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명은 ‘조율’. 그 이름에서 연상되듯 “소리에서 시작해서, 소리로 끝났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아티스트가 있다. 음악은 소리의 예술이라지만 이토록 소리에 몰입하고, 소리만을 이야기하는 이는 흔치 않으리라.

앞서 EP <보물선>(2019)으로 담백한 기타 사운드와 차분한 풍경화 같은 상상력을 담담하게 선보였던 그가 지난 10월 말, 데뷔 정규앨범 <Earwitness>를 내놓았다. 앨범 소개글을 통해 알 수 있듯 ‘earwitness’란 ‘귀의 증인’이라는 뜻. 앨범에는 포크로 분류할 수 있는 전작 EP를 통해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각종 앰비언스와 노이즈, 이펙트 사운드가 뒤섞여 있었다. 그는 어떤 소리를 추적하고, 어떤 소리에 관해 증언하려 했던 것일까? 조율을 만나 새 앨범과 음악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Q 2019년 발매한 첫 EP <보물선>과 이번 정규앨범 <Earwitness> 사이 음악의 장르적 간극이 무척 커요.

조율 특정한 장르에 매혹돼서 음악을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다만 활동을 시작할 수단으로 ‘포크’라는 장르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간단히 기타 한 대만으로 노래를 할 수 있었고, 제가 정식으로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서 음악가로서 기초 작업을 해본다는 생각이었거든요. 당시 발매한 EP <보물선>을 두고 사후 반응이 많지는 않았지만 저 나름대로 엄청 열심히 작업한 결과예요. 엄밀히 말해 ‘나 포크 뮤지션으로 계속해서 잘 될 거야.’로 시작한 게 아니라 그냥 내가 하고 싶었던 음악 중에 포크가 있었고, 이제는 다른 걸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거죠.

 

Q <보물선>과 <Earwitness> 사이 <Intimate Ghosting>(2020) 컴필레이션에 수록곡 ‘5 Summerhouse Lane’으로 참여했어요. 어찌 보면 이번 앨범의 힌트 같은 곡이에요.

조율 레이블 ‘Psychic Liberation’(링크)을 운영하는 닉 클라인(Nick Klein)이라는 친구가 먼저 제안했고, 소설도 쓰고 음악도 하는 위지영씨가 앨범 큐레이션을 맡아 함께하게 됐어요. (포크에서 전자음악으로) 신을 옮겨가는 도중에 변화하는 제 음악 스타일을 보여줄 기회였던 것 같아요. 당시에도 공연으로는 제 현재진행형의 작업을 계속 풀어내고 있었지만, 이는 공연을 오시는 분들만 확인할 수 있는 거고, 그렇다고 이걸 포트폴리오로 보여주기에도 한계가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마침 <Intimate Ghosting>에 참여한 게 좋았던 것 같아요.

 

데뷔 EP <보물선>(2019) 자켓
데뷔 앨범 <Earwitness>(2021) 자켓

 

Q 데뷔 앨범 발매 후의 심정이 어떠신가요?

조율 시작, 이제 겨우 시작점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 <보물선> 때는 모든 걸 혼자서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사람들이 대개 마감이 있어야 좀 움직이잖아요. (웃음) <레코드 페어>에 최초 공개반으로 내놓고 싶어서 지원했는데, 마침 그렇게 하기로 결정되어 착수한 작업이거든요. 그렇지만 EP라는 건 아무래도 뮤지션에게 있어 중간 과정이라는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이번 작업은 준비 기간도 길고, 함께 해준 사람들도 많고. 저 자신도 ‘정규’ ‘앨범’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니까 마음가짐이 확연하게 달라요. 비장함이나 결연함 같은 게 있어요. (웃음) 그래서 그런지 발매 후에 사람들의 반응을 더 유심히 관찰하게 되더라고요.

 

Q <Earwitness>의 앰비언트 사운드나 작업 방식에 확신을 가진 시기나 계기가 있었을까요?

조율 특별한 시기가 있는 건 아니에요. 처음에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특정한 장르에 매혹돼서 음악을 시작한 건 아니잖아요. 다만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를 잡아서 곡으로 만든다”라는 기본 자세가 있었어요. 악기나 보컬 같은 경우에는 평소에도 악기를 몸의 일부라고 생각해서 이런 소리들이 나온 것 같아요. 그저 상상만 했을 때 예측할 수 없는 소리를 이렇게 저렇게 다루고 가공하는 데서 재미를 느끼다 보니 만난 장르가 앰비언트였던 것 같아요.

