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범죄 소설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회파 추리 소설'이라는 용어를 듣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일본 미스터리 작가들은 심심치 않게 '사회파'로 불리기 때문이다. 미야베 미유키, 기시 유스케, 요시다 슈이치, 아카이미히로, 소네 게이스케, 요코야마 히데오가 그렇다. 사회파는 우리가 흔히 아는 애거서 크리스티, 코난 도일처럼 특이한 사건과 기발한 트릭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추리 소설과 달리 사회성 짙은 범행 동기를 좇는다. 지극히 평범한 이의 사연을 바탕으로 시작해서 사회 구조의 모순에 휩쓸려 드러난 비극에 귀를 기울인다. 그래서 사회파 추리소설은 자연스럽게 어느 범죄물보다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경향이 짙다. 범인을 향한 분노보다는 우리 사회가 지닌 어두움을 들춰내는데 주력하여 일상의 악을 도마 위에 올린다. 오늘은 대표적인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름 없는 독>(2006)

난 범죄소설로 독서를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 에어컨 빵빵한 도서관에서 으스스한 추리 소설을 보며 여름을 나곤 했다.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흐르는 날씨에도 범죄 소설을 읽다 보면 닭살이 돋았다. 그중에서도 난 특히 한국 사회와 크게 다를 게 없는 일본 범죄 소설을 즐겼다. 특히 '미야베 미유키'를 좋아했는데, 그는 피해자나 가해자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이혼 전문 변호사라도 붙여준 것처럼 사려 깊게 다뤘다. 흉악 범죄를 다루는 소설도 무서운 느낌보다는 그 맥락을 쫓게끔 유도했다. 무엇보다 특정한 악에 테두리를 치지 않고, 모든 이가 최선의 방향을 택한 상황에서도 일이 고꾸라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래서 미야베 미유키는 '사회파' 작가군에서도 약자를 향한 연민이 도드라지는 작품을 여러 작품 써냈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화차>는 한국에서 영화로까지 만들어지며 큰 인기를 끌었다. 가해자가 파산 신고나 채무 변제에 관한 법을 몰라 사채업자의 추심과 인신매매의 표적이 되어 벼랑 끝까지 내몰리는 과정을 끈덕지게 따라나선 작품이다. 작가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도 쉽게 범죄에 노출될 수 있을 만큼 불완전하고, 조금만 방심하면 당신도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단언이다. 오늘 소개할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은 실제 일본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소설 <이름 없는 독>이다.

2008년 일본 번화가 중 하나인 아키하바라 도로에 트럭 한 대가 날뛰듯이 뛰어든다. 트럭은 거친 엔진 소리와 함께 수많은 사람을 들이받는다. 주말을 맞아 차 없는 거리 행사를 진행 중이던 광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트럭은 마치 맹수처럼 쇼핑을 즐기던 인파를 해쳤고, 결국 몇몇 쓰러뜨린 죽인 후에야 멈춰 섰다. 그는 트럭에서 내린 후에도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르다 붙잡혔다. 백주대낮에 이런 미친 짓을 벌인 범인의 이름은 ‘가토 도모히로’라는 어리고 왜소한 남성이었다.

가토는 한 용역회사에서 단순 노무를 하다가 다쳐서 며칠 쉬었는데 해고를 당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가 그렇듯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가토는 회사의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기 위해 하루에 천 건도 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비관하는 글을 올리던 가토는 어느 순간부터 공격적인 어조로 사회를 원망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도로에 뛰어든 사건 당일에도 가토는 자신의 범행을 예고하는 글을 인터넷 게시판에 자극적인 어조로 남겼다. 일명 '아키하바라' 사건을 계기로 일본에서도 묻지마 범죄에 관한 논의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미 수많은 논픽션 소설에서 이 사건을 다뤘고,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미야베 미유키의 <이름 없는 독>은 아키하바라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쓴 소설이다. 편의점 종이팩 음료에 청산가리를 주입하여 불특정 한 누군가가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화자는 우연한 기회에 이 사건을 접하고 경찰과 달리 개별 수사를 시작한다. 소설에서 사건의 범인은 아키하바라 사건과 마찬가지로 생활고에 시달리던 청년이었다. 작가는 우리 사회에 묻지마 범죄가 증대하는 이유로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이름 없는 독'이라는 개념을 내세운다. 모호한 말이지만 사회의 구조적인 불평등이 가져다주는 불편한 기분을 모르는 이는 없다. 인간이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곤경에 처하면 극단적인 악의가 피어오를 수 있다. 미야베 미유키는 소설의 상당 분량을 할애하여 사회가 제도적으로 약자를 보호하지 못할 경우 아키하바라 사건의 재발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대중과 언론은 자극적인 보도로 마치 기형의 인간을 바라보듯 범인을 쉽게 악마로 치부한다. 대중은 뉴스 헤드라인에 여과 없이 휘둘리며 모든 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사태가 조금만 복잡해도 이해를 포기하고, 게으른 비난을 퍼붓는다. 쉬운 답에 진실이 깃들리 없듯, 이름 없는 독에 그 어떤 말도 보태지 못한다면 논의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64>(2013)

