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많기에, 영화는 사랑과 함께 늘 성장 중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 중에서, 보는 것을 넘어 영화에 대해 쓰고 결국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이들이 존재한다. 감독으로 데뷔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감독으로서 영화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건 더욱 힘든 일이다. 영화사에서 이를 해낸 인물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라면, 프랑수아 트뤼포일 거다.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영화평을 쓰는 것이고, 세 번째 방법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삶에 정성일 평론가가 해석을 덧붙여서 했던 이 말은 프랑수아 트뤼포를 가장 잘 설명하는 표현이다. 하루에 세 편의 영화를 보고, 일주일에 세 권의 책을 읽었다고 알려진 프랑수아 트뤼포는 영화광으로 유년기를 보내고, 프랑스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로 활동하다가 영화감독으로 데뷔한다. 영화사에서 반드시 언급되는 ‘누벨바그’의 물결을 일으킨 대표적 인물로, 영화를 사랑했던 프랑수아 트뤼포는 이제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존재가 되었다. 영화에 대한 사랑으로 결국 영화가 된 사람, 프랑수와 트뤼포의 대표작을 살펴보자.

<아메리카의 밤>(1973)에서 연출과 연기를 겸한 프랑소와 트뤼포(오른쪽), 출처 – imdb

 

<400번의 구타>

14살 소년 ‘앙트완’(장 피에르 레오)은 집에서 부모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에게 벌을 받기 바쁘다. 학교를 왜 다녀야 할지 모르겠는 앙트완은 친구와 학교를 빼먹고 놀러 다닌다. 학교에는 무단결석의 핑계로 거짓말을 하고, 집에서 가출하는 등 앙트완의 일탈은 계속된다. 결국 앙트완의 부모는 앙트완에게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400번의 구타>(1959)는 프랑수와 트뤼포의 장편 데뷔작으로, 데뷔와 동시에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으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삶의 모든 순간이 영화를 위한 준비 기간으로 느껴질 만큼, 프랑수와 트뤼포의 삶을 거의 그대로 표현했다고 느껴질 만큼 자전적인 이야기다. 프랑수와 트뤼포는 앙트완이 등장하는 영화를 여러 편 연출할 만큼, 앙트완은 프랑수와 트뤼포에게 특별한 인물이다. 앙트완을 연기한 장 피에르 레오는 <400번의 구타>로 데뷔한 이후 프랑수와 트뤼포의 페르소나로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고,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배우로서 지금까지도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400번의 구타>의 제목은 400번의 매를 맞아야 어른이 된다는 프랑스 격언에서 따온 말이다. 앙트완은 집과 학교에서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앙트완이 잘못할 때마다 어른들은 자신들에게는 책임이 없다며 앙트완의 기질을 탓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앙트완은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진실을 말해도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앙트완과 유사한 삶을 살았던 프랑수와 트뤼포는 영화평론가 앙드레 바쟁의 보살핌으로 삶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세상은 아이에게도 가혹하지만, 그 아이를 지지해줄 한 사람만 있어도 아이는 좋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 맞아야 하는 400번의 매는, 수백 번이 넘는 세상과 어른의 무관심을 뜻하는 것처럼 보인다.

 

<피아니스트를 쏴라>

피아니스트 ‘샤를리에’(찰스 아즈나버)는 동네 술집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다. 그의 친형 ‘치코’(알베르 레미)는 자신을 쫓는 이들을 피해 샤를리에게 찾아온다. 치코를 쫓다가 놓친 이들은 치코를 찾기 위해 샤를리에를 따라다니기 시작한다. 한편, 샤를리에는 가게에서 함께 일하는 ‘레나’(마리에 두보이스)가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는 걸 알고 어떻게 가까워지질 고민한다.

<피아니스트를 쏴라>(1960)는 프랑수아 트뤼포의 두 번째 연출작으로, 데이비드 구디스의 소설 ‘down there’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촬영과 음악이 특히 돋보이는 작품으로 촬영을 맡은 라울 쿠타르는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촬영감독으로 프랑수아 트뤼포와는 <피아니스트를 쏴라> 이후로 <쥴 앤 짐>(1961), <부드러운 살결>(1964), <비련의 신부>(1967) 등에서 호흡을 맞추고, <네 멋대로 해라>(1959), <비브르 사 비>(1962), <미치광이 피에로>(1965) 등 장 뤽 고다르의 작품 다수에서도 촬영을 맡았다. 음악을 맡은 조르쥬 들르뤼는 장 뤽 고다르, 알렝 레네, 루이 말,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등의 작품에서 음악을 담당했고, <피아니스트를 쏴라> 이후로도 <아메리카의 밤>(1973), <사랑의 도피>(1979), <마지막 지하철>(1980) 등 프랑수아 트뤼포 작품 대부분의 음악을 맡았다.

샤를리에는 자신의 과거를 숨긴 채 살아간다. 자기 형 때문에 의문의 인물들에게 쫓기지만, 자신이 숨기고 싶은 과거에게 쫓기는 사람이기도 하다. 작은 말과 행동 앞에서도 무수히 많은 고민과 합리화를 하고 계속해서 자기 검열을 한다.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포기하고 마는 샤를리에는 자신을 쫓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내가 쫓는 그 이상적인 나를 제거해달라고, 그렇게라도 있는 그대로의 나와 마주할 용기를 달라고.

