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적인 에너지를 내뿜는 오칠의 음악은 이리저리 포효하며 날뛰는 야생 동물을 연상시킨다. 파워풀한 드럼 위에 리드미컬한 기타 리프와 시원한 보컬이 뒤섞여 심장을 뛰게 하고, 서정적인 멜로디와 가사가 곡에 풍부함을 더한다. 세찬 뜀박질, 가쁜 숨과 땀방울, 환호하는 목소리가 투영되는 오칠의 음악은 거칠지만 마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전주에서 3인조 밴드 ‘레인보우 스테이지’로 활동하다 기타리스트 탈퇴 후 2인조 ‘오칠’로 재결성, 홍대 인디 신(Scene)의 전성기에 서울로 입성했다. 요란하게 클럽을 누빈 결성 첫해 KT&G 밴드 디스커버리, EBS 올해의 헬로루키에서 수상하며 존재감을 나타냈다. 그 후 서울을 넘어 세계 곳곳을 방황하며 울고 웃고 깨지기도 하면서 착실히 성장했다. 무엇 하나 진득히 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게다가 이 거친 인디 신에서 8년째 정공법으로 맞서고 있는 두 마리 동물들. 여기가 어디쯤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오늘도 자신들의 속도로 묵묵히 걷는다. 신곡을 발매한 오칠을 만나 탄생 과정부터 좌충우돌 투어, 또 하나의 알을 깨부순 신곡까지 그간의 음악 이야기를 들었다.

오칠의 설(왼쪽)과 준홍(오른쪽)

 

Q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밴드 오칠에서 드럼 치는 김설입니다.

준홍 밴드 오칠의 기타&보컬 윤준홍입니다.

 

Q 결성 이야기가 궁금해요.

준홍 20대 중반에 일본 섬머소닉(SUMMER SONIC) 페스티벌에 놀러 갔어요. 거기서 밴드 음악에 매력을 느껴 기타도 배우고 팀을 모으면서 밴드를 시작했어요. 전주에서 4~5년 정도 밴드를 하다 다들 나이도 있고 각자의 사정으로 해체가 됐는데, 기타 치는 형이랑은 계속하기로 해서 드러머만 있으면 될 것 같더라고요.

대학 때 전주에 있는 펍에서 일했는데 그 펍이 밴드나 아티스트들이 전국투어하면 꼭 들리는 공연장이었어요. 거기서 바텐더를 하다가 오빠를 만나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했죠.

준홍 설이가 일하던 곳이 저희가 자주 가던 카페 겸 펍이었어요. 예전에 스쿨밴드 했었다고 얘기를 들어서 같이 하자고 했어요.

일하다가 오빠들 공연하는 걸 본 적이 있어요. 그때 인기가 진짜 많았거든요. 거의 만석에 관객들이 기차놀이하고 정말 후끈한 밴드였어요.

준홍 지금 생각해 보니까 설이가 드럼 치는 걸 본 적도 없고, 드러머로 유명한 것도 아닌데 왜 같이하자고 했는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연주자분들이 많으신데 그땐 전주에 드러머가 없었어요.

급해서 드럼만 칠 수 있으면 괜찮지 않았을까요? 저는 졸업을 앞두고 국가고시를 준비하고 있었고, 딱히 음악 할 생각도 없었는데 밴드를 하자고 하는 거예요. ‘그냥 1년만 해보자’하는 가벼운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길게 하게 됐네요.

 

Q 밴드 이름인 ‘오칠’도 비피 클라이로(Biffy Clyro) 1집의 ‘57’에서 따온 것으로 알아요. 좋아하거나 영향을 받은 뮤지션이 있다면요?

같이 비피 클라이로 영상을 봤는데 그 후에 갑자기 밴드 이름 이야기가 나왔고, 흘러가다가 1집의 ‘57’이 당첨됐어요. 진짜 고민을 안 했어요.

