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개봉한 영화 <듄>(2021)의 주인공 ‘폴’(티모시 샬라메)은 혼란한 세상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다. 프랭크 허버트의 SF소설 <듄>을 영화화 하려고 도전한 감독들 중에서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는 결국 제작에 실패한 채 다큐멘터리 <조도로브스키의 듄>(2013)으로 재조명되었고, 데이빗 린치의 <사구>(1984)는 편집 과정에서 제작사의 과한 개입으로 감독의 의도와 다른 작품으로 완성되어 혹평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듄>의 연출자는 드니 빌뇌브로, 그는 캐나다 퀘벡에서 온 감독이다.

퀘벡은 특별한 도시다. 캐나다에 속했지만 대부분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그들에게 정체성을 물으면 나라의 이름보다 먼저 ‘퀘벡인’이라고 답하기도 한다. 퀘벡에서 온 감독들이 만든 영화 속 인물 대부분은 어디에 속해 있다는 것에 의지하기보다 오롯이 스스로 존재하기 위해 노력한다. 퀘벡의 감독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경계에 있거나 혹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기에 가장 돋보이는, 퀘벡에서 온 영화감독들의 작품을 살펴보자.

 

<그을린 사랑>

쌍둥이 남매 ‘잔느’(멜리사 디소르미스 폴린)와 ‘시몬’(막심 고데트)은 어머니 ‘나왈’(루브나 아자발)의 유언을 확인하고 놀란다.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와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형제의 존재를 찾으라는 게 유언의 내용이었던 것. 잔느와 시몬은 어머니의 유언을 따라 아버지와 형제를 찾아가면서, 어머니의 과거와 마주한다.

드니 빌뇌브는 걸작으로 평가받는 SF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의 후속작 <블레이드 러너 2049>(2017)를 연출하고, 제대로 된 영화화가 힘들 거라고 평가받던 <듄>(2021)을 연출하는 등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관객들로부터 가장 신뢰받고 있는 감독 중 한 명이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와 <컨택트>(2016) 등 평단과 관객을 사로잡은 그의 초기작들은 자신의 출생지인 퀘벡에서 시작되었다. 인간의 탐욕을 그려낸 단편 <다음 층>(2008)과 몬트리올 에콜 폴리테크닉에서 일어난 실제 총기 난사 사건을 영화화한 <폴리테크닉>(2009)으로 주목받던 그는 와이디 무아와드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그을린 사랑>(2010)으로 정점을 찍는다. <그을린 사랑>은 원제인 ‘화염’(Incendies)처럼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이다.

<그을린 사랑>은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현대화 했다는 인상을 줄 만큼 비극적인 이야기다. 드니 빌뇌브는 결코 과장되게 비극을 묘사하지 않는다. 마치 숨 쉬듯 자연스럽게 삶에 도착해버린 비극을 맞이한 인물처럼, 관객도 천천히 비극에 다가가게 된다. 잔느는 수학을 전공하고, 영화에서도 이론 수학이 언급된다.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를 푸는 이론 수학처럼, 어머니를 둘러싼 불가해 보이는 문제들을 풀기 시작한다. 삶에는 정도만 다를 뿐 각자의 비극과 해결 불가의 문제들이 가득하다. 답이라고 믿었던 것이 틀렸을 때는 치열하게 반례를 찾기도 한다. 비극 앞에서 우리는 그것을 납득하기 위해 어떤 풀이 방법을 선택할 것인가?

 

<카페 드 플로르>

21세기 몬티리올의 DJ ‘앙투안’(케빈 파랑)은 어릴 적부터 사랑했던 ‘카롤’(헬렌 플로렝)과 부부 생활을 이어나가다가 ‘로즈’(에블린 브로처)를 만나 단숨에 사랑에 빠지고, 카롤과 헤어진 채 로즈와 함께 살고 있다. 한편 1960년대 프랑스 파리에서는 ‘재클린’(바네사 파라디)이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들 ‘로랑’(마린 게리어)을 홀로 키우며 지내고 있다. 카롤은 자신과 전혀 연관 없는 로랑을 자꾸 꿈에서 목격하고, 꿈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장 마크 발레는 가족 드라마 <크.레.이.지>(2005)와 영국 시대극 <영 빅토리아>(2009)를 거쳐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2013)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성공적으로 할리우드에 안착한다. 이후 리즈 위더스푼 주연의 <와일드>(2014), 제이크 질렌할 주연의 <데몰리션>(2015)을 선보이고, 드라마에 도전해 연출을 맡은 <빅 리틀 라이즈>(2017)로 골든 글로브 시상식과 에미상 등에서 작품상을 받는 등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호평받았다. <카페 드 플로르>(2011)는 장 마크 발레의 영상미와 캐릭터 연출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21세기 몬트리올과 1960년대 파리는 시간과 장소도 다르지만, 인물들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영화 속에서 계속 언급되는 ‘카페 드 플로르’라는 곡 또한 연결의 단서가 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운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진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연이 존재할까? 설렘이 지난 뒤에도 오히려 단단함이 남는 그런 사랑이 가능한 걸까? 10년 전 퀘벡에서 온 영화가 현재를 살아가는 관객에게 절대적인 사랑에 대해 묻는다.

