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국에도 지난주 제18회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이 무사히 막을 내렸다. 모처럼 야외에서 스산한 바람을 맞으며 관람한 재즈 무대는 여름의 록 페스티벌과 다르게 왜 다들 이 계절에 재즈 축제를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지 다시 떠올리게 했다. 사계절마다 각기 어울리는 재즈가 있지만 분명 가을의 재즈는 특별하다. 모두에게 힘들었던 계절을 지나 이번 가을 발매한 재즈 앨범을 통해 그들이 ‘재즈’한 방식을 살펴본다.

* 앨범 발매 최신순

 

 

함께하다

마리아 킴 <With Strings>(21.11.5)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모습과 달리 재즈 보컬리스트는 꽤 외로운 포지션이다. 대체로 다른 악기들이 리드와 반주 역할을 오가는 반면에 보컬은 대부분 연주와 무대에서 자연스레 리드 역할을 맡거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직접 기획하고 이끄는 프로젝트나 앨범이 아니라면 언뜻 소외되기도 십상이다. 그래서일까? 피아노와 보컬 연주를 동시에 완벽하게 소화하며 “피아노 치듯 노래하고 노래 하듯 피아노를 연주하는 자유로운 표현력의 뮤지션”이라는 평을 듣는 Maria Kim(마리아 킴)은 매 앨범마다 새로운 누군가와 함께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2017년 피아니스트 조윤성과 함께 <I’m Old Fashioned>를, 2018년에 남성 재즈 보컬 허성과 함께 듀엣 앨범 <I Want To Be Happy>를 발매했던 그는 보사노바를 홀로 소화했던 <FOTOGRAFIA>(2019)를 지나 8명의 스트링 연주자들과 함께한 앨범으로 돌아왔다. 보컬을 중심으로 한 베이스, 드럼, 기타의 익숙한 퀄텟 구성에 인천 콘서트 챔버 멤버들이 가세해 신선하면서도 풍성한 사운드의 전통 재즈를 선보인 것. 평소에도 힘과 소울이 넘치는 연주보다 부드럽고 호소력 짙은 연주를 들려주는 마리아 킴의 보컬이 스트링 앙상블의 매력, 마치 바로 앞에서 들리는 듯한 녹음과 어우러져, 앨범이 스탠더드 곡들의 낭만을 한층 더 깊고 가깝게 전한다.

2015년에 데뷔한 마리아 킴은 앞서 2013년, 잡지 <재즈피플> ‘라이징 스타’ 부문에 피아노와 보컬 2개 부문으로 선정된 바 있으며, 이후 2016년 <EBS 스페이스 공감>이 꼽은 ‘한국 재즈의 새얼굴’, 뒤이어 2017년과 2018년에 발매한 앨범이 연이어 <재즈피플>의 ‘올해의 주목 앨범’으로 뽑혔다. 전작 <FOTOGRAFIA>는 유통사인 소니뮤직 최초로 국내 음원 사이트 재즈 차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마리아킴 인스타그램

 

 

 

상기하다

한국재즈수비대 <우린 모두 재즈클럽에서 시작되었지>(21.10.18)

서울 지도 위 곳곳에 여러 지점을 표시한 앨범 커버부터 심상치 않다. ‘한국재즈수비대’라는 이들의 야심에 찬 이름과 ‘우린 모두 재즈클럽에서 시작되었지’라는 감상 어린 제목을 마주하며 의미가 비로소 선명해진다. 바로 서울에 있는 대표 재즈 클럽의 위치다. ‘수비대’라는 표현은 사실 일상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다. 군사 용어이거나 어린 시절 보았던 만화영화 한편에서나 봤을 법한 단어다. 그러나 별난 시국이라는 먹구름 아래 하나둘 무대가 사라져 간 대중음악이 처한 현실 앞에, 재즈가 놓인 현재 위에 아티스트와 산업 관계자들은 마치 요지를 지키는 군인처럼 혹은 만화 속 주인공처럼 비장해진다. 

젊은 베이시스트 박한솔, 피아니스트 이하림 젊은 두 연주자에 의해 출발한 이 앨범 프로젝트는 뉴욕의 ‘버드랜드’, ‘빌리지 뱅가드’, ‘키스톤 코너’ 등처럼 미국의 유명 클럽 못지않게 소중한 우리의 재즈 클럽들을 조명한다. ‘올 댓 재즈’ ‘야누스’ ‘원스 인어 블루문’ ‘천년동안도’ ‘클럽 에반스’ ‘클럽 몽크’. 선정한 7개의 클럽은 단순히 재즈를 연주하고, 재즈를 감상하는 무대가 아니라 그것이 오늘을 살아 숨쉬고, 내일을 기약하게 하는 재즈의 삶의 터전과도 같은 곳들이다. 두 사람의 뜻에 동참해 야누스를 직접 운영하는 국내 재즈신의 대표 보컬 말로를 비롯한 41명의 선후배 연주자들이 힘을 모았으며, 8개 트랙은 앨범이 다루는 장소들의 이야기와 분위기를 담아 다양하게 구성되었다.

