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인문학 열풍이 몰아쳤던 출판계는 요즘 과학책을 찍어내기 바쁘다. 알파고가 인공지능에 관한 떠들썩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테슬라의 '일런 머스크'와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가 로켓 발사에 사활을 걸면서 슬슬 타오르던 과학 붐에 기름을 부었다. 서점을 가면 전통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리처드 도킨스나 칼 세이건, 최재천, 정재승뿐 아니라 카를로 로벨리, 랜들 먼로, 김상욱, 김대식처럼 비교적 새로운 작가도 눈에 띈다. 과학이 지식 담론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 세계적인 흐름이 한국에까지 미친 영향이다. 과학자들도 과거와 달리 학문의 상아탑 속에 홀로 들어박혀 있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세일즈 하며 소구점을 늘려가는 추세다. 독자들도 과학을 알지 못하고서는 세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인식을 두면서 과학을 일종의 교양으로 받아들인다. 최근 인기를 끄는 과학책의 특징은 형식적인 재미와 스토리텔링 능력이다. 독자의 흥미를 놓치지 않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과학의 문턱을 낮추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무조건 쉽고 재미있는 과학책을 쓰기로 유명한 과학 저널리스트의 책 세 권을 소개한다.

 

<매드 사이언스 북>(2008)

작가 레토 슈나이더가 스위스 주요 일간지인 '노이에 취리히 차이퉁'에서 연재한 과학 칼럼을 모은 <매드 사이언스 북>은 14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에 기록된 111가지 실험을 소개한다. 언뜻 읽다 보면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실험이 우습게 보이지만, 시대의 학자들이 타인의 오해를 무릅쓰고 벌인 실험들로 오늘날의 과학을 발전시켰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감동적인 구석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매드 사이언스 북>은 심심풀이 땅콩으로 읽을 수 있는 교양서이자 미시 과학사 책으로도 묶을 수 있다.

<매드 사이언스 북>의 가장 큰 재미는 기상천외한 실험들이다. 때론 터무니없고 가끔은 너무 엽기적이라서 어리둥절하지만 시종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로운 일만 다루고 있다. 그리고 과학 실험을 알기 쉽게 전달해주는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 레토 슈나이더의 필력이 실험을 단순히 흥밋거리에 그치지 않도록 조율한다. 레토 슈나이더는 '스키너의 심리 상자', '죄수의 딜레마(게임이론)',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 대한 복종', '흔들 다리에서의 사랑의 감정' 등 대중에게 친숙한 과학실험을 다루면서도 유머러스하고 핵심을 짚어내는 필력으로 지적 고양과 재미를 동시에 취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학이 과학에 그치지 않고 삶 전반을 되돌아보는 질문을 던지면서 넓은 주제를 아우른다. 가령, 침팬지와 아기를 함께 기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살펴보는 실험은 과학보다는 인간 기본권에 관한 질문을 촉발하고,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작업’을 거는 가장 성공적인 방법에 관한 연구는 인간 심리에 관한 연구다. 그리고 파블로프의 ‘고전적 조건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 및 일반상대성이론' 실험과 같은 역사적인 사건의 뒷얘기를 밝혀내면서 교양서로서 역할도 톡톡히 해낸다.

다른 책에서 보기 어려웠던 건 '1달러 지폐를 경매에 부치면'(1970년)이라는 제목의 실험이다. 실험은 제목처럼 1달러짜리 지폐를 경매에 부치고, 학생들이 80센트, 90센트로 입찰을 시작한다. 실험의 숨겨진 비밀은 입찰을 받지 못하면 참가자가 그간 제시한 금액을 모두 지불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그리고 어느새 한 청년이 1달러 10센트까지 값을 부르자 경매가 벌어진 강의실이 술렁인다. '1달러를 사려고 1달러 10센트를 지불하다니, 바보 아냐?' '10센트나 손해 보잖아?' '근데, 입찰을 포기하면 90센트를 잃는데?' 참가자들은 주변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돈을 잃는 바보 꼴을 보이기 싫어서 1달러가 훨씬 넘는 금액까지 값을 지불한다. 결국 1달러 지폐의 낙찰가는 20달러까지 올라갔다. 이 실험은 애석하게도 그간 인류가 벌인 무수한 과오를 떠올리게 한다. 그간 쏟아부은 노력이 실패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더 큰 손해를 감수하고야 마는 인간 본성은 섬뜩한 구석이 있다. 책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비슷한 사례로 '콩코드 오류'라고 불리는 프랑스와 미국의 공동 합작 프로젝트를 떠올릴 수 있다. 초음속 콩코드 여객기는 1962년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개발된 거대한 사업이었다. 두 거대 국가는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대표 여객기를 원했고, 그로 말미암아 1969년 5조 원을 투자해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를 합작 제작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100석에 불과한 좌석과 비현실적인 연비 등 경제성이 없는 사업으로 평가를 받았음에도 영국과 프랑스는 국가의 위신을 생각해 여객기의 대량 생산을 밀어붙인다. 그들은 1달러짜리 지폐 경매처럼 그간의 투자가 실패임을 인정하는 것이 두려워서 매몰비용의 오류를 범한 것이다. 이처럼 <매드 사이언스 북>은 다소 우스꽝스러운 실패의 기록이지만, 그 실패가 요즘도 되풀이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반복의 역사이기도 하다.