일본에서 거대 조직의 권력 다툼과 사무실 내의 갈등 구조를 가장 잘 묘사하는 작가로 유명한 '요코야마 히데오'는 마치 논픽션을 읽는 것처럼 생생하게 경찰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을 묘사해내는 작가로 유명하다. 영국 스파이 소설의 거장 존 르카레가 영국 MI6에서 근무한 이력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는 것처럼, 히데오 역시 10년 넘게 사회부 기자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경찰의 속사정을 밝혀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사회부 기자로 활동하던 시절 직접 발품을 팔아, 안면을 튼 형사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소설로 끌어들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요코야마 히데오는 소설 초반부터 마치 밑그림을 그리듯 조직도의 면면과 사무실 내 위계를 설명한 후에야 사건 해결에 접어든다. 그에게는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의 직감보다 중요한 것이 조직이 하나의 사건을 어떻게 다루는 가에 있는 것이다. 실무자는 윗선에서 내려온 지시에 굴복해야 하고, 확신에 가까운 감정도 누그러뜨려야 마땅하다. 조직에 해가 가는 사건은 접어야 하고, 겉치레 가까운 형식적인 문서도 써내야 한다. 마치 세상살이가 다 그렇다고 말하는 것처럼 지난하고 힘 빠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렇게 사건의 주변부를 맴돌다 보면 그 어떤 경찰을 다룬 소설보다 더 현실적인 고민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64>의 주인공 ‘미카미’는 경찰 홍보실에서 근무하는 홍보담당관이다. 여타 경찰이 등장하는 소설에서는 보기 어려운 배경이다. 흔히 강력계 형사를 주축으로 하는 소설이 범인과의 힘겨루기에 공을 들이는데 반해, 홍보담당관 미카미는 언론플레이와 심리전으로 사건을 흔드는 재주를 선보인다. 그가 근무하는 홍보실은 정보가 고이는 곳이라서 기자들이 호시탐탐 뭔가를 캐내기 위해 기웃거리게 마련이다. 미카미는 특유의 유들유들한 얼굴로 열띤 취재망을 따돌리고, 범인을 색출하기 위한 수사 기법을 발휘한다.

미카미는 최근 안과 밖으로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딸은 가출해서 행방이 묘연하고, 조직 내에서도 승진에서 밀린 탓에 안과 밖으로 치고 들어오는 압력이 상당하다. 그간 축척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번 위기를 넘겼지만, 매번 박쥐처럼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홍보부 직원을 챙겨주는 사람은 없다. 이처럼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새로 취임한 경찰청장마저 미카미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청장은 난데없이 14년 간 미제로 남은 살인사건 수사를 지시한다. 왜 미궁에 빠진 사건을 들추는지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일방적인 지시를 내린다. 진급을 코앞에 둔 신임 청장이 공소시효가 1년 남은 영구 미제 사건에 관심을 두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지만, 미카미는 사건에 뭔가가 숨겨져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챈다. 그런 와중에 해당 미제 사건을 모방한 범죄가 발생하고, 일명 '64'라고 불리는 유괴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다.

요코야마 히데오가 10년 동안 셀 수 없을 만큼 고쳐 썼다는 <64>는 언론과 경찰 간의 정보 전쟁을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수사당국에서 정보를 빼내려는 언론은 조직의 구린내를 맡으려고 주위를 맴돌고, 정보를 통제하려는 홍보실은 언론사를 어르고 달래느라 정신이 없다. 결국 정략적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거래 행위도 서슴지 않고, 최종적인 선을 위해서라면 과정상의 악행은 눈감아 버리기도 한다. 언론과 경찰이 맺을 수 있는 거래는 어느 정도까지 허용되는가.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택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바람직한가. 미카미는 자신의 가족 하나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자그마한 단서도 놓치지 않는 수사력과 범인의 심리를 파고드는 통찰이 돋보이는 캐릭터다.

 

<사리진 이틀>(2004)

요코야마 히데오는 추리 소설 <사라진 이틀>로 제128회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으나, 사건 해결에 현실성이 없다는 심사위원들의 판단으로 탈락했다. 히데오는 이 결과를 두고, 지독한 현실을 독자에게 문학의 판타지를 선사할 마음이 없다면 독자는 평생 논픽션이나 읽어야 할 것이라는 도발적인 인터뷰를 남겼다. 히데오는 더 나아가 나오키상과 영원한 결별을 선언했다. 이처럼 요코야마 히데오는 자신의 작품 <사라진 이틀>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알츠하이머 병을 앓고 있던 아내를 죽이고 자수한 전직 형사 ‘가지 소이치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소설은 사건이 면모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이틀 간의 알리바이를 수사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요코야마 히데오는 이 사건에 관계되는 수사관, 신문기자, 검사, 변호사, 판사, 교도관 6명을 각 장에 배치해 한 사건을 각기 다른 입장에서 증언하게끔 한다. 해당 인물이 속한 조직의 특성에 따라 한 사건을 묘하게 달리 해석하는 걸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이해관계에 따라 거미줄 같이 촘촘히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관료주의의 역기능을 요코야마 히데오처럼 실감 나게 보여주는 작가도 드물다. 히데오는 한 인간의 선의에 관해서는 아무런 단서도 얻지 못하는 일본 사회의 캐캐 묵은 집단주의를 차갑고 회의적으로 그려낸다.

 

메인 이미지 영화 <소름> 스틸

 

Writer

영화와 책, 그리고 예술 전반에 대한 글을 쓴다. 지은 책으로는 <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 <보내지 않을 편지>가 있다. 염세주의자가 되고 싶으나 하루 세끼 먹을 때마다 행복하다.
박민진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