 극복이라는 구원으로 나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하지만 영화는 단호히 ‘가족의 탄생’을 거절한다. 그것이 불가능함을 납득하는 것이 중요한 대목이다. 대안 가족으로 결론짓는 쉬운 길을 거부하고, 서로를 지켜봐 주는 거리감을 가지는 것이 이들의 공존법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바를 명확히 알고, 더는 발을 들이지 않는 태도. 우리는 단순히 가족이라는 명목으로 과한 요구를 하고, 별생각 없이 역할론을 따진다. 그에 반해 세 사람은 적당한 거리에서 내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지 살피는데 최선을 다한다. <웰컴 투 마이 하트>는 과잉 접촉의 시대에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미덕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영화다. 그들이 비록 가족이 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서로를 위한다는 제스처만으로도 이 먼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걷을 수 있다는 걸 영화는 잘 알고 있다.

이 작품은 상처받은 부부를 연기한 제임스 갠돌피니와 멜리사 레오의 노련한 연기가 돋보인다. 특히 침묵하는 시간이 많은 연기를 한 멜리사 레오는 격앙된 눈과 안절부절못한 몸짓으로 자신의 상처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마피아 이미지가 강한 제임스 갠돌피니는 뛰어난 연기력으로 정평이 난 배우답게 작품에 튼튼한 기둥을 세우고 두 여배우의 중심을 잡아준다. 연출을 맡은 제이크 스콧은 거장 리들리 스콧의 외아들이다. 아버지의 선 굵은 연출과 달리 낮은 숨결에 귀를 기울이는 섬세한 관찰력이 돋보인다.

 

<래빗 홀>(2010)

<래빗 홀>은 하나뿐인 자식을 잃는 젊은 부부의 이야기다. 아이는 집 앞에서 뛰어다니는 개를 쫓다가 차에 치이는 사고로 죽었다. 영화는 아이가 죽은 지 8개월이 지닌 시점에서 시작한다. 아내 ‘베카’와 남편 ‘하위’는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다시 살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상처의 극복에 있어서 둘은 차이를 보인다. 베카는 지나간 날을 떨쳐내는 방식을 택하고, 하위는 과거를 끌어안고 추억하며 아들과 천천히 이별하기를 원한다. 이처럼 존 캐머런 미첼 감독은 비탄 속에서도 일상을 비척거리며 걸어가는 부부를 좇으며 거대한 슬픔이 사람을 어떻게 뒤흔드는지 보여주고자 한다.

두 사람의 상이한 이별 방식은 어느 순간 충돌하여 폭발한다. 밤잠을 이루지 못한 하위는 베카를 깨우지 않고 거실로 가서 생전 아들의 모습이 담긴 비디오를 돌려본다. 들키지 않게 짧게 울고 다시 침대로 돌아간다. 아이의 모습을 보면 괴로워하는 아내를 위해 배려였다. 다음 날 베카는 아들의 비디오에 테이프가 꽂혀 있는 줄도 모르고 디스커버리 채널을 녹화해서 영상을 지워버린다. 남편이 힘겨워하는 걸 보다 못한 베카가 평소 그가 좋아했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녹화해 두려다 벌어진 실수였다. 비록 한 시간뿐이라 하더라도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도록 한 배려였지만, 아이의 마지막 모습을 잃어버린 하위는 불같이 화를 낸다. 아내는 아내대로 자신 몰래 아들의 비디오를 돌려본 남편이 원망스럽다. 아들의 죽음에 관해 누구도 탓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은 서로를 공격하며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집에서 버티지 못한 베카는 이상 행동을 보인다. 아들을 죽인 자동차를 운전했던 소년을 찾아간다. 소년의 집 근처에 숨어 몰래 지켜보고 외출하는 그를 따라나선다. 그리고 결국은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이때 소년은 <래빗 홀>이란 제목의 만화책을 베카에게 소개한다.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 가서 현실을 극복할 방법을 손에 넣는 것처럼, 베카 역시 자신의 상처를 잠시 잊고 딴 곳으로 눈길을 돌려야 삶을 버텨 나갈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바위덩이만 한 상처도 조약돌처럼 달그락거리는 정도로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베카는 집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아들이 사라진 굴을 들여다보는 빈도를 줄여나간다.

