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를 복고의 전유물로만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아날로그는 가장 현대적인 취향으로 통한다. 무엇보다, 새로 나온 카세트테이프 얘기라면 더 그렇다. 잡음이 뒤섞인 저음질, 공간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음향, 들으면 들을 수록 늘어나는 기묘한 소리까지. 동그란 LP와는 또 다른 진득한 아날로그의 맛은 여러 수고를 감수할 만큼 매력적이다. 작고 네모난 모양새는 ‘감각적인’ 무언가를 가지려는 이들에게도 인기다. 게다가 좋은 음악이 담긴 카세트테이프라면, 그 매력을 지금 이런 디지털 플랫폼의 텍스트로는 다 풀어낼 수가 없다. 그래서 요즘 음악가들은 자진해서 카세트테이프에 음악을 기록한다. 그렇게 구형의 음반에 담긴 신선한 음악들을 소개한다.

 

쾅프로그램 <감은 눈>

(이미지 출처=유어마인드 트위터)

2011년 결성한 쾅프로그램은 기타와 보컬을 맡은 최태현과 드러머 권용남(전 드러머 김용훈)이 함께 하는 밴드다. 2012년 발매한 첫 EP 앨범 <This is the end of us>와 <(for city) Special Demo>는 주로 무대에서 들려주었으나, 2013년 발표한 첫 정규앨범 <나 아니면 너>는 다행히(?) 디지털 음원으로도 공개했다. 그렇다고 이들의 음악을 더 편안하게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아니다. 이제껏 경험한 적 없는 난해한 리듬과 멜로디, 노이즈로 가득한 쾅프로그램의 음악은 어떤 방식으로 들어도 ‘불친절’한 장르다. 작년 10월 발매한 앨범 <감은 눈>은 더하면 더했다. 카세트테이프로만 들을 수 있다는 형식 면에서도, 특유의 장르적 스타일에 있어서도 여전히 친절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렇기에 지금 들을 수 있는 가장 독창적인 음반임이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낯선 사운드에는 역시 낯선 질감의 소리를 내는 카세트테이프가 제격인 것도 같다. 지난 1월에는 네이버 온스테이지 공연을 통해 디지털 음원이 생겼는데, 아쉬운 대로 먼저 들어보자.

쾅프로그램 ‘감은 눈’ 온스테이지 ver.

 

빛과소음 <irregular>

2009년 이태호, 양승현, 송화선, 박건호가 결성한 인디 록밴드 빛과소음이 지난 1월 첫 EP 앨범 <Irregular>를 발표했다. 짧고 굵은 다섯 곡을 수록한 앨범은 모두 디지털 음원, 시디, 카세트테이프로 골라 들을 수 있다. 그중 현란한 조명 빛과 함께 펼쳐지는 뮤직비디오와 디지털 음원은 보며 듣기에 가장 좋은 수단일 것이다. 그런데, 빛과소음은 자발적으로 ‘로파이’(Lo-fi, low fidelity의 약자) 로큰롤과 노이즈를 지향하는 밴드가 아니던가. 그런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음악이라면 카세트테이프로 듣는 게 가장 잘 어울릴 수 있다. 빛과소음이 발산하는 세련된 노이즈가 묵직하게 뭉개져 더 멋있어진 ‘소음’으로 출력될 것이다. ‘빛’은 없어도 ‘소음’만큼은 충만하도록.

빛과소음 ‘무당’ MV

 

김오키 <거대한 뿌리>

김오키(일본 오키나와와 그곳의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의미로 지은 '오키나와 김'을 줄인 것)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누구보다 자유롭고 현대적인 색소폰 연주가이자 작곡가다. 밴드 노선택과 소울소스의 멤버이기도 한 그는 작년 11월 세 번째 솔로 정규앨범 <거대한 뿌리>를 200매 한정 카세트테이프로 제작했다. 아방가르드로 불리는 재즈부터 퓨전 국악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소리를 연주하는 것으로 정평 난 김오키를 무대에서 듣고 보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차선책은 카세트테이프다. 카세트테이프에 수록한 mp3 다운로드 코드도 좋지만 연주가가 의도한 대로 카세트 플레이어로 틀어 보는 것이 좋다. 플레이어가 또다른 악기가 되어 더 멋진 소리를 들려줄 테니까. 앨범 타이틀곡 '사랑'은 젊은 국악으로 주목받아온 밴드 숨(su:m)의 멤버 박지하와 함께 작업한 곡으로, 박지하의 앨범 <Communion>에서 다른 버전으로도 들을 수 있다.  

김오키 <거대한 뿌리>에 수록한 '5월의 형제'

 

김흥국 <레게의 神: Last Reggae>

우리가 아는 예능의 ‘흥궈신’, ‘호랑나비’로 대표하는 가수 김흥국은 1994년 <Last Reggae>라는 앨범을 냈었다. 그리고 2016년, 인디 레이블 ‘비트볼 뮤직’은 무려 22년 전의 앨범을 <레게의 신>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 LP와 카세트테이프로 재발매했다. 그 당시 수록곡 전체를 레게 음악으로 채운 유일한 레게 앨범이라는 점에 가치를 둔 것이다. 레게라는 장르를 진지하게 탐구하고 사랑했던 김흥국의 진심을 느낄 수 있는 앨범이다. LP 해설을 쓴 뮤지션 페어브라더(aka 정우영)은 “이곳이 아니었다면, <Last Reggae> 같은 괴/걸작은 나오지 않았다”고 언급하며, 전에 없던 레게 스타일 가요의 걸작이라는 앨범 소개를 뒷받침한다. LP와 카세트테이프는 어설픈 자메이카풍의 옛 앨범 표지 대신 이재민 디자이너가 고안한 진짜 자메이카풍 자켓을 입고 더 멋있어졌다. 특히 ‘새’ 카세트테이프에서 들을 수 있는 레게 버전 ‘호랑나비’와 ‘레게 파티’는 왠지 격이 다르다.

김흥국 '레게파티'

 

샤이니 <1 of 1>

아주 많이 팔린 카세트테이프도 하나 소개한다. 샤이니(SHINee)는 복고 콘셉트로 기획한 정규 5집 <1 of 1>을 카세트테이프로도 발매했다. 높은 음반 판매량이 막강한 팬층과 탄탄한 엔터테인먼트를 등에 업은 ‘아이돌’이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음악적으로 저평가되기 십상인 ‘아이돌’이라는 단어와는 상관 없이 샤이니는 스스로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들었다. 물론 샤이니의 노래를 카세트테이프로 간직해야하는 이유는 HOT나 젝스키스의 카세트테이프가 그랬던 것처럼, 잊지 못할 즐거움으로 남기도 해서다.

샤이니 '1 of 1' MV
(해당 카세트테이프 이미지 출처= 판매처 ’김밥레코즈’ 홈페이지)

* 카세트테이프 판매처
김밥레코즈 www.gimbabrecords.com
향뮤직 hyangmusic.com
유어마인드 www.your-m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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