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오랜만에 연락해 ‘잘 지내?’라고 안부를 물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나 잘 지내고 있나? 요즘 나의 상황과 사연, 잡다한 걱정거리는 이 상황에 적절한 대답이 아니다. 말하자면 너무 길고 질문한 친구도 미주알고주알 듣고 싶은 건 아닐 수도 있으니까 말을 줄이고 줄여서 ‘잘 지낸다’라고 답했다. 이런 일이 잦다. 내 진짜 근황을 담기엔 메시지는 가벼워 보여서 어물쩍 넘기는 일. 어떻게 지내냐는 안부 인사에 대답 대신 어떤 노래를 들어보라고 할 수는 없을까? 내 구구절절한 사정을, 내 얽히고설킨 속마음을 대신 말해줄 수 있는 노래로.

“이 노래 한 번 들어봐, 나 요즘 이렇게 지내.”

텍스트로만 메시지에 띡 담기엔 복합적인 네 안부를 음악으로 대답한다면 무슨 음악을 말할래? 주변인들에게 물어서 각자의 안부를 담은 음악을 몇 곡 받아왔다.

* 각기 다른 주변인들의 실제 답변을 최대한 반영해 작성했습니다.

 

1. 오아시스 ‘Live forever’

고민을 오래 해도 되냐고 묻더니 며칠 만에 답이 왔다.

“곡 제목처럼 영원히 살자는 내용이야. 오아시스 노래 중에서 낙관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게 몇 없는데, 바로 이게 그런 노래야. 예전에 갤러거 형제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어. 이 곡을 만들기 전에는 삶의 목표가 없었는데 이 곡을 만들며 야망이 생겼다는 내용이었을 거야. 워낙 오래전 기억이라 확실하진 않지만. 이것저것 마음이 복잡할 때 이 노래를 들으면 그래도 오늘은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설렘이 생겨. 그래서 잘 살고 있냐는 질문에 이 노래를 골랐어. 이 노래를 들으면 꿈을 향해 나아가볼까 하는 힘이 좀 생기거든. 솔직히 노엘 갤러거가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다리를 다쳐서 “(비속어) 돈 많이 벌어서 이 짓 안 하고 영원히 살아야지” 생각하면 만든 곡이긴 한데, 듣는 사람 마음 아니겠어?”

Maybe I will never be all the things that I wanna be
Now is not the time to cry
Now is the time to find out why
I just don’t believe maybe you are the same as me
We see things they’ll never see
You and I are gonna live forever

 

2. 고옥희 ‘주옥같다’

“왜 하필 이 노래를 골랐냐고? 요즘 누가 잘 지내냐고 물어보면 나 진짜 저렇게 대답해.”

 

3. god ‘길’

“우리는 인생을 사는데 어떤 기준을 두잖아. 어떤 기준으로, 어떤 가치관으로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방향을 세우려고 하지. 그래서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유명한 사람의 말도 들어보는 거야. 그런데 사실 문제는. 이 사람 말도, 저 사람 말도 다 맞아. 그냥 전부 다 맞는 말 같고, 그래서 내게 맞는 길이 뭔지 알 수 없다는 것.

20대 때는 정신없이 취업 준비를 하느라 “30대 초중반을 지나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훗날의 내게 답을 미뤘지. 그런데 그 나이가 된 지금의 나에게 똑같이 물어보면 나는 여전히 답을 몰라.

아주 친한 친구든 오랜만에 연락이 닿는 친구든 만나서 ‘인생 어떻게 사냐’, ‘잘 사냐’ 물으면 가볍게 ‘응, 그럭저럭 살아’ 대답해. 그렇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내가 정말 잘 살고 있나 생각해 보면 잘 사는 기준이 무엇인지, 내가 잘 살고 있는 건지, 내가 정한 가치관이 아닌 남의 가치관과 기준에 맞추어 살고 있는 건 아닌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아. 그래서 사람들이 잘 사니? 어떻게 사니? 물어보면 난 이 노래가 생각 나.”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 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그건 누굴 위한 꿈일까
그 꿈을 이루면 난 웃을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만 하는가

 

4. 브람스 인터메조 Op.118 No.2

유튜브 영상보단 다른 간주곡들도 많다며 백건우의 브람스 앨범을 추천했다.