프로젝트를 위해 진행했던 텀블벅 후원은 많은 이들의 공감과 응원 속에 모금액을 일찌감치 달성했다. 기획자 이하림은 지난해 <재즈피플> ‘라이징 스타’ 출신으로 솔로 EP <Straight Project>를 내놓은 바 있으며, 박한솔은  두 트랙을 수록한 싱글 <Full Bloom>을 올해 처음 선보였다.

텀블벅 프로젝트 페이지

박한솔 인스타그램

이하림 인스타그램

 

 

 

구축하다

송남현 <LOW.SLOW.BASSFORTE 2>(21.10.21)

베이스나 드럼은 기본적인 리듬 악기로서 다양한 협업 기회가 많은 축에 속한다. 베이시스트 송남현 역시 마찬가지다. 색소포니스트 김오키나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와 같은 재즈 기반의 연주자들은 물론, 싱어송라이터 요조와 과거 검정치마, 라즈베리필드의 앨범 및 공연에서 연주를 펼친 바 있다. 특별히 그는 자신의 작업에 있어서도 다채로운 기획과 활동을 벌여 왔는데 더블베이스 연주자로서 탱고 쿼텟이자 오르케스타(악단)인 ‘탱고 콜렉티보’의 연주와 프로듀스를, 부드러운 어쿠스틱 발라드와 몽환적인 사운드를 동시에 들려주는 싱어송라이터 ‘송나미 앤 리스폰스’, <Avant>(2020)를 발표한 실험적인 밴드 프로젝트로서의 활동을 이어 오기도 했다.

지난해 4월 발매한 첫 번째 연주 앨범 <Low.slow.bassforte>를 통해 비로소 자기 이름을 걸고 자신의 음악 색채를 보다 선명하게 선보이기 시작한 그. 이번 앨범에서는 <Low.slow.bassforte 2>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지난 이야기의 챕터를 이어간다. ‘탱고 영웅’인 피아졸라와 ‘음악의 아버지’ 바흐, 위대한 재즈 더블베이시스트 찰리 헤이든으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는 송남현의 음악은 쉽게 예상 가능한 형식이나 감상 어법이 모두 무효하다. 정열적인 탱고와 재즈의 즉흥적인 서사, 클래식의 현대음악 표현이 교차하며 ‘영남 알프스’와 같은 정체 모를 제목, ‘INTERLUDE’를 가장한 격렬한 즉흥 연주가 공존한다.

<Low.slow.bassforte 2>는 마치 견고한 건축물처럼 송남현의 취향과 세계를 엮는다. 한 가지 스타일에 매이지 않는 그의 탐식성과 각 트랙마다의 메시지에 집중한 이번 앨범은 이곳저곳 빼놓지 않고 둘러보는 재미와 긴장으로 가득하다. 보컬 미나를 비롯해 반도네온에 연하늘, 피아노에 이한얼과 임애진, 바이올린에 박용은 등이 참여했다.

송남현 인스타그램

 

 

 

위로하다

남유선 <Things We Lost & Found>(21.10.15)

때때로 예술 혹은 음악은 그저 뜬구름 잡는 몽상이 아니라 현실에 바투 맞닿은 소통 수단이자 위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행위 주체만이 아니라 그것을 향유하는 이에게도 그렇다. 한 달여 전 3년 만에 세 번째 리더작을 발표한 색소포니스트 남유선은 앨범에 재즈가 줄 수 있는 위로를 담기 위해 시간을 돌이켜 2020년 2월 이후의 삶을 고찰했다. 지난 시간을 통해 잃은 것(‘Things We Lost’)부터 되찾은 것(‘Things We Found’)까지. 그 사이에 있었던 번뇌와 기도 그리고 용기까지. 꼼꼼하게 기록한 일기가 누군가에게 세심한 위로를 줄 수 있듯 그가 재즈로 기록한 절절한 비망록은 <Things We Lost & Found>에 뜨거운 위안으로 다가온다.

트랙에 로로스 출신 도재명의 내레이션을 얹기도 한 2집 <Strange, But Beautiful You>(2018)로 2019 한국대중음악상 재즈&크로스오버 음반 부문에 오르기도 했던 남유선. 그는 기존 작업에서 보여줬던 매력적인 멜로디와 서사적인 완성도, 색소폰 쿼텟으로서 익숙한 어쿠스틱 밴드 사운드 위에 아날로그 신사이저와 일렉트로닉스 사운드까지 더해 또 다른 변신을 꾀했다. 보다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와 위로의 메시지를 바탕으로 분명한 키워드와 감정선을 차례로 나열해 가사 없는 연주 음악으로서 소통 가능성을 넓혔다. 이를테면 성경의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라는 구절을 제목에 차용한 ‘Corinthians 1614’에서는 거대하게 흘러가는 신스 사운드와 그 위로 각자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악기들을 활용함으로써 종교를 초월해 누구나 품을 수 있는 세상에 대한 따스한 감응을 표현한다.