 

Q <Earwitness>라는 제목이 눈길을 끌어요.

조율 처음부터 붙인 제목은 아니에요. 음악 작업을 마친 상태에서 머레이 쉐이퍼(R. Murray Schafer)의 책에서 읽은 개념이거든요? 우리말로 ‘귀의 증인’(earwitness)이라고 번역돼 있는데 그걸 보니 마음에 들고, 괜찮겠다 싶어서 앨범 제목으로 정했어요. 애초에 내가 앨범으로 만들려고 하는 방향에 딱 있었던 게 아니라 ‘귀의 증인’이라는 말과 내가 만든 음악이 만났을 때 느껴지는 일치하는 이미지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사실) 그 어감이나 인상이 좀 세서 망설이기도 했어요. (다만) 제가 받아들이는 사운드를 표현하는 과정과 그걸 표현한 후 청자가 받아들이는 과정에는 당연히 오해와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증언이라는 건 꼭 내가 본대로 말하지 않을 수 있고, 해석 역시 주관이나 관점이 들어가는 거니까 제가 증언이라고 인식하고 말함으로써 이런 균열을 잘 드러내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Q 증언이란 곧 그걸 전하기 위한 기억이 감각이 이미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주로 어떤 걸 보고 들었는지, 이를 전하는 데에 있어 어떤 의도를 담고자 했을지 궁금해요.

조율 작업할 때 많은 분이 그렇겠지만 소리에 대해, 혹은 음악에 대해 좀 강박적으로 생각하는 편인 것 같아요. 저는 소리라는 게 소리에서 와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작업 과정을 생각해보면, 어떤 콘셉트나 결과를 상상해서 하기보다 그 소리가 나오는 과정에 좀 더 집중을 해요. 내가 최초에 어떤 소리를 들었을 때 그 소리로 인해 상상하는 또 다른 소리가 있고, 그 소리를 통해 다른 소리가 나오고, 그걸 계속 확장하면서 새로 만나는 소리가 있는 거죠. 그래서 가사에 관한 질문도 종종 많이 받는데 제가 음악 작업을 할 때는 그러한 것들조차 사운드의 소스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Q 예를 들어 <Earwitness>의 첫 곡 ‘A stage’는 어떤 소리에서 출발했을까요? 일단 물 소리가 들려요.

조율 바닷가에 갔다가 거기서 녹음한 소리를 가지고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노래를 만드는 방식 자체는 어렴풋이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당시 녹음해 온 소리가 너무 마음에 든 거예요. 그걸 그냥 에이블톤에 올려놓고 여기에 “뭘 넣지?” 하는 식으로 계속 작업했어요. 예전에 제가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렸던 곡 중에 ‘Horn’이라는 곡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곡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링크)

앰비언트 사운드를 곡의 서사를 이룰 수 있는 요소로 활용했고요. 멀리서 들려오는 화성이 있었으면 해서 신시사이저 사운드를 조금 넣었어요. 사실 만드는 과정에서는 복잡한 생각을 많이 안 하기는 해요. 오히려 만들고 난 뒤 뭔가 말을 덧붙여야 할 것 같을 때 이것저것 생각하는 것 같아요. 만들 때는 그냥 “이거 넣을까?” “저거 넣을까?” 하고요.

 

조율 ‘Marginalia’ 라이브 영상

 

Q 타이틀곡 ‘Marginalia’도 다른 어떤 소리로부터 출발했을까요?

조율 이 곡은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이전에 만들어 놨던 기타와 보컬 트랙을 활용했어요. 가장 처음에는 옛날에 만든 기타 리프에서 출발한 것 같아요. 그 위에 덧댄 보컬과 가사의 경우 아직 저 스스로 혼란스러운 면이 있기도 한데, 보컬이라는 게 저에게 무척 중요한 정체성이긴 하지만, 그걸 너무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싶지도 않거든요? 그래서 이 곡에서는 보컬에 효과를 많이 입혔어요. 트랙에 등장하는 보컬과 기타, 앰비언트 사운드들이 다 같은 비중과 무게로 들리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어요.

 

Q 이 트랙에 등장하는 새 소리는 직접 채집하신 건 아닌가요?