 

<라자르 선생님>

몬트리올의 한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자살을 하고, 몇몇 학생은 그 모습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알제리에서 온 ‘라자르’(모하메드 펠라그)는 세상을 떠난 선생님을 대신해서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게 된다. 다른 선생님들과 다소 다른 방식의 교육을 하는 라자르와 학생들의 사이가 처음에는 좋지 않았으나, 서로를 이해하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라자르는 학생들과 가까워질수록, 학생들의 마음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는 걸 느낀다.

<라자르 선생님>(2011), <뷰티풀 라이>(2014) 등을 연출한 필리프 팔라도 감독은 인물들의 정서를 관객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에 방점을 두는 감독이다. <라자르 선생님>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작품으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와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는 등 관객들의 지지를 받은 영화다. <라자르 선생님>은 명료한 설명보다는 여백을 통해 관객에게 더 많은 걸 느끼게 만든다.

선생님은 유년 시절에 부모님만큼이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 존재이다. 때로는 선생님이 되기 위한 자격 조건은 성적이나 시험이 아니라 마음이나 태도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릴 적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평생의 트라우마가 되기도 하고, 그때 받은 위로가 살아갈 이유가 되기도 하니까. 라자르 선생님을 보면서 자신의 삶에 존재했던 선생님들을 떠오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가 라자르 선생님이라면, 과연 나는 라자르 선생님보다 더 나은 태도를 보일 수 있었을지 생각해본다. 선생님이란 어떤 존재일지, 아이와 어른의 입장에서 모두 생각해본다. 확실한 건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고, 서로에게 계속해서 영향받고 배운다는 것이다.

 

<로렌스 애니웨이>

작가이자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로렌스’(멜비 푸포)는 35살 생일을 맞이하고, 자신이 오래 전 결심한 일을 실행에 옮기기로 한다. 로렌스는 자신이 남자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여자라고 생각하기에, 이제라도 여자로 살아가겠다는 결심한다. 로렌스의 결심을 듣고 연인 ‘프레드’(수잔 클레망)는 고민에 빠진다. 결국 고민 끝에 프레드는 로렌스의 곁에서 그를 지지하지만,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는다. 그렇게 로렌스와 프레드는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다.

<로렌스 애니웨이>(2012)의 감독 자비에 돌란은 퀘벡을 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감독이다. 감독만 아니라 <아이 킬드 마이 마더>(2009), <하트비트>(2010), <탐 엣 더 팜>(2013) 등에서는 연출과 연기를 겸하는 등 연기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마미>(2014)와 <단지 세상의 끝>(2016)으로 칸 영화제에서 각각 심사위원상과 심사위원대상을 받는 등 칸 영화제의 총아로 불리며,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가 감각적이기에 그의 영상미를 사랑하는 관객이 많다.

사랑의 기준은 제각각이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게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내가 마음과 피부로 마주하는 사랑 앞에서 마냥 이상적인 이야기만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로렌스와 프레드는 세상이 말하는 보편성과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이점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간다. 이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과 섞이는 동안에도 명백한 건, 로렌스는 세상의 기준을 떠나서 로렌스일 뿐이라는 거다. 그 당연한 사실이 그와 그의 주변인을 슬프게도 하고 기쁘게도 한다. 그러므로 <로렌스 애니웨이>의 감상을 묻는다면 영화의 제목을 읊어볼 뿐이다. 로렌스, 애니웨이. 어찌 되었든, 그저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로렌스의 이야기니까. 나의 이름 혹은 당신의 이름 뒤에도 ‘애니웨이’를 붙여본다.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용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