준홍 ‘oh chill’로도 사용할 수 있어서 요즘에는 한글과 영문으로만 쓰고 있어요. 해외 투어 나갔을 때 사람들이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영향받은 뮤지션은 비피 클라이로에요. 그전에는 둘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뮤지션이 없었어요. 각자 좋아하는 뮤지션이 있지만 비피 클라이로는 공통분모 같은 느낌이에요.

 

Q 두 분의 음악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많잖아요. 장르적으로는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개러지, 얼터너티브. 혹은 한국의 화이트 스트라입스(White Stripes)라는 말도 있는데 스스로 오칠의 음악을 소개한다면요?

준홍 클래식한 록 음악에 기반을 두고 있어요. 펑크, 개러지, 가끔 포스트 록적인 요소도 있고요. 전에는 녹음된 음악을 깔아두지 않고 저희가 내는 소리로만 공연하는 걸 추구했기 때문에 화이트 스트라입스라는 말도 와닿고 감사한 표현이에요. 저희 음악은 때론 거칠고 때론 서정적이에요. 한가지 색깔만 가지고 음악을 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어요. 좋아하는 음악이 정말 다양해서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아요.

오칠 ‘The Message’ 뮤직비디오

 

Q 음악 작업은 보통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준홍 기타 코드나 리프, 멜로디를 가지고 스케치를 먼저 해요. 괜찮은 스케치가 나오면 설이에게 공유하고 의견을 받아서 진행해요. 그래서 초기에 생각한 방향과 색깔에서 달라지는 경우도 많아요. 제가 스케치를 한다면 설이가 색을 입혀주는 거죠. 설이도 곡을 쓰는데 주로 아이디어를 저에게 주면 그걸 토대로 제가 뒤를 만들어보기도 해요.

주로 곡 대부분을 오빠가 작곡해요. 오빠가 스케치를 가져오면 그 안에서 제가 원하는 위주로 어필하고 아이디어를 붙이면서 만들어가요. 편곡은 제가 많이 관여하는 편이에요. 오빠가 원석을 가져오면 제가 좋아하는 편곡 스타일로 다듬는 거죠. 신곡은 거의 한글 가사로 작업을 하는 데 제가 쓰고 있어요. 그런 식으로 역할 분담이 많이 정리됐습니다.

 

Q 2인조라서 좋은 점과 힘든 점이 있다면요?

준홍 옛날에는 음악에 있어서 약간 독선적이었는데 거의 10년 가까이 하다 보니까 같이 하는 거라는 생각이 생겼어요.

오빠가 먼저 밴드를 오래 해서 리스펙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러다 제가 성장하면서 알에서 깨어났죠. 이제 절충안을 찾아서 안정된 것 같아요.

준홍 항상 둘이서 같이 하니까 오히려 더 어렵더라고요. 한발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 적 있는데, ‘아 같이해야 더 오래 재밌게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오래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성격이 되게 달라요. 성격뿐만 아니라 표현하는 방식도 다른데, 음악적인 대화를 할 때는 서로를 설득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 맞아요. 음악적인 소통이 잘돼서 그게 진짜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준홍 싸우기도 하는데 거의 말투 때문에 싸우는 거예요. (웃음)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그럴 이유가 없어요.

Q 록 안에서도 다양한 장르가 있지만 오칠의 음악은 ‘밴드’, ‘록’의 정수가 느껴지는 사운드인 것 같아요. 트렌드를 신경 쓰지 않고 자신들의 색깔을 밀어붙이는 느낌이 드는 데 그 힘은 어디에서 오나요?

준홍 설이가 자주 하는 얘기인데, 저희는 스스로 즐겨 듣기 위해서 음악을 만들어요. 좋아하는 사운드 자체가 트렌디하기보다 클래식 하고요. 아직도 미흡하지만 스스로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음악에 있어서 계산을 안 해요. 그냥 좋아하는 걸 눈치 안 보고 하는 것 같아요. 누군 촌스럽다고 할 수도 있는데, 저희가 들었을 때 좋으면 그걸로 됐어요.