조율 네, 그 소리는 인터넷에서 받았어요. 채집하는 과정을 처음에는 많이 생각했는데요. 이걸 내가 녹음기를 들고 나가서 이렇게 해야 내가 뮤지션으로서 진정성을 좀 내보일 수 있는건가? (웃음) 이런 생각도 했는데 각자 집중할 수 있는 영역이 다른 것 같아요. ‘필드 레코딩’이라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고 싶은 사람들의 태도도 있는 거고, 저는 그걸로 만든 음악적인 결과물에 좀 더 집중을 하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이미지에 맞는 로열티 프리의 사운드들을 인터넷에서 많이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물론 직접 녹음한 것들이 들어 있기도 하지만 소리들 사이에 위계를 두지는 않으려고 해요.

 

사진 출처 © James Gui

 

Q 보컬 정체성으로서의 욕심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겠어요?

조율 아무래도 음악가가 연주자로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을 포기하기는 힘드니까요. 제가 직접 노래할 때 신체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느낌이 즐겁고, 좋아요. 그걸 내가 할 수 있고, 더 해보고 싶고, 탐구할 게 남았다는 사실을 자꾸 생각하게 돼요. 그런데 제가 ‘가수’라는 이미지에 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가수도 좋지만, 가수로 계속 활동하고 싶은 게 아니라 음악적으로 조금 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거든요. 궁극적으로는 음악 감독 같은 일을 하고 싶어요. ‘보컬’이라는 게 이미지가 워낙 세다 보니 그걸 덜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창작자로서 단순한 호기심으로 보컬 사운드로 이렇게 저렇게 비틀어보는 것도 있고요.

 

Q ’Mirror Ash’는 강렬한 노이즈가 인상적인 곡이에요.

조율 드럼 샘플 소리를 뒤틀어보는 과정에서 나온 건데요. 하나의 드럼 샘플을 가지고 피치와 BPM을 조절한 다음 레이어를 굉장히 많이 쌓았거든요. 그렇게 쌓은 소리가 본래 샘플의 소리와 부딪치고 박자가 맞아떨어지는 것을 굉장히 즐겁게 작업한 곡이에요.

제가 앨범을 내기 전에 라이브 셋 위주로 작업을 계속 했거든요. 음악만으로도 기승전결 같은 서사를 만들고 싶어하고, 그 구조에 항상 매여 있는 것 같아요. ‘Mirror Ash’가 마침 서사의 절정 위치에 있는 트랙이에요.

 

Q 마지막 두 곡은 이전 트랙과 분위기가 조금 달라요.

조율 ‘Backstroke’는 사실 처음부터 앨범에 넣으려고 했기보다 당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뭐라도 할까?’라는 기분으로 기타를 잡고 만들어본 곡이에요. 원래 ‘Prayer’s Stone’을 가장 마지막에 넣고 싶었거든요? 평소 공연에서 그 곡을 늘 마지막에 하기도 하고, 제가 약간 한국 사람 같은 서사에 집착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웃음) ‘Prayer’s Stone’처럼 선율이 확실한 곡이 마지막에 정리해주는 느낌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정직하게 멜로디와 화성으로 승부를 한 노래, 사람들이 가장 익숙하게 들을 수 있는 형태의 노래. 그런데 이제 ‘Backstroke’를 마지막에 넣어 보니까 오히려 서사가 끝난 후에 에필로그 같은 느낌이 들어 좋더라고요.

 

Q 앨범 발매 후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조율 올해는 거의 이번 앨범 작업과 관련 업무에 몰두했고, 그 후에는 외주 작업을 조금 했어요. VR 게임에 들어가는 배경음악 사운드 작업을 했고요. 그런데 어쨌든 다음 앨범 작업을 빨리 시작하고 싶기는 해요. 이후 1월 말에 LP가 나올 예정인데요. LP 발매까지 일단락이 되어야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크고 작게 기획하고 있는 것들은 있거든요.

 

Q 앞으로 음악을 계속 해가는 데 있어 지키고 싶은 방향성이나 콘셉트가 있을까요?

조율 소리에서 시작해서 소리로 끝났으면 좋겠어요.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저한테 그게 가장 잘 맞는 방식으로 여겨져요. 그게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 같고요. 사람은 계속 변하는 거니까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제가 음악을 대하는 방식은 일단 그런 것 같아요. 아직은 그 큰 전제 안에서 <보물선>이든 <Earwitness>든 하고 있다고 생각 들고요.

 

사진 출처 © Soma Kim

 

조율 인스타그램

 

인터뷰 정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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