남유선은 2015년 뉴욕에서 녹음한 첫 앨범 <Light of The City>로 데뷔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남유선이 모든 곡을 직접 작곡, 프로듀싱한 이번 앨범에는 피아노, 신시사이저에 김영재와 심규민, 콘트라베이스에 류형곤, 드럼에 한인집이 함께했다.

남유선 인스타그램

 

 

 

감각하다

임수원 <When It Falls>(21.10.15)

많은 예술가가 여러 장르와 분야에 걸쳐 서로 다른 작업을 병행한다. 재즈 피아니스트 임수원 역시 동요 작곡으로 음악을 시작하고 재즈를 공부해 지금도 자신의 감성에 재즈와 동요가 공존하는 아티스트다. 스스로 “자연에서 오는 영감을 바탕으로” “나무와 바람, 하늘, 달, 바다 등 소리와 느낌, 보여지는 색들을 보며” 작업했다 밝힌 정규 데뷔작 <When It Falls>에서도 색다른 동심이 읽힌다. 그의 설명처럼 ‘A Tree House’ ‘Not Before Sunrise’ ‘Clouds And The Moon’ 등 각 수록곡의 제목을 눈으로 훑는 것만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그려진다.

우리는 일상에서 수도 없이 많은 감각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때때로 고된 현실을 핑계로, 때로는 강렬한 자극에 정신을 빼앗겨 대부분의 감각을 놓치고 있기도 하다. 마치 마주하는 작은 것 하나하나가 모조리 처음이어서 그 경험이 전부 소중하기만 한 아이처럼 임수원은 평소 우리가 더는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 감각들을 원점에서 다시 감각해 그만의 순수한 추상과 구상으로 재현한다. 피아노 한 대, 혹은 베이스나 기타, 드물게 작은 목소리 하나만을 덧댄 이 앨범의 수록곡이 절대 어렵지도, 뻔하지도 않은 분위기와 서정을 연출할 수 있는 까닭이다.

1년 전에 데뷔 EP <Hide and Seek>을, 올여름에 제목부터 귀엽고 독특한 EP <애벌레>를 발표하기도 한 임수원의 이번 정규앨범은 전곡 비대면 홈레코딩으로 제작되었다. 데뷔 전 임수원은 버클리 음대 조기 졸업 후 엘라 피츠제럴드 아들인 레이 브라운 주니어의 재즈 쿼텟 피아니스트로서 유럽과 미국 전역을 투어한 경력이 있다.

임수원 인스타그램

 

 

 

놀다

정은혜 <NOLDA>(21.09.24)

재즈는 다른 예술도 그러하듯 결국 즐겁게 놀기 위한 유희의 활동이다. 지금도 국내와 미국을 부지런히 오가며 활동하는 피아니스트 정은혜는 평소에도 단지 작업을 위한 아이디에이션만이 아닌 비평적 사고 확장과 끊임없는 창의적 연구를 통해 적극적으로 새로운 음악, 즐거운 예술을 꿈꾼다. 그는 전작 <존재들의 부딪힘, 치다>(2020)에서 판소리와 즉흥 연주를 뒤섞었던 데에 이어 이번 앨범 <놀다>에서는 오롯이 모든 것을 해낸 피아노 독주로 ‘혼자 놀기’의 정수를 들려준다.

정은혜가 정의한 ‘놀다’는 ‘몸, 마음 그리고 세계로 이루어진 물리적 현실을 완전히 버리지 않는 동시에 초월함’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것은 현실 세계와 이를 초월한 세계를 동시에 오가는 것이기도 하다. <놀다>가 택한 현실은 우리가 놓인 한국의 과거 자연의 풍경. 15세기부터 19세기 사이 전통 산수화 속 자연으로부터 받은 영감을 자유롭게 해체하고 재구조화해 피아노 연주로 풀어내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앨범은 한국인 최초로 재즈 레이블 ESP-Disk’에서 발매해 해외에서 눈길을 끌었다. 1963년에 설립한 ESP-Disk’은 앨버트 아일러, 오넷 콜맨, 선 라, 버드 파웰, 폴 블레이 등 여러 재즈 거장의 음악을 내놓은 바 있다.

일찍이 미국에서 활동하며 아방가르드 재즈 트럼페티스트 와다다 레오 스미스, 첼리스트 이옥경 등과 협연했던 정은혜는 2011년 한국 전통음악을 공부하면서 새로운 테마와 놀이에 눈을 떴다. 앞서 언급한 <존재들의 부딪힘, 치다>는 미국의 현대 음악 매거진<Sequenza 21>과 한국의 재즈 전문 리뷰 페이지 <재즈 스페이스>에서 각각 ‘2020년 베스트 앨범’으로 선정되었고, 이번 <놀다> 역시 그 독창성을 인정받아 미국 라디오 채널 WBGO에서 ‘2021 하반기 주목할 앨범’ 프리뷰 기사로 소개되었다.

정은혜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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