 

Q 투어 이야기를 담은 글과 ‘On and On’ 투어 비디오가 인상 깊었어요.

준홍 애니메이션 부분만 빼고 편집이랑 스토리 에디팅은 다 설이가 직접 한 거예요.

프로그램을 사용할 줄 몰라서 굉장히 오래 걸렸어요. 다른 감독님께 맡기려고 했는데 촬영한 자료가 정말 방대해서 내용을 다 알지 못하면 편집하기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몇 달 동안 만들었는데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워요.

 

오칠 ‘On and On’ 투어 영상

 

Q ‘DIY 어드벤쳐 투어’라고 표현하더라고요. 우여곡절이 많았겠어요.

2016년도에 리버풀 사운드 시티(Liverpool Sound City) 페스티벌을 통해 처음 투어를 시작했어요.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 근처 클럽의 공연도 잡아서 2주 동안 다녀왔어요. 저는 처음 해외에 나가는 거라 긴장을 많이 했어요. 정신도 없고 압박감도 커서 즐기진 못했죠. 그다음 해에는 디테일하게 투어를 계획하기 시작했어요. 에이전시에서 공연을 많이 잡아줘서 페스티벌을 포함해 유럽 전역에서 공연을 23번 정도 했어요.

준홍 차를 사서 ‘푸푸’라고 이름 붙이고 악기도 실어 다니고 차 안에서 먹고 자고 다 했어요.

정말 DIY였는데 재미있었어요. 언제 어디로 이동해야 하는지 스케줄링도 저희가 직접 했어요. 럭셔리 투어가 아닌 생존 투어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수가 없어서 친오빠와 함께 갔어요. 가족이 아니면 참아줄 수 없는 일정이었는데, 오빠는 그걸 몰랐어요.

준홍 설이 친오빠는 첫 해외여행이었거든요.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그래서 투어 끝나고 거의 의절 사태까지 갔어요. 망원시장 입구에서 울고불고 싸우기도 하고. 지금은 괜찮은데 그땐 감정의 골이 해소되지 않았어요. 50일 동안 차에서 그렇게 생활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지금 생각하니 미안하다.

준홍 어우 짠해. 잘해줘야 해. 미국투어는 우연한 기회로 결정됐어요. 유럽에서 어쩌다 미국 밴드의 오프닝 공연을 하게 됐는데 멤버들이 하나둘씩 들어와서 저희 공연을 보고는 매니저를 찾더라고요. 그래서 설이 친오빠를 불렀어요. (웃음)

참고로 저희 오빠는 영어도 못 하거든요? 근데 매니저 오라고 하니까 뭔가 있어 보여야 할 것 같아서 오빠를 불렀어요. (웃음) 나중에 사실은 매니저 없고, 친오빠랑 셋이서 다니고 있다고 했어요. 저희 스케줄을 듣고선 말도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준홍 그 자리에서 본인들 하반기 미국투어에 오프닝 게스트를 제안했어요. 그래서 그 해에 바로 미국투어를 하게 된 거죠.

베를린 Rusty Nail에서의 라이브 퍼포먼스

 

Q 해외 투어는 오칠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나요?

준홍 미국에서 투어 버스로 이동하고, 대규모로 움직일 땐 어떻게 하는지 알게 돼서 큰 공부가 됐어요. 도시를 이동할 때마다 계절이 바뀌는 경험도 처음 해봤고요. 투어버스에서 다른 사람들은 늦게까지 놀다가 자는데 저희는 버스 통로를 사이에 두고 다음 날 공연 얘기를 나눴어요. 내일 또 공연이 있다는 게 정말 좋았죠. 그러다 인종차별과 관련된 사건으로 투어를 중단하고 한국으로 왔어요. 돌아와서 털어버리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충격적이기도 하고 중단에 대한 자책감이 커서 많이 힘들었어요.