 

<쥴 앤 짐>

‘쥴’(오스카 베르너)과 ‘짐’(앙리 세르)는 절친한 사이로, 많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우정을 나눈다. 둘은 우연히 만난 ‘카트린’(잔느 모르)과 가까워지고, 셋이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어간다. 쥴은 카트린에게 큰 사랑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구애하며 결혼에 성공한다. 이후 쥴과 짐은 전쟁으로 인해 한동안 떨어져 지내다가, 전쟁 이후 오랜만에 재회한다. 셋이 다시 가까워지는 가운데, 카트린은 쥴에게 권태를 느끼고 오랜만에 만난 짐에게 사랑을 느낀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앙리 피에르 로세가 쓴 두 편의 소설을 영화화했는데, 한 편은 <쥴 앤 짐>(1961)이고 또 한 편은 <두 명의 영국 여인과 유럽 대륙>(1971)이다. <쥴 앤 짐>은 삼각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감정을 가장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 중 하나다. 특히 카트린을 연기한 잔느 모르의 존재감이 엄청난 영화로, 장 뤽 고다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오슨 웰즈, 루이스 부뉴엘, 자크 드미 등 수많은 거장의 작품에서 연기한 잔느 모르지만, 많은 관객에게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쥴 앤 짐>의 카트린일 거다.

나이와 경험과는 상관없이 관계는 늘 어렵고, 특히 사랑과 우정으로 정의되는 관계는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사랑과 우정이 공존하는 관계는 그 어떤 관계보다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쥴 앤 짐>의 세 사람은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힘쓴다. 쥴은 카트린이 자신의 곁에만 머물 수 있다면, 자신이 가장 아끼는 친구인 짐과 사랑에 빠져도 괜찮다고 말한다. 소유냐 존재냐, 오래된 명제에 대해 세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행동한다. 쥴과 짐, 카트린을 보고 있으면, 소유하려 하지 않기에 영원히 옆에서 지켜볼 수 있고, 소유하려 하면 지켜볼 수조차 없는 게 사랑의 속성인 것처럼 보인다. 관계에 대한 고민은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이기에 <쥴 앤 짐>은 계속해서 관객들의 고민과 함께 기억될 거다.

 

<아메리카의 밤>

영화감독 ‘페랑’(프랑수아 트뤼포)은 작중 영화 <파멜라를 찾아서>를 촬영 중이다. 영화에 캐스팅한 배우 ‘알퐁스’(장 피에르 레오)는 자신의 사랑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촬영도 팽개치고 도망가려 하고, ‘알렉상드르’(장 피에르 오몽)는 은퇴를 생각 중이고, ‘세브린느’(발렌티나 코르테스)는 알코올 중독이며, 할리우드 스타 줄리 베이커(재클린 비셋)는 신경쇠약에 시달리다가 자신의 주치의와 결혼하며 가십의 중심에 있다. 제작자의 압박과 통제 불가한 배우의 행동 등 각종 변수 속에서 페랑은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아메리카의 밤>(1973)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작품으로, 프랑수아 트뤼포는 연출뿐만 아니라 페랑 감독 역할을 맡아 연기까지 함께한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와일드 차일드>(1970), <녹색방>(1978) 등 자신의 작품에서 직접 연기를 하기도 한 감독이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1977)에도 배우로 참여한다. 영화 촬영 과정에서 생기는 이야기인 만큼, 감독으로서의 애로사항을 가장 잘 아는 프랑수아 트뤼포가 감독 역할을 직접 연기하는 게 최상의 선택으로 느껴진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작품을 보고 영화감독을 꿈꾸는 이들조차도 <아메리카의 밤>을 보면 영화감독의 현실이 결코 녹록치 않음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아메리카의 밤>은 영화 현장에 존재하는 수많은 변수에 대해 이야기한다. <400번의 구타>로 자신의 성장 과정을 풀어낸 프랑수아 트뤼포는 <아메리카의 밤>으로 감독으로서 느끼는 것들을 보여준다. 페랑 감독은 영화 촬영을 서부 마차 여행에 비유한다. 멋진 여행을 기대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제대로 목적지에 갈 수 있을지 의심하게 되니까.

영화는 삶을 담아내고, 삶과 마찬가지로 많은 변수로 이루어져 있다. 어쩌면 영화의 위대함은 온갖 변수 속에서 결국은 완성에 성공해서 관객에게 선보이는 그 과정 자체일지도 모른다. 페랑 감독은 삶보다 영화가 더 조화롭다고 말하고, 이 말은 협업 없이 이뤄질 수 없는 영화의 속성을 보여준다. 영화에 대해 좋고 나쁨을 함부로 평가하기엔, 영화에는 너무 많은 이들의 노력이 들어가 있다. <아메리카의 밤>은 영화 현장의 고단함에 대해 말하지만, 보고 나면 영화를 더 사랑하게 되는 아이러니하고 매혹적인 작품이다.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