이들 부부는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아슬아슬하게 서로를 마주하던 부부는 완전한 회복은 엄두도 낼 수 없으니 우선 다가오는 주말부터 기운을 차리기로 한다.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단추다. 우선 이웃을 집으로 초대했다. 요리를 위해서 장도 보러 가야 한다. 그 집 아이를 위한 작은 선물도 사고, 주말에 입을 원피스도 골라서 세탁을 맡겼다. 앞뜰에 잔뜩 자란 풀도 정리하고, 아이의 유품도 잠시 옆방으로 치워두자. 우선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삶은 어찌 됐든 계속될 것이다.

 

<인 더 베드룸>(2001)

아름다운 해변 마을 메인. 햇볕에 그을고 말씨가 투박한 억센 남자들이 사는 미국 북동부의 한 어촌이다. 이곳 토박이 출신 의사 ‘매트 파울러’는 뉴욕 출신의 음악 교사 ‘루스’와 결혼하여 아들 ‘프랭크’를 두고 있다. 그렇게 평온하고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중 방학을 맞아 집에 돌아온 프랭크가 불의의 사고로 죽으면서 그들의 삶은 흔들린다. 사연은 바로, 마을에서 연상의 애인을 둔 프랭크가 여인과 별거 중인 남편에 의해 살해된 것이다. 더 억울한 노릇은 부모의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범인이 석방되어 버렸다. 부모는 재차 극심한 고통에 빠져들고 더는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감정이 밑바닥에 떨어져도 이따금 일상의 틈이 보이면 긴장이 풀리게 마련이다. <인 더 베드룸>에서 아들을 잃고 난 직후 매트는 늘 하던 지역 주민 모임에 참석한다. 평정심을 유지해보려는 노력의 발로지만 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그를 거북해하며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참다못한 매트는 불쑥 소리를 지른다. "뭐라고 말 좀 해, 제발! 눈치 좀 그만 보란 말이야!" 잠시 침묵이 흐른 뒤에 친구들은 다시 게임을 시작하며 우스갯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한다.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고통의 순간을 잊고자 더 크게 떠벌인다. 그들은 되도록 평상시와 같이 행동함으로써 비극으로 칠해진 주말을 다시 일상으로 돌리려 한다. 잘 될 턱이 없지만 그래도 아주 미세하게나마 나아지지 않았을까?

매트는 집에 들어가서 아내와 다툰다. 아들의 죽음을 두고 서로 억눌린 상처를 드러내고 비난하기 바쁘다. 서로를 헐뜯는 무가치한 싸움이 한창인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매트는 화가 나서 급히 문을 열어젖힌다. 그러자 사탕을 파는 어린 여학생이 눈에 들어온다. 매트는 잠시 망설이다가 소녀에게 동전을 몇 닢 쥐여주고 사탕을 건네받는다. 그리고 다시 아내에게 돌아가서 대화를 이어간다. 서서히 마음이 누그러지고 더없이 상냥하고 따듯한 위로의 말이 나온다. 말 그대로 일상적인 사건이 지독한 갈등의 기세를 꺾어낸 것이다.

상처를 덜 입기 위한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을 것이다. 그건 거듭 상처를 입으면서 어쩔 수 없이 박힌 굳은살이다. 다른 말로는 위기일 때 진가를 발휘하는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식을 잃으면 그 모든 것이 무용해진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엄습한다. 상처를 입은 후에도 계속 살아간다는 것이 버겁게만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뭐라도 붙들어야만 한다. 다음날도 어김없이 출근해야 하니 한껏 위장한 평상심은 기본이다. <인 더 베드룸>은 노부부가 아들 없는 일상에 몸부림치고 익숙한 관계에 몸서리치다가 다시 삶으로 서서히 복귀하는 과정을 따라다니는 이야기다. 일상이 아무렇지 않을 순 없겠지만 적어도 포커를 치고 소녀를 보며 미소 지을 수 있는 시간이 왔을 때 우린 깨닫게 된다. 그냥 지나치던 평범한 일상이 결국 사람을 살게 한다는 것을.

 

Writer

영화와 책, 그리고 예술 전반에 대한 글을 쓴다. 지은 책으로는 <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 <보내지 않을 편지>가 있다. 염세주의자가 되고 싶으나 하루 세끼 먹을 때마다 행복하다.
박민진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