 

Q 생각보다 1집 발매가 늦은데 투어 때문인가요? 1집이 투어의 경험을 담으신 거라고 하셨는데 그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투어 때문에 늦어진 것도 있는데 사실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어요. 때가 되면 앨범도 내고 스스로 브랜딩하면서 단계를 밟아야 하는데 공연만 많이 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러고 나면 자연히 앨범을 낼 기회가 오는 줄 알았죠.

준홍 “너넨 앨범도 없이 투어를 하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근데 저는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해요. 그런 경험들이 있어서 늦게 나오긴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한 것 같아요. 투어 후의 부정적인 감정을 앨범 만드는 데 쏟아부었어요. 1집 수록곡 중에 ‘Road Kill’이란 곡이 있는데 사실은 저희를 표현하는 곡이에요. 미국에서 로드킬을 당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감정을 곡에 실어서 녹음하고 듣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치유가 됐어요.

오칠 ‘Road Kill (feat. HAWAGON)’

 

Q 그렇게 탄생한 1집 <Oh, Two Animals>가 2020년 제17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앨범, 최우수 록 노래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는데 어떠셨어요?

저는 예상했어요. (웃음) 제가 들었을 때 좋으니까요. “이게 록이지!”라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후보에는 오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막상 진짜 오른 걸 보니까 너무 기뻐서 오빠한테 전화해서 소리 질렀어요.

준홍 정규 앨범으로 처음 내는 건데 뿌듯했죠. 사실 누가 알아주면 더 좋잖아요. 투어 후유증도 날아가는 느낌이었고 정말 좋았어요.

오칠 ‘Oh, Two Animals’ 라이브 영상

 

Q 신곡 얘기 한번 해볼게요. 신곡 ‘God Diver’ 소개를 부탁드려요.

신곡은 지금까지 저희가 해온 곡들이랑 조금 달라요. 대부분의 가사도 한글이고, 영어 가사도 쉬워서 대중적이라고 생각해요. 가사에 나오는 다이버와 에메랄드빛 바다는 상징적인 의미인데요. 요즘은 SNS나 어딜 봐도 모든 것이 다 가능할 것처럼 도전을 부추기잖아요. 물론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지쳐있는 사람에게는 사실 그 얘기도 버겁거든요. 투어를 다녀와서 저도 그런 절망감을 느꼈어요. ‘용기를 내지 못하고 집안에 박혀있는 사람은 쓸모가 없는가, 그런 사람도 다이빙해야 하는가’에 관한 이야기에요.

준홍 사회에서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만 높게 평가하니까요.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하고 싶었어요.

자신이 처한 절벽에서 다이빙하든, 아니면 겁을 내고 도망치든 우리는 모두 신이 보낸 다이버라는 뜻이에요. SNS상에서는 다 행복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괜찮다는 말을 저를 포함한 모두에게 해주고 싶었어요. 에메랄드빛 바다가 아니라도 어디든 신은 있고, 점프하든 못하든 우리는 다이버고 고귀한 존재예요.

오칠 ‘God Diver’ 뮤직비디오

 

Q 신곡 작업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점이나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정말 재미있게 해서 어려웠던 건 없었어요. 늘 그랬지만 이 곡은 저희 손이 안 간 게 없어요. 앨범 재킷도 저희가 찍고, 뮤직비디오 디렉팅과 출연도 직접 했어요. 앨범 재킷을 욕조 안에 누워서 찍었는데, 사진만 보면 이 사람이 다이빙을 한 건지, 아니면 절벽에서 내려와서 그냥 누워있는 건지 알 수 없게 했어요. 물속에서 눈도 떠야 하고 표정 연기도 해야 해서 힘들었던 거 빼고는 다 재미있었어요.

준홍 음악적인 부분에서 기억에 남는 건 처음으로 세션 분들과 함께 작업했어요. 베이스, 스트링, 피아노 연주자분들과 소통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꼭 둘이서만 해야 한다거나 표현에 제약을 두고 싶지 않아서 이 곡으로 처음 시도했죠. 나름대로 하나의 알을 깼다고 생각해서 다음에는 이런 부분을 좀 더 확장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 밴드 하시던 동료분들이라서 흔쾌히 도와주셨어요. 그 부분이 가장 좋았고 기억에 남습니다.

