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음악은 귀로 한 번, 그리고 눈으로 또 한 번 머릿속에 각인된다. 우리가 좋아했던 앨범을 떠올릴 때면 앨범 재킷 이미지가 함께 떠오르는 걸 보면 그렇다. 특히 뮤지션의 색깔과 음악의 분위기가 커버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질 때 우리는 명반을 만날 확률이 높다. 2021년에도 많은 음반이 세상에 나왔고 그 중 눈으로도 기억하고 싶은 앨범 7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Claud <Super Monster>

클라우드는 직접 자신의 앨범 표지를 그렸다. 앨범 마무리 작업 때 스튜디오 매니저가 보여준 다니엘 존스톤(Daniel Johnston)의 그림 한 장 때문이다. 클라우드는 자기 작품에 생명체나 괴물 같은 감정에 관해 쓰는데, 다니엘 존스톤의 ‘Claud And Super Monster’라는 작품에서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앨범 제목도 여기서 따와 <Super Monster>라고 지었다. 통통 튀고 날 것의 풋풋함이 도드라지는 클라우드의 음악이 살아있는 생명체로 표현된 것만 같다.

Girl In Red <If I Could Make It Go Quiet>

퀴어 팝 아이콘으로 급부상한 노르웨이 싱어송라이터 걸 인 레드. 뚜렷한 캐릭터와 탄탄한 음악성으로 데뷔와 동시에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요즘 MZ세대 사이에선 퀴어 성향을 묻는 코드로 “걸 인 레드 듣니?”라고 질문한다고 한다. 걸 인 레드는 주로 처참하게 부서진 마음에 대해 노래한다. ‘Serotonin’은 버스에 뛰어들고 싶을 만큼 괴로운 심리 상태가 모두 세로토닌 수치가 낮아서 그렇다고 독특하게 표현한 곡이다. 그는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다가 프레드릭 위그 소렌슨의 그림을 발견한다. 빨간 후드 속 인물은 어딘가 고장 난 듯 보이는데, 자신의 뒤틀린 머릿속을 대변하는 완벽한 이미지라고 느껴 앨범 커버로 선택했다. 짙은 색감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어두움이 걸 인 레드의 내면과 닮아 있다.

Fredrik Wiig Sorensen 인스타그램
Magdalena Bay <Mercurial World>

신스팝 듀오 막달레나 베이는 Y2k 콘셉트에 꽤 진심이고 진지하다. 공식 홈페이지는 세기말 어느 컴퓨터의 화면 같다. 음악에선 1990년대에서 2000년대의 향기와 함께 그라임스(Grimes), 찰리 XCX(Charlie XCX), 캐롤라이나 폴라첵(Caroline Polachek)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맑고 신비로운 신스 사운드와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과거의 색채. 막달레나 베이는 이런 음악적 특성을 물성적으로 표현해줄 수 있는 Ram Han에게 앨범 표지를 의뢰했다. 그는 한국인으로 CIFIKA와 신해경의 ‘모두 너야’ 커버를 작업한 걸로도 알려져있다. 투명한 수정구 이미지 한 장이 마치 포털처럼 막달레나 베이의 음악으로 데려가는 것 같다.

Ram Han 작가 홈페이지
Ram Han 인스타그램
Olivia Rodrigo <Sour>

얼굴에 잔뜩 붙인 스티커와 반항끼 넘치는 표정. 10대 특유의 정서와 에너지가 담긴 앨범 커버다.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2003년생으로 이별을 겪은 10대의 감정을 대변하는 가사로 Z세대의 지지를 얻었다.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성공은 여러 면에서 이례적이다. 지난해 히트곡 ‘Driver License’는 미국 라디오에서 느린 비트의 음악이 사라졌다는 공식을 깨고 빌보드 8주 연속 1위를 기록했고, 팝 펑크를 유행시켜 록의 부활에도 불씨를 지폈다. 이번 데뷔 앨범으로 2021년 다수의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과 신인상을 받았고, 이번 그래미 어워즈 주요 4개 부문의 후보에 올랐다. 음악뿐만 아니라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의 올리비아 로드리고를 상징적이게 담아낸 커버 역시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Cassandra Jenkins <An Overview On Phenomenal Nature>

카산드라 젠킨스는 슬픔과 고독에 대한 명상을 이번 앨범에서 얘기한다. 그는 자연이 주는 평안함과 고요함 속에서도 반짝이고 요동치는 순간들을 포착하고 아름답게 들려준다. 앨범 커버는 카산드라 젠킨스의 음악과 같은 에너지를 공유한다. 작가는 연에 LED 전구를 달아 장노출로 풍경과 연의 움직임을 담았다. 자연스럽고 소박해 보이지만 정성과 손이 많이 가는 작업. 둘의 작업 방식도 닮아서인지 음악과 커버가 완벽하게 한 장의 그림처럼 기억된다.

Ole Brodersen 홈페이지
Madlib <Sound Ancestors>

모래 알갱이 같은 입자를 평평한 판 위에 뿌리고 진동시키면 주파수에 따라 입자는 무늬를 만든다. 매드립과 포르텟이 함께 한 <Sound Ancestors> 앨범 커버는 한 다큐멘터리에서 영감을 얻었다. 다큐멘터리에서 사이매틱(음파 시각화) 실험으로 만들어진 모양과 원시 생명체의 구조 유사하다는 탐구 내용이 등장한다. ‘소리의 조상’이라고 번역되는 앨범의 제목과 소리가 생명을 탄생시켰을지도 모른다는 아이디어가 닮았다고 느껴 클라니드판 사진을 앨범 표지로 사용했다.
Nubiyan Twist <Freedom Fables>

우주 시대 속 정글과 동물적인 에너지. 음악의 장르와 에너지가 앨범 커버에 축약되어있다. 초현실적인 디지털 풍경화를 그리는 작가 엠마 로드리게즈의 작품이다. 런던의 재즈 콜렉티브 누비얀 트위스트의 세 번째 앨범은 재즈, 힙합, 아프로비트, 소울, 레게와 댄스 뮤직의 혼합이다. 앨범에서 뿜어져 나오는 댄스 플로어를 뒤흔들만한 비트와 아프리카를 떠올리게 하는 그루브가 앨범 표지로 기억될 것 같다.

소니뮤직 코리아 팝 마케팅 팀에서 근무했음. 월드뮤직, 해외의 서브컬쳐 음악과 인디 음악이 취향입니다. 취향을 살려 아주 작은 해외음악 레이블을 혼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