 

<시크릿 하우스>(2006)

과학을 쉽게 풀어쓰는 능력에서 '데이비드 보더니스'만 한 작가를 찾기 어렵다.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가장 큰 장점은 흥미로운 형식을 만드는 능력이다. <시크릿 하우스>는 제목처럼 집 속에 꼭꼭 숨은 과학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침구류부터 치약, 샴푸 그리고 외출을 준비할 때 뿌리는 스프레이, 향수에 이르기까지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이 벌어진다. 내 오감이 닿지 못하지만, 분명히 실재하는 소소한 과학적 현상을 듣다 보면 과학 원리와 역사가 바로 손에 잡힐 듯 느껴진다.

하루의 시작부터 잠들기 전까지 우리는 과학적인 현상과 함께 산다. 양자역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머리부터 아프지만, 사실 아침에 알람으로 눈을 뜨는 순간부터 소리의 파동에 영향을 받는다.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고 숨을 들이마시는 그 모든 공간과 시간이 양자의 도가니다. 그걸 학문으로 풀면 머리에 쥐부터 나겠지만,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서술로 접하면 리얼 버라이어티로 보인다. 무엇보다 단순한 과학 용어로 최대한 알기 쉽게 서술해서 막힘 없이 읽을 수 있다. 술자리에서 가볍게 나눌 수 있는 상식의 선 안에서도 과학은 존재한다. 과학 저널리스트가 대중을 위해 쓸 수 있는 최상의 결과물이 아닐까.

 

<거의 모든 것의 역사>(2003)

빌 브라이슨은 유머러스하면서도 지적인 사유를 동반한 여행서의 작가로 유명하다. 한국에서 '발칙한' 시리즈로 널리 알려진 빌 브라이슨의 여행책은 서점의 오랜 스테디셀러다. 하지만 그의 책 중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책은 놀랍게도 과학책이다. 빌 브라이슨은 과학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던 자신이 <거의 모든 것의 역사>라는 과학책을 쓴 이유를 밝힌 바 있다. "과학의 신비로움과 성과에 대해 너무 기술적이거나 어렵지 않으면서 피상적인 수준을 넘어서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책을 쓰고자 했다." 빌 브라이슨은 어린 시절에 알 수 없는 수식이 가득한 과학교과서에 크게 실망한 바 있다. 그래서 나중에 크면 자기가 직접 과학책을 쓰리라 다짐했다고 한다. 그 결과 나온 책이 <거의 모든 것의 역사>다.

이 책의 인기 비결은 해당 분야 전문가와는 달리 자신이 품었던 호기심에 답을 하는 방식으로 접근한 점에 있다. 흥밋거리 위주로 책을 구성해서 과학 문외한이 읽더라도 쉽게 즐길 수 있다. 언뜻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는 저명한 학자가 쓴 책이 더 전문적이면서 효율적으로 대중을 이해시킬 것 같지만,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읽고 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적 호기심이 충만한 사람이 차근차근 배워서 쓴 글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이해 방식과 해석이 곁들여진다. 조금 느리지만 아늑한 오솔길이 생기니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며 걸을 수 있다. 빌 브라이슨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서 대폭발(빅뱅)에서 인류 문명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자신이 이해한 대로 적었다. 나는 마치 동네 친한 형에게 커피를 한 잔 사면서 과학 상식을 듣는 기분으로 책을 즐겼다. 스티븐 호킹과 칼 세이건이 내게 줄 수 없는 기쁨이다. 그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우리 은하, 태양계의 거대 세계로부터 소립자, 세포까지 미시의 세계부터 인류 문명의 발원과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 이론까지 섭렵하면서도 아무런 도표나 수식을 쓰지 않는다. 오직 자신이 필력으로 무수한 과학자들의 책 보다 더 잘 팔리는 오직 재미있는 과학책을 써낸 셈이다.

 

메인 이미지 영화 <사랑에 관한 모든 것> 스틸

 

Writer

영화와 책, 그리고 예술 전반에 대한 글을 쓴다. 지은 책으로는 <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 <보내지 않을 편지>가 있다. 염세주의자가 되고 싶으나 하루 세끼 먹을 때마다 행복하다.
박민진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