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나라로 여행을 갔다 돌아온 친구를 만났습니다. 친구는 떠나기 전보다 행복해 보였죠. 역시 이 땅을 떠야 하는 거야, 라는 생각을 하던 차에 친구가 던진 한마디, “나 연애해”. 아뿔싸!

친구에게 조금 이르게 찾아온 봄이 곧 이 거리에도 오겠죠. 그러면 또 장범준 씨의 벚꽃이 흩날릴 테고, 더불어 왠지 모르게 왈랑거리는 마음이 붕붕 떠다니다 덜컥 사랑에 빠져버리는 사람들도 생길 거고요. 그게 아니라 해도 봄이라는 불가항력에 오랜 마음을 털어놓고 싶어지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그리하여, 다가올 봄에 ‘고백’이라는 것을 해버리고 싶은 분들께, 책과 노랫말을 빌려 조언해드립니다. 믿어보세요. 연애편지 대필 경험 다수, 성공률 97%에 빛나는 저랍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 ‘I’m sticking with you’

난 너한테 꼭 붙어있을 거야
왜냐면 난 풀로 만들어졌거든

이 마음이 사랑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다. 혹은 상대방이 부담스러워 할 무거운 고백은 싫다. 그렇다면 이 상큼한 가사의 노래를 불러주세요.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의 노래 중 아마도 가장 귀여운 노래일걸요.

 

<百의 그림자>

황정은 | 민음사 | 2010

은교 씨는 갈비탕 좋아하나요
좋아해요
나는 냉면을 좋아합니다
그런가요
또 무엇을 좋아하나요
이것저것 좋아하는데요
어떤 것이요
그냥 이것저것을
나는 쇄골이 반듯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좋아합니다
쇄골을요?
은교 씨를요
...... 나는 쇄골이 하나도 반듯하지 않은데요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이상형이라는 개념 자체가 부질없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상상합니다. 이런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이런 걸 같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또 이런 이야기에 같이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정작 사랑에 빠진 상대방이 그러하던가요? 그들은 우리가 상상하던 사람과는 다릅니다. 높은 확률로요. 하지만 그래서, 그러니까 좋아하는 거죠.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요. 그런 마음을 조용하고 섬세하게 전하고 싶은 분들께는 <百의 그림자>를 권합니다.

 

텐사이 반도 ‘네가 다른 사람의 연인이 되더라도’

아무리 반짝이던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변하고, 또 언젠가는 끝나게 마련이죠. 하지만 상대방의 마음이 변했다 해도 나는 아직 당신을 사랑한다 외치고 싶다면 일본 밴드 ‘텐사이 반도’의 노래를.

당신이 누군가의 여자친구가 되어버렸다고 해도
계속 계속 당신을 좋아해
지금쯤 다른 누군가와 살고 있다고 해도

그런데 말이죠, 살짝 참견할게요. 미안해요, 그거 사랑 아닌 것 같아요. 당신 외의 사람들은 그 감정을 미련 혹은 집착이라 부른답니다. 그러니 이 고백을 실행으로 옮길 생각은 하지 않길 바랄게요.

 

<연애편지의 기술>

모리미 토미히코 | 살림 | 2010

연애편지를 대필하는 벤처기업을 세우겠다는 목표로 주변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며 그 기술을 터득하겠다 다짐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해파리를 연구하는 대학원생 모리타 입니다. 그는 시답잖은 내용의 편지로 지인들을 괴롭힙니다. 하지만 그가 정말 쓰고 싶었던 건 짝사랑 중인 이부키 선배를 향한 연애편지였죠. 모리타가 이부키에게 썼던, 하지만 보내진 못했던 편지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그 무렵부터 당신에 대한 나의 생각은 지수함수적(指數函數的)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생각을 밝히는 일을 주저했습니다. 그런 감정적 협잡물이 나날의 영위에 섞임으로써 우리의 지적활동에 지장이 생기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나는 연구소라는 시공을 가지고, 유사 리만(Riemann) 다양체를 이용해 기술하는 일을 시도하여 일반상대성이론을 증명하는 등 다양한 수학적 시도를 거듭한 결과,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오른쪽 비스듬히 뒤에서부터 증명하는 데 성공했을 뿐 아니라 우리 연구소 내의 특정 영역에서는 러시아의 수학자 메레기에프가 예상했던 대로 항상 단순 βM구조가 성립함을 증명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 지극히 한정된 시공에서는 유클리드 기하학의 평행선 공준(公準)이 성립되지 않고 호프머 나선은 뒤집어지고 테러바초 타원은 하트 모양이 되고 두 개의 평행선은 반드시 만나고 곰보 자국은 보조개가 되고 남녀는 반드시 맺어집니다. 이것은 요컨대, 당신이 좋아요!

모리타가 애둘러 다다른 마지막 문장처럼, 고백이란 사실 세 단어로 만들어진 단 한 문장이면 충분할지 모릅니다. “나는 당신이 좋아요!”

 

브라이트 아이스 ‘First day of my life’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다양한 표정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해준 상대방이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랑이 나에게 다른 세상을 알려주었다면, 영화감독 존 카메론 미첼이 연출한 이 뮤직비디오를 그 상대와 함께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당신을 만나기 전에 난 앞을 볼 수 없었나 봐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 건지는 알아요

 

<A가 X에게: 편지로 씌어진 소설>

존 버거 | 열화당 | 2009

약제사인 아이다가 반정부 테러조직을 결성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와, 그 편지 뒤에 연인 사비에르가 적은 메모들로 구성된 책입니다.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그 이면으로는 세상의 부당하고 불합리한 것들에 대한 저항이 읽히지요.

어쩌면 사랑을 고백할 때 소개하기 적합하지 않은 책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사랑에 가장 근접한 모습들이 이 책에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언젠가의 연인에게 아이다의 이 편지를 읽어줄 계획입니다.

당신 손목에 있는 흉터를 봅니다. 지나가는 세월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나의 모든 잘못과 결점 중에 당신은 어떤 게 가장 마음에 들어요? 말해 주세요, 우리 함께 이 긴 밤이 지나도록 그것을 즐길 수 있게, 천천히 그리고 나지막하게 말해 주세요.
당신의
아이다

자아, 사랑에 빠진 당신. 어떤 고백을 하시겠습니까. 내가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서술하는 것, 단순해 보이지만 너무나 어려운. 별것 아니지만 나를 구성하는 축이 흔들리는 고백이라는 것. 당신이 어떤 사랑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하든지 그 마음, 응원할게요. 그리고 우리가 사랑과 고백에 두근거리는 사소한 일상에 집중할 수 있는 ‘진짜 봄’이 오기를 함께 기원합시다.

 

Writer

심리학을 공부했으나 사람 마음 모르고, 영상 디자인을 공부했으나 제작보다 소비량이 월등히 많다. 전공과 취미가 뒤섞여 특기가 된 인생을 살고 있다. 글을 쓰고 번역을 하며, 그림을 그리거나 가끔 영상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