저도 그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God Diver’ 커버

 

Q 이번 곡에서 중점적으로 들어줬으면 하는 부분은 뭘까요?

준홍 보컬의 메시지에 집중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보통 제 목소리가 너무 선명하고 크게 들어가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 곡은 그렇게 들렸으면 했어요. 그래서 보컬의 멜로디를 선명하게, 다른 악기는 감싸주는 느낌으로 녹음하고 믹스를 했어요. 인트로를 낮게 힘을 빼고 불렀는데요. 그렇게 신경 써서 불러본 게 처음이라 데모 녹음할 때 많이 혼났어요. 설이가 저희 디렉터 거든요. 제가 놓치는 부분을 잘 캐치해줘요.

본인이 가진 장점은 스스로 잘 모르잖아요. 옆에서 장점을 말해주면서 가능성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웃음)

 

Q 서울마포음악창작소 ‘음반 제작지원 사업’을 통해 신곡을 발매했는데 어떠셨는지, 또 뮤지션에게 가장 필요한 지원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데모를 준비하고 있던 찰나에 지원 공고를 봤어요. 내용이 저희랑 맞아서 지원했는데 선정돼서 깜짝 놀랐죠. 올해 여름부터 창작소에서 작업했는데 지원 시스템과 시설이 깔끔해서 정말 좋았어요. 뮤지션에게는 음반과 콘텐츠 제작 지원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저희는 1집을 내봐서 그나마 시스템이 익숙하지만 처음 내셔야 하는 분들은 막막하실 수도 있고요.

준홍 싱어송라이터, 힙합 래퍼분들은 보통 개인 공간에서 작업하시는데 밴드는 단체 공간이 필요해요. 창작소에 합주실이 있으니까 좋더라고요. 공간도 지원받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서울마포음악창작소에서 신곡 작업 중인 준홍과 설

 

Q 음악을 함에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는데 아주 힘든 시기에 남하고 비교하는 마음이 저를 힘들게 했어요. 남들과 비교해서 지금 걷는 길을 의심하고 그랬어요. 다른 분들도 물론 엄청난 노력을 하셨겠지만 약간 쉽게 가는 것처럼 보일 때, 사실은 되게 미운 마음인데 그런 마음이 힘들게 했었죠. 음악을 하면서 남하고 비교하는 마음을 좀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 5년이든 10년이든 하고 싶은 계획대로 밀어붙이는 것, 나 자신에게 집중해서 이 길을 묵묵히 걷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준홍 전엔 ‘내가 하는 음악이 나의 이야기가 맞는지, 남의 색깔을 흉내 낸 건 아닌지’ 고민도 많이 했어요. 근데 ‘영향받은 뮤지션들의 소리를 직접 내보고 싶다’는 마음을 인정하니까 오히려 편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곡은 그런 고민 없이 그냥 하고 싶은 거 다 했어요. ‘이게 우리의 음악인가’라는 부분보다 ‘우리가 같이하고 있다’라는 게 더 중요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Q 두 분의 목표와 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요?

‘전업 뮤지션이 될 거야. 록스타가 될 거야.’ 이런 추상적인 목표가 싫어서 5년 안에 글래스톤베리(Glastonbury) 페스티벌 무대에 서는 걸 목표로 잡았어요. 일단 1차는 그거에요. 2차는 비밀인데 1차를 이루면 공개할게요.

준홍 구체적인 목표는 글래스톤베리인데 그 안에서 또 꾸준하게 활동하고 싶어요.

차근차근 앨범도 발매하고 활동해야 한다는 걸 알게 돼서 쌓아뒀던 곡을 빨리 세상 밖으로 내보내려고 해요. 전국 투어나 해외 투어도 할 수 있으면 하고 더 바쁘게 활동해 보려고요.

 

오칠 인스타그램

 

Writer

김혜인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