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감은 말소리나 말투의 차이에 따른 느낌과 맛을 말한다. 이처럼 이름과 음악의 정체성이 묘하게 맞아떨어질 때, 그 느낌과 맛을 흥미롭다고 인지하게 된다. 생강 뿌리를 의미하는 진저 루트(Ginger Root)는 그 묘한 느낌을 자꾸 곱씹게 만드는 뮤지션이다.

낮에는 영화, 비디오 및 기타 멀티미디어를 편집하고 밤에는 진저루트라는 이름으로 음악을 만든다.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는 중국계 미국인 카메론 류(Cameron Lew)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공격적인 엘리베이터 영혼’. 무려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의 공식 유튜브 채널의 첫 영상은 엉뚱하게도 노트에 낙서를 해서 노트북을 만드는 스톱 모션 영상이었다. 특별한 편집을 거치지 않은 일상 브이로그와 악기 연주, 여행기들은 자연스럽게 뮤지션 진저 루트의 공식 채널로 변모해왔다. 밴드 활동을 하다가 2017년 본격적인 솔로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현재까지 7장의 앨범과 2장의 EP, 12곡의 싱글을 발매했는데, 그야말로 ‘공격적인’ 흐름으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진저 루트의 뮤직비디오는 빈티지 레코딩이 주를 이루고, 영화 전공자다운 위트 있는 연출과 스토리를 보는 재미가 있다. 그래서 그는 TV 속 앵커였다가 기상 캐스터로 변하고, 때로는 무술인이 된다. 심지어 밴드의 모든 세션이 되기도 한다. 정신을 차려보면 갑자기 택시 기사가 되어 손님과 춤을 추고 있기도. 이것이 진저 루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더욱이 4분 남짓 한 짧은 시간에 진부하지 않은 스토리를 담아내며 그의 음악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Ginger Root ‘Le Chateau’

정규 앨범 <Rikki>의 수록곡이다. 본인이 꾼 꿈에서 비롯한 내용을 뮤직비디오에 풀어냈다. 무료로 보트를 준다는 전단지를 발견하고 찾아가는 과정과 결국 맞이하는 엔딩은 진저루트식의 유머가 영상에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알게 해준다.

앨범명과 관련하여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어렸을 적 재밌게 읽었던 책의 제목 <Rikki Tikki Tembo-no Sa Rembo-chari Bari Ruchi-pip Peri Pembo>에서 따왔지만, 알고 보니 그것은 ‘Rikki’가 아닌 ‘Tikki’로 시작하는 책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오래된 기억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오류 자체에 의미를 느끼고 'Rikki'를 그대로 사용했다.

 

Ginger Root ‘Loretta’

생강 뿌리를 뜻하는 ‘강근’(姜根)이 큼지막하게 보이는 무대 위로 여러 명의 복제된 진저 루트가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른다. 1980~90년대 무대를 그래도 가져다 놓은 듯한 노이즈와 카메라 앵글은 금방이라도 오래된 테이프를 복원한 것처럼 생생한 과거로 우리를 초대한다.

 

Ginger Root ‘Juban District’

<City Slicker> 앨범에 수록된 ‘Juban District’에서는 택시 기사 진저 루트가 등장한다. 그는 알 수 없는 몸짓으로 승객과 춤을 추고, 네온사인에 휩싸인 채 몽환적인 드라이브로 3분을 채운다. 가장 최근에 발매된 <City Slicker>는 무려 1981년 ‘街のやつ’라는 제목의 가상 일본 영화를 미국에서 각색한 트랙'이라는 세세한 설정을 씌운 앨범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었던 이전의 곡들과는 다르게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린 앨범으로서 그의 독특한 감각과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Ginger Root ‘Entertainment’

마치 하나의 영화 시리즈가 끝난 것처럼, <City Slicker>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Entertainment’에서 그는 떠난다. 화면의 비율, 화질 등 1990년대의 관념적인 복고를 완벽하게 포착하여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가사는 엔딩 크레딧으로 올라온다. 하나의 가사 영상일지라도 고정된 틀을 깨뜨려버리는 이러한 그의 연출 감각이 수많은 레트로 작품의 소용돌이 속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대학 시절 한 학기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좋아하는 뮤지션의 노래로 커버 곡과 비디오를 제작하는 '토스트 뮤직'프로젝트는 바이닐 발매로 이어졌다. 팬데믹으로 투어가 취소되었지만 공연장에서 받기로 했던 생일 축하는 온라인 가상 생일파티를 열어 라이브 연주로 대신했다. 오래된 책에서 따온 앨범명은 틀렸지만 그대로 발매를 하고, 어느 날에는 갑자기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를 샘플링하기도 한다.

높은 예산을 필요로 하는 효과나 화려한 무대장치, 장소의 크기는 결국 어떠한 것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음을 우리는 진저 루트를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꾸 꺼내 보고 싶고 듣고 싶게 만드는 영양가 있는 감각과 능력을 꾸준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야말로 생강 뿌리 같은 역량을 가진 뮤지션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는 그렇게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곳곳에 뿌리내리며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Ginger Root 홈페이지

Ginger Root 인스타그램

 

Writer

그림으로 숨 쉬고 맛있는 음악을 찾아 먹는 디자이너입니다. 작품보다 액자, 메인보다 B컷, 본편보다는 메이킹 필름에 열광합니다. 환호 섞인 풍경을 좋아해 항상 공연장 마지막 열에 서며, 동경하는 것들에게서 받는 주체 못 할 무언가를 환기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