“이 노래는 브람스가 클라라한테 헌정한 곡이야. 클라라는 슈만이라는 사람의 아내인데, 클라라는 일찍 사별한 남편만 일편단심으로 바라봤거든. 브람스는 이루어지지 않을 순애보를 일흔이 넘어서도 했어. 무려 40년이 넘도록. 대단하지 않아? 곡에 담긴 브람스의 이야기를 알기 전까지는 아름답고 차분하게 들려. A 장조라서 밝은 느낌이 들 수밖에 없거든. 그런데 그 뒤편엔 오래된 처연함이 있는 거지. 그래서 듣고 있으면 그의 슬픔에 덩달아 가라앉다가... 잠시 생각을 지우고 선율에만 귀를 기울이면 오히려 기분 좋게 고요해져. 차분하게 잠긴달까. 요즘 내 일상이 그래. 좀 바쁘고 힘든 나날을 보내는 것 같다가도 기분좋은 고요함이 있어. 이 음악을 들으며 브람스의 고독에서 위로를 받으며 지내.”

 

5. 장기하와 얼굴들 ‘별 일 없이 산다’

“노래 가사처럼 아무 걱정 없이 살고 싶어서 골라봤어. 나는 별 일 없이 산다 ~ 이렇다 할 걱정 없다!”

 

6. 그 때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 OST

“어떻게 지내?” 두루뭉술한 질문이지만, 요새 행복한지, 불행한지, 저번에 얘기했던 일들은 잘 되어가는지, 별일은 없는지 구체적인 상황을 묻는 질문이기도 한 것 같아.

나는 영화를 그때의 내 기분에 맞춰서 고르곤 해. 그래서 영화는 그 시기의 내 감정과 이야기, 상황을 전달하는 좋은 매개체야. 그러니 나는 그 영화의 OST 를 들려줄래. 잘 지내? 물으면 그 질문을 받은 시점에서 가장 최근에 본 영화 OST로 “난 이렇게 지냈어”라고 답하지 않을까. 최근에 본 영화는 <Rainy day in New York>, 노래는 쳇 베이커의 ‘Everything happens to me’.

I make a date for golf, and you can bet your life it rains.
내가 골프 약속을 잡을때면 비가 온다고 걸어도 좋을거에요
I try to give a party, and the guy upstairs complains.
내가 파티를 열려고 하면 위층의 사내가 불평을 하죠
I guess I'll go through life, just catching colds and missing trains.
쉽지 않은 삶인 거 같아요, 감기에 걸리고 기차를 놓치는 삶 말이에요. Everything happens to me.
안 좋은 일만 나에게 일어나요.
I fell in love just once, and then it had to be with you.
단 한번 사랑에 빠졌던 게, 그게 당신이었는데...
Everything happens to me.
안 좋은 일만 나에게 일어나요.

 

7. 다이나믹 듀오 ‘고백’

“보통 나는 우리말 가사로 된 노래를 잘 안 들어. 나는 노래가 소음 차단용으로 배경음악처럼 깔리는 게 좋은데, 우리말 노래를 들으면 가사가 귀에 들려서 노래에 집중하게 되는 게 싫더라고. 최근 한 노래가 제대로 귀에 꽂혔지.

라디오였나, 유튜브에서 재생한 플레이리스트였나. 우연히 이 노래를 듣게 됐어. 그것도 퇴근 지하철 안에서. 진짜 짠 것처럼 마침 한강 다리를 지나고 있었어, 2호선이었거든. 그때 이 노래 가사가 요즘 내 심경 같은 거야. 후렴은 우리 또래라면 누구나 흥얼거릴 수 있을 만큼 유명한 노래잖아. 그런데 그렇게 흥얼거리기만 했던 가사가 이전엔 그냥 활자였다면, 이제는 내 상황을 대변해 주는 이야기가 되는 것처럼 입체적으로 느껴지는 거야. 드라마에서 보던 배우를 연극 무대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 같은.

해가 다 진 저녁 7시 한강 다리를 건너는 2호선 안에서 이 노래를 듣는 20대 후반의 나는 ‘이 노래가 원래 이런 뜻이었구나’, ‘이런 마음을 담은 거였구나.’ 새롭게 깨달았어. 내가 하는 생각들, 남들 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았구나. 내가 벌써 이 노래를 공감하는 어른이 됐나 봐.”

세월이란 독약을 마신 후
세상을 보는 내 눈이 바뀌어
오토바이를 팔고 자동차를 사고파
시끄러운 클럽 보단 산에 가고파
세 들어 사는 것도 지겨워 집을 사고파
나 자리 잡고파 이제 출세 하고파
하나 둘 나이가 먹어 가니까
이상하게 시간이 점점 빨리 가
나도 이제 어른이야.

 

Writer

좋아하는 것들을 쓴다. 좋아하는 이유를 열렬히 말하며 함께 좋아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